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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29 [가람찬] 첫 만남
  2. 2014.10.10 [둥글레차][백호주작] 기다림

[가람찬] 첫 만남

둥글레차 2014. 11. 29. 19:57


※ 가람찬인데 가람이 거의 안나옴주의 / BL임다. / 정말 짧습니다.




[가람찬] 첫 만남.



WRITTEN BY. 리네






햇빛 잘 드는 창가, 한 소년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푸른색의 교복 마이를 입고 팔로 제 머리를 받친 채 잠든 얼굴위로 햇살이 내리비췄다. 수수해 보이지만 잘 뜯어보면 매력적인 얼굴 위를 붉은색 머리카락이 덮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다들 나가서 조용한 공간 속에 숨소리도 없이 잠든 모습은 마치 실제 상황이 아니라 그려진 그림 같기도 했다. 그 때, 문이 드르륵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곧바로 소년이 있는 책상 쪽으로 향해가던 그가 싱긋 웃었다.



"야, 주은찬!!"

"…."

"언제까지 쳐 잘꺼냐?! 빨리 일어나라?"



탕탕, 책상을 두들기는 손이 자못 사나웠다. 그 손의 주인은 다른 손으로 제 옅은 회색빛 머리카락을 연신 헤집으며, 짜증스럽게 책상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며 책상 위에 엎어져 있는 제 친구를 보며 그가 가늘게 인상을 썼다. 깨워도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꼴을 보니 줘패면 일어나려나. 유도를 비롯한 각종 운동들을 휩쓴 유단자인 만큼 폭력은 자제하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급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 누워 있던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시시 눈을 비볐다. 이리저리 뻗쳐 있던 붉은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애써 가라앉히며, 그는 하품을 했다.



"무슨 일이야, 빽건."



졸려 죽겠는데. 그렇게 말하며 은찬은 제 눈을 가늘게 떴다. 들고 있던 손을 살며시 내리며, 백건은 짤막히 용건만 대답했다.



"수학 노트 좀 빌려줘."

"딴 애한테 빌려, 왜 하필 나야?"

"나 친구 없거든."



당당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은찬은 손으로 제 얼굴을 짚었다. 친구 없는 게 무슨 자랑거리냐. 모처럼의 단잠을 방해한 이유가 저런 쓸데없는 용건이라니.



"창피하지도 않냐?"

"니가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잔말말고 당장 노트나 이리 내."



안 그러면 죽여버릴 듯이 형형히 안광을 빛내는 백건의 모습에 은찬은 어이가 없어졌다. 내가 무슨 동네 북이냐. 하지만 솔직히,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기도 귀찮은 관계로 슬며시 책상에서 노트를 꺼냈다. 주면 먹고 알아서 떨어지겠지. 빨리 보내고 마저 자는 게 나았다. 모처럼의 점심시간을 이런 식으로 버릴 바에야.


노트를 건네주었다. 물론 그 노트에 요 며칠 간 거의 필기를 하지 못했다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자, 여깄어. 6교시 전에 가져와."

"땡큐."



노트를 받아들자 더 이상의 잔소리는 없었다. 재빨리 교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은찬은 혀를 쯧쯧 찼다. 저걸 친구라고. 이미 여러 번 겪고 있는 일이라 별 감흥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한숨을 쉬던 은찬이 다시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요새는 이상하게 너무 피곤했다. 자도 자도 끝없이 자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이래 봬도 몸 하나는 건강한 편이라 체력이 딸리는 적은 없었는데, 요즘은 쉬는시간 뿐 아니라 수업 시간에도 엎어질 정도로 그 사태가 심각해졌다. 밤에 분명 잠을 자고 있는데도, 마치 한 잠도 자지 못하는 것처럼 몸이 축축 늘어졌다. 이제 곧 시험인데 일났네. 피식 웃던 은찬의 의식이 수면 밑으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동시에, 그의 몸까지도.




*



바람이 한 차례 불어와 창가를 지나쳐 커튼을 뒤흔들었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이 교실을 한 바퀴 쓸어버리고 복도로 흘러나갔다.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무엇도.




*



"…어라?"



새까만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간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찬은 제 눈앞에 나타난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분명 자신은 방금 전까지 책상에 엎드려 그나마 주어진 점심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은 숲이었다. 그것도 정말이지 도시 주변에는 절대 없을 거 같은, 하늘을 가릴 듯이 울창한 나무들이 제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러니 경악할 수밖에. 최소한 자신은 이 동네에 살면서 이런 숲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건 꿈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은찬이 제 몸을 훑어보았다. 일단 입고 있는 옷은 교복이 확실했다. 요 근래 피곤하다 싶었더니 드디어 이런 꿈도 꾸는구나. 하하 웃으며 뺨을 긁적거리다, 제 앞에 있는 나무로 다가갔다. 손을 뻗으니 까슬하면서도 맨질맨질한 촉감이 손끝에 묻어났다. 꽤 리얼하다, 생각한 순간 나무뿌리에 발이 걸렸다. 꽈당 넘어져 흙에 고개를 묻은 은찬이 신음소리를 흘렸다.



"아야야…." 



그러던 은찬이 순간 숨을 멈췄다. 아프다니. 꿈이라면 아플 리가 없을 텐데. 그러나 지금 그는 넘어진 제 얼굴이 무척 아팠으며, 입에 들어간 흙은 푸석푸석하고 텁텁했다. 일어서서 몸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골똘히 생각하다가, 다시 바닥에 주저앉은 그가 흙 한 움큼을 집어들어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촉감이나 냄새나,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꿈이 아니라면, 여긴 대체 어디란 말이야?!


납치라도 당한 건가.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의 귓가에 난데없이 무슨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귀를 기울였다. 작지만 선명한 이 소리는….



'말 울음소리?'



점점 다가오는 소리에 은찬은 절로 몸이 굳어졌다. 도망칠까? 아니야, 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잖아. 나뭇잎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누군가가 예상대로 말을 타고 수풀 사이로 등장했다. 그리고 동시에, 은찬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백마를 탄 남자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긴 머리를 하늘을 향해 묶고, 화려한 옷을 차려 입은 귀공자. 아름다운 얼굴은 언뜻 보기엔 성별이 구분가지 않았지만 키나 골격을 보아서는 남자가 확실했다. 그가 은찬을 발견하더니 고삐를 세차게 잡아당겨, 그 자리에 멈춰섰다. 특이한 옷차림, 붉은색 머리카락. 마냥 놀라고 있는 은찬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적색의 눈동자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넌, 누구냐?"







끝/ㅅ/b



===


둥차 첫 BL연성을 가람찬으로 할지 몰랐네요 전 당연히 건찬으로 할 줄 알았는데 ㅋㅋㅋㅋ


배꼬님 가람왕 연성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짤막하게 연성해봤습니다:) 저는 차원이동이라는 소재를 매우 좋아해서 ㅋㅋㅋㅋ


제가 생각한 가람왕은 뭐랄까 평소에는 냉정하고 이지적인 왕인데 사생활로 들어가면 고집 세고 말 안들을 거 같은 그런...? 자기가 원하는 건 무조건 제 곁에 붙잡아놔야 되고 손에 넣지 못하는 건 없었으니까 꽤 거만할 거 같구요. 그래서 은찬이한테 집착해도 은찬이가 제 맘대로 안 되니까 더 사납게 굴고 그러면서도 초조해지고... 참새같은 이 녀석이 언젠가는 제 곁을 멋대로 떠나갈까봐.


반면 은찬이는 꽤 성실하고 우유부단하지만 중요할 때는 칼같을 거 같은 느낌? 건이를 다루는 걸 보면 알겠지만 귀찮아지는 걸 싫어하고 적당히 상대한테 맞춰주면서도 은근 상대 엿먹이기도 고단수... 그래서 가람이한테 따라주는 척 하면서 가람이를 많이 엿먹일듯. 가람이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가끔 그 집착이 숨이 막히고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우월감도 느끼고.


어쨌든 초반엔 많이 싸우겠죠. 처음에는 존대하던 은찬이가 참다참다 터져서 나중에 반말. 가람이는 넌 내것인데 왜 이리 제멋대로 구느냐고 하고 은찬이는 누가 니꺼냐고 당장 나한테서 손 떼라고 버럭버럭할듯 ㅋㅋㅋㅋㅋ 그러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은찬이가 휘두르게 되겠지 은근 사람 잘 꼬실 거 같단 말이죠 ㄷㄷ



제가 이 장르는 거의 소비러인 터라 이게 두 번째 연성이네요 ㅂㄷㅂㄷ


배꼬님께 바칩니다. 앞으로도 연성 기대할게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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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차][백호주작] 기다림  (0) 2014.10.10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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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날조가 좀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려요 ㄷㅅㄷ





"어디 다녀 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그녀, 현 주작은 뒤를 돌아보았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저를 맞이하는 사람이 누군가 싶어서.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백호였다. 큰 키에 백발의 머리카락, 고요한 호박색의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입고 있던 외투를 의자에 던져놓으며 주작은 생글생글 웃었다.



"뭐야, 너였어?"

"나라서 실망이냐."

"조금은?"

"아무튼 어디 다녀 와? 고양이 새끼마냥."



그녀는 평상복을 벗고 다시 평소에 제가 입던 붉은빛이 감도는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사신강림을 한 후로 전혀 변하지 않은 외모는 언제나와 같이 아름다웠다. 그녀에게 사신이 강림한 나이는 열 아홉, 수십 년이 지난 후로도 여전히 어려 보이는 얼굴과 마찬가지로 성격도 여전했다. 물론 그건 백호도 마찬가지였지만.



"아, 오랜만에 지상에 내려갔는데 재미있는 아이를 만나서."

"누군데?"

"내 후계자."



귀엽더라고. 의자에 앉아 턱을 괴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덩달아 흥미가 일었는지 그녀의 맞은 편에 앉은 백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아, 이번에 남자로 태어났다던 그 아이 말하는 거지?"

"그렇지."



주작 가의 후계자는 예로부터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관례다. 음양오행에서 주작의 성질은 양. 음기를 가진 여자와 만나야 그 힘을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다. 같은 양기를 가진 남자는 주작의 힘을 다루기도 힘들 뿐더러 사신강림에도 상당한 제약이 올 수 있을 터였다. 뭐, 아이를 선택한 것은 하늘의 뜻이고 자신들이 거기에 뭐라 할 입장은 안 되었지만.


사실 그 아이가 남자로 태어난 것 말고도 이번 후계자들에 꽤 이상한 점들이 보이고 있긴 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했냐?"

"애가 친구를 만들고 싶어하길래, 현재 백호 후계자네 집에 데려다주고 왔지."



나 잘했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미소짓는 주작에게 백호는 웃으며 칼같이 대답했다.



"미쳤구나."

"뭐야?!"

"너네 본가 대전에 있다며? 고작 열 살짜리 애가 집에는 어떻게 가라고 걔를 서울로 데려가?!"



백호의 본가는 서울에 위치한다. 사신인 자신들에게는 한 걸음이면 가는 곳이라지만 지상에서는 차를 이용한다 해도 몇 시간이 걸리는 거리. 어린애가 거기까지 갔다는 것도 걱정될 일이거늘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말에 데려간 곳이 왜 하필 그 먼 곳에 있는 백호 본가란 말인가. 그는 현 주작이자 자신의 소꿉친구를 보면서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정말이지 예전부터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성격이긴 했지만 사신이 되고 나서는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뭐, 어때. 너희 집 부자잖아. 알아서 보내줄 텐데 뭐 그리 걱정해?"

"왜 하필 우리 집으로 보냈어?"

"우리처럼 친해지라고 보낸 거지 뭐~. 어릴 때부터 친해두면 좋잖아? 같은 처지니까."



어차피 지상이랑은 인연도 없는데 뭐. 태연하게 손가락을 빙빙 흔들며 대꾸하는 주작을 보던 백호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하여간 왈가닥. 하긴 이미 지상을 떠난 입장에서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지만, 본가 사람들은 좀 골치를 썩을 터였다. 그는 난데없이 들이칠 후계자를 감당하게 될 제 형과 형수에게 살짝 애도를 표했다.



"그럼 우리처럼 자라려나."

"그래도 남자들끼리니까 좀 다르지 않을까? 남자들만의 우정, 뭐 그런 거."

"음? 우리 중에 여자가 있었나? 나는 너와도 충분히 남자들끼리의 우정을 쌓았다고 생각…. 컥!"



오호호 웃던 주작이 발을 들어 백호의 무릎을 세게 찼다. 아픈 무릎을 손으로 문지르며 그는 주작을 노려보았다. 백호는 금강불괴를 쓴다지만, 그런 능력도 주술 앞에선 거의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힘이나 무술은 당연히 녀석보다 강하지만 주술이라는 건 생각보다 꽤 성가신 능력이었다. 아군일 땐 좋지만 싸울 때는 정말 귀찮기 짝이 없는 능력. 더구나 주술에는 현무보다도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 난 게 이 녀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니가 사신강림을 했을 때 정말 충격먹었지."

"왜? 너무 이뻐서? 하긴 그 때 너 입이 딱 벌어졌었잖아, 호호호."

"…니 입으로 그런 말 하고 싶냐?"



창피하게. 그렇게 말을 돌리던 백호의 귓볼이 살짝 빨개져 있었다. 확실히 그 때는 넋을 놓긴 했었으니까. 솔직히 그 전까지는 그녀는 제게 그냥 왈가닥에 놀려먹기 좋은 친구였을 뿐이었다. 물론 외형이나 몸매나 얼굴은 나름 여자가 맞았지만, 여자라고 하기엔 너무 막역한 사이였으니까. 그녀에게 사신이 강림했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붉게 물든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화려한 옷을 입은 녀석은 확실히 주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웠으니까.


맨날 못생겼다 못생겼다 놀렸지만 사실 그렇게 진심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길거리를 나가면 나름 주목을 받는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예쁘게 꾸미는 것에는 관심이 없던 녀석이라 꾸몄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자신이야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주목받을 정도로 잘생기긴 했지만. 그렇게 다들 차례차례로 사신강림을 한 후 하늘로 올라왔다. 이제 후계들이 성장하게 되면 자신들도 은퇴하게 되겠지.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는 가끔씩 네 명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수련하던 시절이 못내 그리울 때가 있었다. 소소한 것들에 즐거워하고 순수하게 무언가를 열망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에게 솔직했던 그 때가.



"난 말이야."

"어?"

"사실 은찬이가 남자로 태어난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냥 그렇다고.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리던 주작이 제 손을 들어 깍지를 꼈다. 그렇게 한참을 말이 없다가 고개를 든 그녀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금빛의 눈동자는 그녀가 그와 알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우직할 정도로 순수한 눈.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무서운 말이기도 했다. 최소한 그녀에게는.



"야, 그나저나 너 언제 가려고?"

"…."

"내일도 바빠질 텐데 어서 준비해야지. 자고 갈거면 손님 방을 쓰던가."



어색해진 분위기에 하하 웃던 주작은 허둥지둥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문고리를 잡아당겨 밖으로 나가려던 그녀가 멈칫한 것은 백호가 내뱉은 한 마디 때문이었다.



"가은아."



나가려던 주작이 멈칫했다.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버거울 정도로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의자에서 끼익거리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붙잡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박에 묶인 것처럼 답답하고 무거운 공기. 흡사 주술에 걸린 것처럼 온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은아, 주가은."

"그 이름 부르지 마."

"언제까지 내가 널 기다려야 하냐?"



그렇게 말하는 그를 가은은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대답하기가 겁난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녀는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딱 붙어버린 입을 억지로 열어가며 천천히 대꾸했다.



"우린 영원히 살잖아."

"그래서."

"자식이라던가 낳으면 그 아이는 분명 자라나면서 우릴 보고 괴로워하겠지."

"안 낳으면 되지. 그리고 청룡은 결혼해서 애도 낳았잖아. 걔도 후계자라고 하더만."

"그 녀석이랑 우리가 같아?"

"야."

"넌 내 친구야, 백훈."



언제나와 같은 질문, 언제나와 같은 대답. 그녀가 들려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고 포기할 수 없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말이 없는 훈을 내버려둔 채 가은은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달음질쳐서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문을 닫고 주륵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보던 가은은 하하 실소했다.



"친구잖아, 우리는."

'나, 네가 좋은 것 같다.'



아주 오래 전 그가 했던 고백. 이제는 바래고 퇴색될 법 하건만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자신은 언제나와 같이 그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린 친구니까. 친구라는 유대는 연인의 것보다 영원하니까. 자조하던 그녀는 오늘 보았던 자신의 조카를 떠올렸다. 남자로 태어나 이 험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주작의 후계자. 사실 나는 네가 남자로 태어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좋아할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으니, 적어도 이런 감정에는 좀 더 면역이 있을 테니까.


어렸을 때부터 줄곧 품어왔던 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은 이 관계를 깨는 것도 겁이 난다. 친구라는 울타리는 너무나도 편해서 그걸 벗어나면 무언가가 변할까 두려우니까. 가은은 다시 고개를 푹 떨구었다. 눈물이 떨어져 그녀의 옷자락을 적셔갔다.



"쫓아와서 날 붙잡을 용기도 없냐, 바보 백호. 팔 하나 낚아채면서 내 여자 되라~ 하면 되줄 지도 모르는데."



실없는 소리를 하던 가은이 소맷자락을 들어 제 얼굴을 닦았다. 그럼에도 눈물은 그치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방울방울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를 비집고 흘러내렸다. 자신이 나온 방에서 심란하니 생각에 잠기고 있을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쫓아오지 않는 너를 오늘도 난 기다리고만 있다. 아니, 사실 겁쟁이는 나인지도 몰라. 내가 손 내밀기 두려워서 네가 다가와주길 기다리고만 있으니까. 사실 답답하기도 해. 네가 내 말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날 붙잡아준다면 휩쓸려서라도 네 품에 안길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건만, 넌 그러지 않지. 평소엔 제멋대로처럼 굴어도 결국 넌 언제나 내 마음을 우선하니까. 주술은 내가 위지만 남자인 네게 완력으로 이길 수는 없는데. 얼마든지 힘으로 날 빼앗을 수 있을 텐데도 넌 나를 기다리기만 하니까.


무릎을 굽히고 쭈그려 앉아 거기에 고개를 묻고, 가은은 애처로이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내가 네게 먼저 손 내밀 수 있을 때까지.







==


여담이지만 현 주작의 이름은 주가은이라고 멋대로 설정했습니다!


주작 이름은 주작이 은찬이 이모라고 했으니 아마 돌림자를 쓰지 않았나 생각해서 은 자를 넣어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감사해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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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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