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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적으로 트라이에 제로투가 안 나올 리가 없어!!!! ㄷㄷㄷㄷ




[산해정우산해]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 中







"야, 정우야. 서정우."



바로 옆에서, 자신을 애처롭게 부르는 목소리에 정우는 살짝 고개를 들어 옆을 올려보았다. 점심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다들 밥을 먹고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책상에 앉아 노트필기를 하던 중이었던 정우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산해의 눈을 마주했다. 근심 가득한 얼굴과 애써 뒷짐을 진 손, 발 한 짝을 바닥에 대고 빙빙 돌리는 걸 보면 무슨 부탁인지는 금방 보인다. 하지만 예의상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야?"

"필기 좀 보여줘-!!"



두 손을 모으고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수그리는 산해에게 정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럴 줄 알았지. 이 녀석이 이런 표정을 할 때는 영락없이 공부와 관련된 일이었다. 정말 다 좋은데 어떻게 해도 녀석은 공부에는 도통 소질이 없었고, 애석하게도 부모님은 장남에게 거는 기대치가 큰 모양인지라 정우는 종종 산해의 공부를 도와주곤 했다. 별로 거리낄 것도 없었다.


그들은 제일 친한 친구니까.



"그래, 알았어. 자."



싱긋 웃으면서 노트를 건네주는 정우의 모습에 산해의 눈가가 해맑게 휘어지더니 그대로 그를 와락 껴안았다. 천사를 봤어도 이 정도로 감격한 얼굴을 하진 않을 것 같다.



"넌 역시 좋은 친구야!"

"네, 네. 자, 어서 베껴. 대체 뭐 하느라 숙제를 안 해온 거야?"

"축구부 연습이 좀 있어서. 집에 오니까 피곤해 죽겠더라구."



싱글싱글 웃으며 곧장 대답하는 산해의 손이 부지런히 하얀 종이 위를 오갔다. 쓰다가 이게 뭐지? 하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모르겠는지 으윽 신음을 흘리다가, 머리를 긁적이거나 펜을 입에 물거나 하기도 한다. 아는 문제가 나왔을 땐 아하, 하는 표정으로 밝게 웃는다. 참 표정 한 번 다양한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며 정우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해도 요즘 산해가 속해 있는 축구부가 다가오는 대회에 대비해 훈련이 더 빡세졌다는 걸 모르지 않아서, 정우는 힘내라는 듯이 산해의 등을 탁탁 두드렸다.



"얼마나 남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줘…!!"



웅얼거리며 절박하게 말하는 산해의 표정이 참 웃기다 싶어서 정우는 풋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문득 창 밖을 내다보았다. 여름이 훌쩍 다가온 탓인지 햇살은 쨍쨍하고, 날도 상당히 후덥지근하다. 유리창 너머로 하얗게 드리우는 햇빛이 책상 위로 번져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서 장마가 와야 그래도 좀 시원해질텐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정우의 손이 책상 밑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심심한 김에 독서라도 할 생각이었던 정우의 계획은 다음 순간 자신의 반으로 찾아온 누군가에 의해 깨졌다.



"정우야, 잠깐만."



뒷문가에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분명 같이 학생회를 하는 임원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여자애가 왜 갑자기 부르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무슨 일인데?"




상냥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웃는 정우의 미소의 여자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 변화를 대번에 눈치챈 정우는 속으로 알게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곤란하다는 생각이 불쑥 드는 게 사실이었다. 다음에 여자애가 무슨 말을 할지 벌써 눈에 보인다.



"잠깐 시간 좀 내줄래?"



결심한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애를 보며 정우는 뭐라 말해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 물론 그건 한 순간일 뿐, 소년은 언제나와 같은 대답을 입에 담았다.



"그래, 가자."



무슨 말을 할지 알아도 무작정 거절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게다가 제 생각과 다를 수도 있으니까. 유감스럽게도 이제껏 자신이 예상하면 그 예상과 거의 100% 일치하는 자신의 감을 생각하면 분명 이번에도 같을 것이라 직감했지만, 그렇다고 들어주지도 않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붙들고 정우는 여자애를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갔다. 어느 새 필기하던 손을 멈추고, 그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산해는 문득 들리는 여자애들의 수다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정우 쟤, 또 고백 받나?"

"보아하니 그런 것 같은데?"



대충 멀리서 봐도 살짝 빨개진 여자애의 얼굴을 보면 그냥 확정이다. 상냥하게 웃고 있는 모습만 보면 잘 모르겠지만, 사실 어느 정도 곤란해하고 있는 정우의 모습을 산해는 대번에 눈치챘다. 그냥 그 자리에서 거절하면 되는데 하여간 요령도 없다. 꼭 직접 얘기를 듣고 거절하는 게 속이 편하다나. 그게 녀석의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가끔은 좀 머리가 아프다. 펜을 잘근잘근 깨물며 산해는 하아 한숨을 쉬며 고개를 책상에 박았다. 수군거림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번 달만 벌써 세 번째 아니야? 저렇게 불려나간 거."

"인기 진짜 많다. 근데 하긴 나도 정우는 꽤 좋은데. 잘생긴데다 상냥하잖아."



그거야 녀석은 정말 대단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산해는 실실 웃었다. 이상하게 불편한 마음을 가슴 한 구석에 내리담고서.


초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다니다가, 같은 중학교에 진학해서야 산해는 정우의 인기가 얼마나 좋은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냥 막연히 천재소년이라 불린 데다가 얼굴도 곱상하니까 인기가 많겠거니 생각했었지만 직접 근처에서 보니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디지몬 카이저였던 무뚝뚝하고 차가운 예전과 다르게 본래의 사근사근하고 다정한 성격으로 돌아온 녀석을 주위에서 그냥 냅둔다는 게 솔직히 더 말이 안 되는 소리겠지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온갖 러브레터에 고백을 받은 데다가 발렌타인 때는 초콜릿도 한가득 받았다. 물론 자신도 받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녀석에게 오는 양은 정말 한 달 내내 먹어야 할 것만치 많았다.


늘 전교권에서 놀 정도의 수재에 무엇보다 녀석은 노력파다. 굉장히 착실한데다 성격도 상냥한지라 2학년 때는 반장으로 임명되기도 했고. 귀가부긴 하지만 운동도 하라면 분명 자신보다 훨씬 잘할 것이다. 어둠의 씨앗 때문에 천재성이 극대화된 거라고 했지만 원래 모습도 상당한 수재다. 말마따라, 형의 그늘이 너무 커서 상대적으로 가려졌었던 것일 뿐이다. 점점 개화하는 꽃처럼 녀석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솔직히 얼굴로만 따지면 학교에서 녀석만큼 미인은 없을 것이다.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서. 선이 부드러운 얼굴이라 인상도 좋고 그 인상만큼이나 착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상하게 이런 녀석에게도 적은 꽤 많다는 거다.



"그래? 난 쟤 그닥 그렇던데."



또 시작이다. 산해의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갈색 웨이브진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기른 소녀가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었다. 예진아. 학기 초반엔 꽤 예쁘고 성격도 괜찮은 애라는 인상이었는데 그 인상마저 흐릿해진 건 얘가 정우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 후였다. 직설적인 성격이기도 하지만 정우의 행동이 그녀의 입장에선 퍽 답답한 모양이었다. 근데 신기한 건 정우도 진아를 엄청나게 불편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얘가 이렇게 거부감 일으키는 사람도 흔하지 않은데. 이유를 물어도 말을 안 해주고 말이다.



"샌님 같아서 별로지 않아? 남자애가 너무 허허실실, 누가 때려도 그냥 맞고 있을 것 같잖아."



산해는 속으로 웃었다. 샌님이라니.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정우 녀석은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훨씬 힘이 센 편이었다. 힘으로만 따지면 제가 더 쎄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근력이나 완력은 절대 제 또래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았다. 근데 누가 때리면 그냥 맞아주고 있을 것 같다는 건 절실히 공감했다. 저 성격에 누굴 때리기나 할지 모르겠다. 리키 녀석처럼 여차할 땐 팍팍 나서면 좋을 텐데.



"에이, 모범생에 공부 잘하고 성격도 좋은 걸. 사귀면 정말 잘해줄 것 같잖아."

"맞아, 맞아!"



맞장구치는 여자애들을 향해 진아가 반박했다.



"저런 타입은 사귀어도 피곤해. 너무 인기가 많으면 여친 입장에선 좀 그렇지 않아?"

"그런가…?"

"게다가 연애할 생각도 없어 보이는 걸 뭐. 맨날 친구하고만 붙어 다니고. 사귀어도 여친보다 친구를 택할 거 같은 남자는 딱 질색이야."



엄밀히 따지면 진아가 하는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성격상 모두에게 잘 해주는 편이긴 했지만 정우는 정말 친한 사람이랑만 어울리는 타입이었고, 여럿이서 어울리거나 놀 때는 잘만 끼어서 참여하긴 했지만 그 외에는 언제나 제 곁에 앉아있곤 했다. 디지몬 세계에서 친해졌던 사람들을 우선시하는 것도 있고. 기본적으로 소심한 편인지라 딱 선을 긋는 건 상대가 싫어서라기보단 그 자신이 낯을 가려서라는 말이 더 맞았다. 사교성은 좋은데 이상한 곳에서 미묘한 녀석.


이성으로는 틀린 말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친보다 친구를 우선시하지는 않을 거라고. 좀 씁쓸하지만. 올라오는 짜증에 산해는 책상을 탁 치고 일어났다. 여자애들이 그를 돌아보더니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산해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직감한 모양이었다. 하긴 대놓고 자기 단짝을 욕하고 있으니.



"얘기하는 건 좋지만 슬슬 그만 좀 하는 게 어때?"

"나는 사실을 말한 거라고."



진아의 예쁜 미간이 살포시 찌푸려졌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박하려던 산해는 다음 순간 치고 들어온 진아의 날카로운 대답에 멈칫했다.



"쟤가 너한테 의존도가 높은 건 사실이잖아?"

"뭐?"

"등교도 하교도 맨날 같이 하고. 맨날 붙어다니는 것도 모자라 너 축구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가고. 무슨 세트처럼 딱 붙어 있는데 솔직히 그럼 아니야? 여친이 있어도 네가 불러내면 곧바로 약속 취소하고 날아올 거 같던데."



하나하나 또박또박 따지는 진아의 표정이 그래 오늘 너 잘 걸렸다 하는 느낌이라 산해는 살짝 난감해졌다. 그리고 죄다 맞는 말 뿐이라 할 말이 없었다. 등하교 같이 하는 건 정우가 이사온 집이 제 집 근처여서 그런 거고, 축구부 끝나고 같이 집에 가는 건 녀석이 심심하대서…. '근데 정말 심심하다면 그냥 집에 가서 공부를 하고도 남을 성격인데 왜 굳이 자신을 기다리는가' 라는 의문은 차마 생각해내지 못하고 산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친구끼리 같이 다니는 건데 뭐 그리 문제인가. 산해는 사실 진아가 어떻게 그 사실들을 다 알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간신히 핑계를 찾아내 대꾸했다.



"야, 사나이들의 우정은 네 생각보다 더 깊고 깊은 거라고."

"니들처럼 유별난 애들은 내 주변에 없거든?"

"근데 그렇다고 해도 그게 너랑 대체 무슨 상관인데?"

"상관이 왜 없어?!"



저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지르는 진아의 목소리에 산해는 순간 귀를 막을 뻔했다가 겨우 참아냈다. 아, 여자애들은 진짜 톤이 높구나. 나리는 안 그러던데. 그렇게 생각하던 중 산해는 방금 전 진아가 내뱉은 말에 주목했다.



"어떻게 상관있는데?"

"그, 그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갑자기 말끝을 흐리더니 살짝 얼굴이 붉어져서 우물거린다. 그러더니 갑자기 홱 고개를 돌려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는 진아를 산해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질문했다.



"야, 쟤 왜 저래?"

"어린애는 몰라도 됩니다."

"야, 근데 그건 진아가 너무 불쌍하지 않냐?"

"하여간 저렇게 티가 나는데 당사자는 눈치를 못 채니…."

"아, 왜! 뭐냐고!!"



쯧쯧거리는 눈빛으로 산해를 바라보던 여학생들은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락바락 소리지르는 산해를 배경으로 깔고서.




*



여자애와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교실로 돌아오던 정우는 이쪽으로 탁탁 달려오는 실루엣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진아였다. 그쪽도 정우를 알아보았는지 진아의 걸음걸이가 복도 중간에서 딱 하고 멈췄다.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에서 애써 미소를 지으려는 정우의 얼굴을, 진아가 불쾌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홱 그를 지나쳤다. 싸해지는 마음을 붙들고 애써 교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여자애들 사이에서 넉살좋게 웃고 있는 산해의 얼굴이 보였다.


욱신, 심장 한 구석이 쓰려왔다.



'-좋아해.'



수줍은 얼굴로 고백하는 여자애에게 제가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은 늘 정해져 있었다.



'미안해요.'



돌려줄 수 있는 답이 이것 하나뿐이어서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여자애는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그래도 괜찮다며 애써 웃어주었고, 또 어떤 아이는 재빨리 저를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아마 대부분 우는 얼굴을 감추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정말로 예리하게 핵심을 찌르는 사람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 있니?'



그렇게 물으면 역시 답은 하나뿐이다.



'아니요.'



새빨간 거짓말.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끼다가도 이젠 익숙해져서인지 어느 정도는 무덤덤해진 게 다행이었다. 거짓말이라는 걸 들켜서도 곤란하니까. 당장 누구냐는 질문이 들어올 테고, 자신은 그 질문에 대답해줄 수 없다.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모든 게 다 순조롭게 풀리기에 세상은 냉혹하다는 걸 잘 알아서. 사랑과 우정 사이의 경계선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요즘 들어 좀 위험하다. 특히 산해의 저런 얼굴을 볼 때면 더더욱.


들키면 안 돼. 특히 산해에게는 절대로.


중학교에 와서 산해가 예상보다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솔직히 놀랐다. 물론 자신과는 달리 사람 수는 적지만, 이성들이 거의 동경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다가오는 저와는 달리 산해의 경우는 진심인 아이들이 많다. 단순히 외양만을 보는 게 아니라, 내면을 보고 좋아해주는 상냥하고 다정한 아이들이 꽤 많았다. 일단 접근하지 못하게 철저히 선을 긋는 자신과는 달리 산해는 친근하게 누구에게나 잘 다가가는 타입이었다. 덜렁대는 게 심하고 가끔 철없어 보이긴 하지만 중요할 땐 진지하고 다정하니까. 아무래도 그런 점에 끌리는 거겠지.


그 사실이 언제나 정우를 괴롭혔다. 자신과는 달리, 언제든 제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에. 추추몬이 떠났을 때도 이런 감정은 아니었다. 추추몬이 죽었을 때는 회한과 죄책감으로 속이 말라 비틀어졌었다면, 산해한테 느끼는 감정은 독점욕 그 자체였다. 이게 얼마나 웃긴 일인지 알면서도 현실이 그랬다.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참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예진아라고 했던가. 그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지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도 그녀가 껄끄러우니까. 산해와 함께 있으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면 거북하고 불편했다. 너를 좋아한다는 오오라를 대놓고 뿌려대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엄습하는 두려움에, 일부러 축구부 연습이 끝날 때까지 산해를 기다렸다 같이 가곤 했다. 아마 그녀도 대충 눈치는 챘을 것이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넘기고는 있겠지만.


이런 자신이 최악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산해야."

"어? 정우 너, 이제 왔어?"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선 정우가 언제나와 같이 부드럽게 웃었다. 즐거운 듯이 웃으며 저를 반겨주는 산해의 얼굴에 정우는 우울해져 있던 제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다. 산해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그게 좋으면서도, 그게 싫었다. 누군가가 점점 너를 알아보는 게 무서워서. 어릴 때는 모르더라도, 크면 커갈수록 점점 네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가겠지.


언제까지 이렇게 네 곁에 있을 수 있을까.



"자, 곧 수업 시작하는데, 필기는?"

"켁. 깜빡했어!! 으악, 잠시만!"



놀라서 허둥지둥 당황하는 산해의 모습이 웃긴 나머지, 정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피식피식 웃다가 짐짓 화난 듯이 표정을 바꾸고 질문했다.



"뭐 하느라 아직까지도 다 못 베꼈어?"

"아, 그게 사정이…."



헤헤 웃으며 변명하는 산해에게 정우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갈굴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냅두고 교과서를 펴는 정우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 있었다.


그래도 아직 이 정도가 좋지 않을까.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이 거리가 아직까지는 제일 편하다. 언제 말하기는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되리라 생각한다. 산해라면 무턱대고 자신에게 뭐라 하지는 않을 테니까. 낙천적으로 생각하며 정우는 다시 필기를 하는 산해의 옆모습을 힐끗 돌아보았다.


우정이 사랑으로 변하기까지, 앞으로 몇 걸음 전.




===


정우>산해

산해는 >정우 긴 한데 무자각이라는 설정이에요!


왜 트라이에 제로투가 없는 걸까요ㅋㅋㅋㅋㅋㅋㅋ전 무인도 좋고 제로투도 좋은데 ㄱ-

나르님한테 쓰겠다고 해서 부랴부랴 썼는데 아 역시 그냥 막 쓰니까 내용이 막 꼬이는 거 같...쿨럭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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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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