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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신카에서 썼던 짧은 독백입니다. 오랜만에 보다가 마음에 들어서 살짝 공개해봐요ㅇ.<

사망소재 있습니다. 글자 수는 3,683자.

 

 

 


 

 

 

 

너를 보내고


written by. 리네

 

 

 

 



 그 날은, 시리도록 춥고 추운 날이었다.


 한겨울인지라 쌩쌩 소리를 내며 불어오는 칼바람이 눈과 만나 휘몰아치고 있었다. 수많은 하얀 알갱이들이 나의 모자, 목도리, 코트, 신발에까지 계속해서 달라붙다가 떨어져 나갔다. 몸이 얼어붙을 듯이 싸늘하게 내 주위를 감싸는 바람 속에서 나의 손과 발은 손가락, 발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빨개지고 얼어붙었다. 호호 불어봐도 온기가 돌아오지 않는 나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근처에 있던 나무에 살짝 기댄 채로 눈을 돌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다. 시험의 층에서 만나 아직까지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과 그 녀석의 동료 몇 명이 다였다. 모두들 가만히 서서 작은 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저 비석 아래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비석 아래에 누군가를 담은 작은 나무관이 묻혀 있으리라. 모두들 그 납작하고 네모난 돌을 바라보면서 이 추운 날씨에도 누구도 불평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떤 녀석은 눈물을 흘리면서, 어떤 녀석은 그저 슬프다는 얼굴을 한 채로, 안타깝다는 얼굴을 한 이도 있었으며 대놓고 대성통곡하는 녀석도 있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담담하게 그 장면을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내가 그랬다.


 그가 사라지면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너무 괴로워서 숨이 막힐 거라고, 언제나 너를 떠올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네가 없는 삶은 매 순간순간 고통뿐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이상하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왜? 나에게 너란 존재는 결코 그렇게 가벼운 존재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너를 구해 내 곁에 두려고 했다. 설령 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 정도로 나에게 너란 존재는 무겁고, 평생을 옭아매는 사슬과도 같았다. 스스로 그것을 택했지만 그래서 더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너는 이제 없다. 지금 너의 자그맣고 연약한 육체는 이 에일 듯이 날카로운 눈바람이 불고 있는 곳에서 우리가 서 있는 이 단단하고 차가운 땅 속으로 들어가, 안식을 취하고 있다. 그 안은 여기보다는 좀 더 따뜻하려나. 편안하려나? 이제야 너에게 주어져있던 무거운 족쇄를 벗고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었는데,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여기 위에 있는 나와 이 녀석들은 시리도록 추운 곳에서 삶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는 채로 너를 배웅한다. 편안하겠지만 조금 외롭고 고독한 길에서, 네게 행운이 있기를.


 바람이 조금씩 멎어가기 시작하였고 눈들이 하얀 가루처럼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이들도 그것을 느끼고 움츠렸던 몸을 조금은 폈다. 그렇게 바람이 멎어가자 나는 코트에 꽂고 있던 한 손을 꺼내어 밖으로 내밀었다. 금방 손이 새빨개졌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손을 뻗고 있었다. 그렇게 뻗은 내 손 안으로 하얀 눈송이들이 천천히, 다가와서 담겼다. 차갑다. 내 손도 차가웠는데도 눈송이들은 자신보다 따뜻한 것을 만나서인지 금방 녹아, 손에서 또르르 떨어졌다. 한참을 그러다가 나는 살짝 얼어붙은 머리카락을 흩트리며 고개를 살며시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회색빛의 구름이 서서히 지나가고 맑은 하늘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자그마한 네가 너무나도 길고 외로운 길을 떠나게 된 날, 나는 그렇게 너를 보냈다.

 

 

 


 

◈ ▣ ◈

 

 

 



 그 이후로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저 늘 그랬듯이 하루하루를 보냈고 친구들은 그런 내게 언제나 물어왔다.


 괜찮냐고.


 솔직하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 녀석들은 늘 내 눈치를 살피고 나를 걱정했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 같았는데, 나는 정말 괜찮았다. 그냥 평범하게 아침에 일어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늘 그랬듯이 하던 일들을 하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이 늘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를 그렇게 보낸 후, 뒤통수까지 오던 머리카락은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 그렇게 시간이란 열차에 내 몸을 맡기면서 정처없이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수가 말했다. 오랜만에 그를 보러 가자고. 물론 거절했다. 왜냐고 이유를 묻자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냥 가고 싶지 않았다. 굳이 가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자 그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가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약간 처진 어깨를 하고 성을 떠나갔고, 그런 친우의 뒷모습을 보던 나의 마음은 알싸한 시나몬 사탕을 먹은 듯이, 그렇게 씁쓸하면서도 후련했다. 왜 이러는 걸까, 왜 나는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


 너를 다시 만나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걸까?


 이상하게 마음에서는 시끄럽게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가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깔끔히 무시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미 아무 감정도 없고, 시간도 상당히 지났으니 문제될 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미 내가 그의 죽음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철저하고 이성적이고, 냉정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아온 나였다. 물론 그와 있을 때는 조금쯤은 감정적인 면이 드러나기도 했었지만 그가 없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것뿐이다. 별로 불편한 것은 없었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






◈ ▣ ◈






 오랜만에 온 그의 무덤은 그 때도 생각했었지만 작고 황량했다. 상당히 추워진 날씨에 나는 옷깃을 부여잡고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겼다. 벌써 1년이나 되었구나, 여기 온 것이.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무덤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저번에 왔을 때는 조금 떨어져서 슬퍼하는 이들을 바라보았었는데 지금은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 하늘에서는 그 때처럼 다시 회색빛의 구름이 하늘을 감싸고, 그 짙은 장막 속에서 눈꽃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감돌기 시작하는 어둡고 탁한 분위기는 마치 그를 보내던 날과 비슷했다. 우중충한 하늘은 꼭 그의 죽음을 슬퍼하듯이 더욱 어두웠던 그 때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무덤 앞으로 가서 비석을 살펴보았다. 돌판에는 반듯한 글씨체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쥬 비올레 그레이스                 

                         - 스물다섯번째 밤'


 


 


 나는 그 글씨를 천천히 읽어가면서 뭐라 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진짜 이게 녀석의 무덤인건가, 녀석이 이곳에 잠들어 있는 건가, 너는 정말… 이제 없는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손등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바라보았다. 물방울이었다. 눈이 녹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곧, 그것이 나의 눈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씩 떨어지던 눈물들은 점점 더 많이, 방울방울 내 얼굴을 타고 떨어졌다. 턱을 타고 흐르는 눈물들은 내 발치에 떨어져 번져나갔다. 그렇게, 그렇게 계속 눈물 흘리던 나는 갑자기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제 그는 내 곁에 없다. 이제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다시는… 너를 만지고 너의 체온을 느낄 수도 없다.


너는 영원히 가 버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너무나도 서러워지고 가슴 속이 뜨거워졌다. 나는 정말로 울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들을 흘려가면서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었다는 것을. 나는 그의 죽음에 담담했던 게 아니었다. 깨닫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 깨달으면,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면 내가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네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걸 죽어도 실감하고 싶지 않았기에. 숨이 막혀오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겨울이고 추운 날씨인데도 전혀 춥지 않았다. 그저 죽을 것만 같은 이 고통을 견뎌내는 일에 급급했을 뿐이다. 너무 아파서, 너무 괴로워서,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아파오는 목에서는 오열이 터져나왔다. 흐르는 눈물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굵은 눈물방울들을 흘려가면서 나는 꺽꺽 울어댔다.

 

 

"밤, 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이렇게 아파하는 나를 두고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너는 거기서 행복하니, 조금은 내 생각을 하고 있니, 아니면 나를 깨끗하게 잊었니? 나는 지금 내가 너무나도 바보 같아. 어떻게 너를 잊고, 너의 죽음을 견디고 살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까. 지금 네가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찢겨나갈 것 같이 아프고 숨이 막혀오는데. 원망도 해보았다. 왜 나를 두고 그렇게 가버렸니, 왜 나를 버리고, 그렇게 내 곁을 영영 떠나가버린 거니. 나를 왜, 이런 외로운 길에 홀로 내버려두고 가 버렸니?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다. 늘 거짓말만 하던 나의 감정은 선명하게 나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눈물들을 손으로 훔쳐가면서 비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밤, 나는 말이야….

 

 

"보고, 싶다."

 

 

 그래. 사실은, 정말 지금 네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다시 한 번 너를 만나고 싶고 너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고 싶고 찬란하게 빛나던 호박색의 눈동자를 다시 보고 싶어. 네가 나에게 다가오면 손을 뻗어 너의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네가 웃으면 널 꼭 껴안고 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너무 힘든 길만 걸어온 우리였기에, 이제는 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어. 근데 왜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은 이렇게 짧았을까. 신이 야속하다. 이렇게 괴로운 시간을 주실 거였다면 그래도 조금 더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에 대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나도 짧은 행복이 끝나고, 길고 긴 끝없는 고통과 절망이 나를 덮치고 있다. 신은 어째서 나에게, 우리에게 이렇게 잔인한 걸까.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지금 간절히,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네가 듣고 있는지는 모른다. 황량한 무덤가에 소복히 쌓이는 눈들과, 내 곁을 스쳐가는 바람만이 내 기도를 들었으리라.

 

 

"단, 한 번 만이라도…."

 

 

 

널 다시 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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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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