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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아리] 무도회

기타 2016. 6. 13. 22:52




[팬텀아리]

무도회





Written by. 리네






하얀 낮이 지나가고 어두운 밤의 장막이 온 하늘 위를 옅게 수놓을 시각, 새까맣게 물드는 하늘 아래서도 하얗게 빛나는 성의 안쪽에서는 화려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집 몇 채가 들어갈 법한 커다란 성의 창문들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창문을 들여다보면 천장 위에서 제 몸을 화려하게 불태우는 샹들리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연회색 벽을 따라 사람 여럿이 서 있어도 좋을 만큼 넓고 커다란 창문들이 줄을 서고 있었는데, 테두리가 금빛으로 빛나는 붉은 커튼들이 그 사이사이로 휘장처럼 늘어져 있었다. 붉은 열매를 빻아 즙을 낸 것처럼 부드럽게 깔린 카펫 위로 사각사각, 조심스러운 발소리들이 살짝씩 들려온다.


눈부시도록 붉은 무도회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참가하고 있었다. 간간히 놓여 있는 하늘색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과 술들 사이사이를 아름다운 꽃들이 장식했다. 가장자리 쪽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악기를 들고 잔잔한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고, 파트너를 찾아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었으며 사람들 틈을 벗어나 멀뚱히 창가 쪽에 서 있는 남자도 있었다. 정장과 화려한 장신구들로 치장하고 하하호호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로 쟁반을 들고 있는 바텐더들이 바쁘게 발을 놀렸다.


그들 사이로 지나가는 한 여자가 있었다.


하얀 드레스 위로 반투명한 푸른 숄을 걸치고, 금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의 얼굴은 가면을 쓰고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가면 너머로 드러나는 푸른 눈동자는 총명하게 반짝거렸다. 제 머리색과 같은 나비가면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푹신한 카펫 위를 밟으며 천천히 회장을 돌아다니고 있는 여인은 신기하다는 듯이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일까, 들뜬 발걸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여자에게 관심을 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물론 이 여인의 정체가 현 에레브의 여제, 아리아라는 걸 알면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지만.


- 진짜 화려하네.


지나가던 바텐더에게서 받아든 무알콜 칵테일을 홀짝거리는 아리아의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빛났다. 수행원도 없이 온 걸 알면 나중에 신수한테 엄청 혼날 게 분명했지만, 이런 장소에까지 따라오면 자유롭게 활동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막상 와보니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혼자 오면 분명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는 통에 아리아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누구랑 같이 오자고 했어야 했나.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떠오르는 생각에 아리아는 곧장 방금 했던 생각을 취소했다. 말했다간 분명 체통이 있다며 어쩌고저쩌고 잔소리를 한 다발로 들었을 것이 뻔했으니까. 생각만 해도 두통인지라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면서 아리아는 들고 있던 칵테일을 쭉 들이켰다.


그래, 사람이라면 여기도 잔뜩 있잖아! 아무나 말 걸어서 같이 놀면 되지 뭐! 뭐가 문제겠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웃고 있는 아리아에게로 여러 개의 시선들이 따갑게 꽂히고 있었다. 대부분 남자들이었는데, 얼굴이 보이지는 않아도 상당한 미인이라는 건 짐작했는지 힐끔힐끔, 몇몇은 꽤나 노골적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아리아가 그 시선들을 눈치챌 수 있었을 리가 없었지만.


그리고, 그런 그녀를 멀찍이서 지켜보는 시선 하나가 있었다. 잔 하나를 들고 창가 쪽 커다란 기둥에 기대 있는 남자의 얼굴에는 푸른색의 가면이 걸려 있었다. 건조하게 회장을 훑어내리던 자주빛 눈동자는 아리아의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듯하다가, 차분히 살펴보더니 곧 이채로운 빛을 띠었다. 긴가민가한 건지 살짝 고개를 갸웃이던 남자는 무언가 재미난 생각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칵테일을 다 마신 뒤 빈 잔을 들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아리아의 모습에 그녀가 혼자라는 걸 알았는지 남자들 몇 명이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말을 걸어볼까 고민하던 남자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그녀를 부른 건,



“실례합니다.”



속으로 뭐하고 놀지에 대해 열심히 궁리하고 있던 아리아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들었다. 푸른 망토를 두르고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모습이 흡사 귀족을 연상시키는 남자였다. 얼떨떨하게 그를 올려다보고 있던 아리아에게 남자는 싱긋 웃으며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한 곡 추시겠습니까?”

“아, 감사하지만 지금은….”



진짜 누구 잡아서 놀겠다고는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정체가 탄로나면 엄청 귀찮아질 걸 아니까. 갑작스러운 춤 신청을 거절하려던 찰나, 남자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웃더니 아리아의 어깨를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꺅! 살짝 비명을 지르며 남자의 품에 안긴 아리아가 항의하려던 찰나,



“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야?”

“뭐? 누구…?”



끌어안긴 채로 고개를 들자 남자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놨지만, 저 웃음기 가득한 눈동자는….


홀린 듯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던 아리아는 그의 정체를 눈치채고 깜짝 놀라 작게 소곤거렸다.



“팬텀?!”

“이제 알았어? 둔하네, 너.”

“여긴 어떻게….”

“일하러 왔지.”



태연하게 말하며 제 허리를 끌어안는 팬텀의 행동에 아리아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속삭였다.



“뭘 훔치러 온 건가요?”

“음, 글쎄?”



더 이상은 안 알려준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는 팬텀에게 아리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랑 얘기하고 있어도 되요? 잘못하다가 들키면 어떡하려구요.”

“이런 허접한 녀석들한테 들킨다면 괴도 팬텀의 이름이 아깝지.”



그렇게 속삭이며 팬텀은 망토를 살짝 들어올려 아리아를 감싸안았다. 갑작스럽게 어두워지는 시야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금발의 소녀를 다정하게 내려다보던 팬텀은 곧 자신과 아리아를 주목하는 몇 명의 남자들에게 피식 조소를 날렸다. 꺼지라는 듯이 살벌한 시선에다 아무리 봐도 귀한 집 자제처럼 보이는 팬텀에게 굳이 시비를 걸러 오는 남자는 없었다. 아리아를 향한 시선이 거슬렸던 팬텀에게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쓸데없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팬텀?”



팬텀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걸 깨달은 아리아가 다시금 그를 불렀다. 아, 미안.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뒤로 물러난 팬텀의 얼굴은 비록 가면에 가려져 있긴 했지만, 눈빛은 평소와 같이 장난스러웠다. 어라, 착각했나? 아리아는 주변을 슥슥 둘러보았다. 다행히 자신들에게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팬텀을 이끌고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향했다.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서야 그녀는 겨우 한숨을 토로하며 속닥였다.



“정말 뭐 훔치러 온 거예요?”

“궁금해?”

“궁금하죠, 당연히. 괴도 팬텀이 직접 나서게 할 정도의 보물은 흔하지 않잖아요?”

“뭐, 그렇지. 너도 스카이아로 사기를 쳤으니까 말이야.”

“신경쓰고 있었군요.”

“참내, 그 보석은 노카운트야. 전설대로의 물건이 아니었으니 흥미 없어졌어. 오히려….”

“오히려?”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반짝거리는 아리아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던 팬텀이 손을 들어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맞부딪혔다. 딱, 소리와 함께 그의 손가락 사이로 나오는 붉은 장미에 아리아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니, 장미를 닮은 아름다운 머리핀이었다.



“자, 선물.”

“아, 고마워요!”



손수 아리아의 머리에 핀을 달아주는 손길이 묘하게 상냥하다는 생각에 아리아는 시선을 올려 팬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가까이 붙어 있어서 그런가, 기분 좋게 뛰고 있는 심장의 두근거림이 싫지 않아 아리아는 살짝 웃었다. 아리아의 머리에 꽂힌 핀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팬텀이 그런 그녀의 미소를 보고 피식 웃었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고 있어?”

“재미있어서요. 팬텀이랑 만나게 될 줄 상상도 못했거든요. 혼자 있기 심심했었는데.”

“뭐야,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렇게 웃을 생각이었어?”

“…팬텀이라서 더 즐거운지도 몰라요.”



솔직하게 말하는 아리아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팬텀은 낮게 소리내어 웃었다. 같이 따라 웃으면서도 아리아는 정말 여유로워 보이는 팬텀에 걱정이 앞섰다. 이렇게 가면까지 착용하고 온 걸 보면 분명 뭔가 훔치러 온 모양인데, 자신은 재밌지만 이 사람에게는 소중한 시간을 뺏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팬텀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아리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그 끝에 입을 맞추었다. 깜짝 놀라는 아리아에게 팬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너 날 뭘로 보는 거야? 나는 괴도 팬텀이라구. 내가 훔치지 못할 보물같은 건 없단 말이지.”



자신만만하게 이어지는 팬텀의 목소리에 아리아는 역시 당신답다고 생각하며 따라 웃기만 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팬텀의 말에는 깜짝 놀랐다.



“딱 하나를 제외하고는.”



그가 자기 입으로 자신의 실패를, 그것도 저렇게 태연하게 거론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진짜요? 뭔데요?”

“음, 그건….”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반짝거리는 아리아의 눈빛에도 팬텀은 잠깐 고민하는 척하더니, 아주 부드럽게 오른팔을 움직이면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한 곡 춰주면 알려줄 수도 있는데?”



싱긋 웃으며 손을 내미는 팬텀을 멀뚱히 보던 아리아가 풋 웃었다.



“당신만 괜찮다면.”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살포시 웃는 아리아의 얼굴을 잠깐 뚫어져라 바라보던 팬텀이 곧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단단하게 자신을 붙잡는 팬텀의 손에 아리아는 살짝 당황했는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긴장하고 있는 아리아를 눈치챈 팬텀이 피식 웃으며 그녀를 이끌고 무도회장 가운데로 걸어나갔다.


마침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바뀌었다.


잔잔한 왈츠가 악기들이 연주하는 선율을 타고 천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앞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난감해하는 아리아와 달리 팬텀은 느긋한 태도로 아리아의 허리를 살짝 감싸안았다. 순간 놀라서 팬텀을 쳐다보는 아리아에게 그는 괜찮다는 듯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팬텀과 아리아는 천천히 원을 돌기 시작했다. 가볍게 몇 번 원을 돌다가도 팬텀은 곧 익숙한 솜씨로 아리아를 리드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뻣뻣하게 굳어 있었지만, 템포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자니 긴장이 점점 풀리는지 아리아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돌아오고 있었다. 가면 너머로 그런 아리아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던 팬텀이 곧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리아에게로 더욱 몸을 바짝 붙였다.


강하지만 부드럽게 자신을 끌어당기는 손에 아리아는 저항 없이 끌려갔다.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아리아는 반사적으로 팬텀을 올려다봤다가 멈칫했다.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흩날리는 백금발의 머리카락,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자주빛 눈동자는 마치 자신을 꿰뚫어볼 것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더 이상한 건 그 시선이 싫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본다는 것처럼 집중하고 있는 팬텀의 눈빛에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깜빡거렸다. 팬텀이 그런 아리아를 보고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손으로 걷어내었다.


정말 부드럽게 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는 손길에 아리아는 어쩔 줄 모르겠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순간 모든 게 어색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팬텀의 어깨에 올려둔 손을 내려야 할지 냅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색했다.


무엇보다 얼굴이 너무 더웠다. 팬텀이 싫은 게 아닌데 이상하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심장이 덜컹거리는 느낌에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고 소곤거렸다.



“팬텀, 너, 너무 가까운데….”

“뭐야. 긴장 돼?”

“…?! 그런 거 아니거든요?”



발끈해서 대꾸하는 아리아의 모습에 팬텀은 그저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청량하지만 시원한 웃음소리가 음악소리와 함께 드문드문 아리아의 귓가로 살포시 파고들어왔다.


이 소리를 듣고 있는 건 자신뿐일까?


그렇다면 좋을 텐데. 순간 그렇게 생각한 자신에 아리아는 당황했지만 애써 의연하게 팬텀의 얼굴을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그 얼굴을 본 팬텀의 눈동자가 놀란 듯 살짝 커졌지만, 그는 끝까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춤이 끝나고 많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특히 팬텀과 아리아가 있는 쪽으로 시선들이 와르르 꽂히는 걸 보면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특유의 분위기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모양이었다. 따끔따끔할 정도의 시선들을 뒤로 한 채 팬텀과 아리아는 발코니로 나왔다. 다행히도 이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본 채로 한참을 말이 없었다. 발코니 쪽에 서 있던 아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해줘야죠.”



당신이 훔치지 못했던 보물. 그렇게 입을 떼는 아리아에게 팬텀은 잠깐 말이 없더니 이내 대답했다. 



“…역시 안 가르쳐줄래.”

“왜요?!”


춤추면 알려준댔잖아! 억울하다는 듯이 팬텀을 쏘아보는 아리아의 눈빛에도 팬텀은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팬텀의 미소에 난감한 기색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아리아가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팬텀은 곧 결론을 내렸는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아리아에게로 다가왔다. 탁하게 얼룩진 자주빛 눈동자에 아리아는 살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와는 다른 팬텀의 분위기에 뒷걸음질치고 싶어졌지만 그녀는 애써 이겨냈다. 그런 아리아의 기분을 알아챘는지 팬텀은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아리아의 허리를 한 손으로 끌어안았다.


도망칠 수 없다는 듯이.



“왜냐면….”



그 말과 함께 팬텀은 다른 한 손으로 아리아의 머리를 끌어당겨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가면들이 살짝 부딪혀 조금 삐뚤어졌지만 아리아는 그런 걸 신경쓸 정신이 아니었다. 무슨 상황인지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든 게 꿈인 것만 같았다. 신분을 숨기고 무도회에 놀러 온 것도, 우연히 팬텀을 만나 춤을 춘 것도, 지금 그가 자신에게 키스하고 있는 이 상황까지도.


쪽, 소리와 함께 팬텀은 천천히 아리아의 얼굴에서 고개를 들었다. 멍한 얼굴을 하고 꼼짝도 못하는 아리아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훔칠 거거든.”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못 꺼내는 아리아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팬텀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간만에 즐거워 미치겠다는 얼굴로.



“그럼 이만. 잔금은 나중에 받으러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발코니 바깥쪽으로 다가간 팬텀의 기척은 금세 사라졌다. 그런 그를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아리아는 그저 손을 올려 제 입술을 어루만졌다. 방금 전의 감촉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내가, 그러니까, 팬텀이랑 키스를….


자각하자마자 아리아의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엄청나게 펌프질하는 상황에서 아리아는 새빨개진 볼에 두 손을 올렸다. 뜨거웠다. 아까는 살짝 더운 정도였지만, 지금은 차가운 밤바람으로도 속일 수 없을 만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말도 안 돼.”



망연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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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리퀘로 간단하게 쓰려던 팬텀아리 무도회! 근데 왜 이렇게 길어졌지 망할.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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