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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 AU 썰 일부예요! 아리아가 성녀고 팬텀은 뱀파이어.




[팬텀아리] 천국의 정의






“팬텀.”



갑작스런 부름에 팬텀은 옆을 돌아보았다. 그런 팬텀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리아는 그저 하늘 위에 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성당에서 가장 높은 곳,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 정돈된 테라스의 난간을 잡고 있는 아리아의 손이 살짝 꿈틀했다. 선선한 바람이 밤의 밀회를 훔쳐보러 간간히 들른다. 달빛 아래서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이 아리아의 움직임을 따라 사락거렸다.


그 모습에 순간 넋을 잃었음에도, 팬텀은 언제나와 같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다.



“왜?”



장난스레 말을 받아치는 팬텀의 목소리가 살짝 의아한 기색을 띄었다. 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임에도 평소와는 다르다 느껴지는 건 어째서인지.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요? 여자로서.”



돌아오는 대답에 보랏빛 눈동자가 저도 모르게 깜빡였다. 가볍게 생각하기엔 어째 진지했고, 아주 진지하다고 보기엔 어딘지 투정을 부리는 듯한 목소리.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그런 자신이 우스워진 팬텀이 속으로 쓰게 웃었다.


나름 사람의 속내에는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네 앞에서는 이따금 자신이 없어지는 건지 모르겠군.


그냥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면 될 텐데 왜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까. 물론, 이유는 알고 있다. 내 마음은 명확하니까. 문제는 너.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 그리고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지?


아리아는 여전히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팬텀은 짧고도 긴 생각을 마치고 놀리듯이 말했다.



“뭐, 생긴 건 여자같긴 한데 말이야.”

“와, 너무하네요.”

“근데 그건 왜?”

“좋아하는 남자가 돌아봐주질 않아서 말이죠.”



태연한 그 한 마디에 팬텀의 어깨가 아주 살짝 흠칫거렸다. 갑자기 조용해진 팬텀에 아리아가 뭐라 말을 하려는 순간 팬텀이 선수를 쳤다.



“너,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어?”



그의 반응은 덤덤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딱히 흥분한 기색도 없었거니와, 그렇다고 차갑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감정했다. 방금 전의 웃음기는 어디로 가져다 버린 건지 살짝 딱딱해진 팬텀의 목소리에도 아리아는 웃으면서 덧붙였다.



“뭐야. 있으면 안 돼요?”



치사하게. 그러면서 웃는 아리아에게 팬텀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툭 말을 던졌다.



“…넌 성녀잖아.”

“그 전에 인간인걸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이 덧붙이는 아리아의 목소리가 퍽 장난스러웠다. 명랑한 소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깊어지는 밤과 함께 갑작스레 찾아온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다.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아리아는 살며시 옆을 돌아보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것처럼 표정을 굳히고 있는 팬텀의 옆얼굴에 아리아가 놀라기도 잠시 팬텀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좋지 않아.”



살짝 눈가를 일그리며 싱긋 웃는 팬텀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지만 어딘가 달랐다. 깊게 가라앉은 보랏빛 눈동자에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려다 겨우 멈춰섰다.


이상하다. 분명 얼굴은 웃고 있는데, 왜 목소리에서 한기가 느껴지지?



“어째서요?”



아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그 자리에 서서, 똑바로 자신을 직시하는 푸른빛 눈동자에 팬텀은 피식 웃더니 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흘러내린 금빛 머리카락을 한 줌 손에 쥐어 제 앞으로 가져온 팬텀이 그 위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그에 놀라 그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는 아리아를 팬텀이 살짝 올려다보더니, 이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널 정말 원하는 누군가가, 널 훔치려들지 모른다구?”



여유가 넘치는 얼굴과 달리, 절대 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아리아의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는 팬텀의 손가락은 견고했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감정들이 입 밖으로 내뱉으니 더욱 선명해지고 명확해졌다.


나는 너를 원하는 걸까.


어째서? 바래서는 안 되는 존재라 더욱 탐이 나는 걸까.


괴도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 싶으면서도 그게 아니라는 대답이 곧장 떠올랐다. 괴도이니만큼 희귀한 보물에 수집욕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니다 싶은 물건에 손을 댄 적은 거의 없었다. 아니, 사실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팬텀은 속으로 자조했다. 아무래도 내게 너는 정말 특별한 지도 모르겠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네가 곤란해질 것을 알면서도, 끝내 내 이기심을 채우고 있는 걸 보면.


그녀 입장에선 충분히 놀랄 만한 이야기임에도 차분하게 자신을 쳐다보고만 있는 아리아에 팬텀은 답답해졌다.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리아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팬텀의 눈동자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를 들면?”

“응?”

“예를 들면, 누가요?”



궁금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리아의 모습에 팬텀은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진짜 모르는 건가,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건가? 재밌다는 듯이 미소짓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기도 했다. 어느 쪽일까. 살짝 한숨을 내쉬며 팬텀은 한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너…. 이 상황에서 그런 걸 묻냐.”

“짐작가는 건 있지만. 그건 제 짐작일 뿐이니까요.”



꼭 듣고 싶다는 듯이 눈을 반짝거리는 아리아에게 팬텀은 다시 물었다.



“왜 그게 듣고 싶은데?”

“뻔하잖아요. 팬텀도 의외로 눈치가 없군요?”

“방금 한 이야기랑 관련 있어?”

“…글쎄요?”



싱글싱글 웃고 있는 저 얼굴이 성녀가 아니라 악마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성녀. 그 한 단어에 팬텀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리고 새삼 아리아와 자신의 입장에 대해 떠올랐다. 싸해진 그의 얼굴에 고뇌가 떠올랐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녀석은 성녀다. 헌터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성당의 최고 무녀이자 성녀라고 불리는 존재. 자신은 그저 뱀파이어이고 일개 괴도일 뿐이지만, 아리아는 평생 성녀로서 자라온 몸이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또 그게 너무나도 당연하고, 이름 하나에 너무나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삶. 그래서 그녀는 성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제껏 이 작은 성 안에서 외로이 살아왔다. 그런 아리아에게 자신이 이런 욕심을 부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렇게 얽히게 된 것만 해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더한 걸 바라도 되는 걸까.


팬텀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아리아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놓아준 팬텀이 망토를 뒤로 젖히고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그에 깜짝 놀라서 그에게로 다가오려는 아리아에게 팬텀은 한 손을 내밀고서 싱긋 웃었다.



“괴도는, 가지고 싶은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직업이라서요.”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오직 단 하나.



“팬텀…?”



정중하게 내밀어진 손을 멀뚱히 바라보는 아리아에게 팬텀은 부드럽게 속삭였다.



“고귀하신 성녀님.”

“….”

“저와 함께, 지옥으로 떨어져 주시겠습니까?”



너는 성녀고 나는 뱀파이어. 서로가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다. 언제나 햇살이 쏟아지는 너의 세계와 달리 나의 세계는 칠흑같이 어둡고 조용한 음지의 공간이다. 세간에서 보면 내가 너를 타락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 빛을 등지고 어둠 속으로 너를 끌어들인 내 존재는 모르는 이들에겐 두고두고 악마라 회자되겠지.


그럼에도 나는 네게 손을 내민다.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는 팬텀의 눈동자를 아리아는 똑바로 응시했다.



“전, 지옥에 갈 생각은 없어요.”



그 말에, 팬텀의 한쪽 눈가가 씰룩거렸다. 그럼에도 덤덤하게 자신을 향하는 팬텀의 얼굴을 본 아리아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깃들었다. 살짝 한 걸음 다가온 아리아가 한 손을 내밀어 제 앞에 놓인 팬텀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변함없는 표정과 달리 살짝 동공이 커지는 팬텀의 눈동자를 보며 아리아는 싱긋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당신과 함께라면 그 어디든,”



내겐 천국일 테니까.






===


일삼님과 풀었던 뱀파이어 썰 일부를 간단히 적어봤습니다. 팬텀아리 고백 장면! 여기서 아리아는 헌터들의 중심에 있는 몇 개의 커다란 성당이 있는데 그 성당 중 가장 큰 곳에 머무는 성녀구요 그 자체로 신의 상징이라 불리는 존재예요. 그리고 팬텀은 뱀파이어이자 괴도입니다.


이 다음엔 둘이 탈주해요. 중간에 프리드네 집에 들르기도 할텐데 아마 무사히 탈주해서 나름 행복하게 잘 살 거예요 ㅇㅇ 이 때 아리아가 은월이랑 좀 친해져서 서로 편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요!


원래 이 썰이 팬텀아리랑 프리은월 둘 다 있는데 프리은월 마음 확인은 나중에 적을게요 지금은 자야겠다ㅠㅠㅠ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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