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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 AU 썰 일부. 프리드가 뱀파이어, 은월은 인간.





[프리은월] nemo nisi mors








『To. 은월

안녕하세요, 은월?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인 거 같네요.


이렇게 편지를 받고 놀랐을 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그 때 너무 많은 신세를 져서 언제 꼭 감사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팬텀도 동의했구요.


결론부터 말하면 저희는 잘 지내고 있답니다. 국경을 넘으니 확실히 추격은 많이 줄어들더라구요. 물론 한 곳에 정착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팬텀 성격에 그럴 리도 없고, 저도 새로운 세상을 더 많이많이 보고 싶으니까요.


지금 저는 비공정 안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은 빛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무척 예뻐요. 팬텀이 자기 비공정을 그렇게 자랑하던데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거 같아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해요. 아, 오해하지 말아요. 성녀로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랍니다. 하지만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어디든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지금의 삶이 저에게는 더 잘 맞는 거 같아요. 


그 때 도와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당신이 저를 알아보고 숨겨주지 않았더라면, 전 지금쯤 다시 그 작은 방에 갇혀 눈물을 흘리고 있었겠죠? 팬텀도 말은 안 하지만 고마워하고 있어요. 쑥스러움을 타는 것뿐이에요.


맞다, 은월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아직도….』



“그건 뭐야?”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은월은 힐끗 옆을 돌아보았다. 언제 방 안으로 들어왔는지 프리드가 그를 향해 싱긋 웃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가려져 있던 달빛이 창문 너머로 흘러들어와 바닥에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원래라면 이렇게 일찍 들어올 리가 없는데 오늘은 볼일이 빨리 끝난 모양이다.


천천히 제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프리드에 은월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다섯, 셋, 둘, 하나. 저도 모르게 눈을 깜빡거리는 은월의 곁을 스쳐지나간 프리드가 하아, 한숨을 내쉬며 침대 앞에 다가섰다. 입고 있던 망토를 천천히 벗어내리는 프리드에게서 다시 시선을 거둬들인 은월이 덤덤하게 말했다.



“아리아가 보낸 편지.”

“정말? 뭐라고 그러는데? 무사히 잘 도망갔어?”

“그렇다고 하는군.”



『아직도 솔직하지 못하고 있나요?』



“아아, 그거 다행이네.”



망토를 손에 들고 침대에 털썩 걸터앉은 프리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 내저었다.



“솔직히 팬텀 녀석은 무소식이 희소식인 타입이라 말이야. 어쩌다 연락이 오는 일도 드물어서. 이렇게라도 소식을 받으니 안심이야.”

“…그런 것치곤 여기에 꽤 많이 드나들지 않았던가?”

“그건 아리아랑 만나고 난 후였을 거야. 아리아를 만나기 전에 서로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던 게 언제였지? 10여 년 전이었나…. 뭐, 아리아 때문에 이 지역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니, 가끔 오랜 친구가 떠올라서 날 찾아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하하 사람 좋게 웃는 프리드에게 은월은 말했다.



“꽤나 냉정하군.”

“뱀파이어의 특성이지. 우리 정도면 그래도 꽤 자주 연락하고 사는 편이었다고.”



뱀파이어, 그 말에 은월의 입매가 살짝 굳어졌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에 프리드는 그저 웃으며 조용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황량할 정도로 넓은 침실에는 소파와 탁자, 침대 하나를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침실의 벽에는 온갖 신기한 문양들이 그려진 주술진이나 뱀파이어와 관련된 벽화의 일부를 재현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붉은색 카펫으로 가려져 있지만, 침실의 바닥에는 온갖 문양들이 빼곡히 적힌 거대한 주술진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이 집을 보호하기 위한 주술의 핵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섬뜩한 감각에 프리드는 한쪽 손을 들어 살펴보았다. 살짝 떨리고 있는 손가락을 보며 그는 쓰게 웃었다. 



“그나저나 너는 왜 여기 있어? 오늘은 일찍 자라고 했잖아.”



만월이라 그런지 감각이 한층 더 예민했다. 이래서 일찍 자라고 했던 건데.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며 프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 프리드의 목소리에도 은월은 말이 없었다. 망토를 옆에 있는 의자에 걸쳐놓은 뒤 프리드는 몸을 돌려 은월을 상냥히 쳐다보았다.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시선을 느끼고도 은월은 구태여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시선을 계속 편지에 붙박고서 그는 무언가를 망설이듯 몇 번 입을 우물거렸다. 그런 은월의 모습에 프리드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무슨 일이지? 물어보려는 찰나 은월이 입을 열었다.



“프리드.”

“왜?”

“…넌 날 어떻게 생각하나.”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무슨 말을 꺼내는 걸까. 그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프리드의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뭐가 어떻게야. 친한 친구로서….”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아. 똑똑한 네가 모를 리 없어.”



프리드를 돌아보는 은월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일렁이는 눈빛이 그의 동요를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었다. 그걸 본 프리드의 입가에서 웃음이 점차 엷어졌다.



“…무슨 대답을 바라는데?”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묻는 프리드에게 은월도 침착하게 말했다.



“네 진심.”



그 말을 끝으로 은월은 입을 꾹 다물고 프리드를 바라보았고, 프리드도 굳이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탐색하는 것처럼 그저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나 눈빛은 매우 상이했다. 겉으로 보기엔 차가워 보였지만 감정적인 동요를 숨기지 못하는 은월과 달리, 사람 좋게 웃고 있었지만 프리드의 눈빛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그 건조함 뒤에 숨어있는 어둡고 깊은 고뇌가 프리드의 신경을 뒤흔들었다. 날이 날이라서 그런가. 은월의 눈동자를 한참 바라보던 프리드가 쓰게 웃었다.



“그 눈. 오랜만이네.”

“뭐?”

“나한테 네 피를 마셔도 좋다고 했을 때도, 그런 표정을 지었었지. 너.”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외양도 성격도 많이 변했는데, 왜 이런 점은 그대로인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잠깐 옛일을 회상하는 프리드에게 은월은 말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

“알아, 그래서 곤란해.”

“뭐가 곤란하지? 난 너에게라면…!”

“그게 곤란하다는 거야.”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은월을 보며 프리드는 힘없이 웃었다. 쿨해 보이지만 사실 고집이 세고, 무엇에도 집착이 없어 보이지만 한 번 정한 일엔 절대 마음을 바꾸지 않는 너. 예전부터 나는 은연중에 그런 너를 무서워했던 것도 같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너에게 휩쓸려가는 내가 두려운 것일까.



“네게 나는 곤란한 존재인가? 그저 그 뿐?”



진지하게 묻는 은월에게 프리드는 잠깐 조용했다가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꼭 들어야겠어?”

“그래.”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그 말과 함께 프리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은월에게로 다가가는 프리드의 발걸음은 차분하고 여유로웠다. 그 속과는 다르게도. 은월의 앞에 선 프리드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여전히 시선을 피하지 않는 은월의 눈동자가 살짝 실룩였다.



“난 네 생각보다 훨씬 끈질기고 위험한 존재라구. 너에게 보이는 면만이 나의 전부는 아니야.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넌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어질지도 몰라.”

“…어떤?”

“뱀파이어는 언제나 갈증에 시달리거든. 네가 당장 피를 제공한다고 끝나지 않을 오래고 깊은, 그런 욕망 말이야.”

“….”

“지금은 잘 살고 있지만, 언젠가 이런 내가 이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너 자신조차 집어삼키려 들지도 모를 일이야. 그런데도….”



넌 그걸로 괜찮은 거야?


싱긋 웃으며 말을 거는 목소리는 참으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럼에도 어딘지 오싹해지는 감각에 은월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지금 자신의 대답 하에 따라 무언가 달라지리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지금 제가 거절의 의사를 표한다면, 프리드는 더 이상 자신에게 다가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남자니까.


하지만….


꿀꺽 침을 삼킨 뒤 은월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관없어.”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아프고 힘든 건 싫지만, 너와 헤어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 그런 건 싫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보다는 네 입에서 떨어지는 거절의 한 마디가 더 무서운 걸.


결심했다는 듯이 굳은 표정을 짓는 은월을 바라보는 프리드의 눈동자가 무언가의 감정으로 번뜩였다.



“그럼, 후회하지 마.”



뭐라고 해도 이미 늦은 거니까.


그 말과 함께, 프리드의 손이 은월의 가슴을 툭 밀었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넘어진 은월의 눈동자가 천장을 보며 데록데록 굴러가다가, 그 위를 가리는 프리드의 얼굴에 뚝 정지했다. 검청색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퍼져 붉은 카펫 위를 가득 수놓았다. 마치 박제된 나비처럼.


프리드가 물었다.



“무서워?”

“…아니.”



어둡게 빛나는 프리드의 눈동자를 멍하니 응시하던 은월이 살짝 미소지었다.



“내가 말했잖아. 나는 네 것이라고.”

“…너는 물건이 아니잖아.”

“그런 너라서 내가 널 포기하지 못하는 거야.”

“….”



말이 없는 프리드에게 은월은 웃으며 말했다.



“내 피를 마셔.”

“….”

“걱정 마. 네 손에 죽을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행복하겠지.”

“그런 소리는 관두지. 날 혼자 두고 떠나겠다는 거야?”

“…그런 건 아니야. 그저 마지막까지 네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표현이 격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 기쁘다는 듯이 웃고 있는 은월의 얼굴을 본 프리드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프리드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하, 하하. 작게 실소하던 프리드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더니 그는 곧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정말로 슬퍼 보이는 그의 표정에 은월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프리드가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누군가한테 집착해봤자 좋을 거 하나 없는데.”

“프리드…?”

“미안하다.”



그 말과 함께 프리드는 은월의 목을 물어뜯었다. 윽, 비명을 삼키면서도 가만히 있는 은월의 몸을 끌어안으며 프리드는 더욱 깊이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프리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 놓아주지 못하는 건 오히려 나야.


바보같이 왜 계속 내 곁에 남아 있었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망갔으면 그래도 괜찮았을 지도 모르는데. 너를 욕심내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이젠 되돌릴 수 없어. 설령 먼 미래에 네가 나를 원망하게 된다고 해도, 도망가고 싶다고 말해도 물러서지 않아. 듣지 않을 거야.


프리드의 입가에 슬픈 미소가 떠올랐다.



-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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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팬텀아리랑 같은 배경이에요! 프리은월은 좀 썰풀이를 해야겠네요.


일단 프리드는 뱀파이어고, 은월은 아주 어릴 때 프리드에게 주워져서 길러졌어요. 물론 은월은 인간입니다. 프리드가 은월을 주운 건 변덕이랄까. 나이를 먹고 자라면서 은월은 변하지 않는 프리드의 모습에 그가 자신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요. 그가 뱀파이어라는 걸 깨달은 건 청소년 시기. 지금 은월은 20대 초반입니다 ㅇㅇ


프리드한테 은월이 왜 내 피는 안 마시냐고 물어본 적 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요. 그 때 프리드는 놀라서 마시던 커피를 뿜어버렸었죠. 물론 그 얘기를 듣긴 했지만 실제로 피를 마시진 않았어요. 뱀파이어지만 프리드나 팬텀은 흡혈 자체에는 별 흥미가 없어요. 참고로 뱀파이어가 특정 누군가의 피에 집착한다는 건 그 상대에 집착한다는 말과도 똑같습니다.


프리드랑 팬텀은 오랜 친구 사이고요, 친구라고는 해도 수십 년에 한두 번 얼굴 보는 사이였어요. 팬텀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프리드는 한 곳에 붙박이는 걸 좋아하니까요. 성향이 다르지만 성격은 비슷해요. 참고로 프리드가 은월 주워온 거 알았을 때 팬텀은 엄청나게 반대를 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 늘리지 말라고요. 근데 얘가 아리아에게 치인 뒤로는 이제 프리드가 팬텀을 걱정하는 신세가 된 게 함정(...)


팬텀아리가 도망칠 때 프리드네 집에 들렀던 적이 있어요. 당시 아리아가 부상을 좀 입었어서 한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추격이 오기 전에 재빨리 떠났지만요. 둘은 팬텀이 가진 비공정으로 갔고 지금은 잘 살고 있습니다^p^ 비공정이 이 지역 밖에 있었기 때문에 아리아를 데리고 거기까지 가야 했거든요. 중간에 일이 생겨서 숲을 헤매던 아리아를 은월이 발견했었구요 ㅇㅇ


뱀파이어는 오랜 세월을 사는 종족이라 무언가에 쉽게 집착하지 않아요. 한 번 집착하면 곧 죽어도 놓지를 못해서. 그래서 프리드도 은월에게 집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집착하게 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뭐 그런 내용...?


제목인 nemo nisi mors은 라틴어로 죽음만이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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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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