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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 아니에요.

※ 전력 60분. 주제는 [동화]





[캣마리] 미녀와 야수





“안녕, 공주님.”



씨익 웃으며 제 앞에 나타난 검은 고양이에 마리네뜨의 미간이 살짝, 아주 살짝 찌푸려졌다. 또 나타났다. 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 상냥하게 제 손에 입맞추는 그를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던 그녀는 블랙캣의 시선에 재빨리 다시 표정을 바꿨다.



“아, 하하하. 또…, 오셨네요?”

“공주님이 날 보고 싶어하는 거 같아서 말이지~?”



그런 적 없거든.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마리네뜨는 그저 하하 웃으며 두 팔을 등 뒤로 감췄다. 오늘은 무슨 일이시냐고 묻기도 전에 블랙캣이 말했다.



“그냥~, 보고 싶어서?”



언제나와 똑같은 대답. 이젠 일상이 되어버려서 그렇게 놀랍지도 않지만, 그 진의를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마리네뜨는 속으로 몰래 한숨지었다. 대체 얘는 무슨 생각인 걸까. 변하지 않는 일상처럼 실랑이하는 그들의 모습도 여전했다.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블랙캣의 눈빛은 꽤 진지했지만, 역시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마리네뜨의 모습처럼.



“저기요.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응?”

“블랙캣은, 레이디버그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물론 좋아하지.”

“그럼 저한테 그런 멘트 막 쓰는 건 실례라고 생각 안해요?”

“어라? 무슨 소리야. 난 보고 싶다고 했지, 좋아한다고는 안 했는데~?”



짓궂게 묻는 블랙캣의 목소리에 마리네뜨의 얼굴이 창피함으로 살짝 붉어졌다. 그럼 그렇지. 괜히 반응해줬다 싶어 후회가 살짝 밀려왔지만 마리네뜨는 아직 꿋꿋했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마리네뜨는 살짝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럼 대체 왜 찾아오는 거예요?”

“말했잖아. 보고 싶어서라니까.”

“보통 보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외간 여자를 찾아오는 남자는 드물거든요.”

“의외네. 날 남자로 취급해주고는 있었구나.”



그럼 남자지 여자냐. 어이가 없어진 마리네뜨의 눈초리가 가늘게 좁혀지려는 순간, 블랙캣이 다시금 손을 내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손을 빼려 들지는 않았지만, 불편해 보이는 마리네뜨의 모습에 블랙캣은 조심스레 잡은 마리네뜨의 손 위에 뭔가를 쥐어주었다.



“이거 받아.”

“에?”

“그럼 나는 할 일이 많아서 말이지. 이만!”



그 말과 함께 바람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블랙캣의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던 마리네뜨는 제 손에 쥐어진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자주빛의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상자였다. 뚜껑을 열자, 영롱한 푸른빛이 도는 심플하니 예쁜 귀걸이가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리네뜨의 품 안에서 티키가 튀어나와 말했다.



“우와, 아주 예쁜 귀걸이네!”

“그, 그러게.”

“마리네뜨 너 주려고 가져온 거 같은데, 엄청 고민했을 거 같은 느낌이야.”



그 말대로였다. 예쁜 무늬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동그란 귀걸이는 마리네뜨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고, 마리네뜨도 그 사실은 잘 알았다. 무엇보다 값이 꽤 나가 보였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받으라고 줬을리는 없다. 하지만 이걸 받아도 괜찮은 걸까. 쓰지도 못할 텐데. 마리네뜨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살짝 제 귀에 걸린 미라클스톤을 쓰다듬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그 진심을 가벼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대답해줄 수 없었다.





* * *



“어떻게 생각할까, 그거.”



변신이 풀리는 감각에 블랙캣은 절로 눈을 감았다. 몸 전체에서 거둬지는 마법의 기운과 함께 장난스러운 히어로는 사라지고, 차분하고 부드러운 얼굴의 금발 소년의 모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소년에게 플랙은 낄낄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지, 그것보다 치즈는 어디 있어?”



기대만발한 얼굴로 공중을 휙휙 돌며 치즈를 찾는 플랙의 모습에 그럼 그렇지,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아드리앙은 보관해두었던 치즈가 담긴 통을 꺼내 뚜껑을 열어주었다. 고약한 냄새에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익숙해지니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행복한 얼굴로 치즈를 입에 우겨넣던 플랙이 뭔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왜 하필 귀걸이야? 그 여잔 쓰지도 않을 거라는 거 알잖아?”

“쓰지 않아도 상관없어. 가지고만 있어 준다면.”



레이디버그인 그녀가 다른 귀걸이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선물하고 싶었다. 사용하지 않아줘도 상관없다. 그냥 소중히 간직해만 준다면, 그걸 보고 자신을 떠올려 준다면 그걸로도 만족할 수 있다. 슬쩍 웃는 아드리앙의 속내를 짐작했는지 플랙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일편단심 납셨네. 그래서, 언제까지 숨길 거야? 네가 블랙캣이라는 걸.”

“글쎄. 언제까지일까.”



아드리앙의 표정이 쓰게 일그러졌다. 그녀가 알아차릴 때까지 스스로 정체를 밝히지 말자고는 결심했었지만, 역시 이건 이것대로 힘들다. 마음에 둔 여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좋아할 남자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녀가 좋아하는 아드리앙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어서.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이 떠오른다. 동화책에 나오는 야수는 미녀의 진실된 사랑이 있어야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솔직히 지금 자신과 그녀의 처지가 딱 그 꼴이었다. 외면에 집착하는 그녀와 진짜 자신을 봐주기를 바라는 자신은 묘하게 엇갈린다. 가까이 있지만 닿을 수 없는 평행선 위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만 바라보는 그녀는 결코 뒤를 돌아봐주지 않는다. 돌아봐줄 때까지 기다리자고 생각했었지만 역시, 조금은 힘들다.


아드리앙이 작게 중얼거렸다.



“동화라면 분명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동화가 아니니까.



“딱 한 마디면 되는데. 그럼 마법이 풀리고, 진짜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설 수 있는데 말이야.”



마법을 푸는 한 마디는 무척 간단했다. 하지만 그건 그 자신도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짐승의 모습을 뒤집어쓴 남자는 공주님의 한 마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가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는 왕자님이라는 사실은 모르지. 몰라야 했다. 사실 그런 왕자의 모습같은 건 다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진짜 자신을 찾아내주길 바라게 된다.


닭살 돋는다는 표정으로 몸을 비비꼬던 플랙이 다른 치즈조각을 집어들며 말했다.



“쓸데없이 오글거리는 건 여전하네~.”

“시끄러.”



그가 투덜거렸다.





* * *




“블랙캣!!”

“어서…, 도망쳐!”



보이지 않는 실로 꽁꽁 묶인 블랙캣이 맘대로 움직이려는 몸을 애써 멈추고 그녀를 향해 소리질렀다. 이번 악당은 인형을 좋아하던 소녀답게 주변의 사물을 조종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시내 한 복판에 나타나서 인형놀이를 한답시고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묶어 조종하던 악당은, 골목으로 도망쳐 변신하려던 마리네뜨를 발견하고 히죽 웃었다. 같이 있었던 블랙캣이 그녀를 감싸고 대신 맞아주지 않았더라면 분명 저기 사람들처럼 의지도 없는 인형이 되어 싸우고 있었으리라.


괴로워보이는 블랙캣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자아를 빼앗기는지 흐려지는 눈동자를 애써 부여잡고, 골목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블랙캣이 피식 웃었다.


역시, 하지 않았구나. 


어차피 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음에도 왜 굳이 그걸 선물했을까. 심지어 처음에 자신이 반했던 사람은 레이디버그로 변신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마음이란 참으로 가증스러운 존재다.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아니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녀가 레이디버그던 뭐던 이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그리고 그녀도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라고 있다니 말이다.


그 귀걸이는 제 마음이었다. 레이디버그가 아닌 너라도 상관없다는, 제 나름대로의 고백이었다. 그녀가 알아챌 날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설마 죽진 않겠지. 꽤나 태평하게 생각하면서 블랙캣은 끝내 닥쳐오는 수마를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의식을 잃기 전 그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직…,”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는데.







“…좀 떠….”



멀리 메아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서리가 하얗게 끼어버린 창문처럼,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인지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어? 눈을 뜨라고!!”



조금씩 정신이 들고 있었지만 욱신거리는 몸과 피곤한 정신에 그는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에 꽤나 기분이 좋아졌다. 신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없었지만. 악당에게 기를 다 빨린 느낌이다. 



“왜 눈을 뜨지 않는 거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울음기가 배어들고 있었다. 그에 아니라고, 깨어났다고 답해주고 싶었지만 정말 기운이 없었다.



“제발, 일어나란 말이야!!”



깜짝이야.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걸까.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건 그녀도 잘 알지 않는가. 대체 정신을 잃었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가 저리 불안해하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더 잘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제 얼굴 위로 닿는 따뜻한 감촉에 생각이 멎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려, 제 눈앞에 있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미 변신이 풀린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리, 네뜨….”

“블랙캣! 괘, 괜찮아? 괜찮은 거야?”



왜 저 모습인 걸까. 변신이 풀린 것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아니면 자신이 레이디버그인 걸 설마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마리네뜨의 모습으로는 존대를 하면서, 굳이 지금 반말을 쓰는 것이 참 헷갈린다. 그래도 눈치채지 못한 척 해줘야 하는 걸까. 그 와중에도 실없는 생각이 드는 자신이 참 웃겼다. 이런 생각할 기운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죽을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그럭저럭….”



괜찮아.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몸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고통에 조용히 신음했다. 어지간히도 거칠게 다뤘나 보네. 애써 평소처럼 웃으며 말하려고 했지만 얼굴 표정을 바꿀 힘도 없었다. 그냥, 지쳤다. 손가락에 애써 힘을 주어 들어올렸다. 눈물이 가득한 마리네뜨의 눈가에 가만히 손가락을 댔다.



“왜, 울고 있냐.”



웃는 게 훨씬 예쁜데.



“이 와중에 농담이 나와요?”



아, 다시 존대다. 개인적으로는 반말이 친근해서 더 좋은데, 그렇게 선을 긋고 거리를 두려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하하, 사실인걸.”

“정말, 괜찮은 거죠?”

“그런 걸로 죽는다면 이미 예전에 죽었겠지.”



농담을 던지는 자신의 모습에 마리네뜨는 눈물이 맺힌 눈동자로 살짝 웃었다. 그 모습이 진짜 안도한 것처럼 보여서 심장 한 켠이 욱신거렸다. 한숨을 내쉬며 인정했다. 아, 역시 좋다.


네가 너무 좋아.



“…너는 언제쯤 눈치채줄까.”

“네?”

“아니, 아니야.”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어서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마법이 풀리면 그제서야 나는 나로서 너를 마주할 수 있다.


사랑해.


그 한 마디 주문이면 모든 나쁜 마법은 풀린다. 저주가 풀리는 날, 나는 너를 마주 끌어안고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겠지. 분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어서. 하지만, 아직은 조금 뒤의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도.


그 날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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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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