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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마리/캣버그] 이름




"그, 그건 뭐야?"


마리네뜨는 심히 당황하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마리네뜨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알리야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쭉 펴고 말했다.


"헤헹, 예쁘지?"


붉은 바탕에 검은 점들이 드문드문 그려진 후드티는 외관상으로 보기엔 상당히 예뻤으나, 당사자 입장에선 심히 당황스러운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레이디버그 테마의 후드티를 입고서 싱긋 미소짓는 알리야에게 마리네뜨는 진지하게 물었다.


"할로윈이야?"
"그건 이미 지났잖아."
"그럼 그건 뭔데!!"
"이거 팬들끼리 맞춰 입은 거야. 트위터에 공동구매하는 글이 올라왔더라고. 냅다 샀지!"
"어휴, 너도 참..."


대단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마리네뜨는 퍽 떨떠름해 보였다. 그런 친구의 표정에도 알리야는 그저 즐거운지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바퀴를 돌았다.


"근데 이거 디자인 꽤 괜찮지 않아? 밖에서 입고 다녀도 별 문제 없을걸?"
"모양에서부터 레이디버그 테마라는 게 눈에 확 들어온다, 야."
"그럼 뭐 어때. 질문 들어오면 저는 레이디버그의 팬입니다~ 라고 말해주면 되지?"


알리야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괜히 뻘쭘해진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알리야가 창피한 건 아니었지만 자기를 테마로 한 옷을 룰루랄라 입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 건 솔직히 좀 민망했다. 그렇다고 사실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리네뜨?"
"어, 어?! 왜!!"
"뭘 그리 깜짝 놀라. 시간은?"
"시간? 아...!!"


시계를 보니 벌써 나가봐야 할 시간이다. 깜짝 놀란 마리네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겨들었다.


"미안, 알리야. 이만 가볼게!"


약속에 늦었어. 허둥지둥 나가는 마리네뜨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알리야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요즘들어 마리네뜨는 바쁘다. 예전만큼 자주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건 조금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자기 방 책상 의자에 앉아, 한 팔을 의자에 괴고 턱을 기댄 알리야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한창 좋~을 때다."




***


"아하하하하!"
"지금 웃음이 나와?"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하 웃어대는 아드리앙에게 마리네뜨가 핀잔을 주었지만, 그는 좀처럼 웃음을 그칠 기색이 없었다. 정말 웃긴 모양인지 기분 좋은 웃음소리로 웃어대는 아드리앙의 모습은 여전히 멋지긴 했지만, 지금은 그 모습마저 괜히 얄미울 정도다. 마리네뜨가 손을 막 내저으며 열변을 토했다.


"아무리 우리가 영웅이니 뭐니 그런 소리를 듣는다지만, 설마 저런 거까지 만들 정도라니..."


민망해서 나다닐수가 없다며 이마를 짚고 고민하는 마리네뜨를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보던 아드리앙이 살짝 웃으며 정정했다.


"아, 아니. 내가 웃은 건 그거 때문이 아니라."
"응?"
"나도 샀거든."
"뭣?!"


기겁해서 냅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리네뜨의 모습에 카페 여기저기서 눈총이 쏟아졌다. 뻘쭘하게 웃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마리네뜨가 즉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몰랐어? 알리야가 레이디블로그에서 홍보하던데. 재빨리 구입했지. 블랙캣 버전도 있던데? 네 몫까지 사뒀어."
"아드리앙 너까지..."
"뭐 어때. 어차피 그거 하나 입는다고 우릴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그냥 팬이구나 하고 말겠지."
"어..."
"그리고 뭔가 커플느낌나서 좋지 않아?"


난 좋은데. 장난스레 미소짓는 얼굴이 마치 변신했을 때와 좀 닮아 있었다. 화악 달아오르는 얼굴을 푹 숙이며 우물우물 말을 꺼내는 마리네뜨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아, 아드리앙 네가 좋다면, 나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말한 마리네뜨는 그 말을 뱉은지 1분도 안 되어 자신이 했던 말을 도로 주워담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야만 했다. 처음 사귀게 되었을 때 이후로 가장 환하게 웃으면서 옆에 있던 봉투를 내미는 아드리앙의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거 입고 나가자!"


이런.



***


화창한 시내를 활보하는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검은 후드티를 입은 금발의 남자와 빨간 후드티를 입은 여자. 손을 잡고 있는 걸 보니 딱 봐도 커플이 분명했다. 꽤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에게 지나가던 이들이 가끔씩 시선을 던졌다.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자와 달리 여자 쪽은 조금 주눅이 들어 있었다. 힐끔거리는 시선이 신경쓰였던 탓이리라. 역시 이상한가 싶어 제가 입은 옷을 살짝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드리앙이 설핏 미소지으며 칭찬을 건넸다.


"잘 어울려."
"그, 그런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꼬옥 맞잡힌 손의 감촉에 마리네뜨의 얼굴은 점점 불타고 있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애정표현이 좋긴 좋았지만 여러 모로 심장에는 좋지 않은 것 같다. 자신에게 보폭을 맞춰 천천히 걷는 그의 배려가 낯간지럽다. 사귀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쉽사리 이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는 걸 보면 나도 꽤나 중증인가.


"오랜만에 같이 거리에 나오니까 기분 좋다."
"어, 어! 마, 맞아. 기분 좋다~."


불쑥 말을 건네는 아드리앙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한 뒤 마리네뜨는 다시 걱정에 빠져들었다. 이크, 또 말을 더듬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레이디버그일 때는 좀 낫지만 마리네뜨일 때는 그를 대하는 게 아직도 서투르다. 정말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마리네뜨?"
"응?"
"뭐 먹을래? 크레이프."
"어, 난 딸기로..."
"알았어."


크레이프를 사러 간 아드리앙을 뒤로 한 채 벤치에 앉아 있던 마리네뜨의 주변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풍선을 든 작은 아이. 신기하다는 듯이 멀뚱멀뚱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뻘쭘해질 찰나, 소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와, 레이디버그다!"


제 옷을 손가락질하며 해맑게 웃는 아이의 대답에 잠깐 멍해져 있던 마리네뜨는 픽 웃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 앞에 다가간 마리네뜨가 무릎을 접고 앉아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숙녀님. 여긴 어쩐 일이야?"
"엄마랑 놀러왔어! 언니 레이디버그의 친구야? 옷이 닮았어!"
"음, 맞아. 언니는 레이디버그의 친구야. 레이디버그 좋아하니?"
"응, 멋지잖아!"


헤실헤실 웃는 소녀의 모습에 마리네뜨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소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


"그래, 언니가 꼭 그 얘기 레이디버그한테 전해줄게. 귀여운 팬이 하나 있다고 말이야."


이제 돌아가야지?

꺄르륵 웃으며 좋아하는 소녀를 애써 달래서 보낸 뒤에야 아드리앙은 돌아왔다. 손에 들고 있던 크레페를 마리네뜨에게 넘겨주는 아드리앙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자, 여기."
"고마워."
"잘 대답해주던데? 민망하다고 할 땐 언제고."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는 게 히어로잖아. ...아니, 그것보다. 보고 있었어?"
"응."


대답과 함께 아드리앙은 제 몫의 크레페를 한 입 베어물었다. 천천히 크레페를 먹고 있는 아드리앙의 모습에 마리네뜨는 속으로 감탄했다. 어떻게 먹는 모습까지 저렇게 우아하지.


"좋네, 이런 거."
"응?"
"네가 레이디버그가 아니고, 내가 블랙캣이 아니어도 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거 말이야."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고 말하며 그는 웃었다. 살랑 부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더니 사뿐히 주변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그 이름은 우리 인연의 시작이기도 하니까."


없는 것도 서운해.

쏴아아 부는 바람이 측면에서부터 그들이 앉은 벤치를 훑어내렸다. 그녀를 돌아보는 아드리앙의 입꼬리가 살짝, 아주 살짝 올라가 있었다. 부드러운 초록빛 시선에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서,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바람이 훅 거세게 불었다.


"꺄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악당인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각각 풀숲에 숨어들었다.


"변신! 레이디버그, 예!"


붉은 빛과 함께 레이디버그의 모습으로 변신한 그녀의 앞에, 역시 변신한 블랙캣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트를 방해받은 것이 불만인지 질렸다는 듯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다가도, 웃음기를 아예 거두지 않은 걸 보면 아주 기분이 나쁜 건 아닌 거 같다. 그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결국 이쪽인가봐."
"그러게."
"갈까요, My lady."


블랙캣이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한쪽 손을 내밀었다. 제 앞으로 내밀어진 손을 말없이 바라보던 레이디버그는 그 손을 살짝 붙잡았다 놓아주었다. 악당이 있음직한 곳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날듯이 그 쪽을 향해 달려갔다.

히어로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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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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