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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 http://eclilps.tistory.com/entry/FEMA04

※ 제목은 차후 수정될 수 있습니다.






Episode 5.

시작된 변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구우우-!!”



으아아! 비명을 지르며 마리네뜨는 베개에 얼굴을 쿡 박았다. 그렇게 침대에 엎드린 채로 마구 발버둥을 치던 마리네뜨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중얼거렸다.



“에스미가 대체 뭐에 화가 났지?”



말을 걸어도 대답 안 해주고, 앞으로 다가가도 ‘내 앞엔 공기밖에 없다’ 식으로 무시하고, 애초에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애교를 부려봐도 냉랭하게 무시하는 걸 보면 화가 나도 단단히 난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래, 그럼 나도 너랑 절교야! 를 외치기에는 에스미의 성격이 마음에 걸렸다.


겉으로 보기에 차가워 보여도, 에스미는 이유 없이 화를 낼 성격은 아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왜 이렇게 딱 짐작가는 게 없을까.


거하게 한숨을 내쉬는 마리네뜨를 티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티키에게 마리네뜨는 푸념하듯이 말을 늘어놓았다.



“나한테 자기가 왜 화났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해도?”

“짐작가는 게 너무 많아!!”



이건가? 아니 이건가? 혹시 이거? 손가락을 접어가며 그간의 행동들을 되짚어보던 마리네뜨는 다시금 베개에 얼굴을 포옥 묻었다.



“으아, 모르겠어!”



또 다시 이리저리 버둥거리다가 침대에 축 늘어졌다. 살며시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마리네뜨가 바로 옆에 보이는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검지손가락으로 톡톡 침대 위를 두들기다가 주먹을 꼭 쥐었다.



“어떡하지….”



눈을 깜빡거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는 마리네뜨에게 티키가 가볍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마리네뜨. 이런 경우는 아무래도 시간이 약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래?”

“대화를 나누기에는 지금은 좀 무리일 거 같으니까, 화가 조금이나마 풀릴 때까지 거리를 두는 게 어떨까?”

“그게 나으려나….”



티키의 제안에 마리네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다 배시시 웃었다. 그래, 괜찮겠지. 전에도 싸웠던 적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화해했었으니까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 근데 그 때 뭘로 싸웠더라? 너무 졸려서일까, 잘 기억나지 않았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마리네뜨는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게 안일한 생각이었다는 건 금세 드러났다.



“그럼, 이상으로 내일 있을 체험학습에 대한 설명을 모두 마치도록 하마. 준비물은 프린트에 적어두었으니 참고하고.”



체험학습을 잊고 있었어!


마리네뜨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프린트를 받아들었다. 이번 주 금요일, 즉 내일 있을 단체 체험학습은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에서 진행된다. 엄청나게 넓고 사람은 또 사람대로 많아서 돌아다니기도 힘들지만 세계 3대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만큼 볼거리는 충분한 곳이다. 감상문을 적어야 하는 게 좀 걸리기는 하지만.


원래는 에스미와 같이 돌아다니기로 했지만 이런 상태로는 무리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미 같은 조로 적어서 냈는데.


…올해도 또 혼자 다니게 되는 걸까.


쓰게 웃으면서 프린트를 가방에 집어넣고 짐을 챙기던 마리네뜨의 책상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고개를 들자마자 무감정한 얼굴로 제 앞에 서 있는 에스미를 본 마리네뜨는 깜짝 놀랐다. 뭐라 말할지 고민하다가 마리네뜨는 말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헤실 미소지었다. 왠지 지금 말을 꺼내면 다시 화낼 거 같아서 무섭다. 그러니 그냥 웃는 게 낫다. 설마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는 않을 테니까.


그저 헤헤 웃으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마리네뜨의 얼굴을 뚫어져라 살펴보던 에스미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이 바보를 어째야 할까.



“이거.”

“으, 응?”



에스미의 손에 들려 있는 체험학습 프린트를 본 마리네뜨의 눈이 깜빡거렸다. 뭐라 생각하기도 전에 에스미가 딱 잘라 말했다.



“같이 가야하니까 기다려, 그 날.”

“어, 응!!”



기합이 팍 들어서 크게 소리치는 마리네뜨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에스미는 아무렇지 않게 뒤로 돌아섰다. 별로 웃어주거나 이제 화해하자거나 이런 말 같은 건 전혀 없었지만, 마리네뜨는 에스미가 많이 누그러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미라큘러스의 힘이라기보단 친한 친구로서 느끼는 직감에 가까웠다.


책가방을 챙겨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온 마리네뜨는 교정을 거슬러 걸어가고 있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하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대번에 기분이 좋아졌다.



“펠릭스!”



우울했던 기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에 하트를 그리며 펠릭스에게로 달려가는 마리네뜨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분명 마리네뜨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알아들었을 텐데도 펠릭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근처에 있던 나무에 가만히 손을 댔다가, 뗐다.


손끝에서 나오는 검은 오오라가 파우더처럼 나무에 뿌려지자 손끝이 닿은 부분의 나무줄기가 살짝 건조해졌다. 동시에 나뭇가지 위에 매달려 있던 사과 하나가 휘청 흔들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잔뜩 미소를 뿌리며 뛰어오던 마리네뜨가 어느덧 나무 밑까지 다가왔다. 앞서가는 펠릭스를 어떻게든 따라잡으려 더욱 빨리 뛰기 위해 다리에 박차를 가려던 마리네뜨는, 싸한 예감에 저도 모르게 급제동을 걸었다.


마리네뜨가 멈춰서자마자 정확히 마리네뜨의 바로 앞으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잡아챘다.


초록색 사과였다. 붉은 끼가 살짝 도는 걸 봐서는 제대로 익지 않은 것이 분명한.



“어라? 왜 사과가 떨어졌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금 앞을 쳐다본 마리네뜨는 깜짝 놀랐다.



“헉, 어디 갔지?”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펠릭스는 유유히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마리네뜨의 더듬이가 마리네뜨의 기분마냥 추욱 늘어졌다.


오늘도 놓쳤네.



“그렇게 매정하게 가버릴 건 없잖아!”



입을 불퉁하게 내밀며 투덜거리는 마리네뜨의 얼굴은 그래도 방금 전보다는 훨씬 편안해 보였다. 이미 가버리고 없는 펠릭스를 떠올리며 마리네뜨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또 놓치다니.


그러고 보니 요즘 자주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이야. 발견했다 싶으면 꼭 이렇게 무슨 일이 생겨서 놓치게 된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만.


울상을 지으며 마리네뜨는 들고 있던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지금은 딱딱하고, 살짝 시큼한 맛이 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달콤해질 사과를.









파리 5구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


세계 3대 자연사 박물관 중 하나라고까지 불리는 이 자연사 박물관은 자르딘(Jardin Des Plantes)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식물정원과 동물원, 인류학 박물관으로 나뉘어 있다. 생물표본, 광석, 화석 등을 약 6000만점 소유하고 있으며, 식물 표본만도 800점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는 이 거대한 박물관에는 오늘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관광객들은 물론 파리 시민들까지도 나들이를 할 때는 여지없이 이 곳을 찾았다. 박물관이 아니더라도 식물원과 동물원이 갖춰져 있어 가족끼리 놀러 오기가 좋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으면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경우도 많았다.


진화관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보이는 것은 엄청나게 큰 덩치를 가진 여러 동물들이었다. 정확히는 그 동물들을 박제한 표본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코끼리를 선두로 그 뒤를 따라 어디론가 향하는 것처럼 묘사된 수많은 동물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불러일으키기 충반했다.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히야….”



몇 번을 왔지만 언제 봐도 대단하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진화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마리네뜨는 지금 자신이 이렇게 들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붕붕 저었다.


에스미를 놓쳤다.


정확히는 너무 들떠서 이리저리 걸어다니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정도일까?


에스미, 어디 갔지? 오늘은 그래도 기분이 좀 풀린 것 같았는데 또 화났을지도 모른다. 하긴 나라도 이렇게까지 멍청하면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을 거 같아. 들떴던 기분이 한 번에 축 가라앉았다.


모처럼 화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왜 이 모양일까.


안 돼, 안 돼! 우울해하지 마. 벌써 이러면 안 돼.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어떻게든 웃기 위해 애쓰던 마리네뜨는 뒤에서 나지막히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 펠릭스 이 녀석 대체 어딜 간 거지.”



어라?


뒤를 돌아보니 갈색 피부에, 삐죽삐죽 솟은 검은 머리칼의 소년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개구진 얼굴이나 활동적으로 보이는 제스처를 보면, 도저히 그 진중하다 못해 조용한 펠릭스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체 얘가 펠릭스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사실 동명이인을 부른 건 아닐까? 그렇게 의심할 찰나, 마리네뜨를 발견한 소년이 깜짝 놀란 듯 눈을 깜빡거리더니 손가락으로 마리네뜨를 가리켰다.



“어, 너 펠릭스 근처를 맴도는 그 더듬이 아냐!”

“누가 더듬이야!”



대번에 버럭 소리지르며 씩씩거리는 마리네뜨의 기세에 놀랐는지 소년은 대번에 사과했다.



“불쾌하게 들렸다면 미안해. 그럼 넌 이름이 뭔데?”

“어…?”

“이름을 알아야 부를 거 아냐? 내 이름은 앨빈. 앨빈 에반워프야.”



상큼하게 웃으며 앨빈이 마리네뜨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멀뚱멀뚱 쳐다보던 마리네뜨는 이내 결심했는지 조심스럽게 손을 잡고 말했다.



“…마리네뜨. 마리네뜨 뒤팽 쳉.”

“그래. 아, 그나저나 너 혹시 펠릭스가 어디 갔는지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나저나 네가 어떻게 펠릭스를 아는데?”

“같은 반이거든.”

“같은 반인데 왜 펠릭스를 찾아?”

“친구가 되고 싶으니까.”



쌈박하게 돌아오는 대답에 마리네뜨는 깜짝 놀랐다.



“친구? 펠릭스랑 친구가 되겠다고?”

“어, 왜?”

“그게….”



저렇게 세상 혼자 살 거 같은 녀석이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 발상이 무척 놀라워서.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기에 마리네뜨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펠릭스가 상상 이상으로 무뚝뚝하다는 사실은 마리네뜨 자신도 이미 인정하고 있던 바였다.


일단 입을 열 때가 무척 적었다. 의사표현을 해야 할 때는 어지간해서는 고개 끄덕끄덕, 도리도리, 그것도 아니면 무시. 딱 이 세 가지 패턴을 고루 사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싫어해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지켜보다 보니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저렇게 살면 안 피곤한가? 나라면 되게 피곤할 거 같은데.


목소리도 좋은 애가 왜 그렇게 입을 꾹 닫고 사는지 마리네뜨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이젠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펠릭스가 그나마 말을 좀 많이 했던 건 레이디버그로서 처음 만났을 때 정도였다. 그 때는 단순히 좀 무뚝뚝한가 싶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왜 그 때는 그렇게 말이 많았던 거지?


떨떠름하게 웃으며 말끝을 흐리는 마리네뜨의 생각을 짐작했는지 앨빈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저런 무뚝뚝한 녀석이랑 친구가 되려는지 궁금한 거지?

“으, 응?”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리는 마리네뜨를 가만히 바라보던 앨빈이 피식 웃었다.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구나.



“일단 그 녀석이나 찾으러 가볼까? 보나마나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닐 거 같으니까.”



그 말과 함께 손을 놓고 앞장서는 앨빈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마리네뜨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그의 뒤를 쫓았다.



“짐작가는 곳이 있어?”

“프린트에서 녀석이 어디를 보는지 몰래 살펴봤지. 진화관이랑 식물원을 보고 있던데 여기 없으니 아마 식물원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어.”

“헐, 그거 사생활 침해 아냐?”

“시도때도 없이 쫓아다니는 너만 할까.”



태연하게 맞받아치는 앨빈의 한 마디에 마리네뜨는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면 가족관계에 취미까지 조사했었던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긴 좀 민망하기도 했고.



“아,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갔네. 아무튼 내가 그 녀석이랑 친구가 되고 싶은 건….”

“되고 싶은 건?”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귀를 기울이는 마리네뜨를 돌아보며 앨빈은 싱긋 웃었다.



“내가 어느 날 축구를 하고 있었거든.”

“엥?”



갑자기 이게 뭔 소린가. 그렇게 묻는 듯한 마리네뜨의 표정을 보며 앨빈이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입을 막고 큭큭 웃으며 걸어가는 앨빈의 모습에 마리네뜨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을 이상한 놈 취급하듯이 쳐다보는 마리네뜨에게 앨빈이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대꾸했다. 



“이야, 너 진짜 얼굴에 다 티난다. 혹시 너, 평소에도 생각을 얼굴에 써붙이고 다닌다는 소리 많이 듣지 않냐?”

“헉, 그걸 어떻게…!”



귀신보듯이 식겁한 표정으로 자신에게서 물러나는 마리네뜨에게 앨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사람이 싫다는 건 아냐. 아무튼 이야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웃어서 미안해. 너 재미있네.”



악의라고는 한 점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감탄사에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신기한 녀석이다. 얼핏 들으면 기분 나쁠 법한 소리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소화하다니.



“재미있어서 미안하게 됐네요. 그래서?”

“그 때, 내가 공격수였거든. 결정적인 찬스를 잡고 공을 찼는데, 이게 골대를 넘어서 공원 밖까지 넘어가 버렸지 뭐야.”

“응.”

“공원 밖으로 나와서 공을 찾았는데 공이 저 도로변까지 굴러가 있었어. 일단 시합 중이라 빨리 도로로 가서 공을 주웠지. 그리고 뒤로 돌아서려고 했는데….”

“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날 잡아당기는 거야.”



어디서 많이 본 패턴이다. 강렬한 기시감을 느끼며 마리네뜨는 속으로 설마를 중얼거렸다.



“엄청 강한 힘으로 칼라를 잡아당기는데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거 있지? 진짜 열받아서 누구냐고 소리지르려던 순간에, 보고 말았어.”

“뭘?”

“자동차가 바로 내가 서 있던 자리를 쌩하게 짓밟고 지나가는 걸.”



역시나.



“진짜 코앞에서 스쳤다니까. 그거 보고 놀라서 말문이 막혀가지고 입만 벙긋거렸었지. 뒤를 돌아보니까 엄-청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을 한 녀석이 내 뒤에 서 있더라고?”



참 과격하게 구해주는 건 사람을 불문하고 똑같구나. 새삼 펠릭스의 성격을 되새기며 마리네뜨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앨빈이 그 당시 얼마나 놀랐을지도 백 번 이해했다. 어쩌면 이렇게 자신과 똑같은지 전에 없던 연대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얼굴을 보고 더 놀랐어. 같은 반인데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던 녀석이었거든. 그리고 웃긴 건 다음 날 고맙다고 하려고 찾아갔는데….”

“-그렇게 감사받을 일은 아니야.”

“헐, 어떻게 알았냐?”

“그냥….”



그랬어. 말을 얼버무리는 마리네뜨를 잠시 수상하다는 듯이 살펴보던 앨빈은 곧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그 때까지는 펠릭스에 대해 별 생각 없었거든. 워낙 조용하잖아. 협조성도 별로 없고. 뭐 성격 나쁘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었고.”

“소문이 있었어?”

“수군거리는 놈들이 몇 있었지. 하지만 난 뜬소문 따위는 믿지 않아. 뭐든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어. 특히 사람은.”



진지한 목소리로 딱 잘라 말하는 앨빈을 보며 마리네뜨는 새삼 펠릭스에게는 정말 이름대로 운이 따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정말로 친구가 되면 좋을 텐데.


앨빈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좀 지켜보다 보니까….”

“보니까?”

“너무 말이 없어서 뭐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없는 거야!”

“어, 그거 완전 공감해!”



자신이 초반에 했던 고생을 떠올리며 마리네뜨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도 그랬냐는 듯이 마리네뜨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던 앨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같은 반이다 보니까 대충 일과는 알겠는데, 도통 말을 해야 말이지. 근데 계속 지켜보니까 의외로 말이 없는 거 빼고는 냉정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친절한 편이다 싶더라고. 계속 귀찮게 달라붙어도 말을 험하게 하거나 그러지도 않고. 남자새끼가 징그럽게 웃는다거나 뭐 이런 말을 하는 놈들도 있는데.”

“헉, 심하다.”

“그렇지? 근데 이 녀석은 음, 뭐랄까. 딱 잘라서 할 말만 한다고 해야 하나?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쪽이다 싶더라고.”

“예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마리네뜨에게 앨빈은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하지 않나 싶었지.”



어느덧 두 사람은 식물원 앞까지 다다랐다. 학생증을 보여주니 이미 학교에서 입장료를 지불했는지 군말 않고 들여보내줬다. 가지각색의 나무들이 모여 녹음을 드리웠다. 식물들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는 앨빈의 얼굴에는 선선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자신을 지나치게 억누르는 것 같은 모습이 있는 거 같아서. 비슷한 경우를 알고 있어서 말이야.”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길을 걸어가던 앨빈이 아, 소리를 내며 마리네뜨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기 사람한테는 굉장히 잘 해줄 거 같잖아? 일단 사귀기는 좀 힘들더라도.”



눈을 찡긋하며 웃는 앨빈의 모습에서 마리네뜨는 익숙한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래, 이 애는 블랙캣을 닮았어. 머리색을 보면 블랙캣일 리는 없지만 분위기 자체는 매우 비슷했다.



“뭐, 다 떠나서 저 녀석이 마음에 들어서라는 이유가 크지만.”

“그렇구나.”



배시시 웃는 마리네뜨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던 앨빈은 곧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빙그레 웃었다.



“너도 그렇지 않아?”

“응?”

“그 녀석 좋아하잖아.”



그리고 말을 돌려할 줄 모르는 것도 똑같았다. 직설적으로 꽂히는 물음에 마리네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버버 거리는 마리네뜨에게 앨빈은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얼굴에서 불이 나는데요.”

“시, 시끄러!”

“너야말로 그 녀석 어디가 좋은데?”

“상냥한 점!”



즉각적으로 말을 뱉자마자 마리네뜨는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의외라는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앨빈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 마리네뜨는 중얼중얼 말을 내뱉었다.



“아, 물론 그것만 좋은 건 아니야. 얼굴도 목소리도 다 좋달까. 특히 목소리가 살짝 낮아서 되게 듣기 좋아. 계속 듣고 싶은데 말이 너무 없어서 놀라긴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해. 물론 무뚝뚝한 성격인 건 맞고, 나를 귀찮게 여기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정말 나한테 상처주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걸. 그게 본인의 편의에 의한 거라고 해도. 그것도 펠릭스 나름의 상냥함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

“언젠가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두 손끝을 모으면서 발그레 뺨을 붉히며 웃는 마리네뜨를 가만히 살펴보던 앨빈의 손이 마리네뜨의 머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구 헝크러뜨렸다.



“으아앗! 야,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아, 이 더듬이 만져보고 싶었는데 이런 느낌이었구나.”

“당장 손 안 치워?!”



제 머리를 헝크리는 커다란 손을 두 손으로 꽉 붙잡은 마리네뜨가 낑낑거리며 앨빈의 손을 치워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킥킥 웃는 앨빈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묻어났다.



“음, 역시 난 네가 마음에 들어! 잘 되길 빌어줄게.”

“흥, 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잘 될 거거든?”

“그래그래. 그런 의미에서 저기 있네.”

“에?”



앨빈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정확히는 펠릭스 혼자만은 아니었다. 펠릭스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에스미?’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한 마리네뜨와 달리 앨빈은 거리낌없이 펠릭스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를 들었는지 돌아보는 펠릭스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질렸다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펠릭스에게로 다가간 앨빈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역시 여기 있었네.”

“…대체 왜 쫓아오는 거야.”

“심심한데 같이 구경이나 다니자. 아, 시끄러운 게 싫다면 조용히는 해 줄게.”

“귀찮아, 꺼져.”

“오, 이제 말이 좀 험악해지는데?”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는 앨빈의 모습에 펠릭스의 얼굴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앨빈이 다시금 힘주어서 말했다.



“나랑 친구하자니까.”

“안 해.”

“에이, 왜. 닳냐?”

“닳아.”

“헉, 너한테 다른 친구가 있었어?”

“어째 욕으로 들리는군.”



한 쪽은 과하게 웃고 한 쪽은 과하게 냉랭했다. 그래서인지 묘하게 밸런스가 맞는 듯한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리네뜨는 지금 펠릭스에게 신경을 쓸 정신이 아니었다. 펠릭스와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 서 있던 에스미는 마리네뜨를 한 번 힐끗 보더니 말없이 등을 돌렸다. 어딘지 화난 듯이 빠르게 걸어가는 에스미의 뒤를 쫓아가는 마리네뜨의 목소리를 듣고 펠릭스는 저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돌렸다. 잠깐 마리네뜨를 돌아보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히죽 웃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앨빈에게 펠릭스는 냉랭하게 말했다.



“뭐냐.”

“아니~ 생각보다 아예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싶기도 하고.”

“뭐?”

“너도 은근히 쟤한테 관심있는 거 아니야?”

“쓸데없는 소리.”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펠릭스는 앨빈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펠릭스를 앨빈은 신난 얼굴로 뒤따라가며 물었다.



“따라가도 되냐?”

“…마음대로 해.”

“와우, 네 입에서 그런 대답이 나올 때도 있구나!”



신바람이 난 앨빈에게 대꾸할 기운도 없는지 펠릭스는 하아, 한숨을 쉬며 앞장서 식물원을 빠져나갔다. 저렇게 보여도 정말 싫었으면 계속 꺼지라고 했을 것을 알기 때문에 앨빈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펠릭스를 따라나섰다.


한편, 마리네뜨는 계속해서 에스미를 쫓고 있었다. 말없이 턱턱 걸어가는 에스미를 따라 식물원을 한 바퀴 돌면서도 마리네뜨는 차마 에스미의 옆으로 뛰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얼굴을 보기가 무서웠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졸졸 뒤따라가며 에스미의 이름을 불렀지만 듣지 못했다는 듯이 점점 더 빨리 걷기 시작하는 에스미에게 마리네뜨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에스미! 잠깐만!”



기다려. 헉헉 숨을 몰아쉬며 부르는 목소리에 에스미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돌아봐주지는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기며 마리네뜨는 우물쭈물 말을 골랐다.



“그게….”

‘꺄아아아악!’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마리네뜨와 에스미는 물론 주변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소리의 크기를 봐서는 식물원 밖에서 무슨 일이 터진 것 같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투명한 온실 벽 너머로 보이는 무수한 새 떼를 발견한 마리네뜨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미스터 피죤!’



“밖에 무슨 일이 있나 본데?”



진화관 로비, 걱정스럽게 중얼거리는 앨빈과는 다른 의미로 펠릭스의 얼굴도 굳어가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도 놀랐는지 웅성거리고 있었다. 펠릭스의 눈빛에 고민이 서렸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 변신해야 하겠지만 무작정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간 의심을 받을 상황이었다. 위험 속으로 제 발로 걸어들어갈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시 식물원 쪽에서, 나름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마리네뜨는 속으로 퍽 당황하고 있었다.


이걸 어쩌지? 하필 겨우 화해할 법한 이런 순간에!


그렇다고 악당을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마리네뜨는 일단 에스미가 있는 쪽 길로 뛰어가려고 했다. 그 쪽이 입구랑 가까우니까. 하지만 그 순간, 에스미가 제 옆을 스쳐 지나가려는 마리네뜨의 팔을 붙잡았다.



“어디 가려고?!”



그 순간 올려다본 에스미의 표정에 묻어나는 걱정에 마리네뜨는 순간 무척 안도했다. 아주 화난 게 아니구나. 아플 정도로 꽉 붙잡은 에스미의 손을 내려다보던 마리네뜨는 잠깐 망설였다가, 이내 결심했는지 에스미의 팔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잠깐 화장실 가려고! 급해서!”

“야! 여기 화장실이 어디…!!”



에스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리네뜨는 재빨리 뒷걸음질쳤다가 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계속 돌다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깜짝 놀랐는지 그 자리에 멈춰서 천장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몇 분 뒤에 나타난 입구로 뛰쳐나간 마리네뜨는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둘기들이 모여 있는 지점은 확실히 식물원에서 멀지 않았다. 마리네뜨는 일단 급한 대로 근처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빛이 번쩍 차오르더니 수풀 속에서 뛰쳐나온 레이디버그는 빠르게 악당이 있을 만한 공원의 중심부로 향했다. 비둘기들을 부리며 사람들을 마구 위협하던 미스터 피죤은 제 앞에 나타난 레이디버그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홀홀홀. 왔구나, 레이디버그!”



근데 생각보다 빨리 왔는걸?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스터 피죤의 한 마디에 레이디버그는 순간 뜨끔했지만 그런 기분을 감추려는 듯 오히려 더 기세좋게 외쳤다.



“이 망할 아저씨야! 대체 여기서 왜 행패인데?”

“흥, 저 망할 꼬맹이가 비둘기들한테 돌을 던졌다고! 사랑스러운 나의 비둘기들한테!”

“그럼 그런 짓 하면 안 된다고 달래야지 지금 이게 어른이 취할 태도냐!”

“내 맘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답을 던지며 미스터 피죤은 손에 들고 있던 호루라기를 불었다. 미스터 피죤의 웃음소리를 닮은 이상한 울림에 레이디버그는 순간 멈칫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어디였더라?


길게 생각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마구잡이로 제게 달려드는 비둘기들을 보며 레이디버그는 재빨리 제 가방에 손을 넣으며 다른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뒤로 물러나요!”



크게 소리지르자 굳어 있던 사람들이 으아아,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한데 모여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비둘기 떼들을 가만히 노려보던 레이디버그는 새들이 최대한 가까이 오자마자 매직박스에서 무언가를 꺼내 집어던지고 위로 날아올랐다.


촤악,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물이 비둘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차게 날아들던 비둘기 떼들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우르르 그물 속으로 파고들었고, 모든 비둘기들이 다 들어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레이디버그는 재빨리 그물 끝을 잡고 돌돌 감아 묶었다. 좁게 갇혀 겨우 날개만 살짝 푸드덕거리는 비둘기들을 보며 레이디버그는 마음 속으로 사과를 보냈다.


미안, 다 끝나고 나서 꺼내줄게.


남은 비둘기는 지금 미스터 피죤을 태우고 있는 녀석들 뿐이었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경악하는 미스터 피죤에게 레이디버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네 차례야!”







“아직 싸우고 있으려나?”



박물관 뒤쪽에 있는 숲 속을 달리며 블랙캣은 자못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밖에서 싸움이 났다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경비원들이 정문을 통제하고 있어서 그쪽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급하게 뒤돌아서 후문을 찾긴 했지만 자꾸만 자신을 붙잡는 진드기 녀석을 떼어내는 것만도 한참이 걸렸다.


그나마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블랙캣 본인이 이 박물관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어릴 적부터 이곳에 자주 왔었는지라 박물관과 공원의 구조는 전부 파악하고 있다. 어디에 후문이 있고 어떤 곳에 뭐가 있는지조차 줄줄이 읊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저명한 고고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지만 펠릭스는 펠릭스 나름대로 이 박물관을 꽤나 좋아했다.


늦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계속 달리던 중, 블랙캣의 시야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재빨리 발에 제동을 걸고 멈춰섰다.



“이런 곳에 동굴이 있었나?”



언뜻 보기에 블랙홀을 연상시킬 만큼 시커멓게 입을 낼름거리는 듯한 어두운 동굴. 처음 보는 동굴에 블랙캣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이 공원을 찾아와 산책을 해서인지 이 넓은 공원에 뭐가 있는지 대체로 파악하고 있다 자부했지만, 그런 그의 기억에도 이렇게 커다란 동굴은 본 적이 없었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사람 몇은 문제없이 나다닐 법한 커다란 동굴을 가만히 살펴보던 블랙캣이 천천히 다가가서 발을 디뎌보았다.


환상이 아니다. 동굴 특유의 시원한 공기가 블랙캣의 얼굴을 살짝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들어가 볼까? 잠깐 고민하던 블랙캣은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싶었는지 결국 돌아섰다. 지금은 일단 사건을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레이디버그가 왔을지는 모르겠지만.


겨우내 숲을 벗어나 공원 쪽으로 나아오자마자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보였다. 그 옆에 다발로 잡혀서 구구거리고 있는 비둘기 떼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쿡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역시 마이 레이디야. 응용력이 뛰어나다니까.


레이디버그에 이어 블랙캣까지 나타나자, 미스터 피죤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너희는 왜 이렇게 매번 타이밍 좋게 나타나서 나를 방해하는 거야?”

“웃기시네, 니가 우리가 있는 곳만 골라서 나타나는 거겠지. 꼬치구이가 되고 싶어서!”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던 블랙캣이 들고 있던 봉을 미스터 피죤에게로 뻗었다. 순식간에 늘어난 봉이 미스터 피죤의 복부를 찌르려고 했지만 그는 유연하게 옆으로 허리를 돌려 위험을 피했다. 하늘에만 떠다니는 것은 불리하다 싶었는지 미스터 피죤은 할 수 없다는 얼굴로 비둘기들에게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디뎠다.



“자, 이걸로 다시 2:2가 되었군.”



히죽 웃던 미스터 피죤이 다시금 호루라기를 불었다. 미스터 피죤을 태우고 있던 비둘기들이 블랙캣에게로 마구 날아들기 시작했다. 칫, 혀를 차면서 다른 물건을 꺼내 비둘기들과 맞서 싸우는 블랙캣을 돌아보던 레이디버그는 바닥으로 내려온 미스터 피죤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한쪽 손이랑 발을 앞으로 내밀며 권법 자세를 취하는 미스터 피죤에게 레이디버그는 달려들어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합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싸우던 중, 레이디버그의 시야에 누군가가 스쳐 지나갔다. 저 멀리 박물관 쪽에 보이는 인영에 레이디버그는 눈을 의심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에스미가 이런 곳에 나왔을 리가 없는데.


갑자기 순간 멈칫거리는 레이디버그의 움직임을 미스터 피죤은 놓치지 않았다. 뭔가 있나 싶어 힐끗 주위를 둘러보던 미스터 피죤은 뛰어난 시력으로 바로 제 뒤쪽에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를 발견했다.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미스터 피죤이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에스미가 있는 쪽으로 손짓하며 호루라기를 입에 무는 미스터 피죤을 보자마자 레이디버그는 놀라서 미스터 피죤을 뒤로 한 채 에스미가 있는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마자 블랙캣과 대립하던 비둘기 떼들이 쏜살같이 에스미가 있는 쪽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놀란 에스미가 재빨리 뒤돌아 뛰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에스미!!”



거의 울 법한 얼굴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토해내며 레이디버그는 자신의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비둘기들이 거의 에스미를 덮치려는 순간 레이디버그는 가방에서 그물을 꺼내 비둘기 떼를 향해 던졌고, 비둘기들은 그물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빠르게 달려서 그런지 그 반동처럼 발을 헛디뎌 쓰러지는 에스미에게로 레이디버그가 헐레벌떡 달려갔다. 정신을 잃었는지 눈을 감고 있는 에스미를 레이디버그는 꼭 끌어안았다.


갇혀 있던 비둘기 떼들이 풀려나자 미스터 피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다시금 비둘기들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미스터 피죤의 모습에 블랙캣은 긴장한 얼굴로 다시 봉을 꺼내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행복하다는 얼굴로 웃으며 다시금 공격을 감행하려고 했던 미스터 피죤이 갑자기 멈춰섰다.



“예? 돌아오라고요? 아니 어째서~ 이제 막 재밌어지려…. 헉. 알겠습니다.”

“뭐라는 거야?”



작게 중얼거리는 미스터 피죤에 블랙캣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너무 작아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입모양을 자세히 보니 미스터 피죤이 쩔쩔매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큭, 내가 지금 사정이 있어 물러나지만! 다음번에는 꼭 너희의 미라큘러스를 뺏어주겠어!”



원통하다는 듯이 소리치는 미스터 피죤을 보며 블랙캣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또, 또. 악당의 전형적인 대사 좀 집어치우시지. 질리지도 않아?”

“시끄러!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대사라도 추천해 주던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어때?”



농담처럼 던진 말에도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그저 하늘 위로 날아올라 사라지는 미스터 피죤을 블랙캣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쟤 왜 저래?”







머리가 무거웠다.


물 속에 빠진 것처럼 묵직하고 이상한 느낌. 어둠 속에 잠겨 있는 것만 같아 불쾌한 기분에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쳤다. 조금씩 위로 올라가려고 하니 저 위에 빛이 보였다. 빛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나아가다가….


눈을 뜨니 하얀 배경에 무언가가 흐릿하게 보였다. 몇 번 눈을 깜빡여보자 그게 환하게 웃는 어떤 바보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에스미는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에스미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앉아 안도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리네뜨가 말을 꺼냈다.



“에스미, 다행이다. 정신이 들어?”

“여긴….”

“어, 박물관 의무실이야! 다행히도 기절한 것 뿐이라고 해서 일단 네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어.”

“…요즘 잠을 잘 못 잤더니.”



별 걸로 기절같은 걸 다 해보는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에스미에게 마리네뜨는 후다닥 옆에 있던 물컵을 건넸다. 그 물컵을 보며 온갖 표정을 다 구기던 에스미는 한숨을 내쉬더니 순순히 물컵을 받아들었다. 조용히 물을 마시고 있는 에스미를 향해 마리네뜨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 한 마디에 에스미의 동작이 뚝 멎었다. 마시던 물컵을 내려놓는 에스미의 목소리가 음울하게 변했다.



“미안하다고?”

“응, 내가, 저기….”

“니가 뭐가 미안한데?”

“…에?”

“대체 니가 왜 나한테 미안해야 하냐고!”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에스미를 보며 마리네뜨는 그저 눈만 깜빡거렸다. 에스미의 눈가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언제까지 그럴 거야? 네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미안해하고, 화를 내면 무조건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고. 무리한 부탁을 해도 제대로 거절하지도 못하고!”

“에, 에스미?”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정말 모르겠어? 나는 말이야. 서운하다고. 왜 아니라고 말을 못해?”



얼떨떨한 얼굴로 에스미의 말을 듣고 있다가, 에스미가 던진 다음 말에 마리네뜨는 속으로 식겁했다.



“너 지금 나한테 뭐 숨기고 있잖아.”

“….”

“그 펠릭스인가 뭐시깽이인가 하는 녀석 때문에 약속을 펑크낸 게 아니라는 거 알아. 니가 그럴 성격이었으면 지금 이렇게 매번 손해보면서 살지도 않지.”



거하게 한숨을 내쉬며 제 눈가를 꾹꾹 누르는 에스미의 모습에 마리네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놀라서.


에스미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을 해! 근데 넌 매번 변명도 안 하고 그냥 웃기만 하니까….”

“에스미.”

“나도 내가 어린애같은 거 아는데, 걱정되잖아. 누가 봐도 피곤해보이는 얼굴로 멀쩡하게 있는 다른 놈이나 걱정하고 앉아있으니 내 속이 터져, 안 터져? 나는 그 자식보다 니가 더 걱정된다고!!”



짜증스레 미간을 구기던 에스미가 휙 고개를 돌려 마리네뜨를 쳐다보았다. 그 기세에 흠칫할 찰나 에스미가 천천히 마리네뜨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뭐 일이 있나 싶은데 제대로 말하려고도 하지 않고. 물어보고 싶어도 그냥 모른 척 해달라는 듯한 얼굴이나 하고 있지를 않나.”

“내가 그랬어?”

“그래. 그러면서, 누가 봐도 피곤에 찌든 얼굴로 좋아하는 남자애 얼굴 봤다고 좋아라 헤실거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열받는다고, 이 멍청아! 말을 끝맺는 것과 동시에 에스미의 손이 짜증스레 마리네뜨의 볼을 쭈욱 잡아늘렸다. 마리네뜨가 바둥거렸다.



“에으미…. 아프어어….”

“너는 내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어?”



손을 탁 놓으며 에스미가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가 친구가 된 이후로 너는 정말 터놓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린 적이 없잖아. 내가 네게 차갑게 굴어도 네가 화냈던 적이 있어? 늘 내 눈치를 보듯이 망설이고 고민하기만 했지.”



말문이 막혔는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마리네뜨에게 에스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불합리하게 굴면 너는 화를 낼 권리가 있어. 한쪽만 양보하는 관계가 어떻게 건강한 관계야?”



할 말이 없었다. 전부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생각대로 실천하기가 너무 어려울 뿐이지.



“너는 너랑 오래도록 알고 싶으니까, 조금씩이나마 좀 욕심을 부려줬으면 좋겠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다음에도 계속 이러면 진짜 더 혼날 줄 알아.”

“이, 이보다 더?”



지긋이 자신을 노려보는 에스미의 눈빛에 마리네뜨는 더는 말하지 않고 깨갱 꼬리를 내렸다.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서 그런 거라는 걸 아니까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아, 생각났다. 예전에 에스미랑 싸웠을 때.


그 때도 나는 이랬었던 것 같다. 에스미가 뭐에 화났는지도 모르고 그저 내가 잘못했나 싶어 무조건 사과부터 했었지. 그런 나를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던 에스미가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었다.


내가 더 미안해, 라고.



“……고마워.”



한참을 망설이다 배시시 웃으며 대답하는 마리네뜨를 그저 빤하게 쳐다보던 에스미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 펠릭스인가 뭔가 하는 걔 만났을 때 말이지.”

“응?”

“전혀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냥 대화나 좀 나눴을 뿐이야.”

“응!”



해맑게 웃으며 전혀 의심같은 거 없고 무조건 널 믿는다는 표정을 짓는 마리네뜨의 얼굴에 에스미는 저걸 진짜 어떻게 가르쳐서 세상에 내놓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해야만 했다. 무방비한 것도 정도가 있지. 저러다 누가 배신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냥 체념하듯 받아들일 것 같아서 더 열받는다.


체념, 인가.

떠오르는 금발의 누군가에 에스미는 가만히 인상을 찌푸렸다.


그 녀석을 마주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사라진 마리네뜨 녀석을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던 중, 식물원에서 그를 만났다.


‘내 이름은 에스메랄다 세자르. 마리네뜨의 친구야.’


무시하고 돌아서려는 녀석의 앞을 가로막고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은 냉전 상태라지만 어쨌든 친구는 친구니까.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청회색 눈동자는 예상했던 만큼 냉혹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감정이 풍부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 녀석한테 나 좀 그만 쫓아다니라고 말해.’


방금 했던 생각 취소. 툭 내뱉는 한 마디가 저리 매정하다니. 짜증스레 눈살을 구겼지만 이런 제 표정에도 녀석은 동요 하나 없었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이 덤덤한 그 태도에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 마리네뜨가 너 같은 녀석한테 목을 매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홧김에 내뱉었더니 딱딱하던 눈매가 아주 일순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그에 조금 놀라려던 찰나 녀석이 천천히 입을 벙긋거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피식 조소하는 그 얼굴에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 녀석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혼자서 짊어지고 있는 듯한, 그런 얼굴.



“…뭐, 생각보다 나쁜 녀석은 아닌 거 같으니까.”

“응?”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에스미는 한숨을 내쉬며 마리네뜨를 째려보았다. 이 바보는 어쩌다 저렇게 딱 보기에도 복잡해 보이는 녀석한테 꽂혀가지고 제 속을 뒤집는 걸까.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문제겠지만, 만약 정말 사귀게 되더라도 꽤나 마음고생 하게 생긴 타입이다. 본능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더라도 이 녀석은 듣지 않겠지.


그 때의 대화를 들려주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였다. 말하더라도 어차피 마리네뜨는 그 녀석을 계속 쫓아다닐 것이다. 그렇다면 저 녀석이 더 걱정할 법한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다. 에스미가 아는 마리네뜨는 그런 타입이었다. 무언가를 쉽게 바라지 않지만 바라는 것에는 집념이 엄청나다. 어찌 되었든 중간에서 포기할 만큼 어중간한 성격이 아니다. 분명 마지막까지 가보려고 하겠지.


설령 그 끝이 어떻더라도.



“…대답은 대충 알았으니까.”

“응? 뭐라고 했어?”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마리네뜨에게 손을 뻗었다. 또 볼을 꼬집히나 싶어 긴장하던 마리네뜨는 제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손에 금세 긴장하던 얼굴이 풀리고 예쁘게 웃는 마리네뜨를 보며 에스미는 복잡한 심경에 빠져들었다.


기절하기 직전에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마지막에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와 얼굴. 어떻게 그 사람이 내 이름을 알고 있었을까. 믿을 수 없었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걱정되지만 묻지 않기를 바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묻어주는 것 뿐이다.


“어쨌든 조심해 뭐든. 알았어?”

“네!”


충성! 그렇게 말하며 한 손을 올려 경례를 하는 마리네뜨를 보며 에스미는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한편, 공원의 반대쪽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들 공원 한가운데서 벌어진 소동에 정신이 팔려 있을 즈음, 조용히 박물관 안에서 빠져나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상체는 검은색에 하체는 하얀색, 흑백의 의상을 입고 광대처럼 양쪽 눈에 눈물점 화장을 한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목표물을 확보했습니다.”



남자의 오른손이 제 손에 들린 손바닥보다 약간 더 큰 나무상자를 꽉 움켜쥐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데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던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곧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지금 돌아가죠.”



주변을 휙휙 둘러보며 지붕 위에 있던 남자는 박물관 뒤쪽 숲으로 뛰어내려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펠릭스는 제 눈을 의심했다. 혹여 제 기억력에 문제가 있나 걱정되어 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보고 봐도 여기가 분명했다. 자신이 처음 그 커다란 동굴을 발견했던 장소는.


그런데 지금 그 동굴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때 잠시 꿈을 꿨나, 싶을 정도로 절벽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광경에 펠릭스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꿈을 꿨을 리는 없다. 잠깐 안에 발을 디딜 뻔도 했으니까. 게다가 그 동굴은 사람 몇 명이 지나다닐 수도 있을 정도로 컸다. 그런데 그런 큰 동굴이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쎄한 느낌이 들었다.


저 절벽 뒤에 뭔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무력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 동굴의 정체에 대해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작정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다. 그건 너무 위험했다. 그리고 펠릭스는 본능이 울리는 신호를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좋지 못한 예감이 드는군.”



낮게 중얼거리는 펠릭스의 머리 위로 한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


자캐가 많이 나와서 좀 민망하네요. 하지만 꼭 넣어야 하는 에피소드라고생각해서 넣어봤습니다 ㅇㅇ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마리네뜨와 에스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무조건 메인 애들만이 주인공처럼 나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바꿔 말하면 펠릭스와 앨빈의 에피소드도 나올지도 모르죠. 근데 이 둘은 그렇게 싸우기에는 둘 다 상당히 어른스러워서 그런 일은 없을 거 같네요. 사실 이 에피소드의 축이 펠릭스-앨빈, 마리네뜨-에스미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고.


역시나 한결같은 펠릭스! 참 쓰면서도 사람에 서툰 녀석이다 싶어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집니다... 가엾어서 그런지 쓸수록 더 좋아지기도 하지만요.


원래 본편에서 마리네뜨-알리야, 아드리앙-니노 구도가 아닌 다른 친구 구도를 짜낸 이유는 아무래도 애들 성격이 다르고 배경도 다르다보니 그에 맞는 친구들이 필요하겠다 싶어 창조한 거랍니다. 에스미도 그렇지만 앨빈이 특히 그렇죠.


앨빈의 경우는 되게 활발하고 조금 막가파적인 성격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어느 샌가 제 취향의 훈남이 되어 있네요OTL 근데 제 남최애는 펠릭스가 맞습니다 얘가 후반부에 정말 개쩔게 멋있어지기 때문에ㅇㅁㅇb 아 이거 스포이려나(땀땀


펠릭스에게 이런 애를 붙인 이유는 자신을 억누르고 사는 펠릭스를 이해해줄 만한 이해자가 한명쯤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아드리앙과 달리 펠릭스는 친구같은 건 필요 없다는 느낌으로 지내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니노같이 마냥 소년스럽고 천진한 타입이었으면 펠릭스는 절대 깔끔하게 무시하고 지내기만 했을 겁니다. 앨빈은 펠릭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지만, 지켜야 할 선은 상당히 칼같이 지키는 타입에 속합니다. 아직 설정이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앨빈은 원래 스킨십이 많은 편인데, 펠릭스에게는 농담삼아서라도 터치를 전혀 하지 않죠. 펠릭스가 그걸 꺼린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진짜 많이 신경썼습니다 묘사에 ㅇㅇ


그래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습니다. 오히려 앨빈의 친구들은 얘가 왜 펠릭스처럼 음침한 녀석에게 저렇게까지 접근하는지 이해를 못 할 정도죠. 근데 앨빈도 은근 마이페이스라서(...) 주변이 뭐라든 신경 정말 안 씁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넉살좋게 펠릭스한테 붙어있는 거겠죠? ㅎㅎ


성장하기 위해서 관계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면 그만큼 사람도 많이 변하니까요. 단순히 애정 관계뿐이 아니라 친구관계도 많은 영향을 끼치죠. 제가 이 글에서 지향하는 지향점이 마리네뜨와 펠릭스의 성장이고, 제가 해석한 두 사람의 성격은 사실 그렇게 적극적이거나 직설적인 타입들이 아닙니다. 이런 타입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직설적으로 직언을 꽂는 사람들이 좀 있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기에, 캐릭터들을 이렇게 짰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회당 후기를 적고 싶었지만 그럼 페이지가 너무 길어지겠죠. 5화는 아무래도 좀 편하고 즐겁게 쓴 화이다 보니 이것저것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두 사람의 감정선보다도 일단 주변의 관계를 돌아보는 화이다 보니까요. 초반에 에스미가 왜 저러나 싶으셨던 분들도 계실텐데 제대로 이해가 되었기를 바라겠습니다 ㅇㅇ!


아, 초반에 사과가 떨어지는 장면은 예전에 봤던 컨셉아트에서 채용한 겁니다. 요즘 자신을 직감적으로 잘 찾아내는 마리네뜨에 대항해 고대의 재앙 능력을 써서 마리네뜨에게 빈틈을 만들어 따돌리는 펠릭스! 하하 이 컨셉아트 정말 좋아해요^ㅁ^


후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며, 내일 마지막 6화와 수량조사가 올라옵니다 ㅎㅎ 아마 선입금을 받는다면 25일에 폼이 올라올거예요 ㅇㅇ


감상은 늘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ㅅㅎ!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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