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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라(J VINO)님의 회지 'Say goodbye goodday goodbye'를 보고 쓴 조각글이에요.

스포가 아주아주 많습니다. 회지를 읽지 않으셨다면 내용 이해가 안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라+강림] 한여름 밤의 꿈




'그래도 소중히 다뤄, 바보령.'



말 안 해도 그럴 거다.


사무실을 나오자 벌써 날이 깜깜해졌다. 가로등이 줄세워진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던 남자가 제 한쪽 손을 위로 쭉 뻗었다. 손에 꼭 쥐어져 있는 자그마한 유리병이 주홍색의 불빛을 받아 슬며시 속을 내보였다. 연분홍빛 꽃잎 한 자락. 무심한 얼굴로 병을 쳐다보는 얼굴과는 달리, 그는 깨질세라 살며시 병을 그러잡고 있었다.



"너, 여기 있냐."



살랑, 흔들어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저 잠잠하다. 그러다가 픽 웃고 말았다. 고작 꽃잎 하나가 무엇이라고. 제게 답을 줄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바라고 만다. 네가 조금이라도 남겨둔 것이 없을까 하고. 꼬마 녀석한테까지 찾아가 봤지만 결국 얻어낸 것은 없었다.



"내가 널 깨워낸 건가."



모든 영혼은 순환한다.

이전의 삶에 대한 미련, 원한, 부정한 것들은 완전히 지우고 새로운 삶을 받아 다시 또 살아간다.


처음으로 네 이름을 불렀을 때, 너는 이미 모든 미련을 버렸다고 했다.

너의 영혼과 기억을 붙잡았던 미련이 나였다는 사실은 우습게도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서로의 마음이 같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니까. 이미 새로운 삶을 시작한 너는 내 손에 닿을 존재가 아니다. 닿아서도 안된다.


덧그려진 미련은 여전히 제 안에 온연히 남아 있다. 그러나 지우지는 못한다. 깨닫고는 실소한다. 순리대로 사라졌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런 존재에 미련을 둔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결국 버리지를 못해서.



"역시 넌 나쁜 놈이야."



사라지지 못한 이유가 그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니, 이건 대체 무슨 악취미일까. 한숨을 쉬었다. 불만스레 제 손에 있는 병을 쳐다보았다. 이게 녀석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괜스레 원망스러워진다. 이 미련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언제쯤이면 너처럼, 나도 이 모든 것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게 가능해질까?


문득 환생했던 너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외양은 같았지만 성격은 달라도 한참 다른 소년이었다. 처음에는 마냥 닮은 얼굴에 희망을 가지고 너를 붙잡았지만, 까칠스레 앳된 얼굴이 불평스레 저를 쳐다보는 순간 깨달았다. 입을 열어 제게 말을 걸었을 때 그것은 확신으로 다가왔다.


이 아이는 네가 아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다. 잔인할 정도의 현실이 해일처럼 내리덮친다.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 환생의 조건. 사라져버린 기억과 함께 너라는 존재는 이미 떠나버린 것이다.


나를 내버려두고.



"…한 때의 꿈인가." 



꿈이라도 다시 예전의 너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여전히 너를 잊지 못하는 나를 찾아, 너는 잠들기 위해 나를 찾아온 거냐. 영원한 안식을 취하기 위해서. 그 대가로 내게 덧없는 그리움을 선사한 건가.


가만히 손가락을 접어 병을 다시 움켜쥐었다.



"…사라."



네 바람대로,

나는 아직도 너를 기억한다.



*



꿈결 속에서 오랜만에 너를 보았다.

꽃밭 가운데서 가만히 웃고 있던 네가 입을 열어 무어라고 대답하더라.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지 말라고 무심결에 손을 뻗었던 나의 모습은 기억이 난다.


일어나고 나서는 그저 멍했다. 먹먹해지는 가슴에 제 심장 부근에 손을 대었다.

꿈은 행복했다. 그래서 그리웠다.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너를 잊지 못하는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머리맡에 놓아둔 유리병이 햇빛을 받아 조용히 반짝거렸다.




- fin.



===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하룻밤의 꿈처럼 흘러가버린 사라와 강림의 짧은 재회를 생각하고 지어봤어요:)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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