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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사항:

BL입니다. 별 거 없음 주의!

현대 AU인데, 살짝 원조교제 느낌이 나긴 합니다. 싫어하시는 분들께서는 조용히 뒤로가기를.

수위는 전혀 없습니다 ㅇㅇ 맹세할 수 있어요. 다만 꽤 다크한 분위기입니다.








[사라강림] 불청객





비가 내린다.


저는 비오는 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는 낭만이 있어 좋다지만 최소한 저에게는 그랬다. 칙칙하게 잿빛으로 물드는 하늘도, 길을 걸어갈 때마다 커다랗게 고여 있는 웅덩이들에 발을 멈칫하게 되는 상황도 달갑지 않았을 뿐더러, 눅눅하게 제 몸에 들러붙는 습기도, 우산을 쓰고 있어도 찬바람을 타고 제 옷을 습격하는 빗물도, 아무리 조심해도 축축하게 제 구두 위로 튀어오르는 탁한 물자락들도 정말이지 제 취향은 아니었다.


그 날은 하루종일 비가 왔던,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퇴근 시간이 되도록 멎지 않는 빗줄기에 저절로 입가에 욕이 번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물론 아침처럼 쏟아지는 비에 제 옷을 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쏟아지는 폼새를 보아 역시 우산을 쓰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쯧, 귀찮게. 속으로 혀를 차며 적당히 하던 일을 마무리짓고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밝은 건물에서 어두운 거리로 발을 내딛었다.


제가 사는 곳은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택가였다. 걸어서 20분 정도면 그래도 꽤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 화려하게 불빛이 반짝이는 번화가를 지나가다 문득 모퉁이를 돌면, 불빛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한 10분 정도를 걸어가다보면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그 모습을 드러내겠지.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우산을 잡고 있는 제 손등에 자꾸만 달라붙는다. 계속해서 나오는 웅덩이를 피해가며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던 바로 그 때였다.



'저건…?'



이미 불빛이 꺼진 깜깜한 건물의 계단 쪽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뭐지? 저도 모르게 우뚝 발걸음을 멈춰섰다. 평소였다면 그러든 말든 그냥 무시하고 갔겠지만 무슨 변덕이 든 걸까. 발걸음을 천천히 그쪽으로 옮겼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제가 발견한 녀석이 꽤 어리다는 것을 알아챘다. 명찰이 박힌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바지는 물론이요, 옆으로 맨 가방까지. 많이 봐준다 해도 고등학생 정도일까.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 보이지 않는 얼굴 대신, 물기를 머금은 검은색 머리카락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소년은 생각보다 꽤 젖은 상태였다. 아무리 처마가 있다지만 비가 들이치지 않을 리도 없었고, 옷이 꽤나 푹 젖었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이 퍽이나 기이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서 계단께에 미동 없이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괴담에 나오는 무슨 귀신마냥 흉흉해 보였다. 이 날씨에 우산도 없이, 왜 이런 곳에 죽은 듯 앉아 있는 걸까. 설마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꼬맹이는 벌써 집에 들어갔어야 하는 시간 아닌가?"



툭 말을 던지자 그제서야 소년이 고개를 든다. 예상대로 꽤 어린 얼굴. 선이 가늘지만 꽤 남자다운 얼굴은 소년이라 보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청년도 아니었다. 성장기라 그런 것일까. 그는 남자를 보고 조금 놀란 얼굴을 하더니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연다. 변성기가 오는지 조금 탁하게 가라앉은 미성이 빗줄기에 섞여 들려온다.



"가출 중."



표정이 없던 얼굴에 씨익 웃음이 들어찬다. 어른에게 하는 대답치고는 상당히 건방져 보이는 언사에도 남자는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경계하는 검은색 눈동자가 남자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번드르르한 양복을 입고서 은발을 말끔히 빗어넘긴 얼굴은 딱 보기에도 굉장한 미형이었지만, 감정이 보이지 않는 보랏빛 눈동자는 얼어붙은 것처럼 싸늘하다.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눈길에 남자는 짜증스레 말을 뱉었다.



"그걸 자랑이라고 입 밖에 내뱉냐, 당장 집으로 꺼져."



정말 얼굴과 매치되지 않는 격한 목소리였다. 소년은 재미있다는 듯이 그를 마주했다. 



"우와, 아저씨. 성깔 있네."

"이런 곳에서 청승맞게 비나 맞으면서 헤헤 웃는 놈한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은데. 그리고 존대 써라."

"예, 예. 아, 그리고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야."

"…."

"돌아갈 수 있으면 진작 돌아갔지, 여기서 이렇게 청승떨고 있을 리가 없잖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눈빛을 보면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걸 알아챘는지 남자는 다시 침묵을 고수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까, 먼저 입을 연 것은 소년이었다. 장난스레 말하고는 있지만 그를 똑바로 마주하는 검은색 눈동자가 살며시 흔들리고 있었다.



"아저씨, 그런데."

"…?"

"혹시 혼자 살아?"

"그렇다면?"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한쪽 눈가를 살며시 찡그렸다. 제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귀찮다는 듯이 우산을 들고서 저를 쳐다보는 남자를 쳐다보는 소년의 얼굴이 능청스레 웃고 있었다. 그럼,



"나 좀, 주워가주면 안 될까."




*  *  *



"우와…."



방 안을 둘러보면서 소년이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이미 방에 들어가 양복을 갈아입고 나온 남자가 소년에게 티셔츠와 반바지를 던져주었다. 소년은 그걸 주섬주섬 들고 그가 지정해준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고 나왔다. 이 날씨에 입기에는 조금 추운 옷차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앉아있을 때는 몰랐지만 사실 소년은 남자보다 훨씬 키가 클 뿐만 아니라 팔다리도 긴 편이었다. 어지간한 옷은 맞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여전히 신기하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소년을 향해 남자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하지?"

"응? 아니, 그냥. 놀라서."

"뭐가."



여전히 반말을 쓰는 소년의 모습에, 남자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지만 딱히 제재하지는 않았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 탓이었다.



"내가 데려와달라고 하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데려와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거든."



아니, 애시당초 이런 애송이를 집에 들인 것부터가 제일 귀찮은 짓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싫으면 나가든지. 난 상관없어."

"아니, 누가 싫대? 그냥 신기하다고."



그냥, 믿겨지지 않을 뿐이야. 그 말만 하고서 맞잡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만 하던 소년에게 남자가 다시 물었다.



"너, 이름이 뭐지?"

"그건 왜 물어?"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집에 들이는 건 위험하지. 일단 그 정도는 알아둬야 하지 않겠어?"

"이미 들인 주제에 말은…."

"그래서, 이름은."

"…강림."



강림이라, 저승사자의 이름인가. 그 이상 감흥이 들지 않았는지 남자는 손가락을 들어 강림이 들어갔다 나온 방을 가리켰다.



"저 방을 써라. 거실을 돌아다니든 말든 상관없지만 정말 무슨 일이 없는 이상 내 방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마. 내가 있을 때는 더더욱. 난 귀찮아지는 건 딱 질색이니까. 음식은 적당히 냉장고에 있는 반찬이랑 밥솥에 밥이 있으니까 그걸 챙겨먹고, 나가든 여기 있든 상관은 안 하지만 나갈 거면 문을 잠그고 나가. 열쇠는 저 화분 밑에 있으니까 그걸로 잠그고 문틈 사이로 집어넣어 놔. 퇴근하자마자 도둑이 들어 난장판이 된 집이랑 마주하긴 싫으니까."

"열쇠까지 알려주네. 혹시 내가 도둑질을 하면 어쩌려고?"

"해봐."

"…?"

"하는 즉시 내 모든 인맥을 총 동원해서라도 네 놈을 찾아 지옥으로 보내줄 테니까."

"히익."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보랏빛 눈동자는 지극히 살벌했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합 입을 다문 소년을 쳐다보며,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알아서 있다가, 알아서 나가라."



그 이상은 귀찮다는 듯이 뒤돌아 방으로 들어가려는 남자를 강림이 불러세웠다. 저기, 잠깐만.



"그런데, 그쪽 이름은 뭐야?"

"사라."



그렇게만 답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라의 뒷모습을 강림은 한참 동안 서서 계속 쳐다보았다. 이름을 몇 번이고 입 속에서 굴려보았다. 사라, 사라라.



"이름은 예쁘네. 가진 사람 성질이 더러워서 문제지."



작게 투덜거리던 강림이 제 머리를 긁적거렸다. 뻘쭘하게 잠시 서 있던 그가 뒤를 돌아 사라가 지정해준, 그의 방에서 정확히 맞은 편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뚜벅뚜벅 울리던 발소리가 멈추고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찰나에, 다시 쾅 하고 문이 닫혔다. 점점 깊어가는 밤을 사이에 두고 그들은 서로 다른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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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디자인 회사 팀장이고 상당히 잘 나가는 엘리트. 강림이는 나온 대로 고등학생입니다. 아마 동거해도 사라가 강림이한테 손댈 리도 없고 강림이가 사라한테 그렇게까지 관심을 둘 리도 없을 겁니다 ㅇㅇ 근데 뒤를 쓴다면 그 동거의 감정선을 느릿느릿하고 감성 있게 다루지 않을까요 마치 화양연화처럼...ㅋㅋㅋㅋㅋ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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