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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 주제는 『꽃』 이에요.





「오랜 시간을 넘어서,

나는 아직도 너를 기다려.





[캣버그] 시공을 넘어





- 5000 Ago,  Egypt





울부짖는 소리가 지천을 찢었다. 무더운 여름, 이집트의 어느 광장에서는 난데없는 소동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악당들에 군중 떼는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흩어졌고, 광장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가진 힘을 과시하려는 듯이 사람들을 짓밟는 악당들의 눈동자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공포에 떨며 광장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이 낄낄 웃으며 그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그 순간, 붉은 물체가 강한 힘으로 그들 중 한 명의 얼굴을 후려쳤다. 뒤로 나동그라지는 악당들과 달리, 그들 앞에 내려서는 이를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환호했다.



“레이디버그님!!”



붉은 빛깔이 도는 비단옷과 붉은 가면을 쓴 여성은 손가락을 올리며 쉿, 소리를 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녀는 어서 도망가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꾸벅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자마자 사람들은 썰물처럼 광장을 빠져나갔고, 어느 새 이곳에는 악당들과 그녀밖에는 남지 않았다. 씩씩거리며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이들에게 그녀는 싱긋 웃으며 손에 들고 있는 붉은 물체를 휘둘렀다.


한 마디를 남기며.



“놀아보자고.”








“요즘 들어 일이 너무 많이 터지네.”



레이디버그는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악당들을 처리하고 문제를 다 수습하고 보니 해가 벌써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가득 머금은 몸을 조용히 식혀 주었다.


그래도 무리 없이 일을 마무리지은 건 다행이지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악당이야 늘 있었지만, 이렇게 떼지어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문데. 일단 대충 마무리는 지었지만 앞으로도 이러면 곤란한데, 이유가 뭘까. 팔짱을 낀 채 입을 우물대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시 외곽으로 들어서려던 찰나, 그녀는 제 앞으로 훌쩍 내려서는 남자를 보고 인상을 썼다.



“블랙캣?”

“안녕, 나의 아가씨.”



능글맞게 웃으며 제 앞에 나타난 검은 가면의 남자가 뒷짐을 지고서, 한쪽 손을 공손하게 내밀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살짝 입을 맞추었는데, 여인은 픽 웃으며 그런 그의 손을 쳐냈다. 그러고는 말했다.



“안녕 좋아하시네. 왜 아까는 안 왔어? 혼자 처리하느라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 줄 알아?”

“미안, 미안. 나도 저쪽에 나타난 놈들 좀 손봐줬거든.”

“뭐? 다른 구역에도 나타났어?”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블랙캣의 표정이 퍽 진지해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뻘줌해졌다. 하긴 이런 일로 장난칠 성격은 아니지, 이 녀석이. 몇 명이나 상대했냐고 물으니까 둘이라고 답했다. 자신이랑 같은 숫자다. 이제껏 잘 해오긴 했지만, 계속 이런 페이스면 둘만으로는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날씨에 왜 이리들 주책인지.”



쉬고 싶어도 참으로 도움 하나 안 되는 놈들이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맡길 수도 없는 일이기에 퍽 답답했다. 좋은 수가 없을까, 손가락을 턱에 놓고 고민하는 레이디버그의 모습이 새까만 눈동자에 가득 담겼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알아챈 레이디버그가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뚫어져라 봐?”

“아니, 아니. 언제 봐도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그래, 그래. 고마워.”



건성으로 받아 넘기는 레이디버그와 달리 블랙캣은 꽤 진심인지,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보고 봐도 질리지 않는다고 말해도 아마 믿지 않겠지. 블랙캣은 쓰게 웃었다. 무언가 망설이고 있는 듯한 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레이디버그는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일을 다 처리했으면 집에 가야지. 일부러 날 찾아온 이유는 또 뭐야?”

“그냥, 얼굴이 보고 싶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보잖아, 우리. 뭐가 그리 보고 싶다고.”



짧게 웃음을 터트리던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늦었다고 소리를 지른다. 일단 빨리 가봐야겠다 말하면서,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여인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얼떨결에 잘 가라고 대답하면서, 그녀가 제게서 꽤 멀어지자 그는 줄곧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풀고 그 손에 들려 있던 꽃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가져왔던 붉은 꽃송이.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꽃잎이나 줄기나 꽤나 시들해져 있었다. 중간에 악당을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좋았으련만. 노을에 짙게 물들어 괜히 불길하게 느껴지는 꽃을 말없이 쳐다보던 블랙캣의 손이 꽃을 꽉 쥐었다. 꽃이 손 안에서 바스라졌다. 이런 걸 제 아가씨에게 줄 수는 없겠지. 길을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가, 픽 웃었다.


나중에 다시 주면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 현재,  Paris





“어디 있어?”



거대한 사람 모양의 과자들 사이를 누비는 붉은 인영이 있었다. 이 거대한 과자들은 놀랍게도 모두 사람이었으며, 지금 그녀는 파리를 한창 누비며 사람들을 과자로 만드는 악당을 쫓는 중이었다. 연락을 했는데 얘는 대체 왜 안 와. 답답하다는 듯이 이맛살을 구기던 그녀의 옆으로 검은 실루엣이 다가왔다.



“기다렸어, My Lady?”

“왜 이제 오니?”

“미안, 미안. 뭘 좀 하다가. 자자,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어서 가자구.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듯이 앞장서 나아가는 블랙캣의 뒤를 따르던 레이디버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번졌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는 것은 덤으로.


이번 악당은 그래도 간단히 제압되었다. 사실 이번처럼 특이한 악당도 꽤 오랜만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주변의 모든 것들을 과자로 만드는 능력을 갖게 된 걸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이의 옆에서, 두 사람은 찡긋 웃으며 꼭 쥔 주먹을 가볍게 맞대고 임무 완수! 를 외쳤다. 그러던 중 갑자기 블랙캣이 흐냥, 이라는 감탄사를 뱉어냈다. 무언가 잊었던 게 떠올랐다는 듯이.



“잠깐만 기다려!”

“에?”

“1분만, 1분 안에 올 거야!!”

“잠깐만, 야!!”



대답도 듣지 않고 급하게 어디론가 가버리는 블랙캣의 모습이 좀 의아했지만, 아직 시간도 남았으니 1분만 기다려주기로 했다. 이제 돌아가서 뭘 해야 하나, 딴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제 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블랙캣에 레이디버그는 깜짝 놀랐다. 제 귀걸이에서 띠링, 소리가 울렸다.


정말 사라진 지 1분만에 나타났네.


무슨 일이었냐고 묻기도 전에 블랙캣은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능청스럽게 내밀었다.



“여기.”

“꽃? 이게 웬 거야?”



탐스럽게 피어나 있는 붉은 꽃이었다. 붉은 꽃 세 송이와 하얀 안개꽃들로 치장되어 있는 꽃다발은 딱 보기에도 무척 예쁘고 귀여웠다. 눈을 깜빡거리며 신기해하는 레이디버그에게 블랙캣이 말했다.



“주고 싶어서.”



말하면서도 좀 쑥스러웠던 모양인지 고개를 홱 돌리며 손을 휙 그녀 앞으로 내미는 얼굴은 살짝 빨개져 있었다. 가면 사이로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답을 기다리는지 꽃다발을 든 손을 살짝 위아래로 흔드는 블랙캣의 입매가 긴장으로 살짝 굳어 있었다. 멀뚱멀뚱, 블랙캣과 꽃을 계속 번갈아보던 그녀가 픽 웃으며 그의 손에서 조심스럽게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꽃을 그렇게 흔들면 어떡해? 이렇게 예쁜데.”



그제서야 블랙캣은 살짝 고개를 돌려 꽃다발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레이디버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꽃향기를 맡으며 즐겁게 미소짓는 모습은 역시 상상보다 더 사랑스러웠다. 너무 오래 걸렸지만 이걸로 된 건가. 블랙캣의 입꼬리가 서서히 말려 올라갔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이제서야.



"고마워. 잘 받을게."



평소에는 보기 힘든,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쑥스럽기도 쑥스러웠지만 솔직히 레이디버그의 저런 모습은 여러 의미에서 심장에 나빴다. 무척이나. 정면으로 마주하면 얼굴이 불탈지도 몰라.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계속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던 블랙캣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서야, 네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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