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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위주 독백입니다.




[듄다나] 끝에 내리는 비


WRITTEN BY. 리네






내 사랑은 그 순간 그렇게 끝나버렸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



그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어째서일까. 창문께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면서도 영 기분이 찝찝한 탓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된 업무 중에서 제 나름대로의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해도 좋을 일인데 왜 이리 기분이 싸한지 모르겠다. 사실 오늘이라고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다. 언제나와 같이 잠에서 깨어나고 씻고 출근하고, 하루종일 잡무를 했다. 농담 아니라 정말 하루종일. 제 직장이라서가 아니라 스푼은 정말이지 발에 치일 정도로 업무가 많았고, 거의 서류작업이나 민원만 도맡아하는 자신과는 달리 밖에서 활동하는 녀석들은 늘 체력이 부족하다며 골골거리기 일쑤였다. 가끔 복도에서 동료 히어로들을 마주칠 때면 그들의 눈 밑 가득한 다크서클에 속으로 몰래 안쓰러워 하기도 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히어로들이 하는 일은 더 이상 단순히 악당을 해치우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좀 더 다양했고 골치가 아팠으며, 참으로 고독했다. 보수가 꽤 높다지만 그걸 떠나서 업무량만 본다면 언제 과로사하거나 다쳐서 퇴사할지 모르는 3D 직업이었다. 매일 피곤한 눈초리로 임무를 나가는 히어로들 중에서도 신입들은 종종 사고를 치기도 했고, 경력이 오래 된 사원들이라도 가끔은 어딘가를 다쳐 올 때가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마다 저는 신입들을 훈육하거나 다친 이들을 치료해주는 것을 거들었다. 종종 자신이 그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것은 제게 주어진 '자신만의 일' 이기도 했다.


쳇바퀴같은 일상. 매우 다이나믹해 보이지만 실상 그 속은 굉장히 뻔하고 단조로웠다. 출근해서 업무를 처리하고 집에 돌아가고, 딱히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직장에 충실하는 나날들. 제 삶이지만 다른 이가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스푼이라는 거대한 조직 내에서도 그저 그런 말단 중 하나, 동창인 다른 친구들이 출세한 것에 비해서는 한없이 초라해보일지 몰랐지만 사실 듄은 자신의 삶 자체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이래저래 변화가 심한 것도 딱히 좋은 일만은 아니잖는가. 고지식하고 하나밖에 모르는 자신에게는 이 정도가 딱 맞았다.


이 나이 먹고서 변하라고 하면 그것도 우습지. 한숨을 내쉬며 듄은 조용히 근처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재떨이에 담뱃재를 탁탁 털었다. 이렇게 말하면 젊은 놈이 애늙은이같은 소리 한다고 투덜거릴 친구 녀석들이 생각나서 절로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물론 그렇게 말하다가도 네가 그러면 나까지 늙은 기분이 든다는 말을 덧붙이겠지. 오래 알고 지내서인지 반응이 절로 상상이 갔다. 십몇 년지기 친구들을 두는 기분이 이런 걸까.


제겐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음에도.


창문 밖으로 탁하게 흐려지는 하늘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비가 오려나.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리며 후우, 머금고 있던 담배 연기를 허공으로 뱉어냈다. 손에 들고 있던 담배 끝에서 흐릿하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제 마음처럼 위태로이 흔들렸다.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 위에 비벼서 껐다. 재떨이에는 이미 수북히 많은 담배꽁초가 쌓여 있었다.


이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해결이 나질 않아.


살짝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제가 쓰는 방은 스푼 정문 바로 위에 있었기에, 여기서 밖을 내다보기만 해도 누가 임무를 나가는지가 훤히 보였다. 물에 잉크를 탄 것처럼 순식간에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하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듄의 시선을 붙든 건, 바로 그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흑단발 머리카락이었다.


다나.


제 친구이자 스푼의 서장님. 동창이던 자신과 달리 엄청나게 출세한 것인데도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여전히 강하고 여전히 바쁜 업무 속에 살고 있다. 원래 서장은 밖으로 나다니기보단 조용히 임무를 내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스푼 사정상 그럴 수는 없기에 녀석은 자주 저렇게 시찰을 나가곤 했다. 난폭한 언동과 무대포적인 행동과는 달리 녀석은 스푼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망이 높은 편이었는데, 지위를 가지고 누군가를 찍어누르는 보통의 관리들과는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것치고는 고등학생 때 스카웃을 하러 온 냅킨 직원에게 난 말단은 싫다며 고위직을 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던 전력이 있기도 했다. 옆에서 보던 제가 그 때 얼마나 놀랐는지 생각해보면 지금도 그저 헛헛 웃고 만다. 유다도 그렇고 저런 녀석들과 같이 지내온 자신이 이제와서 보통 감성을 가진다는 것도 퍽 웃기는 일이었다.


언제 봐도 참 패션센스를 의심케 하는 꽃무늬 셔츠에 정장 차림으로 밖으로 나서는 녀석은 참, 아무리 봐도 여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외모가 수려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제 동생과는 달리 여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기도 했고. 그런데 어째서일까.


나는 어째서.


평소였다면 녀석을 보고서 우울했던 기분이 어느 정도 가셨을 것이다. '평소였다면.' 하지만 옅게나마 떠오르던 미소는 녀석의 옆에 선 누군가를 보자마자 처참히 깨져 버렸다. 헤헤 웃으며 달라붙는 귀능 씨를 귀찮다는 듯이 착 밀어내다가도, 이내 졌다는 듯이 픽 웃으며 제 한쪽 팔을 내어준다. 그 모습에 싸악 식어버리는 기분과는 달리 자꾸만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참으로 어지럽다. 십몇 년을 알고 지냈지만 저런 다나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니, 두 번째인가.


엿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필요한 물품을 사러 잠시 밖으로 나섰을 뿐이다. 스푼은 과중한 업무량 때문에 유독 야근하는 사람이 많았고 저도 보통 그 중 한 명이었다. 일을 하다가 배가 고파져서 간단히 요깃거리나 하자 싶어 편의점을 찾았다. 사실 정문 쪽으로 나서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인적이 드문 후문 쪽으로 발걸음을 나섰다. 물론 자신은 그 행동을 나중에 아주 처절히 후회했다.


그냥 조금 돌아가고 말 걸. 어째서 봐버렸을까.


다나가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말투는 언제나처럼 퍽 퉁명스러웠지만 목소리에는 묘하게 웃음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있는 둘의 모습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제가 아는 다나는 스킨십을 끔찍히도 싫어했다. 사실 다나가 오수 씨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도 그리 불안하지 않았던 건, 그녀의 반응은 마치 TV에 나오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나는 그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그에게 자신의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그럴 낌새도 없었다. 그래서 안심했던 걸까. 벌을 받는 걸까.


좀 더 빨리 내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대가인가.


처참한 기분을 끌어안고 재빨리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어떤 정신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 때 자신이 패닉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들 사이에 흐르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저는 둔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지? 고개를 붕붕 흔들다가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뜨거워졌던 제 머릿속을 싸늘히 가라않혀 준다. 필사적으로 방금 전의 기억을 지워내려고 애썼다.


기억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남자 앞에서 웃고 있는 네 얼굴따위, 보고 싶을 리가 없잖아.


밖으로 나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분위기로 봐서는 시찰이 아니라 일찍 퇴근하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사고가 별로 많이 안 터졌으니 그럴 법도 했다. 자신과 다나만큼이나 둘은 굉장히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이기도 했고, 그만큼이나 그들이 붙어 있는 모습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음에도, 맞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늘 삐걱거리던 우리와는 다르게도.


휙 고개를 돌렸다. 그들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떼어내고서 창문 아래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뭐라도 물고 있어야 진정될 것 같은 심정에 허겁지겁 주머니를 뒤졌지만 나온 거라곤 안이 텅 비어있는 담뱃갑 하나뿐이었다. 아까 피웠던 담배가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냈다. 멍하니 한참을 제 손 안에 들린 담뱃갑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가, 탁자 위 재떨이를 올려보았다. 이미 다 꺼져버렸는지 연기는 더 이상 피어오르지 않았다. 불씨도 없었다. 어두워진 방 안에서, 하염없이 그를 올려다보던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우스웠다.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닌데도 웃음이 삐져나와 견딜 수가 없었다. 제 입술 사이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덧없이 휘감겼다. 방 안을 가득 채우며 끝없이 맴돌던 웃음소리가 이내 천천히 잦아들었다. 웃음이 멈춘 자리를 메꾸는 것은 메마른 슬픔이었다. 괴로움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제 마음 속 깊숙히 간직했었던 연정(戀情)이었다. 이제는 그저 덧없어진. 멍청하고 아둔했던 제 모습에 그저 실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래도 이 마음 한 자락을 조금쯤은 내보여 볼 것을.


고백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가 제게 마음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식으로 고백해서 친구로서의 자리를 잃는 것보다는 이렇게 지켜보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다. 고백이야 언젠가는 하겠지, 언젠가는 탁 털어놓고 말할 날이 오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보니 어느 새 10년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네가 특정한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너는 강하고 당당했고 악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아꼈다. 그런 네가, 누군가 한 사람을 특정하게 아끼게 되다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10년이 넘게 지나면서 사람이 언제나 그 사람 그대로일 리가 없는데.


나는 그대로여도, 너는 변할 수도 있는 거였는데.


이 상황에 와서까지도 마음을 전할 용기는 없었다. 이미 누군가의 사람이 되어버린 너에게 혼란을 던져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네게서 거절의 말을 듣는 것이 두려운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불안하게 들썩이는 이 가슴을 감당하기가 벅찼다. 태연한 척 애써 호흡을 고르고는 있지만 목구멍에서부터 치받아 올라오는 절규를 내리누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 나는 딱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남자다. 그래서 너는 그 아이를 선택한 걸까. 솔직하게 마음을 내보이면서 너를 쫓아가는, 계속 거절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너만을 바라보는 그 아이를.


아, 좀 위험한데. 고개를 들고 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혼자 일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 지금 당장 결제가 급한 서류가 없어야만 할 텐데, 멍해진 머리로 생각하면서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혈향과 함께 입술 끝에 느껴지는 감각이 짜디짰다. 축축히 젖어드는 소매를 애써 무시하면서 그저 조용히 눈물을 쏟았다. 눈물을 흘리고 있자니 정말 모든 게 끝났다는 사실이 절절히 다가왔다.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은 그저 재미없고 따분한 남자가 아니라, 그저 오랜 감정에 실연을 당한 바보같은 남자일 뿐이다. 멋대로 시작한 이 마음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남은 미련조차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 머저리. 가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기를 조금씩 토해내고 오열하면서도, 나는 끝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치우지는 못했다.


여전히 비는 오지 않는다.

내 마음 속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FIN.




===


나르님과 랄라님이 보고 싶으시대서 그냥 제 스타일의 듄다나를 간단히 써 보려고 했...는데 왜 이리 길어졌을까요;ㅅ;?(다들: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듄다나는 듄의 철저한 짝사랑으로 끝날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끝내줬습니다~ㅇㅅㅇ~(듄: 야!!

(※ 저는 듄을 아낍니다 어디가)


아, 맞다. 끝에 내리는 비라는 제목은 보시다시피 밖에는 흐려지기만 했을 뿐 비는 오지 않지만 듄의 마음 속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는 의미예요 ㅇㅇ 사실 듄이 실연했든 말든 세상은 물론 아무도 모를 테니까, 그런 듄의 뼛깊은 외로움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와닿았을지는 모르겠지만 ㄷㄷㄷㄷ


독백이라 뭐 더 설명할 건 없네요 이야 편하다~!!^ㅁ^ 사실 정말 생각흐름대로 휘갈긴거라 별 게 없어서 참 민망하군요 ㄷㄷㄷ 리퀘하신 두 분이 만족하셨으면 그걸로 만족하려구요!>_<(두분: 저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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