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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형식에 맞춰서 적은 거라 웹연출과 책의 연출이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Episode 12.

세 번째 요정






말도 안 돼.


몇 번이고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마리네뜨는 방 안을 빙빙 돌았다. 몇 시간째 같은 행동을 번복하고 있는 마리네뜨를 보며 티키가 걱정스레 말했다.



“마리네뜨, 괜찮아?”

“괜찮…, 지 않아.”



힘없이 웃으며 마리네뜨는 빙빙 돌던 것을 멈추고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몇 번을 생각하고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펠릭스가 블랙캣이라니.


분명 변신이 풀리는 것을 바로 눈 앞에서 봤는데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혹시 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 남자는 사실 팬터마임 능력자가 아니라 환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런 얼토당토않은 생각까지 들 정도로 블랙캣의 정체는 마리네뜨에게 충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악! 그럼 난 본인한테 그렇게 절절한 고백을 했단 말이야?!”



손으로 미친 듯이 베개를 내리치는 마리네뜨의 볼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전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답이 없었다. 그야말로 창피하기 짝이 없는 말들만 주구장창 늘어놓았던 것 같은데! 그것도 본인 앞에서! 아니 이미 고백 비슷한 건 했지만!



“잠깐, 그러고 보니….”


‘나, 레이디한테 반한 것 같아.’



씨익 웃으며 고백하던 블랙캣의 표정이 떠오르자 마리네뜨의 기분은 더욱 암전되었다. 그 때는 취향이 아니라고 딱 잘라 거절했었는데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아악, 어떻게 해? 이제 어떻게 블랙캣 얼굴을 보냐고! 아니, 펠릭스인가? 아무튼!”



그렇게 마구 떠들다가 마리네뜨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힘을 빼고 침대에 축 늘어진 상태로 마리네뜨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진짜 나를 좋아하는 걸까…?”



확신할 수가 없었다. 티키가 그랬었다. 블랙캣을 믿지 말라고. 믿으면 너만 상처받을 거라고. 블랙캣의 비밀을 알려주던 티키의 목소리가 무의식 너머에서 다시금 떠오르고 있었다.


베개를 끌어안고 옆으로 누워 있는 마리네뜨의 얼굴에 착잡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어쩌지?



‘마리네뜨~?’



밑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마리네뜨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엄마? 무슨 일이야!”

‘누가 널 찾아왔는데?’

“날?”



설마.


불길한 마음에 마리네뜨는 재빨리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익숙한 금발 머리카락을 보자마자 마리네뜨가 크게 소리질렀다.



“나 없다고 해줘!”

‘이미 있다고 해버렸어~!!’

“아, 엄마!”



울상이 된 얼굴로 소리쳤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버렸다.



‘만나기 곤란하다고 말해줄까?’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엄마를 향해 마리네뜨는 한숨을 내쉬며 소리쳤다.



“아니, 됐어. 내가 나갈게.”



밖으로 나오자 역시나 펠릭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를 바꾸자는 듯이 눈짓하는 펠릭스를 따라 마리네뜨는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전에 블랙캣과 이야기했던 바로 그 공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침묵은 더한 무게를 가지고 마리네뜨를 내리눌렀다.


다시 펠릭스를 만나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어색했다. 전에는 딱히 대화가 오가지 않았음에도 늘 즐거웠는데. 공원에 도착해서도 마리네뜨는 펠릭스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살짝 시선을 내린 채로 제 앞에 선 마리네뜨의 모습이 펠릭스는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딱 말할 거만 말하고 다시 들어가자고 생각하며 마리네뜨는 힘없이 말했다.



“언제부터 알았어?”



내가 레이디버그인 거. 뒷 문장은 생략되어 있었지만 충분히 알아들은 펠릭스가 짧게 대답했다.



“얼마 안 됐어.”

“….”

“내가 블랙캣이라서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펠릭스의 목소리에 마리네뜨는 깜짝 놀라 벌떡 고개를 들었다. 표정은 덤덤했지만 초조해 보이는 펠릭스의 눈빛에 마리네뜨는 당황했다. 심장을 칼에 찔린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괴로웠다. 처음으로 보는 너의 얼굴들이 너무나 신기한데, 동시에 너무나 낯설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 내 앞에서 이런 모습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잖아.


그건 역시 내가 레이디버그라서?



“너, 나 피하고 있지?”



여전히 말이 없는 마리네뜨에게 펠릭스는 재차 물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두워지는 마리네뜨의 안색을 살펴보는 펠릭스의 심정도 같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내일 말하자 생각했었다. 제대로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매일 공원으로 나가서 기다렸지만 마리네뜨는 다시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매번 지겨울 정도로 공원에 와서 재잘거리던 녀석이 없어지니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조용한 독서 시간이 이토록 어색하기는 또 처음이었다.


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속이 타들어가는 감각인지 펠릭스는 다시금 체감했다. 그래서 직접 찾아왔는데 정말 곤란하다는 얼굴로 시선도 마주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리네뜨를 보니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한참을 우물거리던 마리네뜨는 겨우 대답했다.



“하, 할 말 없어.”



그렇게 말하고 돌아가려는 듯이 뒤돌아서는 마리네뜨를 본 펠릭스의 얼굴에서 표정이 싹 걷혔다. 펠릭스 본인도 왜 이러는지 몰랐다. 블랙캣으로서 레이디버그에게 계속 거절당했을 때는 그저 섭섭했던 정도였는데, 어째서? 매번 받아온 거절임에도 마리네뜨의 입으로 듣는 건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울컥해진 펠릭스는 돌아서는 마리네뜨에게로 다가가 마리네뜨의 팔을 붙잡고 돌려세웠다.



“잠깐만!”

“놔!”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는 마리네뜨의 눈동자에 펠릭스는 심장이 아릿했지만 더욱 세게 팔을 붙잡았다. 펠릭스의 손을 뿌리치고자 팔을 마구 흔들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손에 울컥 감정이 치밀었는지 마리네뜨가 크게 소리질렀다.



“이거 놓으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마리네뜨가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네가 좋아하는 건 레이디버그지 내가 아니잖아!!”



순간, 펠릭스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와 동시에 손을 뿌리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는 마리네뜨를 멍하게 쳐다보던 펠릭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펠릭스의 셔츠 속에서 고개를 내민 플랙이 중얼거렸다.



“파트너, 안 쫓아가?”

“…지금 가봤자 날 보지 않을 거야.”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지.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뒤돌아서던 펠릭스는 불에 덴 듯 올라오는 통증에 신음했다.



“으윽….”

“그러게, 무리하면 안 된다니까?”



애써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 펠릭스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파트너인 플랙이 모를 리가 없었다. 펠릭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 괜찮아.”



이 정도는.






빠르게 달려 집으로 돌아온 마리네뜨가 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풀썩 엎드렸다. 엎어진 채로 아무런 말도 없는 마리네뜨에게 티키가 걱정스레 물었다.



“마리네뜨, 마리네뜨.”



아무런 말이 없는 마리네뜨의 모습에 티키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까는 네가 심했어, 알지?”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는 마리네뜨에게 티키는 다시금 말했다.



“그 애, 상처받은 거 같았어.”



마리네뜨가 뒤돌아섰을 때 쓸쓸하게 일그러지던 펠릭스의 표정을 티키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마리네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티키를 마주보았다.



“뭐가 상처받았다는 거야? 다 알면서도, 내가 레이디버그인 걸 알면서도 아무 말도 없었던 녀석인데. 블랙캣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던것도 다 계획적으로….”

“그게 아니라는 거 마리네뜨 너도 잘 알잖아.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 하면 마음이 편해져?”



정곡을 찌르는 티키의 한 마디에 마리네뜨는 잠시 울상을 짓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알아! …펠릭스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거.”



정말 자신을 이용하려고 했다면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질 리도 없었다.


마리네뜨가 두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몇 번을 우물거리다, 간신히 입을 여는 마리네뜨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고 울음기가 배어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상처받는 내가 너무 싫어.”

“마리네뜨….”

“레이디버그가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니 펠릭스도 분명 실망했겠지.”



힘없이 중얼거리던 마리네뜨가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녀의 입가에 자조적인 웃음이 머물렀다.



“그가 좋아하는 건 레이디버그라는 강한 영웅이지, 마리네뜨라는 평범한 소녀가 아니니까.”






“하아….”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로 쓰러지는 펠릭스의 얼굴에 식은땀이 살짝 배어 있었다.


생각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펠릭스는 피식 웃었다. 병원을 가서 치료를 받기에는 흔적이 남을 것 같아 집 안에서 치료하기는 했지만, 놀라서 헐레벌떡 달려온 집사를 납득시키는 것도 꽤나 고역이었다. 겨우 치료하긴 했지만 아마 당분간은 씻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집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제는 그럴 수 없다는 거지만.


가상의 체스판을 들여다보는 펠릭스의 시선이 상대가 있는 쪽을 흘깃 쳐다보았다가 다시 체스판으로 향했다. 킹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현재 그나마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말은 네 개. 하나는 크게 부상을 입었으니 당분간 활동을 자제하겠지.


뭐, 그건 자신도 그런가. 펠릭스는 쓰게 웃었다.


상대의 윤곽이 얼핏 보이는 것도 같았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패 중 하나가 실비아 에스프랑인 것을 안 이상, 뒤에 누가 있을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이미 전부터 눈치채고는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셰이드를 만났을 때부터 펠릭스는 셰이드가 실비아 에스프랑일 것이라 예상했었으니까.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실비아가 열렬하게 따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펠릭스는 순순히 인정했다.



“야, 좀 쉬라니까. 너 또 쓸데없는 생각하고 있지?”



또 시작이다. 자신이 다친 후로 이상할 정도로 잔소리가 많아진 플랙을 성가시다는 듯이 쳐다보던 펠릭스가 손으로 반지를 톡톡 쳤다. 으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플랙이 반지로 빨려들어가고 펠릭스는 곧 블랙캣의 모습으로 변했다. 읏차, 자리에서 일어나는 블랙캣은 제 몸을 휘휘 둘러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변신하면 확실히 고통이 줄어들긴 했다. 상처도 빨리 낫는 것 같고. 그래서 요즘은 평상시에도 집 안에서는 블랙캣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집사는 허가하지 않으면 함부로 방문을 열지 않으니 목소리만으로도 지시하기는 꽤 쉬웠으니까.


가만히 있자니 자꾸 부정적인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블랙캣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옆 책상 앞에 있는 노트북 앞으로 다가갔다. 노트북을 켜면서 그는 가방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드론이었다.


상처 회복을 위해 블랙캣의 모습으로 자주 변신하게 된 지금, 블랙캣은 드론을 사용해 파리 시내를 자주 시찰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악당들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진 느낌이 든다. 신문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어려우니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드론은 참으로 편리한 물건이었다.


드론을 창문 밖으로 날려보내고 조종기의 선을 노트북과 연결했다. 도시를 한 바퀴 살펴본 후 언제나처럼 자연사 박물관 쪽으로 드론을 날렸다. 노트북에 떠 있는 화면을 감흥 없는 얼굴로 살펴보던 블랙캣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굴이 열려 있었다.


무슨 일이지? 놀라면서도 문득 걱정이 들었다. 저 동굴이 열려 있었을 때마다 무언가 꼭 일이 터졌으니까. 하지만 이건 기회이기도 했다. 제발 자신이 갈 때까지 열려있기를 바라며 블랙캣은 재빨리 노트북을 끄고 창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바람처럼 달려 자연사 박물관 앞에 있는 동굴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동굴은 아직 열려 있었다.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자신을 맞이하고 있는 동굴의 입구를 보며 블랙캣은 침을 꿀꺽 삼켰다.


‘파트너, 위험한 짓 하지 말라니까!’


플랙의 절규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런 플랙에게 미안했는지 블랙캣은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미룰 수 없어. 그러기엔 너무 예감이 좋지 않아.”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진실을 알아야겠어.


등의 상처가 다시금 욱신거리는 것도 같았다. 미미하게 느껴지는 통증을 애써 무시하면서 블랙캣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괜찮아. 블랙캣 상태에서는 악당이 아닌 이상 쉽게 잡히진 않아.”



함정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귀를 쫑긋 세웠다. 바람 소리에 섞여 들리는 작은 발소리들에 직감했다. 돌아오는구나. 블랙캣은 서둘러 서늘한 동굴 안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여유롭게 걸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소리없이 빠르게 발을 놀리며 블랙캣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동굴은 생각보다 굉장히 컸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졌지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인공적으로 깎아낸 것만 같은 이질감이 풍겼다. 점점 밑으로 경사지는 동굴 안을 걷던 블랙캣은 곧 제 앞에 있는 문을 발견했다. 그냥 열었다가 사람이 바로 앞에 있으면 어쩌지? 순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블랙캣은 가방에서 물컵 하나를 꺼내들고 문 앞으로 다가가 컵을 문 위에 올려놓고 귀를 기울였다.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효과가 있었다. 간간히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에 블랙캣은 절로 초조해졌다. 몇 명 안 되는 거 같은데 그냥 확 들어가서 다 기절시켜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언제 나갔던 놈들이 돌아올지 모르는데.


하지만 제 존재를 노출시키는 건 너무 위험했다. 몸상태도 그렇고. 일단은 최대한 조용히 이 곳을 살펴보고 빠져나가는 것을 우위에 두어야 했다. 한숨을 내쉬며 블랙캣은 계속 기다렸다.


잠시 후,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 즈음에서야 블랙캣은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세련되고 깔끔한 복도에 블랙캣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봐도 최신 연구 시설을 연상시키는 하얗고 깨끗한 복도의 바로 앞에는 철문이 하나 더 있었다. 굳이 엿듣지 않아도 분명 저 안에는 사람들이 있을 게 분명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 블랙캣은 난감해졌다. 어떻게 저 안쪽으로 들어가지? 내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만 있다면….


아.


블랙캣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가방에서 얇은 천을 하나 꺼냈다. 맨 처음 셰이드 플뢰르를 상대할 때 캠코더를 가리기 위해 사용했던 카멜레온 천. 덮어쓰면 주위와 동화되어 안에 들어간 사람이나 물건을 숨길 수 있다. 하여간 매직박스라는 건 언제 봐도 신기하다고 중얼거리며 반투명한 천을 머리에 뒤집어쓴 블랙캣이 살금살금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기에 앞서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데 왜 이렇게 떨리지.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다행히도 문은 쉽게 열려주었다. 그 사실에 감사하며 스르륵 문이 열리자마자 그 틈새로 낑겨들어간 블랙캣은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하얀 가운을 입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차트를 들고 두셋씩 붙어다니며 뭐라뭐라 떠들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복도는 시끌벅적했다. 이렇게 많은 연구원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펠릭스는 조금 놀랐다. 이 정도 인력을 모으자면 자금이 장난 아니게 필요했을 텐데.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큰 모양이었다.


사람들과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길을 돌아보고 있던 블랙캣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아들어 꽂혔다.



“아니, 아무리 봐도 보스가 갑자기 이상해지신 거 같지 않아? 갑자기 해외에 보냈던 연구팀까지 죄다 파리로 돌아오게 만들고.”



어떤 남자가 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프랑스인이 아닌지 남자의 목소리는 빠른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지만 알아듣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재빨리 남자의 뒤에 따라붙으며 블랙캣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두 사람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가 투덜거렸다.



“중요한 연구라고는 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연구를 시작하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이유라도 알려주면 좋은데 영….”

“어쩔 수 없지. 간부들만 아는 기밀 사항이라고 하니까.”

“바로 그게 문제야! 가뜩이나 이 연구 내용을 봐. 너무 수상쩍기 짝이 없다고.”

“쉿. 목소리 낮춰. 며칠 전에 숙청이 벌어졌던 거 잊었나?”



숙청?



“그래. 행방불명으로 처리되긴 했지만 개뿔. 분명히 위에서 처리한 거겠지. 이번 연구 때문에 간부진 사이에서도 대립이 심했다던 소문이 있던데.”

“그래봤자 별 수 있나. 조직에서 보스의 뜻은 절대적인데.”



하하 웃는 제 동료의 말에 남자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여간 나비, 나비. 이놈의 조직은 나비를 너무 좋아해. 이젠 살다살다….”

“쉿! 그 얘기는 금구일세.”



동료가 다시금 주의를 주자 그제서야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는지 가만히 입을 다무는 두 사람을 블랙캣은 숨죽여 따라갔다. 한참을 걸어가던 두 사람이 어느 연구실 앞에 도착했다. 목에 걸고 있던 카드를 리더기에 찍고 엄지손가락을 검사기 위에 올려 지문을 인식하던 남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히 이렇게 투덜대는 것 정도는 보스도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야? 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일했는데? 2월부터니까 벌써 반 년이 다 되어가! 솔직히 지금도 이례적인 속도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위에서는 계속 빨리 성과를 내라 마라 잔소리를 하질 않나. 그렇게 말을 할 거면~ 자기들이 알아서 연구하든지!”



스트레스라며 머리를 벅벅 긁어대는 남자에게 옆에 있던 동료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금방 끝나겠지. 좀만 더 힘내보세.”

“간만에 휴가를 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지. 이러다가 언제 이혼서류가 날아들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니까. 그렇다고 지금 여길 나가려고 들었다간 목숨이 위험할 테고. 뭐라 사정 설명을 하기도 애매하고.”

“하긴 우리도 이유를 모르니까.”

“누가 아니겠나.”



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지만, 블랙캣은 더 이상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더 이상 접근하다가는 위험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다. 저들의 대화에서 순간적으로 느꼈던 묘한 위화감.


닫히는 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블랙캣은 방금 전 대화에서 느꼈던 위화감이 무언지 찾아내기 위해 애썼다. 뭐지? 뭔가 이상했는데. 섬뜩한 감각이 전신을 후려치는 듯한 기분에 블랙캣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일했는데? 2월부터니까 벌써 반 년이 다 되어가!’


체스판 위에 덮어져 있던 베일이 한 꺼풀 벗겨졌다. 상대가 들고 있는 건 바로 백색의 말.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가시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미라큘러스를 깨웠던 것은 분명히 개학하고 사흘 뒤였다. 4일에 개학했으니까 정확히 3월 7일.


그런데 이 모든 게 2월부터 시작되었다고?


미라큘러스를 노린다는 말을 그다지 믿지는 않았었다. 악당들은 계속 파리에 나타났고, 꾸준히 미라큘러스를 노린다고 말했지만 정말로 승부가 날라치면 발을 빼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미스터 피죤의 일례를 제외하고는 양쪽 다 위험할 정도로 승부가 치열하게 가지는 않았었다. 저번 오페라 하우스 사건 때는 자신이 작정하고 승부를 빨리 끝냈기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던 거였고.


저쪽이 먼저 수를 두기 시작했다는 건 이미 예전부터 무언가를 기획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적어도 2월부터는. 그렇다는 건 악당들도 자신들이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왜 우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파리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지?


만약 악당들이 파리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자신은 몰라도 마리네뜨는 더 이상 레이디버그로 변신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레이디버그는 몇 번이고 제게 이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었고, 자신은 그런 레이디버그의 마음을 이해했었다. 마리네뜨가 레이디버그로 변신했던 건 순전히 책임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인가? 우리를 계속 나타나게 하려고? 대체 왜?


자신들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뭐지? 언론의 관심?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영웅들에게 쏠려 있을 때 편하게 활동하기 위해서?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블랙캣은 천천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정말로 미라큘러스를 노리는 게 아니었다면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걸까.


‘하여간 나비, 나비.’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울려퍼진다.


‘이놈의 조직은 나비를 너무 좋아해. 이젠 살다살다….’

‘쉿! 그 얘기는 금구일세.’


나비를 좋아한다면, 역시.


블랙캣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실존했었나.


침착하게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간 블랙캣은 다시 끝없이 길게 늘어진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세히 둘러보니 연구원들은 목에 모두 목에 네모난 패스카드를 걸고 있었는데, 카드의 위쪽에는 작게 나비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단순한 모양이었지만 블랙캣은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아버지가 남겨두었던 책에 그려져 있던 호크모스의 브로치 모양과 거의 흡사했다. 그걸 알아본 블랙캣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난 대체 무얼 하고 하는 걸까.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블랙캣 자신도 쉽사리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다 파헤치고 나면, 그 뒤에는 진실이 남아 있을까?


하지만 그 다음에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잔혹한 진실의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오싹한 기분에 블랙캣은 몸을 살짝 떨었다. 당장이라도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지만 호기심과 책임감으로 애써 내리눌렀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걷다보니 하얀 복도가 끝나고 또 다른 문이 드러났다. 아무래도 연구원들은 이쪽에서만 움직이는지 아무도 문의 근처로는 다가가려 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블랙캣의 눈앞에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시커먼 어둠이 혀를 낼름거리고 있는 통로를 보며 블랙캣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밤눈이 밝은 블랙캣의 특성상 불을 켜지 않아도 통로를 걷는 것은 무척 수월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걸었을까, 블랙캣은 지금 자신이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당한 거리를 걸어왔다는 건 분명했다. 지나오면서 여러 갈래로 나뉜 갈림길들도 몇 번 보았다. 되도록 중심부 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나아가니 더욱 길이 복잡하게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블랙캣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보아하니 지하에 온갖 통로를 뚫어놓은 모양이군.’


멀리 온 만큼이나 수많은 문들도 보았지만 블랙캣은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일일이 살펴볼 시간도 없을뿐더러 대체로 낡고 오래된 문들은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블랙캣은 다른 문을 찾고 있었다. 상당히 최근에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는, 그런 문.


중심부 쪽으로 올라오니 역시나 통로가 점점 더 밝아지기 시작했다. 통로를 흐릿하게 밝히고 있는 전등들을 보면서 블랙캣은 뒤집어쓰고 있는 천을 더욱 꼭 움켜쥐었다. 경사가 지고 있는 걸 봐서는 점점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불을 밝혀둔다는 건 자주 사용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파리 전역에 이런 지하통로들이 거미줄처럼 존재하다니. 제대로 된 길을 모르면 영영 갇힐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블랙캣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 누가 나타날지 모른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금살금 걷던 블랙캣의 바로 앞에 있던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가 나왔다.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다.


러스트였다.


새하얀 복장이라 그런지 흐릿한 불빛 속에서도 러스트는 유독 눈에 띄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창백한 얼굴과 무표정은 흡사 유령을 연상시켰다. 문을 닫은 러스트가 블랙캣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타박타박, 마치 풀밭 위를 밟는 것처럼 부드러운 발걸음 소리에 블랙캣의 얼굴은 긴장으로 바싹 조여들었다.


함부로 움직였다간 들킨다.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바짝 굳은 블랙캣의 바로 옆으로 러스트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거침없이 걸어서 가까이로 오는 러스트의 모습에 블랙캣의 손이 구명줄을 잡듯이 천을 꼭 쥐었다. 그는 그저 커져가는 심장소리가 부디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러스트가 블랙캣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블랙캣이 안심하려던 찰나, 동굴 안으로 갑자기 옅은 바람이 불어들었다. 러스트의 얼굴 쪽으로 불어온 바람 때문에 긴 금발이 살짝 흩날렸다.


문제는 블랙캣이 쓰고 있던 천까지도 바람에 쓸려 사락거리는 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곧바로 뒤를 돌아보는 러스트에 블랙캣은 다시금 긴장의 끈을 붙잡았다. 아까 바람 때문에 살짝 발이 드러났던가? 아니야, 못 봤을 거야. 못 봤어야 해. 여기서 싸울 수는 없었다. 이곳이 러스트에게 굉장히 유리한 지형이기도 했지만, 전투를 하기에는 지금 제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여차하면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들키면 절대 자신을 살려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물끄러미 블랙캣이 있는 곳을 뚫어져라 살펴보던 러스트는 별다른 문제를 찾지 못했는지 곧 다시 몸을 돌렸다. 타박타박 울리는 발소리가 저 멀리로 사라졌을 즈음에야 블랙캣은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여간 스파이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던 블랙캣은 러스트가 나왔던 문 앞으로 다가섰다.


이 안에서 나왔다는 건 여기서 뭔가 있었다는 뜻이겠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블랙캣이 살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절로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모습을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푸른빛의 눈동자는, 살짝 눈을 감더니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안으로 들어간 블랙캣의 앞에 놓인 것은 위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이었다. 어둑한 주홍빛으로 빛나는 통로의 계단을 한참을 올라갔다. 그러면서도 블랙캣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사람은 없었지만, 덩치 큰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수 있는 좁은 통로라 누가 위에서 내려온다면 바로 들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왜 아예 몸을 투명하게 해주는 기능은 없냐고 속으로 투덜거리던 블랙캣은 문득, 이 통로 자체가 그리 낡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일단 통로 자체가 상당히 깨끗했다. 특히 돌로 된 계단은 새로 지은 것만큼 반질반질했고 거의 때가 끼어있지도 않았다. 냄새도 살짝 새집에서 날 법한 느낌이고.


만든 지 얼마 안 됐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블랙캣의 앞에 문 하나가 나타났다. 나무문인데 생각보다 크기가 꽤 작았다. 제발 문이 열려있기를, 그리고 열 때 소리가 크지 않기를 바라며 블랙캣은 심호흡을 하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살짝 열고 그 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자 나무로 된 작은 공간이 있었고, 또 문이 있었다. 가운데에 세로로 그어진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혹시 무슨 소리가 날까, 한참을 집중하던 블랙캣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앞에 있는 문을 두 손으로 천천히 밀었다.


화악 쏟아지는 빛과 함께 멀쩡하게 생긴 사무실이 나타났다. 그제서야 블랙캣은 자신이 연 문이 이 사무실의 옷장 뒤로 연결되어 있는 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천을 집어넣고 다시 가방에서 깨끗한 비닐신발을 꺼낸 블랙캣이 그걸 신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처음에는 꽤나 넓은 사무실이라 생각하기만 하다가 블랙캣은 바로 옆에 보이는 넓은 창문 쪽으로 다가섰다. 밖으로 내다보이는 넓게 보이는 광장과 걸어다니는 많은 사람들을 발견하고 블랙캣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긴….’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그러면 여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리로 된 전시벽 안과 서랍들 위로 가지런히 세워진 트로피들과 그림들을 살펴보던 블랙캣은 곧 결론을 내렸다.


여기는 바로, 루브르 박물관의 관장이 머무는 관장실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중추라 불릴 수 있는 곳에 악당들이 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다니.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블랙캣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왜 러스트가 여기서 나왔을까?


관장도 저들과 한패라는 건가? 그러고 보면 그림 도난 사건때도 경찰에 비해 루브르의 대응이 상당히 소극적이긴 했었다. 어디까지나 경찰에 비해서라는 거지만.


그런데 왜 이런 통로를 만들었지? 잠깐만, 이번에 새로 만들어졌다면 전에는 없었다는 거잖아.


잠깐만, 관장이라고?


블랙캣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정보가 하나 있었다.


‘노아 바자르’


노아 바자르는 루브르 박물관의 전대 관장으로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의 노신사였다. 루브르에 몇 번 가봤는지라 블랙캣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온화한 성격이지만 예술에 있어서는 한 치의 타협도 없는 ‘루브르의 문지기’. 그를 부르는 별칭이었다. 노아에겐 돈과 명예보다 예술 그 자체가 특히 중요했다. 몇십 년간 루브르에서 일해 온 만큼 그는 파리의 그 누구보다도 이 박물관을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다. 아마 정전 사건 때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아직까지도 관장직에 남아 박물관을 관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렇게 박물관을 훼손하는 일에 절대 가담할 리가 없겠지.


관장이 정말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교체되었다는 소식은 블랙캣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요한 곳이니만큼 빨리 후임자를 세우는 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정전 사건은 이걸 위한 연막이었나.”



다른 피해자가 더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왜 루브르를 장악하기 위해 그런 번거로운 짓까지 한 건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쩔까, 생각한 순간 블랙캣이 귀를 쫑긋 세웠다.


발소리다.


후다닥 옷장 속으로 들어간 블랙캣은 최대한 소리없이 빠르게 옷장 문을 닫고 옷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왔던 나무로 된 문으로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문을 닫은 뒤, 블랙캣은 다시 가방에서 카멜레온 천을 꺼내 머리에 뒤집어쓰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방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지금 이 관장실의 주인인 맥스 베넌이었다. 여느 때와 같은 관장실의 모습에 별 신경쓰지 않고 관장실로 들어오던 맥스의 책상 위에 있던 전화가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기 위로 뜬 번호를 보자마자 맥스는 곧바로 자리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 정중히 대답했다.



“예, 제레미 님.”





순식간에 계단을 내려온 블랙캣은 제 앞에 있는 문을 노려보았다. 이걸 열면 다시 통로로 나가게 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다시금 문을 열고 통로 쪽을 휙휙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고 안심하고 밖으로 나오던 순간 바로 뒤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문을 닫자마자 저쪽에서 블랙캣이 있는 쪽으로 몇 사람이 걸어왔다.


검은색 제복을 차려입고 있는 남자 세 명이었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던 블랙캣은 남자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설치는 대충 마무리되고 있는 거 같지?”

“그래, 절반은 넘게 끝냈으니까 금방이야.”



놀란 가슴을 추스릴 새도 없이 블랙캣은 그들을 계속 따라가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방향을 계산했다. 여기가 루브르고 자신은 북쪽을 향해 걸어왔으니까, 아마 이 쪽은….



“보수를 많이 주는 건 좋은데 대체 우리가 왜 이걸 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윗분들 생각을 우리가 어찌 알겠어~”



투덜거리는 남자의 말에 다른 동료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 옆에 있던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아마 비밀리에 불려간 녀석들도 제법 된다던데.”

“우와, 진짜? 살아 돌아오긴 하겠지?”

“쉿, 목소리가 커.”

“근데 사실이잖아. 위에서 불러서 갔다는 사람치고 멀쩡하게 돌아온 놈이 몇이나 있었냐고~”

“…그런 문제는 아닐 거야. 상당히 우수한 녀석들을 골라갔다고 들었거든.”

“그런 말 들어도 별로 안 부럽다, 야. 난 오래 살고 싶거든.”



많이 알면 그만큼 빨리 죽잖아? 웃으며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블랙캣의 심장으로 날카롭게 날아와 꽂혔다. 그럼에도 담담한 자신에 블랙캣은 조금 놀랐다.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여기서 정말 뭐를 발견한다고 해도, 이걸 과연 레이디버그에게 말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자신과 똑같이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게?


블랙캣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모르는 것보다는 그래도 아는 게 낫다. 발을 빼기에 자신과 레이디버그는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렸으니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는 것. 오직 그 뿐이다.


흔들리지 말자.



“그나저나 빨리 가야겠다. 시간 거의 다 됐어.”

“뭐가. 이대로 가면 나름 제 시간에 도착하겠는데.”

“너의 대충이란 개념에 목숨을 팔고 싶진 않아. 난 그 남자가 무서워 죽겠다고.”

“아, 그 하얀 얼굴의 덩치 큰 남자? 무섭지.”

“아무 말도 없는 게 더 무서워. 하긴 그 새까만 옷을 입은 여자보다는 나은 거 같지만.”

“켁, 그 여자 성격 장난 아닌 거 같던데. 게다가 능력도 진짜 괴물같다고. 악당이면 악당답게 히어로들이나 상대하고 있지 왜 우리까지 그 밑에서 일해야 하는 거야?”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블랙캣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이 녀석들과 악당들은 한 패거리였던 건가.



“야, 진짜 뛰어야겠다. 나 먼저 간다!”

“앗, 치사하게! 같이 가~!”

“너네 조용히 좀 해! 누구한테 들키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조용히 소리지르며 달려가는 남자들을 더 이상 쫓아가지 않고 블랙캣은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저번에 만났던 마임을 사용하는 남자가 있다면 이런 천쪼가리 하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장 성가시고 골치 아픈 상대를 마주하느니 차라리 다른 단서를 찾는 게 나을 것이다.


문득 블랙캣은 여기가 어디쯤일지에 대해 생각했다. 루브르에서 서남쪽으로 한참 걸어왔으니까, 아마 이곳은 1구 아니면 7구쯤이겠지.


7구라.


자신이 사는 동네다. 더불어 다른 누군가가 같이 떠올랐다.


한참을 고민하던 블랙캣은 결국 결정을 내리고 계속해서 걷기 시작했다. 위험하기는 했지만 천을 벗고 가방 속에서 나침반을 꺼내들었다. 나침반을 보고 서남쪽으로 걷기 시작하는 블랙캣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분명 이쯤 어디일 텐데.


문득 블랙캣은 자신이 별로 지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플랙의 말대로 블랙캣의 몸은 상당히 편했다. 쉽게 지치지도 않고, 상처 때문에 아직도 등이 욱신거리기는 하지만 움직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이 상태로 있을 때는 특히나 치유력도 빨랐다.


하지만 이 힘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되었다. 블랙캣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익숙함은 더한 좌절을 부를 뿐이다.


머지않아 블랙캣은 곧 찾고 있던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커다란 돌로 막혀있는 입구는 딱 보기만 해도 수상쩍은 냄새가 났다. 커다랗고 두꺼운 돌문은 장정 여럿이서 덤벼야 겨우 조금 밀어낼 수 있을 만치 무거워 보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마 여기서 좌절하고 포기했겠지.


보통 사람이라면.


심호흡을 한 뒤에 블랙캣은 돌문을 꽉 잡았다. 별로 힘들이지 않았는데 돌문이 스윽 소리를 내며 옆으로 밀렸다. 딱 사람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틈을 낸 다음에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문을 닫았다. 낡은 돌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



블랙캣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역시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만큼 좁은 통로는 몇 세기는 거쳐온 것처럼 낡아 있었다. 계단의 돌들은 모양이 다 제각각 달랐고 천장과 계단의 가장자리에는 여기저기 이끼가 끼어 있었다. 불빛이 없어 사방이 매우 어두웠고 축축한 공기가 통로 전체를 둘러감고 있었다.


방금 전 지나왔던 루브르의 통로와는 다르게 일직선으로 높게 뻗어 있는 계단 위로 블랙캣은 발을 뻗었다. 어둠 속이라 그런 걸까, 위험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했다. 둘러쓴 천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하면서도 블랙캣은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갔다.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모르겠다. 바로 앞에 희미한 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한 블랙캣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출구인가?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블랙캣은 그게 출구가 아닌, 계단 옆에 있는 공간에서 새어나오는 빛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공간은 이상했다. 반딧불이도 불빛도 아무것도 없는데도 안개처럼 희끄무레한 푸른빛이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돌벽으로 감싸진 공간의 중앙에는 역시 돌로 된 둥근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작은 원형의 돌판이 하나 더 놓여 있었다. 가까이서 보기 위해 공간에 발을 딛었다.


화악- 불어오는 바람에 블랙캣은 본능적으로 오른팔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바람은 그만큼이나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바람이 잦아들자마자 블랙캣은 팔을 내리고 테이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둥근 테이블 위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정체불명들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외에 특징될 만한 점이라면 테이블에 나 있는 두 개의 홈이었는데, 테이블의 중앙에서 왼쪽으로 대각선 아래쪽에 육각형의 홈이 있었고 중앙에는 그보다는 두 배 정도 큰 직사각형의 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홈들의 가장자리를 정체 모를 글자들이 빼곡히 채웠다.


글자들을 살펴보던 블랙캣은 곧 이 글자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남겨두고 간 서적에 적힌 고대어들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지금 당장 읽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머릿속에 모양새를 기억한 다음 블랙캣은 미련없이 돌아섰다.


방에서 나와 다시금 위로 올라가던 블랙캣은 머지 않아 문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꽤나 평범하게 생긴 강철로 된 문이었다. 심호흡을 하고서 블랙캣은 다시금 카멜레온 천을 머리에 둘러썼다. 문의 손잡이를 잡고서 살짝 돌렸다. 끼익 소리가 날 때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상당히 세련되게 꾸며진 방이었지만 검푸른 보랏빛이 방 안을 가득 감싸고 있어서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지상인가, 지하인가. 문을 열기는 열었지만 쉽사리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블랙캣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던 중 블랙캣은 방 한 구석에 걸린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태피스트리 위로 거대한 나비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색깔은 어두워서 잘 알아볼 수 없었지만 모양은 선명했다. 그리고 그에 블랙캣은 말을 잃었다.



“이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저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어쩔까 망설이다가 블랙캣은 곧 결단을 내렸다. 천을 뒤집어쓴 채로 재빨리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 근처 구석에 있는 옷장 뒤로 몸을 숨겼다. 발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체스판 앞에 걸려 있던 베일이 점점 벗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블랙캣은 보고 말았다. 하얀 양복을 입은 제레미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그리고 정확히는 제레미의 옆에서 날고 있는 세 번째 요정을.


자그마한 보라색 요정의 얼굴이 묘하게 슬퍼 보인다고, 블랙캣은 그렇게 느꼈다.


거리가 상당히 멀었고 거의 소곤거리듯 말해서 대화를 전부 다 엿듣지는 못했지만, 요정은 제레미에게 반항하고 있는 것 같았고 제레미는 시종일관 냉랭했다. 숙부의 입모양을 읽어내던 블랙캣은 순간 섬뜩해졌다.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라고?’



베일이 벗겨지고, 체스판 건너편에 앉아 있던 교활한 얼굴을 한 백발의 신사가 펠릭스를 조롱하듯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요정은 금세 풀이 죽었는지 살짝 꼬리를 내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하는 두 사람을 보고, 블랙캣은 이제 되었다 생각하며 두 사람의 곁을 지나 제레미가 들어온 문 밖으로 나갔다. 블랙캣이 스쳐 지나갈 때 요정이 살짝 그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것 같았지만 지금의 블랙캣에게는 그걸 신경쓸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이 곳에 있고 싶지 않았으니까.


밖으로 나오자 으리으리한 유피테르 가의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나비 저택. 하얗게 빛나는 아름다운 저택을 뒤로 한 채 블랙캣은 빠르게 거리를 달려 제가 사는 저택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가 변신을 풀자마자 펠릭스는 침대 위로 쓰러졌다. 계속 긴장하고 있던 게 풀려서일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등의 상처가 터질세라 엎드려 누운 채로 펠릭스는 눈을 감았다. 플랙도 지쳤는지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런 플랙을 내려다보며 펠릭스는 몇 번 입을 벙긋거리다 말았다. 너무 많은 정보를 알아서인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알게 된 건 있었다.


숙부의 정체를. 그리고 자신이 마주하게 된 운명을.


펠릭스의 입가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어떡하면 좋지?”



나는.





- 2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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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리네입니다.

벌써 12화를 다 업로드했다니 감회가 새롭군요. 일단 12화에 대한 설명만 좀 적고 사담을 적을게요.


제가 온리전 전에도 말했었지만 봄과 여름 에피소드는 여러 가지 떡밥을 뿌리는 장이었습니다. 가을과 겨울에 그 떡밥들을 전부 수거하게 되죠. 굳이 수거하지 않아도 되는 떡밥은 맥거핀으로 남기거나 설정집에 적어 두었습니다. 재판 때는 설정집을 배부하지 않지만 후일담에 내용 좀 더 추가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근데 별 거 없어요(...)


동굴 떡밥을 5화 때부터 뿌렸습니다만 여기서 이렇게 수거하게 되네요. 파리 전역에 거미줄처럼 그려진 비밀 통로. 지반에서 한참 밑에 있는 장소라 파리가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게다가 파리는 도시계획상 고층 아파트가 정말 없는 동네라 지반에 별 압박이 가지도 않아요.


펠릭스는 정말로 똑똑한 아이입니다. 그건 아마 앞으로 차차 증명될거예요. 기획 단계에서 펠릭스와 마리네뜨의 비중과 활약을 고르게 잡기 위해 많이 노력했는데 잘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2권에서는 펠릭스가 좀 더 활약을 보여주겠지만 마리네뜨는 마리네뜨대로 중요한 축을 맡을 예정이랍니다.


아, 두 사람의 연애사는 어떻게 되냐고요? 하하 그건 스포니까 패스! 입이 근질거립니다만 뭐든 처음 볼 때의 즐거움은 소중한 법이니까요^ㅁ^ 재판은 1월쯤에 이루어질 예정이니 그 때 찾아와주세요~!


11화에 암시했던 비밀 방이나 12화의 떡밥들은 2권으로 넘어갑니다:) 저는 이 작품을 쓸 때 부제를 정하는 일이 가장 즐거웠는데 개인적으로 12화 부제 매우 좋아합니다. 세 번째 요정, 사실 12화의 내용은 이 마지막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죠. 마지막에 등장한 누루! 제레미! 그리고 호크모스의 정체를 확인하게 된 펠릭스! 펠릭스가 블랙캣이라는 걸 알고 멘붕에 빠진 마리네뜨!


과연 그들의 앞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참, 여름의 부제는 소용돌이치는 진실, 이었답니다. 이제 가을: 선택의 기로 로 이어집니다.



재판수량조사 링크는 이쪽>> http://naver.me/x24EEI80




여기서부터는 사담입니다. 굳이 안 읽으셔도 되어요 제 잡담이니까요(...)


개인적으로 12화는 정말 의외롭게도 여름 에피소드 중 가장 편하게 작업한 화이기도 합니다. 거의 블랙캣 원맨쇼에 가까운 내용이라 묘사가 많아서 힘들 줄 알았는데 너무 작업이 잘 되서 쓴 저도 놀랐답니다(...) 아무래도 저는 한명만 다루는 걸 제일 편하게 생각하나봐요!ㅋㅋㅋㅋㅋ


12화 작업 당시에 정말 즐겁게 작업했고, 1권은 여기서 끝납니다! 사실 온리전 당시 작업할 때 너무 힘들어서 겨울 에피 작업할 때 그냥 1권만 낼까 했지만, 1권만 냈다가는 이 결말 보고 지인들이 이렇게 끝내놓고 다음권을 안내다니 미쳤냐고 제 목을 조르실 것이 자명하여(...) 그냥 2권까지 작업 끝냈습니다.


여름 에피가 어떠셨을지 모르겠어요. 일단 봄보다는 무겁다고 느끼셨을 겁니다. 근데 사실 여름보다는 가을이, 가을보다는 겨울이 훨씬 분위기가 무겁습니다. 뭐 이 정도는 주의사항 보신 분들이라면 이미 각오하셨겠죠?^ㅁ^


봄의 결말이 호크모스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었다면, 여름의 결말은 펠릭스가 숙부가 호크모스라는 걸 확인하는 것입니다. 파트별로 정해놓은 주제와 결말이 있는데 이번 회지에서 구상대로 잘 흘러간 거 같아서 기쁩니다.


개인적으로 1권도 재밌었지만 2권이 정말 재밌었습니다. 그만큼 힘들기도 했지만요. 왜냐하면 읽으시는 분들도 힘드시겠지만 작업할 때 제 멘탈도 같이 깨져갔기 때문이죠. 바스스스... 심지어 저는 모든 서사와 내용과 결말까지 다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에요. 이입해야 하니까.. 음 스포는 아니지만 펠릭마리는 정말 정신력이 캐짱쎈 아이들입니다bb


트레일러에 기반해 가급적 안정된 서사와 완벽한 결말을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단 제 최대 목표는 주의사항에도 적어놓았지만 트레일러의 재현이었거든요. 제가 보고 싶었으니까요 투디..ㅠㅠㅠ 실제로 1권 내용만 보셔도 트레일러에 나온 몇몇 장면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나머지는 2권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오랜만의 장편이라 그런지, 에피소드 구상과 배치에만도 정말 많이 시간을 잡아먹었는데 다들 재미있다고 감상을 주셔서 기쁩니다ㅠㅠㅠ 오랜만에 장편 작업하니 생각보다 너무 기력빠져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으윽... 2차에서 장편은 이걸 마지막으로 하고 싶네요 너무 힘들어요(mm 이게 다 펠릭마리가 예쁜 탓이고 감독님이 본편을 주지 않으시는 탓입니다(떠넘김(감독님: 야


너무 사담이 길었네요ㅇ0ㅇ 원체 후기적는 걸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이해해 주시어요(mm 


1월에 뵙겠습니다>< 감상 늘 감사드립니다>ㅁ<)/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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