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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마리 2세물! 백님 연성 이후 이야기 상상이에요~!!

※ 허락받고 원본 올립니다. 블로그 내에서만 읽어주세요~!!












[아드마리] 뜻하지 않은 선물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빵집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주인은 깜짝 놀랐다. 어린 여자아이를 공주님처럼 조심히 안고 들어오던 잘생긴 소년은 금세 그를 알아보고,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부드러운 저음이 상쾌한 미풍처럼 가게 안을 스쳐 지나갔다. 그 와중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여자아이는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입을 꾹 다물고 아드리앙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낯을 가리는 모양이었다.


알았다는 듯이 상냥하게 웃던 아드리앙은 뭔가가 생각났는지 멈칫하다가, 한쪽 손으로 급하게 주머니를 뒤졌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에 소년의 얼굴에 고뇌가 드리웠다. 집을 다녀와야 하나. 몸을 돌려 가게 밖으로 나가려던 아드리앙의 어깨를 두툼한 손이 살짝 붙잡았다. 뒤돌아보니 방금 전까지 카운터에 있던 주인이 바로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여자아이가 눈여겨보던 사탕을 고사리같은 손에 들려주며, 놀라는 아드리앙의 시선을 마주하던 주인이 가만히 눈가를 찡긋거렸다. 소녀가 와아, 탄성을 내뱉으며 사탕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지금 돈이 없어서.”



나중에 꼭 드릴게요. 진지하게 말하는 아드리앙의 얼굴에 이 빵집의 주인, 톰 뒤팽은 사람 좋게 웃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건 됐네. 미래의 사위에게 이런 거 하나 못 해줄까.”

“사, 사위라니….”



언뜻 듣기에는 부정하는 말이었지만 순식간에 새빨개지는 아드리앙의 얼굴을 본 톰 씨는 저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었다. 아무리 봐도 참 잘난 녀석이란 말이야. 처음에 소개받았을 적에는 조금 놀랐지만, 싹싹하고 밝고 제 딸을 잘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사위로 맞아들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서로 죽고 못 사는 걸 보면.



“그런데 그 아이는 누구니? 친척?”

“아, 네. 뭐….”



저랑 마리네뜨의 미래의 딸이라고 하네요.


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는지라, 하하 웃으며 얼버무리려던 아드리앙의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한 마디가 있었다. 소녀가 웅얼웅얼 중얼거리며 해사하게 웃었다.



“할아버지 사탕 맛있어~!!”

“하, 할아버지?”

“아,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허둥지둥 가게 밖으로 나서는 아드리앙의 발걸음이 꽤나 급해보이는 탓에 톰 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근처에 있던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늙진 않았는데. 오늘따라 피곤해 보이나? 괜히 신경쓰이는 기분에 눈을 몇 번 깜빡거리던 톰 씨는 방금 전 스쳐간 여자아이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잊어버리고 톰 씨는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 다시 돈 계산을 시작했다.






한편, 헐레벌떡 밖으로 나온 아드리앙은 거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하긴 저기서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지 않은 게 어딘가. 그랬으면 지금 이렇게 나오지도 못했을 텐데.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던 아드리앙이 제 품의 안긴 소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마리네뜨의 아버지를 단번에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건 보면 관련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여야 받아들이지. 히어로로 오래 살아와서 별일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지만 쉽사리 믿기지가 않았다.


길거리 한가운데 서서 고민에 빠진 아드리앙의 모습을 지나가던 이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언뜻 보기에도 꽤 화사해 보이는 조합이었다. 귀여운 소녀와 잘생긴 소년. 아니, 청년이라고 해야 맞을까. 아드리앙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아이의 손에는 커다란 하트사탕이 하나 들려 있었다. 쪽쪽 사탕을 빨아먹는 여자아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꽃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루퉁하던 표정과는 정 딴판이네. 그 모습을 귀엽다 생각하며 싱긋 웃던 아드리앙이 손을 뻗어 소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이렇게 묻히고 먹으면 어떡해.”



자상하게 말하는 아드리앙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소녀가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마리네뜨와 겹쳐보이는 통에 아드리앙은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말 딸일까?


그러다가 아드리앙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손밖에 안 잡은 사이인데 대체 어떻게 딸이 생긴단 말인가. 하지만 착각한 거라고 하기엔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말하는 여자애의 태도가 너무 확고했다. 조금씩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아드리앙은 다시금 사탕을 물고 있는 소녀에게 물었다.



“어, 그러니까. 작은 레이디?”

“웅?”

“어쩌다가 여기로 오게 된 거야?”



네가 정말 내 딸이냐고 물어보기엔 괜히 아이가 신경쓸까봐 걱정되어 아드리앙은 가급적 말을 돌렸다. 만약 정말 자신과 마리네뜨의 딸이라면 절대 이 시간대에 존재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된 걸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리네뜨와 닮은 소녀의 얼굴을 보니 자꾸만 마음이 약해졌다. 미래의 우리 아이도 이 아이처럼 예쁘게 자란다면 좋을 텐데. 자기가 한 상상에 부끄러워진 그의 볼이 화악 붉어졌다. 먹고 싶은 걸 먹어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떤 구멍에 떨어져서, 여기로 왔어!”

“구멍…? 어디에 있는데?”

“몰라.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는데 계속 안 와서, 그래서 찾으려고 했는데….”



길을 잃었어.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에 아드리앙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를 달랬다.



“엄마도 작은 레이디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으윽….”

“자자, 울지 말고. 일단 우리, 엄마가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장소로 갈까? 어디였는지 기억해?”

“…공원.”



아드리앙의 머릿속이 바삐 굴러갔다. 처음 만났던 거리에선 꽤 가깝지만 여기서 가면 좀 거리가 있는 곳. 뭐, 어린아이가 그리 멀리 나올 수 있었을 리는 없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일단 거기에 가면 단서를 찾을 수 있겠지. 공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드리앙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우뚝 몸이 굳었다.



“아드리앙?”



마리네뜨의 목소리였다.


깜짝 놀라서 움직일 생각조차 못하는 아드리앙의 모습이 의아했는지, 마리네뜨가 얼굴에 물음표를 그리며 그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검푸른 머리카락을 양 옆으로 묶고, 반짝거리는 푸른 눈동자가 그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고 놀람을 표시했다.



“여기서 다 만나네! 어, 이 애는 누구야?”



귀엽다. 정말 순수하게 감탄하는 마리네뜨의 미소에 아드리앙은 순간 저도 모르게 외칠 뻔했다. 네가 더 귀여워. 겨우 입을 틀어막았지만. 역시 자신은 공처가가 될 운명이 분명하다고 속으로 한탄하면서 아드리앙은 둘러댈 말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어? 아니, 그게. 친….”

“엄마다! 안녕, 엄….”

“엄마?!”



아드리앙이 급하게 소녀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간 뒤였다.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마리네뜨에게 아드리앙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가면서 얘기하자.”




*



“얘가 우리 미래의 딸이라고?”



택시 뒷칸에 앉아, 제 품에 안긴 소녀의 등을 가만히 도닥거리며 마리네뜨가 조용히 소곤거렸다. 엄마를 만나서 긴장이 풀렸는지 어쨌는지 잠들어버린 소녀의 입술에서 숨소리가 새근새근 흘러나왔다.



“아마도.”

“…와, 신기하다.”



내가 아드리앙이랑 결혼이라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마리네뜨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깃들었다. 그런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아드리앙은 애꿎은 제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그러다가 삐죽 올라오는 심술에 장난스럽게 물어보았다.



“왜, 나랑 결혼하는 건 싫어?”

“아니!! 아니야!!”



말도 안 돼!! 마구 부정하며 고개를 돌린 마리네뜨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아드리앙의 모습에 속으로 헉 숨을 삼켰다. 즐거운 듯이 초승달처럼 접혀지는 녹빛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놀린 거구나. 빨갛게 달아오르는 뺨과 더불어 시선을 피하는 눈동자가 사랑스러워 그는 괜히 입 안이 말랐다. 아, 이거 안 되는데.


점점 더 놀리고 싶어지잖아.



“마리네뜨….”



커다란 손이 마리네뜨의 손가락을 살짝 붙잡았다. 움찔 떨리는 마리네뜨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그가 잔망스럽게 웃었다. 그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 택시가 갑자기 급정거를 밟았다. 마리네뜨는 재빨리 아이를 꽉 끌어안았고 아드리앙은 그런 그녀를 붙잡았다. 다행히 튕겨나가진 않았지만, 아이가 다칠 뻔했지 않냐고 항의하려던 두 사람은 바로 앞에 보이는 어마무시한 교통체증에 깜짝 놀랐다. 느껴지는 불길함에 시선을 교환하던 두 사람은 재빨리 돈을 내고 택시에서 내렸다. 마리네뜨에게서 아이를 받아든 아드리앙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뭔가 있는 모양이네.”

“악당인가?”

“근데 뭔가…, 이질적인 느낌인데. 이제껏 상대했던 녀석들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아드리앙을 보던 마리네뜨가 싱긋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상대하고 있을게. 다녀와.”

“괜찮겠어? 내가 가도….”

“아니야. 그 아이나 잘 데려다주고 와.”



우리 미래의 딸이잖아.


눈가를 찡긋하며 웃어주는 그녀의 모습에도 괜한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혼자 보낸다니.



“하지만, 공원에 가더라도 이 아이를 돌려보낼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지 않아?”



혼자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아드리앙을 가만히 쳐다보던 마리네뜨가 설핏 웃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는 미소를 보니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레이디버그.


최근 그녀는 가끔 변신하지 않아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당당하고 차분하고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이 넘치는, 제가 동경했던 바로 그 모습을. 뭐,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좋아서 죽을 지경이다. 덕분에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라는 것만 빼면 말이지.



“그래도, 도둑고양이 씨보단 내가 더 나을 거 같은데요~?”



손가락을 흔들며 밝게 웃어보이는 마리네뜨의 얼굴 위로 떠오르는 붉은 잔상에, 아드리앙은 말없이 그런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째 이어지는 침묵에 뻘쭘해진 마리네뜨가, ‘난 이제 변신하러 갈게!’ 라고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아드리앙이 손을 뻗어 마리네뜨의 손을 붙잡았다. 깜짝 놀라는 그녀의 손등에 가만히 입을 맞추던 그가, 혀로 손등을 살짝 쓸었다. 고개를 숙이고 손등을 할짝거리던 아드리앙이 시선을 올려 마리네뜨를 쳐다보았다. 싱긋, 마치 고양이처럼 웃는 그의 눈짓에 마리네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우, 우, 우리…!!”

“잘 하고 와. 마이 레이디.”

“아, 아, 하하. 으, 응! 그럼, 그럼. 잘 다녀올게.”



불타는 얼굴을 차마 감당하지 못하고 뻣뻣한 몸을 애써 움직여가며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서려던 마리네뜨에게 아드리앙이 아, 소리와 함께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맞다.”

“어, 응?!”

“다음엔 입술이 좋으려나.”



짓궂게 말하는 아드리앙의 목소리에 더욱 당황해선, 입만 벙긋거리며 꼼짝도 못하는 마리네뜨를 보다 못한 티키가 가방 안에서 튀어나와 그녀를 잡아끌었다. 겨우겨우 변신을 하고 문제의 근원지로 날아가는 레이디버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드리앙도 플랙의 도움을 받아 변신했다. 소녀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안아들고, 그는 빠르게 달려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안은 이상할 정도로 적막했다. 이 시간이 이렇게 사람이 없을 리가 없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구멍을 찾는 블랙캣의 품에서 바르작거리던 여자아이가 조용히 눈을 떴다. 이런, 변신을 안 풀었는데. 난감하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입매를 어색하게 올리는 블랙캣을 향해 소녀는 중얼거렸다.



“아빠? 아빠야?”

“어, 음. 엄밀히 말하면?”



하하 웃으며 뺨을 긁적거리는 블랙캣을 보며 소녀는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배시시 웃었다.



“아빠, 그 옷 정말 이상하다. TV에 나오는 사람 같아!”

“응? 본 적 없어?”

“웅?”



뭐가? 그렇게 되묻는 아이의 눈동자를 보는 블랙캣의 마음은 절로 착잡해졌다. 아이한테도 정체를 알리지 않은 건가? 아니면 아예 히어로를 그만둔 거? 어느 쪽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솔직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정말 이 아이가 온 곳이 미래라면, 미래의 일을 미리 알아봤자 그다지 좋을 건 못 될 테니까.


아이를 안고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던 블랙캣에게 아이가 손가락을 내어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응? 저쪽?”



끄덕끄덕.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그의 품에 얼굴을 묻는 소녀를 보며, 블랙캣은 괜히 착잡해졌다. 성격상 아무래도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것 같은데 의사표현이 너무 없어서 묘하게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나 마리네뜨나 그리 조용한 성격은 아닌데 대체 어느 쪽을 닮은 걸까. 너무 조용하면 누가 막 괴롭힌다고 하던데 별 문제는 없겠지? 그럴 리 없겠지만.


어느 샌가 아빠의 마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블랙캣의 얼굴에 아이의 손이 닿았다. 그 말랑한 감촉에 퍼뜩 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본 블랙캣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이야….”



거대한 구멍이 그들의 앞에서 낼름 혀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게 맞냐고 물으니 소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딱 보기에도 꽤 위험해 보이는데, 여기 들여보내도 정말 괜찮은 걸까. 조심조심 안고 있던 아이를 땅에 내려주자 아이는 구멍을 빤히 쳐다보더니 툭 말을 던졌다.



“있지, 아빠.”

“왜?”

“아빠 싫어하지 않아….”



그 말을 남기며 홱 고개를 돌리는 아이의 모습에 잠깐 아드리앙은 이게 무슨 말인가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 아이가 했던 투정을 떠올리고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한 것 같은데, 말끝이 살짝 우물쭈물하는 걸 보니 신경쓰고 있었나 보다.


씨익 웃던 블랙캣이 장난스레 말했다.



“뭐, 괜찮아요. 작은 레이디.”

“아냐. 엄마가, 잘못하면 금방 사과하는 게 좋댔어!”

“마리네뜨다운 대답이네.”



그런 점은 여전하구나. 역시 내가 반한 여자라고 생각하며 웃고 있는 블랙캣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소녀가, 무언가 결심했는지 블랙캣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빠가 나한테 괜찮다고 해줬으니까, 나도 아빠한테 비밀 하나 알려줄게!”

“에? 무슨 비밀?”

“이거 진짜진짜 비밀이야. 엄마가 절대 말하지 말랬거든.”



알았지? 약속이라고 말하면서 소녀는 대뜸 주먹을 쥐고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블랙캣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리자, 두 손으로 입가를 깔대처럼 감싼 뒤 소녀는 까치발을 들었다. 의아한 얼굴로도 무릎을 굽혀주는 블랙캣의 귓가에 소녀가 몇 마디를 속닥거렸다. 놀랐는지 초록빛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가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소녀는 싱긋 웃더니 새침하게 뒤돌아섰다.



“그럼, 아빠.”



잘 있어. 말릴 새도 없이 소녀는 훌쩍, 그 시커먼 구멍 안으로 발을 디뎠다. 까만 어둠이 소녀의 몸을 집어삼키며 점점 줄어들더니 어느샌가 구멍은 그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숲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남아 구멍이 사라진 자리만을 멍하니 쳐다보던 블랙캣은 가만히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런, 너무 끈질기게 달라붙는 남자는 매력이 없는데 말이지.”

“블랙캣! 잘 다녀왔어?!”



혀를 쯧쯧 차면서 악당을 내려다보는 블랙캣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요요를 던져 악당의 발을 묶고 있던 레이디버그가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기다리긴 했던 모양이네. 블랙캣이 능청스레 그녀의 말을 받았다.



“물론이죠, 마이 레이디?”



언제나처럼 싱긋 웃으며, 봉을 잡고 곧장 위에서 악당에게로 뛰어내리는 블랙캣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가득 피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무사히 악당을 퇴치하고 가볍게 주먹을 맞대던 중, 여전히 싱글싱글 웃고 있는 블랙캣의 모습이 영 이상했는지 레이디버그의 눈동자가 그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평소에도 이 모습일 때는 과하게 즐거워 보였지만 오늘은 더 하네. 그녀가 입을 열어 물었다.



“너 무슨 좋은 일 있어? 얼굴에 꽃이 폈네.”

“아, 예상 외의 고백을 들어서 말이지.”

“고, 고, 고백?!”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곧장 심각해지는 레이디버그의 얼굴을 보던 블랙캣의 입매가 잘게 일그러지더니,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해하는 레이디버그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긴 블랙캣이 그녀를 꽈악 끌어안았다. 레이디버그의 모습으로도 조금쯤은 당황했는지, 뭐냐고 물으려고 했던 그녀는 그가 속닥거리는 한 마디에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고마워.’



늘, 언제나.


그 말과 함께 더욱 자신을 꼭 끌어안는 블랙캣의 모습에 그녀는 어쩔 줄 모르고 갈등하다, 결국 한숨을 쉬면서도 허공을 배회하던 손가락들을 가만히 그의 등에 내려놓았다. 자신을 마주 끌어안아 주는 손길에 블랙캣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이미 가버린 아이가 남겨둔 그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엄마는 아빠를 너무너무 좋아한댔어. 아빠랑 같이 있어서 행복하대.’



미래에서도 너는 그렇게 말해주는 걸까. 새삼 몰려오는 행복감에 가슴이 자꾸 벅찼다. 진정되지 않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싫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고백을 들은 기분에, 자꾸만 들뜨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리네뜨. 나도.



‘너와 같이 있어서 행복해.’



정말로.






렐님이 써주신 후속편: http://blog.naver.com/dmsthf21c/220535341407




밑은 제가 생각한 결말 추가분이에요!




어둠은 잠깐이었다.


소녀의 발이 검푸르게 물든 잔디밭 위로 살짝 내려앉았다. 이미 어둑해진 밤하늘 위에는 둥그런 달을 중심으로 하얀 별들이 가득 뿌려져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소녀는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 천천히 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으니 나무들 사이로 넓은 공원의 부지가 드러났다. 원형의 광장을 감싸듯이 설치된 노란 가로등들이 광장을 가득 비추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밤이라 그런지 쌀쌀한 날씨에 소녀의 입술이 살짝 새파래졌다. 추운지 몸을 바르르 떠는 소녀의 고개가 어느 한 쪽으로 휙 돌아갔다. 아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엄마!”

“어디 갔었니?!”



얼마나 걱정했는데.


혼비백산한 얼굴을 하고서, 여인은 재빨리 달려와서는 제 딸을 꼬옥 껴안았다. 엄마의 품에 안기자 아이는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지, 말간 눈망울을 몇 번 깜빡이다가 눈물방울을 쏟아냈다. 막 울음을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울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지 엄마의 옷자락을 두 손으로 붙잡고 옷을 적시는 아이의 등을 고운 손이 상냥하게 토닥거렸다.



“그래, 그래. 너무 늦어서 미안해.”



기다리라고 해놓고 예정보다 늦게 온 내 잘못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푸른 머리칼의 여인은 제 딸을 안아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빨리 찾았다고 연락해야지, 안 그랬다간 진짜 일을 팽개치고 오늘 밤 안에 비행기를 타려고 할지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딸에게는 껌뻑 죽는 이이니 하려고만 든다면 그러고도 남는다. 안절부절 못하며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을 제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는 조금 웃었다. 조금 눈물을 쏟고 나니 잠이 오는지 아이의 몸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새근새근 숨소리를 뱉으며 잠든 딸아이의 등을 토닥거리던 마리네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 때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역시 조금 걱정했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잘 다녀왔구나.”



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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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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