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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도 없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살짝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자, 어느 샌가 다가온 백발의 남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는 이게 무슨 무례냐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울고 있는 제 얼굴을 들키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남자는 떠나지 않았다. 조용히 내려다보는 시선을 감당하기가 버거워, 그녀는 띄엄띄엄 입을 열었다.



"…어떻게 여기에."

"가는 곳이야 뻔하지."



아니, 그러니까 그쪽이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차마 더 말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묻는 그녀에게 그는 쯧쯧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둔탱이가 그렇게 좋나? 이렇게 숨어서 울고 있을 만큼."

"…상관 마요."



제가 누굴 좋아하든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가뜩이나 방금 전 일 때문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데, 왜 자꾸 제 앞에서 얼쩡거리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헛웃음이 터졌다. 하긴 그 일도 이렇게 울고 있을 만큼 대단한 건 아니지. 정말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저 편전 안에서 그가 다른 여자들에게 웃어주는 모습을 봤을 뿐이었다. 짓궂은 농이라도 당했는지, 당황하면서 쩔쩔매는 그의 얼굴이 꽤나 즐거운 듯이 웃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동작을 멈췄다. 자신을 발견했는지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이 더 보기 싫어서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다른 사람 앞에서 보여주던 미소를 내게도 지어준다는 건 참으로 씁쓸하다. 나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어째서 이렇게, 구석에 몰래 숨어 울고 있는 걸까.



"대체 여긴…. 어떻게 찾아왔어요."



지금 이 곳은 세성 편전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있는 잔잔한 호숫가였다. 편전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자신만의 장소. 가끔 제 위치가 버거울 때마다, 여러 가지 고민들로 힘들 때마다 언제나 여기로 쉬러 오고는 했다. 언제나 거의 몰래 빠져나왔기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제 피난처. 그런 곳을 어떻게 이 자가 아는 거지. 아니, 그 전에 어떻게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았을까?


가달라고 온 몸에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데, 전혀 그럴 생각은 없는지 남자가 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졌다. 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낸 건 바리였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그쪽이 일어날 때까지?"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요?"

"이쪽도 농담하는 거 아닌데."



말이 안 통한다. 설득을 포기하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묻었다.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난 후, 이번에는 사라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렇게 서럽나?"

"에…?"

"자기가 좋아하는 녀석이, 자신만을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건."



갑자기 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바리는 그의 말에 대꾸해주고 있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문질러 닦으면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



"뭐, 그렇죠."

"그러면 그런 상대를 찾으면 되잖아?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나요."

"고백도 하지 못할 거면서 이렇게 질질 짜는 것보다는, 차라리 포기하는 게 더 편할 텐데."



아픈 곳을 찔러댄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끔은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에, 속에 담아두었던 이 감정들을 오롯이 토해내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지금의 이 관계도 끝날지 모르니까. 말하지 못하는 연심에 혼자 울면서 괴로워하는 것도 힘들지만, 영영 그의 곁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게 더 무서운걸.


사라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악스럽게 그녀의 턱을 붙잡고 얼굴을 들어올렸다. 장난 아닌 악력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아얏, 아파요!"

"몰골이 참 끔찍하군. 아름답지 않아."



못볼 걸 봤다는 것처럼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그가 너무 얄미웠다. 아니 울면 당연히 화장도 지워지고 눈도 퉁퉁 붓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막말로 그가 울어도 자신이랑 같은 꼴이 될 터였다. 특히 눈 주위에 발라진 저 보랏빛 눈화장은 번지면 꽤나 처치곤란할 것 같았다.



"내가 알아서 하거든요? 그러니까 저리 가…."



말을 멈춘 건 결단코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제 입에 살짝 붙었다 떨어진 입술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해주듯, 닿기만 하고 떨어지는 부드러운 베이비 키스였다. 순간 무슨 일인지 몰라 어벙벙하다,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깨닫자마자 그녀의 얼굴이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지금, 지금, 그러니까…!!



"표정 참 다양하게도 변하는군."

"다, 당신, 지금, 이게, 무…!!"

"왜 그리 놀라? 키스 처음 해보나?"



대답 대신 그녀는 귓볼까지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움츠려야만 했다. 사라도 눈치껏 깨달았는지 낭패라는 얼굴이었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걱서걱 밟히는 풀잎 소리를 배경 삼아 그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지금은 보기 좀 그렇지만 말이야."

"…."

"그쪽, 평소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

"자신감을 가지는 게 어때. 그리고 가끔은 주위도 좀 둘러보고."



의미심장한 마지막 대사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게 무슨 소리지? 고개를 들고 살며시 뒤를 돌아보자 사라는 이미 한참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제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안 걸까, 귀신같이 뒤를 돌아본 사라가 손을 흔들었다. 내던지듯 툭 뱉은 마지막 대사에 바리의 얼굴이 다시 빨개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반은 창피하고, 반은 열받아서.



"잘 먹었습니다."





===



난 이렇게 풋풋하고 아련한 사라바리를 쓰려고 한 게 아닌데...


퇴폐적으로 쓰려다가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닫고 걍 편하게 썼습니다 ㅋㅋㅋㅋ 능력이 부족하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요'A'


짧은 조각글만을 연성하게 되는 건 생각보다 그리 유쾌하지 않군요 제길 ㅋㅋㅋㅋㅋㅋㅋ



간단히 설정 풀자면,


바리는 여전히 강림바라기고 사라가 그런 바리를 지켜보다가 관심이 좀 생겼다는 컨셉입니다. 아직 사라는 그녀에 대한 호감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구요. 즉, 저 키스는 무의식. 아이구 불쌍한 우리 바리언니...ㄷㄷㄷ 고생 좀 할 팔자입니다.


원래는 좀 더 말싸움하다가 욱한 사라가 찐한 딮키스를 한다는 설정으로 가려고 했으나(그게 더 성격상 맞구요) 한시간밖에 여유가 없었던지라 이것만 썼습니다. 헤헤헤헤...>_<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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