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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강이가 대학교 3학년, 강림이가 1학년. 선후배 사이.



[투림] 캠퍼스 로맨스

- 축제




“후우-.”


짙게 내쉬는 한숨이 빈 강의실 사이로 퍼져나갔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창밖을 내다보는 남자가 따분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와 사방에 켜져 있는 온갖 라이트들, 오랜만에 찾아온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공부하기 바쁘고 과제에 쫓기는 나날을 보내는 대학생들이 1년에 한 번, 걱정 없이 마음껏 즐기는 날. 먹고 죽자며 떠드는 사람들의 주변에 술병들이 한 가득 놓여 있었다. 공연하는 밴드의 음악소리가 신나게 주위를 들썩였다.


밖의 분위기는 고조되어 가는데, 강의실에서 밖을 쳐다보는 남자의 마음은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면서도 남자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간다. 꼭,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을 들어 창가를 톡톡 두들겼다. 남자의 입가에서 씁쓰레한 미소가 흩어져가고 있었다.


“언제 오는거냐.”


기다리는 이가 오지 않는다. 여기서 기다리면 금방 오겠다고 말해놓고서, 정작 두 시간이 지나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바빠서 그러리라 생각하면서도,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하다. 제 목에 둘러진 헤드셋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 니들 사귀냐?


그렇게 물으며 깔깔대던 동기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했다.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최근 붙어다니는 빈도수가 늘었고 많이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가벼운 분위기지만,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진담인지 모르겠다.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굴리던 중, 녀석이 한 손으로 제 어깨를 껴안았다. 놀라서 바짝 얼어버린 자신과 달리, 이 간큰 후배놈은 시종일관 태연했다.


“에이, 사귀다니요. 저랑 형은 그 이상으로 아주아주 돈독한 관계라구요?”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능청스레 대꾸하며 웃는 녀석의 모습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크게 웃어대며 등을 팍팍 쳐대는 동기들의 표정을 보니, 역시나 장난이었나 보다.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긴, 누가 저렇게 대놓고 서로 사귀냐고 물어보겠는가. 이성 간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둘 다 남자인데.


상상도 못 하겠지. 옆에서 웃고 있는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선배들의 장단을 맞춰주면서 즐겁게 웃는 얼굴이 참으로 얄미웠다. 녀석의 발을 지그시 밟아주었다. 악! 소리를 지르며 매정하다 제게 눈을 흘기는 모양새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당장 손 치워.


제 어깨를 감싸던 손이 어느 샌가 제 허리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고 책상이 있어 망정이지, 자칫 잘못하면 누군가 볼 수도 있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부드럽게 꾹꾹 누르는 손가락들에 의도가 뻔히 보였다. 새빨개진 얼굴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를 썼다. 이상한 소리를 낼까 입을 꾸욱 다물었다.


- 그나저나 강림. 아니아니 작은 강림이 말고. 그래, 너 후배. 축제 준비는 착착 돼가고 있냐?

- 당연히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죠.

- 역시 과대. 믿음직스러워? 이번에 우리 과에 인물들이 참 많단 말이야.


흐뭇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는 제 동기의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 망할 축제 준비 때문에 요새 얼굴도 자주 보지 못한다고.


솔직히 축제에는 별로 신경쓴 적이 없었다. 그런 거야 늘 하던 연례행사일 뿐이고, 대학의 축제는 겉을 아무리 치장해도 결국엔 술판일 뿐. 친목을 도모한다는 헛소리로 치장한 놀자판일 뿐이다. 그래서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었다. 본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다, 그런 자리에서는 꼭 정신줄 놓고 떠드는 녀석들의 뒤처리를 해야 한단 말이다.


그래도 조금, 아주 조금은 기대했던 건,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니까. 같이 축제를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 녀석은.


“왜 하필 과대같은 걸 맡아가지곤.”


가뜩이나 이공계 쪽은 사람이 적어서 일손이 많이 필요한데. 물론 피하자면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제 애인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해 모든 직책 중에서도 가장 귀찮다는 과대를 떡하니 맡아버린 것이다. 제 학년 과대는 바리 누나. 그 누나도 엄청 바쁘게 산다. 언젠가 그녀의 스케줄표를 보고 혀를 내둘렀었던 적이 있다. 하물며 가장 부려먹히는 1학년 애들은 오죽하겠는가.


덕분에 축제가 다가오는 기분을 만끽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녀석은 전보다도 더 바빠졌고, 학년이 다르기에 전공도 달라서 얼굴 잠깐 보는 것조차도 어려워졌다. 축제 당일인 오늘도 그랬다. 카톡으로 온 문자 메시지는 [402호 강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라는 그 딱 한 통 뿐이었다. 그 말만 믿고 계속 기다렸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분명 4시부터 기다렸건만 지금 바깥은 해가 지기 직전이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창문을 세게 닫고, 커튼을 쳤다.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어스름히 묻혀간다.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마음 한 구석으로 서운함이 밀려들어온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축제 따위.


[이제 곧 노상주점이 열릴 시간입니다. 각 과별로 준비해주세요.]


스피커를 통해 옅게나마 들려오는 바깥의 상황에,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리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쯤 되면 슬슬 화보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저만 이리 들뜬 건 아니었을까 싶어 내심 불안해서, 초조하게 손을 쥐락펴락했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제 자신도 놀라웠다. 이런 걸 신경쓰게 될 줄이야. 축제같은 거 매년 귀찮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왜 이제 와?”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는 팔에, 절로 목소리가 퉁명스러워졌다.


“늦어서 죄송해요. 형.”


답지 않게 존댓말을 쓰는 부드러운 목소리는, 역시 제 예상대로 그가 맞았다.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녀석이 웃으면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좀 얄밉기도 했지만, 땀범벅인 얼굴과 거칠어진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짜증을 부리기도 멋쩍어졌다. 정말 소중한 것을 만지듯이 저를 꼭 껴안는 온기가 싫지 않았다.


“가급적 빨리 오려고 했는데, 망할 선배들이 절 놔주질 않아서요.”


망할 선배들, 에서 힘을 주는 걸 보아하니 정말 질리게 부려먹혔나 보군. 큭큭 웃는 선배의 모습이 불만이었는지, 뒤에 서 있던 강림이 그를 더 세게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빨리 형을 만나고 싶어서 뛰어온 애인한테 이러기예요?”

“그렇게 따지면 몇 시간을 기다린 나도 할 말이 많아지는데.”


애인이라는 말이 좋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그러니까 자꾸만 더 의식하게 된다. 심장이 쿵쿵 뛰어대고, 목덜미에 닿는 숨결이 너무 간지러웠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좀 떨어지라고 밀치려는 찰나, 할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윽-!”

혀를 내어 제 목덜미를 사탕마냥 핥다가, 이를 내어 살짝 깨문다. 그만두라 하려고 했지만 소리를 참는 것이 고작이라, 벗어나기 위해 꼼지락거렸다. 그러나 꼼짝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한 손이 살며시 내려와 허리를 끌어안는다. 숨소리가 가빠지는 게 느껴진다. 몸이 달아오른다. 저를 만지는 손가락도, 제 자신도.


“그만, 좀…. 해.”


제 손 안에서 어린 양마냥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 남자를 바라보는 새까만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그 눈동자의 주인은 살짝 거만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평소의 웃음보다 더 남자답고 부드럽지만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그런. 그는 즐거워 보였다. 입을 꾹 다물고, 어떻게든 태연해 보이려 애쓰는 제 애인이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는 듯이 웃고 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짓궂은 마음이 그의 가슴 한 구석에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 목에서 입을 떼고, 그를 놓아주었다. 힘이 풀렸는지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 저를 바라본다. 살짝 눈물이 맺힌 눈동자와 빨갛게 달아오른 뺨이라던가, 색색 숨을 뱉어내는 입술을 보니 자꾸만 드는 충동에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저의 선배이자 연인은, 정말이지 이래서 골치 아프다. 상냥하게 대해주고 싶은데, 보고 있으면 자꾸 울리고 괴롭히고 싶어지니까.

한 걸음 내딛자, 그는 몸을 또 움찔거린다. 하지만, 날개 부러진 아기새마냥 몸을 떨면서도 눈을 피하지 않는다. 적갈색 눈동자에 비치는 저의 모습이 꽤 맘에 든다.


“전요, 형의 눈이 참 좋아요.”


이 눈동자에 담기는 건 언제나, 저 하나뿐이었으면 좋겠다.


“사실 형이라면 뭐든 다 좋지만.”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멈칫했지만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 안아오는 체온이 무척 따뜻했다. 작은 체구는 아니지만 저보다 가는 팔다리를 볼 때마다 이 형은 뭐 먹고 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조금 살이 붙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체력도 붙을 텐데 말이지. 조금 더 괴롭힐까 고민하다가, 더욱 세게 저를 껴안는 행동에 생각이 멎었다.


“그래도 잘 왔어.”

“…형은 진짜.”


안심한 듯한 그 목소리에 강림은 속으로 몰래 탄식을 내뱉었다. 아무리 제가 나쁜 놈이라지만, 저렇게 나오면 진짜 손을 댈 수가 없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가 실망하는 건 원치 않았다. 치솟는 감정을 내리누른 채 그를 끌어안고 창밖을 바라보던 중, 강림의 눈앞이 번쩍했다. 펑펑 터지는 폭죽 소리들과 함께 날아오르는 불꽃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는 모습이, 새까만 동공 사이로 가득 찍혔다. 근처에서 불꽃놀이라도 열리는 모양이다. 장학금도 더럽게 짠 학교가 거금 들여서 불꽃놀이를 해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냥 그렇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인 강림과는 달리, 소리를 듣자마자 깜짝 놀라며 창밖을 바라보는 앳된 얼굴에 어렴풋한 미소가 감돌았다.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과는 사뭇 달라서, 그렇게 좋은가 싶어 강림은 즐거이 웃었다.


“불꽃놀이네.”

“그러게, 형.”

“또 반말이냐. …늦게까지 기다린 보람은 있었네. 저런 거도 다 보고.”

“학교에서 해줬을 리는 없지만. 학장님은 짠돌이 구두쇠니까.”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정겹게 귓가를 맴돈다. 그걸 듣고 피식 웃으며 제 애인을 내려다보는 적갈색의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빛났다. 그래 맞아. 늦게까지 기다린 보람은 있었다. 물론 제가 말한 그 보람의 의미를, 옆에 서 있는 이 둔한 녀석이 알아챌 리가 없었지만. 입가에 맴도는 말들을 가만히 눌러삼킨 채, 그는 그저 웃었다.


‘그래도 더 좋은 건, 너랑 함께 있다는 거지만.’


절대로 말해주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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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 memoria

- 기억을 위하여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던가.


[난 나쁜 영혼들을 잡아들이는 착한 사람…, 아니 영혼이란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어쩌다 핸드폰에 갇히셨나요?]


제게 의뢰된 수상한 핸드폰, 그리고 만나게 된 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아니, 영혼.


“그럼 아저씨는요?”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나야 하는 존재 정도로만 생각해라.”


당신은 저승사자고 나는 인간. 일생에 단 한 번, 죽음을 맞이할 때에나 만나게 되는 존재. 그래야만 했는데.


“넌 지금,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거야.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여기서 피해!”


제게 소중했던 모든 것이 너무나 허망하게 바스라졌다. 죽음이라.


“저 안에 들어가면….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손을 뻗었다. 죽음은 제게는 그리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더 이상은 외롭고 싶지 않았다. 결계 너머로 발을 내딛자, 저는 금방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자 제 눈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아름답고 기괴했다.

붉은 노을빛이 하늘을 수놓는 세계. 연한 분홍빛으로 물든 강 위로 세워진, 와인잔을 닮은 기형적인 조형물들이 가득한 이질적인 장소. 제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이곳의 모습에 어린 저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었다.


“여긴, 어디지?”


어딘지 모르게 아련하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이 곳은, 생명이 태어나고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그리운 고향. 명계였더라.


사실, 생각해보면 그 때가 진정한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신과 나의 인연은.





- To be Continued



===

1, 2부로 나뉘어질 예정. 1부는 커플링 없습니다^^

2부가 아마 투림이 될 거 같아요. 1부는 2부 작업 시작할 즈음에나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건 간단히 프롤 정도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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