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c="https://code.jquery.com/jquery-1.12.4.min.js" integrity="sha256-ZosEbRLbNQzLpnKIkEdrPv7lOy9C27hHQ+Xp8a4MxAQ=" crossorigin="anonymous">





"자존심도 없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살짝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자, 어느 샌가 다가온 백발의 남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는 이게 무슨 무례냐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울고 있는 제 얼굴을 들키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남자는 떠나지 않았다. 조용히 내려다보는 시선을 감당하기가 버거워, 그녀는 띄엄띄엄 입을 열었다.



"…어떻게 여기에."

"가는 곳이야 뻔하지."



아니, 그러니까 그쪽이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차마 더 말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묻는 그녀에게 그는 쯧쯧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둔탱이가 그렇게 좋나? 이렇게 숨어서 울고 있을 만큼."

"…상관 마요."



제가 누굴 좋아하든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가뜩이나 방금 전 일 때문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데, 왜 자꾸 제 앞에서 얼쩡거리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헛웃음이 터졌다. 하긴 그 일도 이렇게 울고 있을 만큼 대단한 건 아니지. 정말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저 편전 안에서 그가 다른 여자들에게 웃어주는 모습을 봤을 뿐이었다. 짓궂은 농이라도 당했는지, 당황하면서 쩔쩔매는 그의 얼굴이 꽤나 즐거운 듯이 웃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동작을 멈췄다. 자신을 발견했는지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이 더 보기 싫어서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다른 사람 앞에서 보여주던 미소를 내게도 지어준다는 건 참으로 씁쓸하다. 나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어째서 이렇게, 구석에 몰래 숨어 울고 있는 걸까.



"대체 여긴…. 어떻게 찾아왔어요."



지금 이 곳은 세성 편전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있는 잔잔한 호숫가였다. 편전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자신만의 장소. 가끔 제 위치가 버거울 때마다, 여러 가지 고민들로 힘들 때마다 언제나 여기로 쉬러 오고는 했다. 언제나 거의 몰래 빠져나왔기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제 피난처. 그런 곳을 어떻게 이 자가 아는 거지. 아니, 그 전에 어떻게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았을까?


가달라고 온 몸에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데, 전혀 그럴 생각은 없는지 남자가 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졌다. 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낸 건 바리였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그쪽이 일어날 때까지?"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요?"

"이쪽도 농담하는 거 아닌데."



말이 안 통한다. 설득을 포기하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묻었다.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난 후, 이번에는 사라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렇게 서럽나?"

"에…?"

"자기가 좋아하는 녀석이, 자신만을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건."



갑자기 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바리는 그의 말에 대꾸해주고 있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문질러 닦으면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



"뭐, 그렇죠."

"그러면 그런 상대를 찾으면 되잖아?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나요."

"고백도 하지 못할 거면서 이렇게 질질 짜는 것보다는, 차라리 포기하는 게 더 편할 텐데."



아픈 곳을 찔러댄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끔은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에, 속에 담아두었던 이 감정들을 오롯이 토해내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지금의 이 관계도 끝날지 모르니까. 말하지 못하는 연심에 혼자 울면서 괴로워하는 것도 힘들지만, 영영 그의 곁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게 더 무서운걸.


사라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악스럽게 그녀의 턱을 붙잡고 얼굴을 들어올렸다. 장난 아닌 악력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아얏, 아파요!"

"몰골이 참 끔찍하군. 아름답지 않아."



못볼 걸 봤다는 것처럼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그가 너무 얄미웠다. 아니 울면 당연히 화장도 지워지고 눈도 퉁퉁 붓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막말로 그가 울어도 자신이랑 같은 꼴이 될 터였다. 특히 눈 주위에 발라진 저 보랏빛 눈화장은 번지면 꽤나 처치곤란할 것 같았다.



"내가 알아서 하거든요? 그러니까 저리 가…."



말을 멈춘 건 결단코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제 입에 살짝 붙었다 떨어진 입술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해주듯, 닿기만 하고 떨어지는 부드러운 베이비 키스였다. 순간 무슨 일인지 몰라 어벙벙하다,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깨닫자마자 그녀의 얼굴이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지금, 지금, 그러니까…!!



"표정 참 다양하게도 변하는군."

"다, 당신, 지금, 이게, 무…!!"

"왜 그리 놀라? 키스 처음 해보나?"



대답 대신 그녀는 귓볼까지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움츠려야만 했다. 사라도 눈치껏 깨달았는지 낭패라는 얼굴이었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걱서걱 밟히는 풀잎 소리를 배경 삼아 그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지금은 보기 좀 그렇지만 말이야."

"…."

"그쪽, 평소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

"자신감을 가지는 게 어때. 그리고 가끔은 주위도 좀 둘러보고."



의미심장한 마지막 대사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게 무슨 소리지? 고개를 들고 살며시 뒤를 돌아보자 사라는 이미 한참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제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안 걸까, 귀신같이 뒤를 돌아본 사라가 손을 흔들었다. 내던지듯 툭 뱉은 마지막 대사에 바리의 얼굴이 다시 빨개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반은 창피하고, 반은 열받아서.



"잘 먹었습니다."





===



난 이렇게 풋풋하고 아련한 사라바리를 쓰려고 한 게 아닌데...


퇴폐적으로 쓰려다가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닫고 걍 편하게 썼습니다 ㅋㅋㅋㅋ 능력이 부족하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요'A'


짧은 조각글만을 연성하게 되는 건 생각보다 그리 유쾌하지 않군요 제길 ㅋㅋㅋㅋㅋㅋㅋ



간단히 설정 풀자면,


바리는 여전히 강림바라기고 사라가 그런 바리를 지켜보다가 관심이 좀 생겼다는 컨셉입니다. 아직 사라는 그녀에 대한 호감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구요. 즉, 저 키스는 무의식. 아이구 불쌍한 우리 바리언니...ㄷㄷㄷ 고생 좀 할 팔자입니다.


원래는 좀 더 말싸움하다가 욱한 사라가 찐한 딮키스를 한다는 설정으로 가려고 했으나(그게 더 성격상 맞구요) 한시간밖에 여유가 없었던지라 이것만 썼습니다. 헤헤헤헤...>_<


Posted by I.R.E
,

※ 리야님 생일 축하드려요^ㅁ^




[투림] 생일상


Written by. 리네






아이의 하루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대개 6시. 세수를 하고 후다닥 밥을 먹은 후 잘 다려둔 교복으로 갈아입는다. 전날 준비해둔 책가방을 열어 빼먹은 것이 없나 확인한 후, 한쪽 어깨에 맨다. 액자 너머로 끼워진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한 후 집을 나선다. 출발 시간은 대략 7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올라가게 된 중학교는 집에서 꽤나 거리가 있는지라 되도록 빨리 가는 것이 시간상으로는 무리가 없으니까.


학교가 끝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와 일을 나간다. 유감스럽게도 아이에게는 가족이 없는지라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여러 가지를 하지만, 특히 아이는 주로 영혼들을 찾아다니곤 했다. 가끔 저승으로 가야 하는데 그 순리를 어기고 떠돌아다니는 이들이 있다. 그러한 존재들을 찾아 그들이 올바른 목적지로 찾아갈 수 있게 인도해주는 자들에게 넘기는 것이 아이의 역할이기도 하였다.


가끔 일이 없어 한가할 때는 게임이나 숙제를 하거나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가족은 이미 오래 전에 전부 잃었고 친구라 부를 만한 이도 없었다. 혼자라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인지라 그렇게까지 외로움을 타지는 않았지만. 다만 가끔은, 쥐죽은 듯 조용한 집 안은 노닐고 있노라면 자그마한 가시가 박힌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따끔거리고는 하였다.


딱히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지만 마치 스케줄이 짜여진 것처럼 하루하루가 변화 없이 일정하게 굴러갔다. 사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았으니 저 이상 변화가 생기기는 어려웠으리라.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하기 짝이 없을 법도 하건만, 그래도 아이는 자신의 삶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런 하루가 계속 반복되리라 생각했었다.


"…이게 뭐야?"


아이는 언제나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제 방으로 올라가려던 중 문득 눈가에 살짝 스쳐가듯 지나간 장면에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거실에 무언가가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무언가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살짝 천을 들춘 아이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게 뭐지?


갈색의 작은 앉은뱅이상 위에 여러 가지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흰 쌀밥은 물론이고 각종 나물들과 불고기, 그리고 초록색 미역이 얹어진 미역국까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홉뜬 채로 아이는 주변을 휙휙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온 흔적은 없었다. 누가 온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럼 이 상은 대체 뭐지? 아이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상상이 스쳐갔다. 여기가 우리 집이 아닌가? 혹시 누가 몰래 우리 집에 세들어서 사나? 아니면 책 속에서나 나온다는 우렁각시가 현신한 건지도. 밥그릇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숟가락 젓가락에 눈길이 간 그 순간,


"어라, 너 벌써 왔냐?"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그가 서 있었다. 푸른색이 살짝 감도는 흑발에 새까만 눈동자,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꽤나 바보인 사람. 아니, 딱 보면 사람같지만 저래 봬도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것뿐 아니라 죽은 영혼들을 저승으로 인도해가는 고스트 메신저라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게 뭔 짓이야? 상은 왜 차렸어, 그쪽은 어차피 안 먹어도 상관없잖아." 

"…머리를 좀 굴려라. 저걸 보고 떠오르는 게 없냐?"

"음…. 담당하는 영혼이 숨기라도 했어? 그래서 제사라도 지내게? 설마 나 먹으라고 차린 건 아닐 거 아냐?"

"설마가 사람 잡는다지."


에? 아이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이걸 저보고 먹으라고 차린 거라고? 의심어린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설마…."

"설마?"

"독이라도 탄 건 아니겠지. 나 오늘 죽을 날인가?"

"이게 진짜! 하여간 곱게 넘어가질 않아요. 꼬맹이가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 애면 애답게 챙겨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조용히 수저를 드는 게 어때?"

"어이구, 애가 아니라서 미안하네요. 갑자기 왜 이래? 바보령이 날 챙겨줄 이유가 없잖아. 오늘 무슨 날이야?"


지극히 당연한 것을 되묻자, 남자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다. 질세라 쳐다보았더니 남자가 갑자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제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둔탁하게 밀려오는 아픔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손 한 번 더럽게 맵네. 인상을 쓰고 노려보자 남자는 쯧쯧 혀를 차며 제게 반문했다.


"넌 니 생일도 까먹고 사냐?"


생일? 아이는 한참을 멍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며칠인가 싶어 조용히 속으로 날짜를 곱씹어보았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또래들과 달리 아이는 유독 기념일에 관심이 없는 편인지라, 사실 그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오늘이 제 생일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물론 그건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라는 이유가 크기도 하겠지만.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이의 시선에 남자는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민망한지 살짝 빨개진 얼굴로 흠흠 기침하다가, 그는 마저 대답했다.


"자기 생일도 까먹는 멍청이가 여기 있을 줄이야."

"…뭐, 고마워."

"고마우면 빨리 먹기나 해라. 힘들게 만든거니까 남기면 죽을 줄 알아."

"이거 바보령이 다 한 거야?"

"참내, 그럼 누가 했겠냐? 우렁각시라도 불러왔겠어?"


나물은 집에 있던 걸 꺼낸 건 맞지만 나머지는 남자가 한 게 맞긴 했다. 인터넷 열심히 뒤져가며 레시피를 찾아보고 실패할까봐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친 후 내놓은 음식들이라는 걸 아이는 아마 모를 테지. 묵묵히 자리에 앉아 순가락을 든 아이가 밥을 한 술 떠 입으로 가져갔다. 우물우물. 반찬과 같이 입 안에 넣은 아이가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먹을 만 하네."

"헹, 순순히 맛있다고 하는 게 어떠냐."

"열심히 했다니까 특별히 먹어는 주지."

"…넌 정말 얄미운 꼬맹이야."


새삼. 그렇게 대꾸하며 아이는 계속 밥을 먹었다. 꺼낸 지 얼마 안 됐는지 밥은 무척 따뜻하고 야들야들했다. 그걸 씹고 있자니 아이는 마음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치받아 오르는 감정에 목이 턱 막혀왔다. 억지로 무시하고 반찬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아, 그리고."

"…?"

"생…. 흠흠. 생일 축하한다, 어쨌든."

"…."

"…어?! 야, 너 왜 울어?!"


쑥스러운지 그 뒷말을 잇지 못하던 남자는 갑자기 눈물을 울컥 터트리는 아이에 기겁했다. 그렇게 맛이 없었나? 분명히 이미 자신이 간을 다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괜시리 불길해졌다. 있는 거라곤 자존심밖에 없는 이 꼬맹이가 왜 갑자기 이러는가 이 말이다. 어지간한 일로는 눈물 한 방울 안 보이는 독종이.


"어, 어이. 맛없으면 억지로 안 먹어도…."

"…고마워."

"뭐? 뭐라고 했어? 야, 일단 뚝 그치고 좀…!!"


아이의 목소리는 아주 작아서, 차마 남자의 귀에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쩔쩔매며 아이를 달랬지만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속 밥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생일 같은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잊고 살았는데. 기억해봤자 어차피 챙겨줄 사람도 없을 테고, 그런 걸 기억하고 살기에는 제 앞가림 하기도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도 기억 못한 생일을 기억해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기쁜 걸까.


너무 오래 악을 쓰고 살아온 탓일까, 제가 아직 어리다는 것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나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사실, 생일이라는 것은 상관없었다. 그저 이런 기념일을 챙겨줄 만한 누군가가 제게도 생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벅차오른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혼자인 게 괜찮을 리 없으니까.


혼자라는 사실을 감당하기 힘들 때가 아예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리라. 가끔씩 정말 세상에 저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지독할 만치 몰려오는 외로움을 감당하기 힘들어, 절로 손끝이 차가워지곤 했다. 끊임없이 괜찮다고 세뇌하면서 제 마음을 부정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으니까. 쭉 혼자였고 사람과 어울리는 법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막연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눈물 젖은 눈으로 아이는 제 눈 앞에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이는 얼굴이 저를 걱정하는지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그 사실이 무척 기뻐서, 슬며시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남자 몰래 살짝 웃으며, 아이는 생각했다.


오늘은 그래도 평소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하루인 것 같다고.



===


리야님 생일 축하드려요~!!

오늘 다행이 시간이 나서 짤막글!! 다른 분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받아주셔요(수줍수줍

투림빵을 받고 싶으시다기에 적어 보았...(과연 투림인지는 의문입니다만 ㅎㄷㄷ


헤헤 행복한 생일 되세요^ㅁ^

Posted by I.R.E
,

※ 메이즈러너현대 AU. 음대 일상물입니당:)

※ 뱅님의 로그를 이은 작품이옵니다(--)(__)(--)(__)




"에, 그게…."


토마스는 지금 실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일단 자신은 연습할 곳이 없었고 대학을 온종일 뒤졌음에도 자신에게 연습실을 빌려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마침 구원자라도 되는 것마냥 제 앞에 나타난 녀석이 자신을 초대하겠다고 한 건 좋았다. 그래, 물론 저를 놀리는 투가 다분했지만 설마 나쁜 의도는 없으리라 생각했기에 따라온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끌고 다니다가 '글레이드'라고 쓰여진 나무문 앞에 섰다. 문을 열고 따라오라는 듯이 들어가길래 쭈빗쭈빗 들어간 것도 좋다 이거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사람들이 갑자기 저를 붙잡고 의자에 앉히고 빤히 바라보는 것도, 그 중에서도 유난히 덩치 큰 동양인 녀석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도 괜찮다. 그런데, 벌써 한참이 지나도록 이 상태인 건 좀 심하지 않나. 동물원 우리에 갇혀 구경거리가 되는 듯한 기분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다는 걸 부디 알아줬으면 하는데 말이다.


불편한 마음에도 애써 태연을 가장하면서 토마스는 뉴트를 가만히 째려보았다. 제 앞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 이 금발머리 녀석은 이런 저를 구해줄 생각도 없는지 그저 웃고만 있다. 제 쪽에서 말을 걸고 싶어도 왠지 모를 위압감에 입을 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 생각이 끝났는지 토마스를 노려보던 동양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편입생이라고?"

"이,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듣자하니 연습실에서 다 쫓겨났다고 하던데, 그래서 여기로 흘러들어온 거야?"

"아니, 그게….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


말끝을 흐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더욱 살벌해지는 남자의 눈빛에 토마스는 급하게 말을 뱉어냈다. 그러는 와중에도 뉴트는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눈빛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 잘못 온 건가? 그 생각이 들락말락할 즈음에 갑자기 사람들이 와하하 웃기 시작했다. 배를 잡고 웃거나 입을 크게 벌리고 웃거나, 심지어는 제 앞에서 온갖 폼을 잡던 남자까지 큭큭거리며 웃는 모습에 토마스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졌다. 심각한 상황 아니었던가?


"야야, 불쌍하다 불쌍해. 그만 놀리자."


너무 웃어서 눈꼬리에 눈물이 살짝 맺힌 뉴트가 눈가를 닦아내며 남자에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남자가 웃으며 토마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는 좀 무서웠는데 이제 보니까 상당히 개구장이 같은 인상이었다. 뭐지 싶어 멀뚱멀뚱 바라보는 토마스에게 남자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장난이 너무 심했나?"

"네?"

"미안. 간만에 신입이 들어온다니까 놀리고 싶어지길래, 그만. 어쨌든 잘 왔어. 보아하니 텃세 때문에 고생한 거 같은데, 편입생이라 모르겠지만 여기가 좀 쪼잔한 놈들이 많아서 말이야. 이래 봬도 우린 그런 건 없으니 안심해도 돼. 뉴트가 데려왔으니 설마 이상한 놈은 아니겠지."


조금만 더 정신이 있었다면 농담을 왜 그렇게 살벌하게 치냐고 물었을 지도 모른다. 남자의 손이 아직도 얼떨떨한지 쭈빗거리던 토마스의 손을 꼭 붙잡고 붕붕 흔들었다.


"내 이름은 민호. 2학년 피아노과야. 네 이름은?"

"…토마스입니다. 2학년이고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맞잡은 손이 따뜻했다. 그들이 인사하는 걸 보더니 다른 이들도 속속들이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 내 이름은 척이고 2학년이야. 현재 트럼펫 전공하고 있어!"

"어이, 3학년인 주제에 신입한테 약을 팔지 마! 나는 갤리고, 현재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있다. 학년은 이 녀석과 마찬가지로 3학년이야."


상당히 통통하고 체구가 작은 소년같은 남자의 뒤를 이어 왠지 관악기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가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척, 갤리…. 하나하나 열심히 외우고 있던 토마스의 어깨를 누군가 팡팡 때렸다. 아픔에 뒤를 돌아보자 덩치 큰 흑인이 뒤에 서 있었다. 키가 꽤 컸고 전체적으로 선해보이는 인상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내 이름은 알비. 지금 이 '글레이드' 팀의 리더이자 작곡가 겸 지휘자를 맡고 있지."


잘 부탁해. 눈을 찡긋거리며 토마스의 머리카락을 북북 쓰다듬던 남자, 알비가 뒤로 물러나 제 동료들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모여 있는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토마스는 이 멤버들 모두가 외모도 국적도 전공도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성격들도 개성이 넘치는 것 같은데 그렇게 허물있어 보이지도 않고. 그러다가, 토마스는 문득 구석에 기대 있던 금발머리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봤을 때는 요정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요정은 장난끼도 많은 모양이었다. 자신을 향한 눈길에 뉴트는 벽에 기대있던 몸을 일으키고 그에게로 다가왔다. 앉아 있는 토마스의 앞에 선 뉴트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까도 소개했지만 난 뉴트. 여기 헬퍼를 맡고 있고, 현재 첼로 전공 3학년이야."

"선배…. 였습니까?"

"어쩌다 보니. 뭐,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뉴트의 입꼬리가 선선히 올라갔다. 토마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뉴트의 얼굴이 해사했다. 내밀어진 손을 꼭 잡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글레이드에 온 걸 환영해."



*


연주를 할 때의 녀석들은 평소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첫째, 녀석들은 악보를 잘 보지 않는다. 보통 긴 곡들은 악보를 보고 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들은 악보보다는 상대의 눈을 본다. 서로에게 흘깃 눈길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음을 맞춰가는 것이다. 둘째, 잘 웃는다. 각 과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들의 모임이라는 명성답게 연주 하나에는 수많은 피드백과 다툼이 일어났다. 이게 낫다느니 저게 낫다느니, 올라가기 바로 직전까지 투닥거리면서도 막상 무대에서 연주를 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듯이 웃는 것이다. 마치 이 순간만으로도 행복해 견딜 수 없다는 것처럼. 그들은 연주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장난끼도 다분했다. 연주 솜씨도 훌륭하고 서로서로 호흡도 잘 맞는다. 팀으로서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하지만 연주를 하다가도 문득 장난끼가 드는지 한 명이 갑자기 템포를 바꾸기 시작할 때가 있다. 그러면 보통 어그러지기 십상인데 이 녀석들은 오히려 어디 해봐라라는 식으로 그 템포를 따라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다른 리듬을 섞는다. 그러면 이제 너도나도 자기 쪽으로 흐름을 끌어오기 위해 역량을 발휘하려고 한다. 조용한 쟁탈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 마치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것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걸 끝낸 후 박수소리를 받는 얼굴들에는 환희가 차 있다. 그러고는 내려오면서 다음에는 내가 이길 거라느니 그런 소리들을 한다. 그런 그들의 유대가 토마스는 가끔 부러울 때가 있었다.


"뭐, 그거야 너보다는 오래 같이 지냈으니까 그렇지."


너도 꽤 빨리 적응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민호는 토마스의 등을 팍팍 쳤다. 팀 내에서 유일하게 같은 학년이다 보니 자연스레 토마스는 민호와 가장 빨리 친해졌다. 학년이 같다보니 가끔 이것저것 수업이 겹치기도 하고 가치관 면에서도 맞는 면이 많았다. 그래도 살짝 걱정하는 듯한 토마스의 얼굴에 민호는 한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쭉 폈다.


"야, 그렇게 따지면 나도 처음부터 막 친해진 건 아니야. 하물며 아직 들어온 지 두 달밖에 안 된 네 입장에서는 조금 거리감을 느껴도 어쩔 수 없지 뭐."

"그러려나."

"그래, 그리고 솔직히 친한 걸로만 친다면 리더랑 헬퍼가 가장 친할 걸? 두 사람이 지금의 글레이드 팀을 만든 장본인이니까."


지금의 글레이드를 만들고 계획을 짠 건 알비, 과를 돌면서 단원들을 모아온 건 뉴트라고 들었다. 어쩌면 저렇게 능력 있는 녀석들만 골라오는지 모르겠다고 민호는 혀를 내둘렀다.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팀원들 하나하나가 꽤나 성격이 드센데, 저 자존심 센 녀석들을 정말 수월하게 팀으로 끌어들인단 말이야. 가끔 신기해."

"넌 어떻게 들어왔어?"

"역시나 스카웃. 솔직히 엮일 일도 전혀 없는 사람이라 나도 이름이나 얼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피아노 치는 걸 듣더니 자기 팀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하더라. 정말 수상하기 짝이 없었지."

"용케 수락했네."

"왠지 저 사람은 뭐랄까, 묘하게 거절할 수가 없잖아."


늘 웃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박력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토마스도 그에 공감했다. 실제로 첫 만남부터 꽤 수상하다고 생각했음에도, 결국 아무 말 없이 따라간 전적이 있지 않던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얼굴이나 행동거지들은 가끔 그가 어린아이인지 어른인지 헷갈리게 한다. 실력으로는 이미 프로를 능가하는 첼리스트지만.


"뭐, 그래도 말이야. 들어오니까 재미있고 난 만족해. 너도 그렇잖아?"


털털하게 웃는 민호가 제 옆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에 토마스는 마주 웃어주었다.


"그러게."


즐거워.



FIN.



 마지막이 좀 이상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를 해주셔요ㅠㅅㅠ



※ 헬퍼(helper): 리더를 돕는 역할. 팀의 부리더쯤 된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기/無커플링] Valentine Day  (2) 2015.02.13
[마기][쥬다홍패] Dream  (0) 2015.01.17
2014년 연말정산  (0) 2014.12.26
고메 배포전 후기  (0) 2014.12.21
[강건너 림구경/세1] 최종 인포입니다~!!  (0) 2014.12.19
Posted by I.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