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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에 대한 망상

※ 이랬으면 좋겠지만 이러지 않을 것을 알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곶통






[캣마리] resemblance





“어이, 거기.”



난데없는 난입이었다.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밤의 공원으로 검은 실루엣이 훌쩍 내려섰다. 손에 봉을 들고 빙글빙글 웃으며 다가오는 그림자의 주인은, 블랙캣이었다. 데이트를 방해받은 이블 아티스트의 눈매가 매섭게 좁혀졌다. 한편, 마리네뜨는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미쳤어! 쟤가 지금 오면 어떻게 변신해!


도와주러 온 건 고마웠지만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괜히 일이 꼬일 것 같다는 생각에 마리네뜨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블랙캣은 능글맞게 웃으며 툭 내뱉듯 말했다.



“이거이거, 숙녀분을 데리고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실례잖아. 쯧쯧거리며 그를 도발하는 블랙캣과 달리, 할 수 있었다면 분명 마리네뜨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이야?!


이블 아티스트는 그런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그의 머릿속으로 호크모스의 지령이 들려왔다.



‘미라클스톤을 뺏어라. 이 자는 지금, 너와 그녀의 사이를 방해하려고 하고 있다.’



적이다. 그렇게 인식한 순간 그는 손에 붙은 타블렛에 재빠르게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와 마리네뜨를, 방해하지 마!!”



타블렛으로부터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공격들을 착착 피해가며, 블랙캣은 빠른 속도로 그에게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빙긋 웃었다.



“너무 무른 거 아냐?”



그가 어느 새 이블 아티스트의 타블렛에 손을 뻗고 있었다. 잡았다 싶었는데, 초인적인 반사신경을 발휘해 뒤로 물러난 이블 아티스트를 보며 블랙캣은 휘파람을 불었다.



“우와, 꽤 빠른걸.”

“꺄악!!”



갑작스레 제 허리에 닿는 손길에 마리네뜨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블랙캣의 손이 마리네뜨의 허리를 감싸더니 이내 그녀를 번쩍 안아올렸고, 누가 봐도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겨진 마리네뜨의 얼굴에 당혹감이 배어들었다. 반사적으로 발버둥쳤다.



“야, 뭐하는 거야?!”



저도 모르게 허물없이 말한 것을 깨닫고 마리네뜨는 즉시 입을 닫았다. 다행히 눈치채지 못했는지, 블랙캣은 그녀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일단 설명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여길 벗어날까요? 존대를 쓰며 싱긋 웃던 블랙캣이 이야호~ 소리와 함께 하늘로 높게 솟아올랐다. 꺄아악, 비명을 지르며 마리네뜨는 두 손으로 블랙캣의 목을 꽉 붙들었다. 제게 안겨있는 마리네뜨를 보던 블랙캣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My Lady도 이렇게 안겨주면 좋을 텐데. 손을 대기도 전에 곧바로 얻어맞겠지만.


재빠르게 달려 공원을 빠져나가는 블랙캣의 품에 꼭 안겨서, 마리네뜨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그녀는 이 상황에 반쯤 체념한 상태였다. 그래, 일단은 여길 벗어나서 레이디버그로 변신하면 되겠지. 도와주러 온 애한테 뭐라 하겠는가. 저 빌런이 노리는 것은 자신 혼자뿐이니 별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헉!”



공원을 달려 빠져나가던 중 그들의 머리 위로 커다란 무언가가 쿵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거대한 유리상자가 그들의 머리 위를 덮친 것이다. 나름 차분한 블랙캣과 달리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마리네뜨는 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유리벽에 경악했다. 이러면 변신을 할 수 없잖아!



“가만히 있어봐요, 레이디.”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불안해하는지 안색이 좋지 못한 마리네뜨에게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자신을 달래려는 듯,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블랙캣을 올려다보는 마리네뜨의 눈동자가 놀란 듯 살짝 커졌다. 평소의 깨방정떠는 모습은 어디다 버려두고. 괜히 진지해뵈는 그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러니까 그래도 좀 영웅같아 보이긴 하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러는 걸까. 이건 마치….


…미쳤어!!


순간적으로 떠올린 얼굴에 마리네뜨는 충격받은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 묘한 표정을 짓던 마리네뜨가 아무 말 없이 제게서 시선을 돌리는 모습에 블랙캣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뭔가 익숙한 느낌인데?



“레이디.”



레이디라는 칭호가 술술 나오는 것도 그렇고, 괜히 존대를 쓰게 되는 것도 그렇다. 자유로운 고양이인 자신이 이렇게 반응하는 존재는 오직 한 명밖에 없었는데도. 아는 사이라서, 같은 반 친구라서 그런 걸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블랙캣은 괜히 복잡해지는 마음에 마리네뜨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마리네뜨는 마리네뜨일 뿐이지. 당연한 결론을 내렸을 뿐인데 왜 이렇게 찝찝한 기분이 들까. 그러다가 그는 픽 웃었다. 방금 전 말투가 그녀와 닮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평소랑 달리 저를 향해 거침없이 뱉어내는 말투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퍽 새로웠다. 그래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마리네뜨를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주었다. 무슨 생각이냐는 듯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블랙캣은 손가락으로 뺨을 긁적거리며 뒤를 가리켰다. 그들의 앞으로 이블 아티스트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선 블랙캣이 한 손을 뻗어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속삭였다.



“이거 없어지면, 재빨리 뒤쪽으로 뛰어요. 내가 시간을 벌어볼 테니까.”

“에?”

“음, 내가 말이죠. 지금 누구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레이디버그?”

“맞아요. 뭐 하느라, 아직도 안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금방 오겠죠. 투덜거리는 것처럼 굴지만, 걱정없다는 듯이 씨익 웃는 블랙캣을 보던 마리네뜨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뭐지, 이거.


왜 자꾸 그가 떠오르는 거지?



“고대의 재앙!!”



소리지르는 것과 동시에 블랙캣은 뒤로 돌아 마리네뜨가 있는 쪽의 벽에 손을 짚었다. 삭아서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유리를 멍하니 보고 있던 마리네뜨에게 블랙캣이 크게 소리질렀다.



“어서 가!!”



이블 아티스트의 분노에 찬 공격을 막아내며, 또 다른 자신을 기다리는 블랙캣을 등지고 마리네뜨는 뛰기 시작했다.


곧 달려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이 바보야.




===


9화 나오자마자 급삭할 삘이군요 허허허

Posted by I.R.E
,

※ 전력 주제는 『꽃』 이에요.





「오랜 시간을 넘어서,

나는 아직도 너를 기다려.





[캣버그] 시공을 넘어





- 5000 Ago,  Egypt





울부짖는 소리가 지천을 찢었다. 무더운 여름, 이집트의 어느 광장에서는 난데없는 소동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악당들에 군중 떼는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흩어졌고, 광장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가진 힘을 과시하려는 듯이 사람들을 짓밟는 악당들의 눈동자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공포에 떨며 광장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이 낄낄 웃으며 그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그 순간, 붉은 물체가 강한 힘으로 그들 중 한 명의 얼굴을 후려쳤다. 뒤로 나동그라지는 악당들과 달리, 그들 앞에 내려서는 이를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환호했다.



“레이디버그님!!”



붉은 빛깔이 도는 비단옷과 붉은 가면을 쓴 여성은 손가락을 올리며 쉿, 소리를 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녀는 어서 도망가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꾸벅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자마자 사람들은 썰물처럼 광장을 빠져나갔고, 어느 새 이곳에는 악당들과 그녀밖에는 남지 않았다. 씩씩거리며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이들에게 그녀는 싱긋 웃으며 손에 들고 있는 붉은 물체를 휘둘렀다.


한 마디를 남기며.



“놀아보자고.”








“요즘 들어 일이 너무 많이 터지네.”



레이디버그는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악당들을 처리하고 문제를 다 수습하고 보니 해가 벌써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가득 머금은 몸을 조용히 식혀 주었다.


그래도 무리 없이 일을 마무리지은 건 다행이지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악당이야 늘 있었지만, 이렇게 떼지어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문데. 일단 대충 마무리는 지었지만 앞으로도 이러면 곤란한데, 이유가 뭘까. 팔짱을 낀 채 입을 우물대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시 외곽으로 들어서려던 찰나, 그녀는 제 앞으로 훌쩍 내려서는 남자를 보고 인상을 썼다.



“블랙캣?”

“안녕, 나의 아가씨.”



능글맞게 웃으며 제 앞에 나타난 검은 가면의 남자가 뒷짐을 지고서, 한쪽 손을 공손하게 내밀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살짝 입을 맞추었는데, 여인은 픽 웃으며 그런 그의 손을 쳐냈다. 그러고는 말했다.



“안녕 좋아하시네. 왜 아까는 안 왔어? 혼자 처리하느라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 줄 알아?”

“미안, 미안. 나도 저쪽에 나타난 놈들 좀 손봐줬거든.”

“뭐? 다른 구역에도 나타났어?”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블랙캣의 표정이 퍽 진지해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뻘줌해졌다. 하긴 이런 일로 장난칠 성격은 아니지, 이 녀석이. 몇 명이나 상대했냐고 물으니까 둘이라고 답했다. 자신이랑 같은 숫자다. 이제껏 잘 해오긴 했지만, 계속 이런 페이스면 둘만으로는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날씨에 왜 이리들 주책인지.”



쉬고 싶어도 참으로 도움 하나 안 되는 놈들이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맡길 수도 없는 일이기에 퍽 답답했다. 좋은 수가 없을까, 손가락을 턱에 놓고 고민하는 레이디버그의 모습이 새까만 눈동자에 가득 담겼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알아챈 레이디버그가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뚫어져라 봐?”

“아니, 아니. 언제 봐도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그래, 그래. 고마워.”



건성으로 받아 넘기는 레이디버그와 달리 블랙캣은 꽤 진심인지,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보고 봐도 질리지 않는다고 말해도 아마 믿지 않겠지. 블랙캣은 쓰게 웃었다. 무언가 망설이고 있는 듯한 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레이디버그는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일을 다 처리했으면 집에 가야지. 일부러 날 찾아온 이유는 또 뭐야?”

“그냥, 얼굴이 보고 싶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보잖아, 우리. 뭐가 그리 보고 싶다고.”



짧게 웃음을 터트리던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늦었다고 소리를 지른다. 일단 빨리 가봐야겠다 말하면서,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여인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얼떨결에 잘 가라고 대답하면서, 그녀가 제게서 꽤 멀어지자 그는 줄곧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풀고 그 손에 들려 있던 꽃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가져왔던 붉은 꽃송이.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꽃잎이나 줄기나 꽤나 시들해져 있었다. 중간에 악당을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좋았으련만. 노을에 짙게 물들어 괜히 불길하게 느껴지는 꽃을 말없이 쳐다보던 블랙캣의 손이 꽃을 꽉 쥐었다. 꽃이 손 안에서 바스라졌다. 이런 걸 제 아가씨에게 줄 수는 없겠지. 길을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가, 픽 웃었다.


나중에 다시 주면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 현재,  Paris





“어디 있어?”



거대한 사람 모양의 과자들 사이를 누비는 붉은 인영이 있었다. 이 거대한 과자들은 놀랍게도 모두 사람이었으며, 지금 그녀는 파리를 한창 누비며 사람들을 과자로 만드는 악당을 쫓는 중이었다. 연락을 했는데 얘는 대체 왜 안 와. 답답하다는 듯이 이맛살을 구기던 그녀의 옆으로 검은 실루엣이 다가왔다.



“기다렸어, My Lady?”

“왜 이제 오니?”

“미안, 미안. 뭘 좀 하다가. 자자,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어서 가자구.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듯이 앞장서 나아가는 블랙캣의 뒤를 따르던 레이디버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번졌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는 것은 덤으로.


이번 악당은 그래도 간단히 제압되었다. 사실 이번처럼 특이한 악당도 꽤 오랜만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주변의 모든 것들을 과자로 만드는 능력을 갖게 된 걸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이의 옆에서, 두 사람은 찡긋 웃으며 꼭 쥔 주먹을 가볍게 맞대고 임무 완수! 를 외쳤다. 그러던 중 갑자기 블랙캣이 흐냥, 이라는 감탄사를 뱉어냈다. 무언가 잊었던 게 떠올랐다는 듯이.



“잠깐만 기다려!”

“에?”

“1분만, 1분 안에 올 거야!!”

“잠깐만, 야!!”



대답도 듣지 않고 급하게 어디론가 가버리는 블랙캣의 모습이 좀 의아했지만, 아직 시간도 남았으니 1분만 기다려주기로 했다. 이제 돌아가서 뭘 해야 하나, 딴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제 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블랙캣에 레이디버그는 깜짝 놀랐다. 제 귀걸이에서 띠링, 소리가 울렸다.


정말 사라진 지 1분만에 나타났네.


무슨 일이었냐고 묻기도 전에 블랙캣은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능청스럽게 내밀었다.



“여기.”

“꽃? 이게 웬 거야?”



탐스럽게 피어나 있는 붉은 꽃이었다. 붉은 꽃 세 송이와 하얀 안개꽃들로 치장되어 있는 꽃다발은 딱 보기에도 무척 예쁘고 귀여웠다. 눈을 깜빡거리며 신기해하는 레이디버그에게 블랙캣이 말했다.



“주고 싶어서.”



말하면서도 좀 쑥스러웠던 모양인지 고개를 홱 돌리며 손을 휙 그녀 앞으로 내미는 얼굴은 살짝 빨개져 있었다. 가면 사이로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답을 기다리는지 꽃다발을 든 손을 살짝 위아래로 흔드는 블랙캣의 입매가 긴장으로 살짝 굳어 있었다. 멀뚱멀뚱, 블랙캣과 꽃을 계속 번갈아보던 그녀가 픽 웃으며 그의 손에서 조심스럽게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꽃을 그렇게 흔들면 어떡해? 이렇게 예쁜데.”



그제서야 블랙캣은 살짝 고개를 돌려 꽃다발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레이디버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꽃향기를 맡으며 즐겁게 미소짓는 모습은 역시 상상보다 더 사랑스러웠다. 너무 오래 걸렸지만 이걸로 된 건가. 블랙캣의 입꼬리가 서서히 말려 올라갔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이제서야.



"고마워. 잘 받을게."



평소에는 보기 힘든,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쑥스럽기도 쑥스러웠지만 솔직히 레이디버그의 저런 모습은 여러 의미에서 심장에 나빴다. 무척이나. 정면으로 마주하면 얼굴이 불탈지도 몰라.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계속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던 블랙캣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서야, 네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Posted by I.R.E
,

※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의 팬픽입니다.

※ 본편물이에요.



[아드마리/캣버그너는, 그리고 나는-






“네가…, 좋아.”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겨우내 내뱉은 목소리의 끝은 조금 떨리고 있었던가. 한참이 지나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에 소녀는 다시금 숨을 들이켰다. 오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꽤 어려웠지만, 어딘지 후련한 것은 사실이었다.


긴장한 탓일까, 주변의 공기가 온 몸을 죄여오는 것만 같았다. 두 손을 뒤로 숨기며 살며시 마주잡았다. 터질 것 같이 뛰어대는 심장과 지금 이 순간의 정적을 견디는 것은 그녀에게도 꽤 고역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익숙하지는 않았다.


길어지는 침묵에 그녀는 소년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었기에, 소녀는 당장이라도 뒤돌아서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그저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꽉 쥐어둔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미안.”



그 한 마디에 그녀는 퍼뜩 고개를 치켜들고 소년을 쳐다보았다. 정말로 곤란한지 표정을 살짝 일그리면서도, 피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하는 아드리앙의 모습에 마리네뜨는 조금은 서글프게 눈가를 일그렸다. 진심이구나.


저런 면이 좋았다. 가벼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누구에게나 진지하고 다정한 너의 그런 점이 좋았다. 밝고 상냥하지만 네가 보이는 것만큼이나 편안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너는 남의 진심을 함부로 무시한 적이 없었다. 이제껏 네게 고백했던 애들에게도 모두 그랬음을 안다. 그게 네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라는 것도 알고. 그런 너의 상냥함을 알기에, 너를 좋아하게 됐던 거니까.


하지만 지금은 너무 아프다.



“난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어.”



욕심이었는지도 몰라.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처음에는 인사로 시작했다가 점점 대화를 주고받게 되면서 약간의 희망을 품었던 건지도 모른다. 네가 정말로 나를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그런 희망.


한쪽 눈가를 찡그리면서, 아드리앙은 뻘쭘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마리네뜨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 아니야.”



괜찮아. 마리네뜨는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그에게 부담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애초에 마음대로 좋아하게 된 건 자신이고, 그가 책임져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절당할 거라는 것도 막연하게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앞에서 듣는 거절은 좀 아프네.


쓰게 웃으면서도 마리네뜨는 애써 태연한 척 아드리앙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차분히 가라앉은 감성 위에 차곡차곡 진심을 쌓아올렸다.


네가 알아줄 거라 믿으며.



“그냥 말하고 싶었어.”



담아두기만 해서는 언제까지고 이 감정에 끌려다닐 것만 같으니까. 차라리 뱉어내면 조금은 후련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후련하긴 하지만 이건 이것 나름대로 힘들구나. 상상했던 것보다 더 단호하게 대답하는 네 눈동자에 서려 있는 건 명백한 애정이었다. 쓰려오는 마음 위로 작은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어떤 여자애일까.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아주 멋진 사람일 거야.



“그래도 난 정말로 너를 좋아하니까.”



그런다고 그를 포기했을 거라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감정이었다.


너를 그 사람에게서 빼앗겠다거나 그런 생각같은 건 별로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네 얼굴에 엿보이는 때묻지 않은 진심에 차마 상대가 누구냐고도 묻지 못했다. 알고 나면 더 괴로워질지도 몰라서.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진심이야.


설령, 내 마음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해도.


괴로울 정도로 들썩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환하게 웃어주었다.


울지 않아.



“네가 어떻든 간에, 나는 계속 너를 좋아할 테니까. 그것만은 기억해줘.”



적어도 네 앞에서는.


뒤로 돌아서자마자 뜨거워지는 눈가를 애써 무시하며, 마리네뜨는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다가 곧장 앞으로 달려나가는 마리네뜨의 눈가로 투명한 눈물들이 조용히 스쳐갔다.




*



털어내지 못한 감정의 싹을 잘라냈어야 했다.



“위험해, 레이디버그!!”



방심했다.


블랙캣이 소리를 질렀을 때는, 이미 제 팔다리에 강력한 끈끈이가 붙어버린 후였다. 예상치 못한 실수에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제 모습이 웃긴지 깔깔 웃어대는 악당의 모습에 어떻게든 끈끈이들을 끊어내려고 발버둥치는 레이디버그에게 악당은 손을 뻗었다. 저게 공격하려는 신호인 것은 알았지만, 몸에 붙어있는 끈끈이들 탓에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날아오는 광선들을 망연히 지켜보다 질끈 눈을 감았다.


…아프지 않아?



“브, 블랙캣!!”



눈을 뜨자마자 제 앞에 보이는 검은 뒷모습에 레이디버그의 입가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반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몸이 풀썩 뒤로 넘어졌다. 그녀는 자유로워진 팔다리로 쓰러지는 그를 받아들어 바닥에 뉘었다. 쏟아지는 광선을 온 몸으로 막아내면서도, 그는 그 와중에 고대의 재앙까지 써서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끈적이들까지 제거했던 것이다. 그 재치에 감탄하거나 지금 그의 상태를 살피고만 있기엔 아직 적이 남아 있어서, 그래서 그녀는 다시 악당에게로 달려들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해, 겨우내 악당을 정화하자마자 레이디버그는 재빨리 제가 방금 있었던 곳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를 조심스레 안아들었다. 얼굴을 무릎에 눕힐 때까지도 녀석은 그 흔한 신음소리 하나도 들려주지 않았다. 미동조차 없이, 죽은 듯 가만히 있는 블랙캣의 모습에 불안함이 안개처럼 제 몸을 휘감아왔다. 이건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아무리 장난을 좋아한다 할지라도 분명 이쯤에서 눈을 뜨고 ‘나 불렀어, 레이디?’ 라고 말하면서 눈을 뜨는 녀석이잖아, 너.


일어나, 블랙캣. 일어나라고. 그를 천천히 흔들면서 계속해서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덜컥 심장이 조여들었다. 분명 죽은 게 아닌데, 숨을 쉬고 있는데.


왜, 일어나지 않는 거야.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을 피하지 못했던 건 제가 한눈을 팔았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이 자리에 쓰러져 있어야 하는 건 나여야만 했는데, 쓰러져 있는 블랙캣의 모습에 새삼 제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자각했다. 실연의 상처를 부둥켜안는 건 마리네뜨 혼자로 족해야만 했는데.


레이디버그가 되기로 했을 때 맹세하지 않았던가. 이 모습을 하고 있을 때는 마리네뜨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자고. 누구든 의지할 수 있고, 의지가 될 수 있는 인물이 되자고. 그 경계를 허물어버린 대가가 이것이던가. 마리네뜨로서 가졌던 미련 한 가닥을 끊어내지 못하고, 내가 감당해야만 했던 것들까지 네게 빚지고. 쉽사리 눈을 뜨지 못하는 블랙캣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울컥 뜨거워지는 가슴에 절로 목이 메었다. 떨리는 주먹을 세차게 그러쥐었다.


한심해.


나 자신이. 그 생각과 함께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려, 검은 가면 위로 투두둑 떨어졌다. 요즘 너무 자주 우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소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뼈저리게 와닿는 무력감을 견딜 수가 없어, 그저 조용히 눈물만을 쏟았다. 약한 자신이 그저 서러웠다. 히어로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만은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조차도 아니었나 보다.



“미안해.”



눈을 감고 있는 블랙캣에게 가만히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내 이런 나약함에 너를 끌어들여서. 결국 너까지 다치게 만들어서.


너는 늘 나를 강하다고 말하지.

하지만, 난 전혀 강하지 않아.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지도 못하는 바보일 뿐이야.


무언가 띠띠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마냥 울고 있는 그녀의 눈가에서 떨어진 눈물들이 블랙캣의 얼굴을 가득 적셨다.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눈물 몇 방울이 입술에 살며시 고이자, 그와 함께 블랙캣의 미간이 살짝 씰룩거렸다. 앓는 듯이 작게 신음소리를 흘리던 그가 살며시 눈을 떴다. 뿌옇게 흐릿하던 초록빛 눈동자는 몇 번을 깜빡거렸다.


가면 너머의 소년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는 거야?”

“….”

“넌 볼 때마다 우는 구나….”



또 나 때문인가. 꿈결처럼 멍하니 중얼거리던 블랙캣의 눈동자가 어느덧 선연한 초록빛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미묘하게 바뀌는 표정과 함께 목소리에 경악이 물들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대답이 그의 혀끝으로 굴러나왔다.



“마…, 리네뜨?”

“…어?”



무슨 소리지? 소녀의 손이 반사적으로 제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끝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마리네뜨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다. 방금 전에 들렸던 소리는, 변신이 풀리기 전의 경고음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그녀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소녀였다.


결코 들키고 싶지 않았던.


누워있던 자리서 몸을 일으키며, 무언가 더 말하려는 블랙캣에게 그녀가 다급히 소리쳤다.



“말하지 마!!”

“어?”

“말하지, 말아줘.”



그렇게만 말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마리네뜨의 팔을 강한 손이 꽉 붙잡았다. 도망치지 말라는 듯이 꿈쩍하지 않는 블랙캣의 손을 뿌리치려 발버둥치는 마리네뜨에게, 블랙캣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네가 마리네뜨였어?”

“말하지 마. 말하면….”

“왜, 어째서. 왜 하필 너야?”

“…왜? 나라서 실망했어?”



울컥하는 마음에 절로 쏘아붙이자 블랙캣은 당황했는지 평소보다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아니야, 난….”



무언가 띠띠 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블랙캣의 시선이 제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향했다. 네 발가락이 전부 사라지고 초록빛으로 빛나는 몸통만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가, 블랙캣은 이내 과감히 반지를 제 손에서 빼어버렸다.


검은 가면과 타이즈가 점차 흐릿해지더니 곧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금빛 머리카락과 초록빛 눈동자, 자신을 거절할 때처럼 곤란하다는 듯한 눈빛을 하고서 제 앞의 소년은 웃어보였다.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푸른 시선을 애써 마주하면서 소년, 아드리앙은 더욱 힘을 주어 그녀를 붙잡았다. 다시금 움찔거리는 마리네뜨에게, 그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미안해.”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

중간에 한 번 다 날려먹어서 아예 새로 썼습니다.


미안해 마리네뜨 이번엔 네가 굴렀네...

다음 연성은 달달한 거 쓴다고 해놓고 왜 이리 아련한 걸 들고 왔을까요0_0? 앗 다음에는 꼭 진짜로 제대로 된 달달물을 들고올게요...(전력: ㅋ



저도 달달물 좋아합니다 여러분..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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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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