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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이와 Trick or Treat!

2019. 11. 2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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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공지

레이디버그 2019. 1. 13. 13:42

블로그를 방치해놓고 있다가 회지 관련 마무리가 되어가서 간단한 공지를 적어봅니다.


와주시는 분들이 레이디버그랑 고스트메신저 관련으로 오실 것 같다고 예상하고는 있는데요. (가장 연성이 많은 두 장르라서) 제가 지금 고스트메신저는 연성을 안 하고 있구요, 레이디버그는 옮긴 포스타입 블로그에서 깨작깨작 연성하고 있습니다. 써둔 글들을 여기로 좀 옮겨올까 했는데, 포스타입으로 옮긴 가장 큰 이유가 외부에서 글이 서치가 안 된다는 점이었기 때문에...(먼산 딱히 눈에 띄고 싶지 않거든요 덕질은 조용히 하는 게 최고라는 마인드라서(...) 방문해주시는 여러분 고로 연성에 대해서는 포스타입 블로그도 같이 참고해주세요 공지에도 있지만 주소는 여기 > https://rinelee.postype.com/


그리고 나타마리는 언제 다시 연재 재개하긴 하려고 하는데 여기서 시작한 이상 끝까지 여기서 마무리지을 것 같아요. 흐름만 짜놔서 손 가는대로 쓰는지라 에피소드 구성은 쓰는 저도 미래를 모르지만 말이죠.

다른 단편들은 포스타입에만 올릴 것 같습니다:) 이번 회지 끝나고 장르에 당분간 손 뗄 거라 예정해둔걸 제외하면 레벅 연성을 더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하니 오시는 분들이 혼란스러우실 것 같아 공지를 띄웁니다.


그리고 펠릭마리는 1권 분량은 그냥 블로그에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재판예정이 전혀 없다보니 비공을 할까 고민했는데, 솔직히 마이너란 연성이 없어 고달픈 세계인데 저까지 연성을 비공개하면 후발주자 분들이 정말로 고통받으실 것 같아서요..(애초에 이짓을 시작한 이유도 자급자족이었다)

언제나 말씀드리듯이 블로그 밖으로 무단 전재 및 복제, 도용은 일체 금지합니다. 관련 문제가 터질 시 글을 전부 비공개로 돌릴 수 있습니다:)

Posted by I.R.E
,

구간들 샘플

레이디버그 2018. 12. 24. 23:09


1. The cat who leapt through Time


미래의 블랙캣이 과거의 마리네뜨와 만나는 이야기

54p / 6000원



<표지>



2. Once upon a Time


괴물 블랙캣과 소녀 마리네뜨. 동화 AU

82p / 9000원

 


<표지>



뒷내용 샘플 : http://eclilps.tistory.com/entry/OUAT



Posted by I.R.E
,



1. 작은 비밀


 

 

아침이었다.


안녕, 마리네뜨?”


살갑게 인사하며 제게 팔짱을 끼는 알리야를 향해 마리네뜨는 살며시 미소지었다.


안녕!”

오늘따라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오늘 들어 있는 수업이 좀.”


가기 싫어서. 작게 중얼거리는 마리네뜨를 보며 알리야는 지긋이 생각에 잠겼다가, 손가락을 탁 튕겼다.


마리네뜨 네 오늘 시간표상 수업은. 어라, 너 그 교수님 꽤 좋아하지 않았어?”


의아하다는 얼굴을 한 알리야에게 마리네뜨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 ……작품은 여전히 마음에 드는데.”

드는데?”

가브리엘 씨를 너무 좋아하셔.”

아하.”


이해했는지 알리야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 친구의 눈치빠름에 감사하며 다시 걸으려던 찰나, 알리야가 다시금 마리네뜨를 꼭 붙잡았다. 이번엔 무슨 일인데? 힐끔 돌아보자 씨익 웃고 있는 알리야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불길하다.


그나저나 어제는 무슨 일이야~?”

어제?”


갑자기 이건 뭔 소린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마리네뜨에게 알리야는 재미난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신난 얼굴로 마리네뜨의 귓가에 속닥거렸다.


너희 학과 애가 그러던데? 어제 네가 어떤 꽃미남이랑 웃으면서 대화하는 걸 봤다고~”

꽃미남?”


얘는 언제 그런 얘기를 들은 거야.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보던 마리네뜨가 아~, 라는 탄성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혹시, 나타니엘 얘기해?”

뭐야, 진짜였어?!”


언제 나 모르는 새에. 마치 제 엄마처럼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알리야를 보고 마리네뜨는 한숨을 쉬었다. 어서 정정해주지 않으면 터무니없는 오해가 퍼질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런 거 아니야. 너 나타니엘 기억 안 나? 나타니엘 커츠버그.”

나타니엘?”


잠깐 고민하던 알리야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어. 그게 누군데?”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애.”

아아, 그랬던 것 같기도?”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지며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 알리야를 보고 마리네뜨는 오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하긴 자신도 좀 생각하다가 겨우 떠올렸을 정도였으니.


저기.”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마리네뜨와 알리야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훤칠한 키에 느슨하게 묶은 길고 붉은 머리칼을 가진 청년의 손에는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다. 나타니엘이 멋쩍은 듯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안녕?”

안녕, 나타니엘!”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나타니엘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뭐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마리네뜨에게 나타니엘이 설핏 미소지었다.


일찍 나왔네. 수업이야?”

그렇지 뭐. 클로드 교수님 수업 들으러 가는데, 너는?”

, 같은 수업이구나.”

너도 이 수업 들어?”


나타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리네뜨가 왜냐고 묻기도 전에 재빨리 덧붙였다.


시간이 맞는 게 이 수업뿐이라서.”

, 혹시 같이 앉는 사람 없으면 나랑 같이 들을래?”

그래도 돼?”

물론이지.”


밝게 웃는 마리네뜨를 한참 쳐다보던 나타니엘이 엷게 미소지었다.


그래, 그럼.”


그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알리야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마치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반짝였다.


그으럼, 난 이쯤에서 먼저 교실로 가 볼게?”

, 알리야?”

동창끼리 오랜만에 만났으니 오붓하게 얘기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

저기, ! 너도 같은 동.”


창이라고. 내뱉지 못한 단어들이 입술을 떠나기도 전에 알리야는 두 사람 곁을 지나 학교 건물로 뛰어가고 있었다. 방금 알리야의 얼굴이 웃고 있었던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마리네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때, 띠리링 소리가 울렸다. 생각 없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알림을 확인하자, 알리야가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중에 얘기 들려줘~]

무슨 일이야?”


불쑥 치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마리네뜨는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다시 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나타니엘을 쳐다보았다. 제법 훤칠해진 그를 살짝 올려다보며 마리네뜨는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곤란해하는 마리네뜨의 표정을 뭘로 해석했는지 나타니엘은 더는 묻지 않고 손가락으로 건물 입구를 가리켰다.


그나저나 갈까?”

, 그래!”


밝게 미소지으며 자신을 앞장서 걸어가는 마리네뜨의 뒤통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나타니엘은 말없이 성큼성큼 그의 뒤를 따랐다.

 



마리네뜨와 다시 만난 지 2주가 지났다.


2주 동안 간간히 마리네뜨와 만나게 되면서 나타니엘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마리네뜨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어쩐지. 나타니엘은 그제서야 같은 대학임에도 1년 동안이나 마리네뜨와 마주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같은 미대 소속이긴 하지만 아트 스페이스인 자신과 패션 디자인 소속인 그는 활동 범위가 매우 달랐다. 기본적인 전공의 차이가 크다 보니 어쩌다 교양이 겹치지 않으면 얼굴을 보기 힘든 것도 당연했다. 이번 학기에 마리네뜨와는 교양 두 개가 겹쳤다. 처음 만났던 미술학의 역사와 수요일 오전 수업. 수강신청 실패로 듣게 된 과목인데다 개인적으로 교수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리네뜨를 만나게 되었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마리네뜨는 여전히 밝았다. 활발하고 솔직하고 자기 감정에 솔직했다. 짜증나는 레포트를 한참 붙들고 있다가 축 늘어지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는 눈을 반짝이면서 작업에 몰입한다. 한창 생각에 빠져 폭주하다가 나중에야 뻘쭘해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자신과는 달리 사교성이 좋은 것도 같다.


가끔 사람을 깜짝 놀래키는 면모도 여전했다. 저번에는 제 작업실에 찾아온 마리네뜨를 보고 얼마나 놀랬던지! 허둥지둥 후드를 쓰고 마리네뜨의 앞에 나섰지만 여러 의미에서 민망했다. 집에 가기가 귀찮아서 며칠간 작업실에 처박혀 있었으니 분명 꼴이 말이 아니었을 텐데. 어떤 반응을 해야할 지 몰라 눈만 데록데록 굴리고 있는 제게 마리네뜨가 웃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죽어있을 게 분명하니 지원 왔다면서 제게 건네는 하얀 봉투를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안에 들어 있는 샌드위치에 박힌 마리네뜨네 빵집 로고를 보고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사실 나타니엘은 여전히 자신에게 부여된 지금의 시간이 얼떨떨했다. 마리네뜨를 다시 만났을 때부터가 그랬다. 물론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심란하기도 했다.


좋은가? 마냥 좋다고만 생각하기엔 어딘지 찜찜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몇 가지 의문들이 머릿속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은 제 기억과 그리 달라진 점이 없었다.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마치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낄 때면 가슴 한 구석을 서늘하게 적시는 예감이 있었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마리네뜨의 옆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누군가가.

하지만 그에 대해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아직은.



 


그래서, 요즘 그 애랑 같이 다니고 있다며?”


제법 짓궂은 목소리로 질문하는 알리야의 옆에서 마리네뜨는 이제 막 포장지를 깐 샌드위치를 입에 넣으려다가, 멈칫했다. 고개를 돌려 알리야를 돌아보던 마리네뜨가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 왜 그런 표정이야?”

내 표정이 뭐?”

아주 재밌어 죽겠다는 느낌인데?”

오올~ 근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 너라면 재미가 없겠어? 지금 상황이.”

대체 무슨 상황인데요, 알리야 씨?”


역시 장난스럽게 받아치는 마리네뜨에게 알리야는 히죽 웃으며 안경을 고쳐썼다.


글쎄? 친구랑 잘생긴 남학생이 심상치 않은 관계가 되어가는 상황?”

잘생긴 남학생은 또 뭐야, 대체.”

으이그, 또 시작이구만. , 상당히 단정하고 잘생긴 얼굴이잖아? 키도 크고.”


넌 너무 눈이 높아. 절레 고개를 내젓는 알리야의 앞에서 마리네뜨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샌드위치를 우물거렸다. 할 말이 없었기도 했고, 더 이야기하면 싫은 주제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단정한 얼굴이잖아. 아트(Art) 과에 실력도 실력이지만 얼굴도 괜찮은 꽃미남이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설마 내 친구랑 걔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나타니엘에게도 실례라구.”

과연 그럴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알리야를 보고 마리네뜨는 앉은 채로 슬금 뒤로 물러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걔가 누군지 기억이 좀 나긴 나더라구? 프랑수와즈 뒤퐁Françoise Dupont 고등학교에 다닐 때.”

됐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 얘기는 그만 하자.”


황급히 제 말을 끊는 마리네뜨를 알리야가 지긋이 바라보았다. 고집스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마리네뜨를 참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알리야가 툭 말을 내뱉었다.


애쓴다.”

…….”


거하게 한숨을 내쉬는 마리네뜨를 보고 알리야가 혀를 쯧쯧 찼다.


아직도 그래?”

그치만, 그러니까.”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리는 마리네뜨에 이제 알리야가 한숨을 쉴 차례였다. 언제나 똑부러지게 자신의 일을 결정했던 제 친구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도.


마리네뜨. 이 알리야 선생님이 진단해보자면, 넌 너무 일만 한 게 문제였던 것 같아.”

?”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눈으로 묻는 마리네뜨에게 알리야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잘 된 거 아냐? 나름 괜찮은 조건인 것 같은데.”

대체 뭐라는 거야 너?”

진짜 잘 되어보면 어떠냐는 거야. 그 녀석이랑~”

됐거든.곰은 가죽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데 벌써 팔 생각을 하면 되겠어?

에이, 그래도~”


 Il ne faut pas vendre la peau de l'ours :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프랑스 속담)


포기할 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눈을 반짝거리는 알리야의 시선이 좀, 아니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마리네뜨는 꿋꿋했다.


너 너무 재미있어 한다?”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인생이 재미있지. , 잠깐만~”


신난 얼굴로 스마트폰을 꺼내 열심히 뭔가를 적기 시작하는 알리야를 지켜보던 마리네뜨가 피식 웃었다.


하여간에, 블로그가 그렇게 재밌어?”


가볍게 묻는 마리네뜨에게 알리야도 역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 뭐 레이디블로그를 운영할 때만큼 구독자가 많지는 않지만, 재미있어.”


먹은 포장지를 정리하던 마리네뜨의 손이 잠시 멈칫했지만, 화면에 열중하고 있던 알리야는 눈치채지 못했다. 태연한 목소리가 알리야의 귓가에 날아들었다.


어떤 포스팅을 올리는데?”

, 이것저것? 제빵 결과물에 대해 올릴 때도 있고, 일상 얘기를 할 때도 있고. , 올렸다.”

뭘 썼는데?”


알리야의 스마트폰 화면을 힐끔 쳐다본 마리네뜨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

[요즘 친구가 괜찮은 남자랑 만나고 있는 것 같은데, 저한테는 얘기를 안해주네요~ 쑥스러워서 그런 거라면 하루빨리 속시원히 털어놔줬으면 좋겠는데~ 보아하니 이미 좀 생각이 없지는 않아 보이.]

! 이게 무슨 짓이야!”


재빨리 제 폰을 뺏으려고 날아드는 손을 가볍게 피하며 알리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헤헹, ? 틀린 말도 아니잖아~?”

아주 많은 문제가 있거든? 이리 안 내놔?”


춉춉 손을 뻗어 제 스마트폰을 가져가려는 마리네뜨의 손을 익숙한 몸놀림으로 피하면서 알리야는 깔깔 웃었다.


오늘도 즐거운 점심이 될 것 같다.



 

학교 교정에 깔린 풀밭 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화창한 날씨라 다들 피크닉 분위기를 내고 싶은 건지 샌드위치나 빵을 먹으며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물론 나타니엘은 그런 풍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언제나와 같은 나무 아래에 기대어 앉아,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채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청년의 제법 단정한 생김새가 지나가는 행인 몇의 눈길을 끌었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아 비스듬한 햇빛을 맞으며 휴식을 만끽하고 있는 미청년이라니, 제법 명화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말없이 그저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던 나타니엘의 고개가 천천히 내려오더니, 아직 백지 상태인 스케치북으로 향했다. 멍하니 텅 빈 여백을 마주하고 있던 나타니엘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에 살풋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보다 꽤 소란스럽네.


연필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던 나타니엘의 손이 크림색 종이 위로 한 획을 그었다. 홀린 듯이 손을 움직이고 있는 나타니엘의 스케치북에 누군가의 인영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나타니엘은 정신이 든 것처럼 화들짝 놀라 손을 멈췄다. 자신이 그려낸 무언가를 내려다보며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뭐 하는 거지.”


종이 위에 그려진 것은 아직 사람이라고 할 정도의 윤곽 뿐이었지만, 나타니엘은 자신이 누구를 그리고 있었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갑자기 왜?


마리네뜨를 다시 만나고부터 조금만 긴장을 놓으면 무의식적으로 이런 짓을 한다. 본능대로 손을 움직이다가 나중에 정신이 들고서야 자신이 뭘 그리고 있었는지 깨닫는 것은 제가 본격적으로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하고서부터 생긴 습관 중 하나였다. 물론 진짜로 중요한 작업물과 달리 가볍게 그릴 수 있는 그림에서만 그런다지만, 최근 들어 생긴 이러한 충동은 나타니엘로서도 퍽 당황스러웠다.


요 몇 년간 사람을 그려본 적이 없었는데.


이유는 알고 있다. 가만히 그림 속에 남겨진 제 무의식을 바라보았다. 환하게 웃어보이는 종이 위의 사람은 지금의 그일까, 아니면 예전의? 허락도 없이 초상화를 그려도 괜찮은 걸까? 어린 시절에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펜을 놀리곤 했었지만, 지금은 왠지 조심스럽다. 그 때보다 옆에 있는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가? 들키면 혹시 나를 꺼려하게 되지는 않을까, 오해하게 되지는 않을까. 어렸을 때는 떠올리지 못했던 갖가지 잡념들이 떠오른다.


어른이 되어서인가.


이만치 나이를 먹고 나서야, 짝사랑이란 무엇인지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이상하지, 분명 우리의 거리는 예전보다 지금이 더 가까울 텐데 어린 시절에는 네게 지금보다 더한 친밀감을 느꼈었다. 너는 나에 대해 모르지만, 나는 너에 대해 많이 알았으니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그건 지금까지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나의 자그마한 비밀이었다.

시간과 함께 묻어둔 줄만 알았던.


연필을 들어 얼굴 위에 몇 개의 획을 더 그었다. 그림 속 누군가의 눈가 주변을 가면처럼 감싸고 있는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하늘빛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 나타니엘!”

히에엑?!”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나타니엘은 하마터면 스케치북을 놓칠 뻔했다. 몇 번 손가락 위를 통통 튀어가던 스케치북을 허둥지둥 붙잡은 그가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았다. 길을 지나가던 마리네뜨와, 옆에 서 있는 알리야를 발견하고 나타니엘은 작게 숨을 들이켰다. 침착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림 그리고 있었어?”


친근하게 묻는 마리네뜨에 나타니엘은 더욱 당황했다. 스케치북으로 얼굴을 가리고픈 충동을 겨우 참아냈다.


, 너는?”

나는 알리야랑 같이 점심 먹고 다음 수업 준비하러 가려는 참이었어. , 이쪽은.”


알리야를 가리키며 마리네뜨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나타니엘이 차분히 대답했다.


알리야 세자르.”

, 알고 있었어?”


어리둥절해하는 마리네뜨와 달리 나타니엘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던 알리야가 히죽 미소지었다. 안경알 너머 눈동자가 뭔가를 알아챘다는 듯이 반짝거리며 다시 말을 꺼내는 나타니엘을 관찰했다.


늘 붙어 다녔잖아. 뒤퐁교 때부터.”

하긴, 5년 전 일이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네. 나도 단번에 알아봤으니까!”

아니, .”


그렇지. 무언가를 얼버무리는 듯이 힐끔 시선을 피하는 나타니엘에게 마리네뜨가 웃으며 대답했다.


너는 예정이 어떻게 돼?”

오늘은 더 수업이 없어서, 과제를 마저.”

넌 언제나 과제를 하고 있는 것 같아. , 나도 그렇지만! 미술학도는 이래서 고달프다니까~”


쭈욱 기지개를 펴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마리네뜨를 지긋이 쳐다보던 나타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지가 나오게 다시 접은 스케치북을 옆구리에 끼고 천천히 마리네뜨에게로 다가온 나타니엘이 입을 열었다.


수업, 뭐 들으러 가는데?”

? 전공 관련인데 드로잉 쪽이야. 근데 그건 왜?”

……나도.”

?”

나도 같이 가도 될까? 청강.”

, 진짜? 너 드로잉에 관심 있었어?”

그림 계열은 다 좋아하거든.”


마음을 굳혔는지 제법 단호하게 대답하는 나타니엘에 마리네뜨는 어느 정도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알리야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억눌렀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어째 영 심상치 않은걸~


알리야는 가만히 제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살펴보았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하나로 느슨하게 묶은 얼굴은 수수하긴 하지만 단정하고 차분한 인상이다. 전형적인 예술계 미인. 제 귀에 들려온 이야기대로라면 아마 꽤 인기가 있겠지. 알리야는 눈 앞의 남자에 대해 들었던 소문들을 찬찬히 떠올렸다. 아트 과에서도 손꼽히는 천재 중 하나로, 협조성은 부족하지만 차분하고 조용한 타입의 미인이라고 하던데 확실히 그런 인상이긴 했다.


시간이라는 게 무섭긴 무섭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알리야는 새삼스레 자신들이 나이를 먹었다는 걸 자각했다. 기억을 탈탈 털어서 떠올린 옛날의 나타니엘은 상당히 흐릿했고 존재감이 없었다. 그렇던 녀석이 이만큼이나 달라지다니. 지금도 그리 눈에 띄고 싶어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열심히 마리네뜨에게 어프로치하는 걸 보면 좀 귀엽긴 하다.


결국 선택은 제 친구의 몫이겠지만.


둘이 사이 좋네~”


놀리듯이 말하는 알리야를 돌아보며 마리네뜨는 눈을 깜빡였다.


?”

나 슬슬 전공과목 시작할 시간이거든? 먼저 가볼테니 나머지는 알아서들 해봐~”

, 알리야!”


히죽이죽 웃으며 뛰어가는 알리야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마리네뜨가 나타니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그럼 이제 우리도 가볼까?”


읏고 있는 마리네뜨의 뒤쪽에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한 무리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중 누군가를 본 나타니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나타니엘?”


갑자기 말이 없어진 나타니엘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마리네뜨가, 천천히 나타니엘이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서로를 둘러싸고 이야기하며 걷고 있었는데, 무리의 중심에는 금발의 남자가 누군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양을 닮은 금빛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따사로이 반짝였다. 마리네뜨는 조금 놀라는 듯하다가도, 곧 덤덤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얘기하던 중 얼핏 마리네뜨가 있는 쪽을 쳐다본 남자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주변을 둘러싼 친구들이 뭐냐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저기, 아는 사람이 있어서.”


멈춰선 무리 속에서 남자는 혼자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나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손을 뻗으면 겨우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멈춰서서 남자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색한 것 같으면서도 차분하게, 그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


두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초록빛 시선은 온통 마리네뜨에게로 쏠려 있었다.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로 마리네뜨는 그저, 작게 웃었다.


안녕, 아드리앙.”


건조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


쨘 오늘이 만우절이라서 거짓말인줄 아셨죠? 놀랍게도 진짜였답니다! 만우절엔 진짜를 가져와야 낚시를 성공할 것 같아서^ㅁ^


업로드 날짜를 보니까 정말 제 게으름이 통탄스럽네요. 하지만 이미 연재주기가 불규칙할 거라고 말씀드렸으니 이해해주실 거라 믿습니다ㅇ.<


제가 숫자를 잘못 적었는데 전편이 프롤이고 이번 편부터 본격적인 본편입니다. 그래서 부제에 1을 붙였어요 2가 아니라.

일단 2편까지는 가야 과거사가 대충은 나올 거 같은데 2편 언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손 정말 굳었네요 콘티를 즉석으로 짜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새삼 실감하고ㅠ

배경은 이미 다 짜둔 상태라 자세한 건 2편에서 보실 수 있을 듯합니다. 아드마리 사이가 어떻게 보이려나 모르겠네요 나름 지망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말이죠ㅠ 의도대로 잘 보였기를 바랍니다ㅇ▽ㅇ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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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어?


말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주된다어조의 높낮이단어를 발음하는 장단이나 그 끝처리에 이르기까지얼굴 표정이나 눈빛에 따라서도 그 느낌이 달라진다누군가는 비웃듯이누군가는 호기심에또다른 누군가는 긍정으로도부정으로도 그 말을 입에 담았다.


같은 이름을 가진 수많은 물음 속에서 나의 대답은 너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어졌다.


처음 봤을 때부터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었다소리내어 말하기에는 퍽 창피한 감상인지라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었지만덕분에 네게 제대로 인사하지조차 못했다제 얼굴을 흘깃 스쳐가는 총명한 눈동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심장이 조금 빠른 속도로 뛰었다중요한 무언가를 찾은 것처럼.


그것을 증명하듯 너는 매 순간 반짝거렸다당시 나에게는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만큼 너의 주변은 마냥 조용하지만은 못했고여러 가지 사건들도 터졌지만 그래도 너는 씩씩했다힘든 일이 있어도혹 야단을 맞거나 크게 문제가 터져서 풀이 죽어 있다가도 곧 다시 밝게 미소짓고는 했다.


네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늘 한참 떨어진 곳에서 너를 지켜보았다너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고 언제까지나 네가 웃어주기를 바랬다너와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주고받은 날은 유독 기분이 좋았다아니나를 돌아봐주지 않는 네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는 순간이 있을 정도로,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아 재잘거리는 너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네가 스쳐가는 한 순간의 모습들을 기억되기 좋은 형태로 담아내는 것이 즐거웠다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뿐이라나는 그저 뒷자리에 앉아 계속 너를 그리고 또 그렸다마치 너에 대한 내 마음을 쌓아가는 것처럼점점 다양한 너의 모습들이 담겨져가는 스케치북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속으로만 품었던 연정이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가는 것을 알았음에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조금만 더.


너에게 조금쯤 더 자연스럽게 말을 붙일 수 있을 정도가 되면그때는 괜찮지 않을까너한테 말해도 되지 않을까꾹꾹 눌러담았던 마음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리는 순간이 오면그 때는 말하자너에게 제대로용기를 내어서.


나름 괜찮은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난 그냥 떼어내려고 한 거야!”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네 목소리와 같이 들려오는 목소리는 당황했는지 살짝 더듬거렸지만 듣기에 나쁘지는 않았다그렇게 생각한 것은 자신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당시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어째서 네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까?


그 애를 쳐다보는 네 모습에 초조해졌다너를 발견하고시선을 따라가면 언제나 그 끝에는 그 녀석이 있었다태양처럼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과 선연한 초록색 눈동자를 지닌 소년누구든지 동경할 만한 존재를 바라보는 너의 얼굴은 내가 그간 보아왔던 모습들 중 최고로 반짝거렸고나는 그게 보기 좋으면서도 싫었다질척하게 올라오는 감정들이 당황스러웠다덮쳐오는 감정들을 겨우 피했다치면 그 다음으로는 후회가 몰려왔다후회를 물리치고 나면 자괴감이 들었고자괴감이 지나가고 나면 몰아치는 자각에 너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왜 좀 더 빨리 네게 다가서지 못했을까.


그저 현재에 안주했던 방관자로서의 자신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너를 바라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즐겁지만은 않았다나는 매일 나도 모르는 새로운 나를 만났고그 녀석과 싸우는 것만도 힘에 버거웠다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들은 너를 향해 쌓아올린 애정만큼이나 무겁고 어두웠다따뜻해졌다가도 싸늘해졌다속이 끓어올랐다그런데도 너에게로 향하는 내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그것이 답답했다.


너는 나의 가을이었다.

자각과 함께 말라버린 나뭇잎처럼 떨어지기 시작하는 희망은 이미 결말을 예고하고 있었다.


네가 아드리앙과 사귀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에는글쎄무슨 생각을 했던가.


그렇게 놀랄 일이야?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내게 너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당해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나는 대응보다는 체념을직면보다도 도피를 선택했다그도 그럴 게 두 사람은 누가 보아도 정말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내가 그 녀석보다 나은 상대라는 오만함 따위를 부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자신보다는 그가 더 좋은 연인이 되어줄 것이라고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그래그렇게 이해하는 척 하려고 애썼다.


도망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못할 정도로 자신은 겁쟁이였다어느 날 변덕스럽게 작은 희망이 샘솟았다가도그 녀석의 곁에서 미소짓고 있는 너를 보면 다시 바스라졌다너는 정말로 행복해 보여서내가 그 이상으로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미친 듯이 자신을 몰아세웠다몰아치는 일들에 지쳐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그저 너를 떠올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았다아직 어리고한심하고비겁했던 당시의 내게는 방관만이 가장 나은 선택으로 보였다.


다른 소모적인 것들을 마음 속에 쌓아올리기 시작했다무엇이든너에 대한 것만 아니라면여유를 지워내고 이미 있던 감정들을 가려버릴 것들을 계속해서 쏟아부었다.


밀어내고 밀어내고 밀어내고네게 품은 연심(戀心)을 마음 깊숙하게 자리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꾸깃꾸깃 몰아넣었다마음 속은 복잡했고 정리되지 않아 어지러웠지만 그저 방관했다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 게 있었던가라는 감상을 떠올리게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다른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나서는 그래도 좀 나아졌다눈앞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슬픔은 점점 무뎌졌고 괴로움은 줄어들었다그래도 너를 보던 시절만큼 세상이 반짝거려 보이지는 않았다모든 것에 무덤덤했다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보아도 그 순간이 지나면 감정은 빠르게 식어갔다마치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잠깐의 햇살이 사라지면 다시 몸은 싸늘해진다찬란한 햇빛 아래에 서 있는 모두에게서 격리되어 어두운 그늘에 붙들려 있었다손을 뻗으면 잠시나마 따뜻했지만 그뿐이었다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적어도 더 이상 아프지는 않으니까.


하얀 캔버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커다란 캔버스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그림을 그릴 때만이 그나마 조금은 살아있는 것만 같아서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작업실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주로 풍경 위주로 그렸지만 간혹 인물은 안 그리냐는 질문이 들어오기도 했다그 때마다 내 대답은 하나뿐이었다스스로가 듣기에도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난 사람은 안 그려.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겨울이라 그런지 하늘이 꽤 어두웠다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회색으로 덧칠해진 허공에 하얀 눈송이들이 점처럼 찍혀갔다회빛의 아스팔트 위로 하얀 눈이 죽어버린 감정의 잔해처럼 소복이 내려앉았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손을 움직였다물감을 섞어 캔버스 위를 덧바르는 손길이 거침없었다그럼에도 심장 한 구석이 묘하게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너무 긴장을 놓았나방심해버린 자신을 조금 탓했다.


느슨해지는 순간 튀어나오고 마니까.

무엇이든.


몇 번의 겨울을 거치고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대학을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학교조차 안 가면 정말로 아무런 자극도 없는 매일이 될 것 같았다무엇보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웠다정확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은 순간에.


그간 해놨던 것들이 헛수고는 아니었는지여러 대학에서 추천장이 들어왔다가장 조건이 좋은 곳을 골랐다다른 것에는 그리 큰 관심이 들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림 한정으로는 꽤 욕심이 많았다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그래서.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순수 미술이라 그냥 그림만 그리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생각보다 시키는 것도 많고 그게 꼭 그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대학까지 와서 관심도 없는 과목을 공부해야 하다니속으로 짜증을 뱉으면서도 일단 공부는 했다졸업은 해야하니까.


사람들에 이리저리 치이는 것도 고역이었다어린 시절만큼 낯을 가리는 건 아니었지만 여전히 떠들썩한 분위기는 썩 익숙하지 않았다친구라 불릴 만한 관계가 여럿 생기면서 좀 즐거워진 건 사실이었다확실히 같은 과 소속인 만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그 전보다 훨씬 많았다자신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고평화로웠다혼자 있는 것은 여전히 조금 어려웠지만 예전보다는 견딜 만 했다혼자서 감정을 곱씹던 시절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구나.

조금 깨달음을 얻었다.


신학기가 되었다.


익숙하지 않았던 처음과는 달리 자신도 이젠 제법 적응기를 거친 건지 나름 여유로웠다.


따뜻한 햇볕이 겉도는 강의실 창가에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오늘 날씨가 좋은데간만에 밖에서 그림을 그려볼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새하얗게 책상 위로 스며드는 햇살이 경주하듯 강의실의 안쪽으로 달려나가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귓가에 나뭇잎들이 바람을 타고 사락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바깥에서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시야를 간간히 흐트렸다.


머리가 너무 길었나슬슬 잘라야 할 텐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던 중 왁자지껄한 소리에 섞여 어떤 목소리가 귓가에 콕 박혔다목소리인가번뜩 고개를 돌려 제 앞을 바라보았다.


푸른 끼가 도는 새카만 머리카락이 바로 제 앞에 있었다바로 아래쪽 의자에 앉아 있는 뒷모습이 익숙했다눈을 깜빡거렸다메말라있던 심장이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흑백이던 세상이 멈추고색이 번져가기 시작했다무언가의 감정이 제 심장을 적셔갔다작동을 멈췄던 기계가 다시 움직이는 것처럼 확 밝아지는 시야에 놀라기보단 당황스러웠다.


분명 잊고 살았을 터인데.


심장소리가 온 몸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시끄럽게 귓가를 때려대는 소리에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충격을 받은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손끝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가머뭇거렸다살짝 움직이려다가 또 제자리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제 앞의 어깨를 살며시 붙잡았다손 끝에 닿는 옷자락의 감촉보다도내 기억 속보다 훨씬 작아진 네 어깨가 신경쓰였다.


리네뜨?”


조심히 불러보았다느릿하게 제 쪽을 돌아보는 얼굴은 기억 속에 남았던 모습 그대로였다다른 학교를 간 후로 한 번도 마주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떠올리지 않았던 건 아니다아주 가끔씩제가 약해져 있는 순간에 불쑥 떠올라서 나를 건드리고 지나갔었다자꾸만 입 안에 침이 고였다긴장하는 자신을 들키지 않게 부던히 정신을 다잡았다.


어라?”


햇살 한 줄기가 너의 어깨를 붙잡은 내 팔을 슬그머니 건드렸다묘하게 올라오는 따스함에 울컥 감정이 치밀었다.


아아맞다나타니엘이지?”


오랜 겨울의 끝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울고 싶었다.

 

 

 


===

안녕하세요, 리네입니다.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은 오랜만이네요. 현재는 포스타입에 상주하고 있습니다. 다만 레이디버그 연성은 대개 이 블로그에 올리다보니 통일하는 게 편할 거 같아서 여기를 선택했습니다.


손가락 재활 겸 간단하게 쓰려고 시작한 건데 프롤만도 4천자가 되었군요. 음 그래도 시작은 좀 제대로 가야 할 거 같아서 나름 노력했습니다. 손가락 정말 안 굴러가네요 회지 이후로 글을 몇달이나 안 썼더니...

일단 표기 보시다시피 나타마리아드구요 메인은 나타마리입니다. 번호가 붙은 것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다음 편도 나올 거 같네요. 아드리앙이랑 사귀다가 처참하게 깨진 마리가 몇 년 뒤에 나쓰랑 재회하는 내용입니다 써놓고 보니 스포같지만 뭐 담편에 나올텐데요(?

해피엔딩을 예정하고 있으나 셋다 좀 많이 구를 거 같습니다 후후. 페이지는 잘 모르겠는데 중편 정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길게 끌 내용은 아니라서.

정말 생각없이 쓰고 싶어서 기획한거니 스토리퀄을 크게 기대하지는 마셔요. 그냥 가볍게 가겠습니다 가볍게. 잔잔한 이야기로 갈 것 같습니다. 텀은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너무 바빠서; 그냥 하루 두시간씩 써보고 편수를 채우면 올리지요 뭐. 지금 마감 좀 끝내고.. 콘티 정말 애들 현재 포지션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안 짜놔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굴려야 할 거 같습니다 와 이런 거 오랜만이라 좀 설레네요(?

한번쯤 토마토에게 해피엔딩을 줘보고 싶다는 충동 하에 쓰기 시작했습니다만 그렇게 순탄한 해피엔딩은 아닐 것 같네요. 이 정도가 아니면 나쓰가 사랑을 쟁취하기는 어려울 거 같아서 이렇게 쓰긴 했지만... 필자의 최애컾은 아드마리입니다만 제 최애컾은 메이저이니 다른 분들 연성만으로도 충분해서(?)

웹에 쓰기 시작하면 묘사퀄을 너무 신경 안 써서 한글에 쓰기 시작했더니 묘사가 그나마 좀 봐줄만하군요. 스토리가 아니면 시간 들이기 귀찮아하는 성격 좀 고쳐야하는데..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기쁩니다. 다음 편은 언제 들고 올지 모르겠지만..

다들 나쓰와 마리와 아드리앙의 고통을 위하여 건배해주세요^ㅁ^(모두: 저기요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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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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