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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의식의 흐름. 귀능다나가 대부분이지만 마지막 오프레는 모래랩터헤이..]



<나이프귀능 스푼오르카 일부>


나이프귀능은 진짜 귀능이가 은근히 막 들이댈것같다 ㅇㅁㅇ 그리고 서장님은 혼란이 오고...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죽여버릴까 생각하다가도 귀능이가 서장님 앞에서 묘하게 약한 면 보여줬으면 좋겠어 동정때문에라도 헤어나오지 못하게ㅠㅠㅠㅜㅠ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것들은 말해주지 않고... 그러다보니 다나는 얘가 생각하는 건 모르겠고 그런데도 휘둘리는 자신이 짜증나고 ㅇㅇ 귀능이는 귀능이대로 스푼을 나설 때 모두 버리자고 생각한 마음이 자꾸 커져가서 당황스럽고ㅋㅋㅋㅋ


귀능이가 은근 똘끼가 있어서 나이프에 들어가도 겁내 어울릴 것 같고 오르카는 은근 착해빠져서ㅋㅋㅋㅋㅋㅋㅋ스푼해도 사실 잘할듯... 사실 스푼오르카의 가장 재밌는점은 오르카가 사랑과 정의 사이서 갈등하는 거라고 봅니다^^

귀능이랑은 좀 다른게, 내가 봤을때 귀능이는 정의보단 서장님한테 더 집중하는 느낌이고 오르카에게 있어 정의란 중요한 덕목이라.. 메두사를 좋아하더라도 쉽사리 양지를 포기하진 못할듯. 그런 오르카가 갈등하고 조금조금씩 타락해가는게 스푼오르카의 묘미죠^^



<다른 느낌의 나이프귀능 스푼오르카>


귀능이가 나이프라고요? 헐 그럼 이거 진짜 로미오와 줄리엣 수준 아닌가요 귀다ㅋㅋㅋㅋ갑자기 보스인 백모래 눈 피해서 서장님을 꼬시려는(?) 귀능이가 보고싶네요 골목쪽에서 나타나선 서장님 붙잡아 끌어당겨서 보고 싶었어요~ 하며 해맑게 웃는거ㅋㅋㅋ

근데 다나는 악당새끼한텐 관심없다 이러면서 칼같이 쳐내고 귀능이는,


'에에~ 악당은 사랑도 못하나요?'

'니놈 보스랑 똑같은 소리하지마 소름끼치니까.'

'그래도 전 서장님이 좋은데~'

'그럼 스푼에 들어와라'

'에 그건 싫어요^^'


의 반복입니다 ㅇㅁㅇ 여기선 귀능이가 원래 나이프였던 설정인지라 좀 더 능글맞고 대답해요 ㅇㅇ 다나가 마음에 들어서 꼬시려고 대쉬하는 귀능이와 철벽인 다나. 그럼에도 계속 들이대는 귀능이 클라스...ㅋㅋㅋㅋㅋ



사실 귀능다나가 내 취향인 거 중에 하나가 연하연상... 존댓말하는 연하에 반말하는 연상 게다가 여자 쪽이 겁나 세다는 것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솔직히 평소에는 지다가도 결정적일 땐 존댓말하면서 상대를 이겨먹는 연하를 좋아하는데 진짜 이건 나와도 잠깐일듯 서장님은 정말 분위기에 휩쓸릴 것 같지 않은 타입이라...ㅋㅋㅋㅋㅋㅋㅋㅋ




어 저거 괜찮다 패러랠로 저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김귀능이와 다나 사장님... 카페면 분명 사람 많이 오겠지 사실 귀능이는 계속 다나를 짝사랑하다가 기회다 싶어 접근한거고 다나가 남자를 안 뽑으려고 했던건 여동생 혜나한테 수작부릴까봐(...)

그러나 저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데다 헤실거리는 멍청해보이는(...) 얼굴과 다르게 명문대생인 귀능이!! 다나는 일단 몸싸움에 능한 30살 오빠(?)로..(여잡니다 여자요) 아무튼 원래도 꽤 큰 카페라 알바생들이 많아서 그들과도 잘 지내가던 귀능이..

고백은 정말 뜬금없이 했음 좋겠다 일한지 한 두달만에 아무렇지 않게... 물론 사장님은 철벽이라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데 그거 보고 귀능이가 살짝 속상한 듯이 웃는데 그 후로 다나는 귀능이가 묘하게 신경쓰이는 거지 ㅇㅇ(근데 사실 김귀능의 계략이었다




나는 다나라면 분명 눈물 흘리면서도 표정변화는 없을거같아... 가령 귀능이가 죽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귀능이 빈자리 느끼고 축 처져있으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냐고 조용히 나무랄듯(얼굴 안 보이고 뒤돌아서) 그리고 사원들이 어떻게 그러냐고 말하면 가만히 듣고있다가 결국 버럭 소리지르지 않을까?


"어쩔 수 없잖아!"

"..."

"그 녀석은 이제 돌아오지 않아."


그래서 이상함을 느낀 사원들이 다나 앞으로 다가가서 옆얼굴 보는데 다나 눈에서 눈물 뚝뚝 흐르고 있는데 끝내 표정은 안 변하고... 입술을 으득 깨물고서라도 울음소리나 그런건 안낼 성격이라 생각해.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네놈 거기 잘 있냐고 회상하겠지 그러면서 조용히 애도하고 그렇게 끝나겠지.


물론 이건 밖에서고 혼자있으면 계속 생각하다가 얼굴가리고 윽 거리면서 조금이나마 울음소리를 내서 숨죽여 울지도 몰라. 이미 추억으로 사라져버린 녀석을 그리워하면서. 소파에 앉아서 눈물로만 슬픔을 흘려보내겠지.


내가 생각하는 다나는 이런 이미지 ㅎㅎ




음 갑자기 얀데레가 보고싶다 얀데레로 귀다 쓰면 백퍼 귀능이가 얀데인데 아주 얀데레는 아닐거같다 다나가 방심했을때 잡아서 특기 무효화하는 향이 피워진 방에 가둬놓고 다나가 풀어달라고 하면 싫다고 말하면서 능글거리며 웃을 거같아. 그러다가 다나가 화를 내려고 하는 순간에 귀능이 눈빛 싸늘하게 굳고 그거 보던 다나가 저도 모르게 흠칫하는데 귀능이가 곧 표정 다시 체인지하고 웃으면서 다나 입술에 쪽 하고 물러날거 같다 그리고 다나는 발광하며 화를 내겠지.

그렇게 몇날며칠 방에 가둬져 있는데 다나는 일단 태평하게 기다림 짜피 서장인 자기가 없어졌으니 스푼에서 난리가 났을 거고 조만간 구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 와중에 귀능이는 꼬박꼬박 다나한테 찾아오고 얘기 나누는데 어쩌다가 다나가 한눈팔면 얼굴이 다시 무서워지면서 손을 들어서 다나 얼굴 붙잡고 억지로 자기 쪽으로 돌리는 거지.


"서장님이 저말고 다른거 생각하는거 기분나빠요"


이러면서 ㅇㅇ 그런데 이상한건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가는데도 너무 소식이 없어 이 와중에 불안해진 다나가 귀능이한테 물었으면 좋겠다. 무슨 수작 부렸냐고 대놓고 물으면 흥분할지도 모르니까,


-야.

-네?

-날 언제까지 가둬놓을 셈이냐, 귀능아.

-...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냐.

-...

-너도 알고 있을텐데?


이렇게 귀능이를 조곤조곤 설득하려는데 귀능이가 갑자기,


-...서장님은 역시 저는 안중에도 없으시네요.

-하? 뭔 소리... 윽.


그러다가 다나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거지 표정 굳어서는 ㅇㅇ


-서장님이 나빠요.

-윽윽...!!

-왜 저만 봐주지 않는 거예요?!! 저한텐 서장님밖에 없는데!!


이러면서 미친듯이 목을 조르는 귀능이. 다나는 숨은 막히는데 빠져나가기엔 아직도 특기를 쓸 수 없어서 저항하려다가 문득 생각난게 있어서 걍 가만히 눈을 감고 있음. 그러고 있는데 얼굴에 뭔가 따뜻한게 닿길래 깜짝 놀란 다나가 번뜩 눈을 떠보니 귀능이가 눈물 흘리면서 하하 웃고있음. 벙찐 눈으로 자길 쳐다보는 다나를 바라보던 귀능이가 손에서 천천히 힘을 빼고 다나 위에 털썩 주저앉고 고개를 숙이는거야. 그러면서 허망하게 중얼거리는거지.


-하하, 역시 안 되는 건가..


얼굴이 앞머리에 가려져서 안 보이긴 하지만 눈물이 계속 후두둑 떨어지고 있음. 방금 전까지 목을 졸렸음에도 저도 모르게 걱정된 다나가 말을 검.


-너..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

-왜 제것이 될 수 없는거죠?

-..

-이렇게 좋아하는데..

-...나는 물건이 아니니까.

-그렇겠죠.

-...

-서장님이 3주 정도 휴가내셨다고 스푼에 말해뒀었어요.

-...

-잠시나마 꿈을 꾸고 싶었어요. 이제 곧 끝이라는 걸 알지만.

-...

-죄송해요.


그러면서 귀능이는 특기 무효화 향을 꺼버림 ㅇㅇ


수갑을 부셔버린 다나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귀능이는 이미 사라져버림. 그 후 무사히 스푼에 귀환하니 직원들은 귀능이가 말한대로 자기가 여행갔다온줄 알고있고 1년휴가를 졸지에 거의 다 쓰게된 다나는 일단 귀능이 오면 한대 때려주자 결심함.

근데 귀능이가 사라짐. 몇날며칠을 기다려도 출근을 하지 않는데 그건 이미 예상했던 다나가 귀능이 집에 쳐들어가봤는데 집에도 없음; 갈만한 곳을 다 뒤져봐도 없으니 좀 불안해짐 대체 어딜 간건지..


이건 일단 끝 ㅇㅁㅇ




오프레하니 그거도 좋겠다 헤이즈랑 모래가 형제고 모래가 오프에선 진짜 살가운 바른생활 청년인거~ 그래서 모래가 랩터 좋아하고 집착하는 흉내 내야되는데 너무 어려워서 형한테 물어보니까 헤이즈가 그냥 랩터가 뭔짓을 해도 헤실헤실 웃으면서 따라붙으라고ㅋㅋㅋ


모래: 아 형. "저.. 보고싶었어..." 여기부터 "사랑해줘" 까지 어떻게 하죠;; 너무 어려운데;;

헤이즈: 앙? 뭐야, 그거 간단하잖아?

모래: 뭔데요??

헤이즈: 그냥 니 필살기인 미소를 마구 지으면서 눈물만 뚝뚝 떨어뜨려.


(촬영중)

모래: (헤실헤실/눈물뚝뚝) 잘못했어...

랩터:

모래:(헤실헤실) 죽어도 안 놔줄거야~

랩터:

감독: 컷컷!! 모래씨 뭐하는 겁니까!! 표정 바꿔야죠!

모래: 아...그게 형이ㅠㅠ

랩터: ㅡㅡ; 야 헤이즈!!!!!


[그후에 엄청 처맞음]




랩터아역이 진짜 백모래 좋아하던 아역배우여도 재밌겠다 동경하던 오빠랑 연기하게 되서 붕붕 기뻐하면서 전 커서 오빠랑 결혼할거라며 촬영장을 멘붕에 빠뜨리고...(의불

모래는 아직 넌 어려서 안된다고 그러면 기껏해야 7-8년 차라고 호기롭게 답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모래 오프레 나이는 20-21살정도가 좋습니다 랩터아역은 한 13살쯤...? 헤이즈가 역시 같은배역 아니랄까봐 보는 눈도 비슷하다고 랩터 놀려라ㅋㅋㅋㅋㅋ


마지막은 랩터에게 체어샷 맞을뻔한 헤이즈로 끝내죠 ㅇㅅㅇ)/




썰정리 끝 ㅇㅁㅇ!! 별거 없다 이야 다행...

Posted by I.R.E
,

<정말 의식의 흐름을 정리한 거라 난잡할 수 있습니다 주의요망 ㅇㅁㅇ>

<썰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다듬은 부분은 읽으면서 확인해주세용^_^)/>

<츠바사를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상당수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츠바사 세계관으로 샤오사쿠 포지션에 헤이랩터, 쿠로파이에 귀능다나, 그리고 유코에는 영장 와타누키는 듄.

참고로 귀다 부분이 많습니다 ㅇㅁㅇ



그냥 영싫과 츠바사 크로스는 장르를 바꾸자 보수로 온갖 보석들을 받고 랩터의 기억의 깃털을 찾아주기로 한 헤이즈와 다나와 귀능이와 랩터의 4인조여행 ㅇㅁㅇ! 아 모코나도 같이!



뭐랄까 보석받고 깃털 구하는거 도와주는 거라고 (겉으로는) 말하면서도 사실은 원래 소꿉친구에 연인이었던 관계라 기억 못하는 랩터 보고 혼란스러워하고 속으로 고뇌하는 헤이즈 보고 싶다ㅇㅁㅇ

그래도 어쨌든 대가를 걸었는지라 깃털을 찾아도 자기를 기억못하는 랩터 보고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씁쓸해하고 자기 묘하게 멀리하는 헤이즈 때문에 속으로 맘고생하는 랩터....(가지가지함



다나는 일본국서 오수를 섬기다가 쫓겨난 거겠고 귀능이도 파이 과거대로라면 쌍둥이가 있고 학대받았겠지!ㅠㅁㅠ 둘이 투닥거리다가도 과거 상처 때문에 목을 긁는 귀능이를 속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다나랑 웃으면서도 그 속은 제대로 곪아있는 귀능이ㅇㅁㅇ


-네놈 무슨 생각이냐?

-예? 뭐가요, 다나 씨?(생글생글)

-그런 괴상한 얼굴 집어쳐.

-...

-억지로 입꼬리 올려봤자, 다 보이니까.(머리 툭 만지고 스쳐지나감


츠바사 귀다는 이런 느낌?(그냥 귀다잖아



와타누키는 듄이 묘하게 어울릴것 같단 말이야....




츠바사 크로스오버 헤랩.ver


물 속에 고요히 잠겨 있는 것 같은 부유감을 느끼던 중, 소녀는 순식간에 현실로 내동댕이쳐졌다. 번뜩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새까만 비단 위에 별가루를 흩뿌려놓은 것만 같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자신을 안아들고 있는 어떤 남자의 얼굴이었다. 안경을 쓴 백발의 남자. 꽤 준수한 얼굴이었지만 눈매가 살짝 올라가 있는 게 왠지 모르게 상당히 성격 나쁠 것 같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눈만 깜빡이던 풍성한 보랏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입을 몇 번 오물거렸다. 백지장처럼 하얗게 비워진 머릿속에는 아무런 정보도 들어있지 않아서,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제야 깼네."

"...당신 누구야?"

"그러는 너는 누군데?"

"몰라...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았을까. 헤이즈는 살짝 눈살을 찡그리면서도 순순히 말해주었다.


"...네 이름은 랩터야."

"당신, 나를 알아?!"

"알고 자시고, 난 그냥 부탁을 받았을 뿐이야."

"부탁?"

"뭐, 일종의 거래지. 네 지인의 의뢰를 받았다."

"의뢰라면..."

"네 불완전한 기억을 수복할 때까지 너를 데리고 다니며 보호해달라고 말이야."

"..."


경계하는 듯한 랩터의 눈초리에 헤이즈는 싱긋 웃었다.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 있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불온한 느낌이 팍팍 풍겼다. 제 딴엔 웃으려고 한 것 같은데 참으로 악당처럼 보였다. 더 웃긴 건 남자 본인도 그걸 분명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이쿠, 걱정하지마."


받은 보석값만큼은 제 할 일을 할 테니까 말이지.




츠바사 크로스오버 2. 귀다 ver.


"다나씨 다나씨~. 다나씨는 뭐하자고 이런 거래를 받아들인 거예요?"

"뭐?"

"솔직히 상당히 사기적인 느낌 다분하지 않았나요."

"모험이라도 상관없어."

"..."

"반드시 돌아가야 할 장소가 있으니까."

"일본국이라고 했던가요, 거기?

"그래."

"조금은 부럽네요."

"뭐가?"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있어서."


생긋 웃는 입매와는 달리,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조금은 슬퍼보이는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뭔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이내 시선을 거둬들였지만.


\


"당신이 죽길 바라지 않아요."

".."

"이 손 놔요!!"

발버둥치는 녀석의 팔을 있는 힘껏 붙잡았다. 소리질렀다.

"헛소리 하지마! 무슨 빌어먹을 놈의 희생이냐!"

".."

"놓으면 죽여버린다."

"..참, 곤란해요."

당신을 보면 자꾸만 살고 싶어져.




츠바사 크로스오버 ver.3 유코영정 와타듄


"다녀왔습니다 영정님.

"어머, 어서와.

"무슨 생각이십니까?

"뭐가 말이지?

"(낑낑 끌고온 커다란 물동이를 가리킴)어디다 쓰시려고 이런 걸 가져오라 한거냐구요!

"걱정 말아요. 곧 알게 될 테니까.(싱긋



이제부턴 그냥 의식 흐름대로 가겠습니다.

츠바사 크로스오버 썰은 (정말 안 어울리지만) 샤오사쿠 포지션에 헤랩이 들어가고 쿠로파이 포지선에 귀다, 소원을 들어주는 마녀 유코는 영정님 와타누키는 듄으로 하겠습니다 ㅇㅇ 모코나는 모코나로!ㅇ.<


츠바사 초반처럼 랩터가 영혼의 깃털을 날려먹고 기억을 잃고, 그런 랩터의 영혼을 깃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랩터 본인과 깃털 하나를 챙겨 영정에게 날아간 헤이즈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다나와 어떻게든 떠돌아다녀야 하는 귀능이가 만나 4인조를 이루고 여행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각각 대가를 지불하죠.


다나는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제 능력인 금강불괴를 대가로 지불할까 했지만 그건 너무 대가가 크다고 유코가 거절하며, 결국 다나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대가로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이 머리카락이 거기서 군신의 상징 뭐 이런 거였던 걸로...? 여기서 다나는 이 머리카락을 무척 아꼈던 거라 칩니다. 이때 머리를 자르고 부서장다나에서 서장 다나가 된 걸로 설정조합을 ㅇㅁㅇ


귀능이는 어쩔까 고민하다가 결국 유코의 말대로 눈물을 머금고 자신이 이제껏 모았던 세크룬 컬렉션들을 지불하기로 합니다ㅋㅋㅋㅋ

귀능: 크윽....뀨우우우우...............


그리고 원작대로, 헤이즈는 랩터에 대한 자신의 존재성을 지불해요. 이유는 절대 돈은 내놓기 싫어서(...)(소꿉친구를 구해주는 거라도 일단 돈은 받고 본다) 는 사실 겉보기적인 이유고 헤이즈는 사실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는 타입이 아니라(돈도 취미일뿐) 정말 절박하게 차원여행을 해야 하는 두 사람과는 달리, 별로 대가로 지불할 만한 게 없었기 때문. 어쨌든 그는 랩터를 구하고자 그녀와의 관계성을 대가로 내놓고 같이 여행하게 되요.


일단 랩터는 원래 헤이즈랑 아는 사이였지만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 랩터는 헤이즈와 사사건건 투닥거리는 사이일 뿐이고, 귀능이랑 다나는 어느 정도 그들의 관계에 대해 눈치챘지만 그닥 말로 꺼내지 않습니다. 여행을 하고 깃털을 하나 둘 찾아가면서, 점점 자신에 대해 알아가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랩터에게 헤이즈는 섭섭함과 함께 묘한 박탈감을 느끼게 되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그렇질 못해서 그런 자신을 들키기 싫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랩터랑 거리를 두게 됩니다. 그리고 이유를 알지 못하는 랩터는 화가 나지만 뭐라 말을 꺼내지도 못하죠.


"이번엔 수입이 제법 짭짤하단 말이지~."

"저기, 헤이즈."

"뭐냐."

"너, 무슨 일 있어?"

"아무 일 없는데."

"근데 왜 나를 피해?"

"피하다니. 내가 왜 너를 피해다녀야 하냐?"

"...나랑 여행하기 귀찮아졌어?"

"아니? 오히려 좋은데? 너랑 같이 있으면 돈 들어올 곳이 많단 말이지."


정성스레 매만지던 보석을 내려놓고 헤이즈는 의자에 기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제 시선을 피하려 그런다는 사실을 랩터가 모를 리 없었다.


"내가 뭐 잘못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제 손 위로 닿아오는 온기에 화들짝 놀랐는지 눈을 뜨고, 헤이즈는 재빨리 그녀의 손을 쳐냈다. 탁 소리와 함께 거부당한 손을 붙잡고 랩터는 조금은 상처받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헤이즈...?"

"야, 미안."


내가 오늘은 좀 피곤해서. 대략 얼버무리며 헤이즈는 랩터의 팔을 붙들고 문 쪽으로 끌고 갔다. 밖으로 집어던지듯 그녀를 내보낸 뒤 쾅 문을 닫아버린 그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무슨 멍청한 생각을 하는 거야, 나?"


지불한 대가는 돌아오지 않아.

저 바보 녀석을 구한답시고 걸었던 대가가 이렇게 뼈아픈 것일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전 재산을 거는 게 나았으려나.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저 녀석은 영영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왠지 조금은.. 그래, 인정한다. 서운했다. 이제 와서 미련을 가질 군번은 아닐 텐데 왜 이리도 기분이 찝찝할까.


천천히 걸어서 다시 의자에 걸터앉은 헤이즈가 꾸러미를 뒤적거렸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보석이 그의 손 끝에 살짝 걸렸다. 비록 크기는 작았음에도 무척 영롱한 자주빛으로 빛나는 자수정. 꾸러미에서 나온 보석을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아깝고 아깝다는 얼굴로 그는 손 안의 보석을 손바닥 위에서 살며시 굴렸다. 이 보석과 닮은 한 소녀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휙휙 고개를 돌려 지우려고 애써도 잔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헤이즈는 결국 고개를 내젓다 한숨을 쉬었다. 보석을 움켜쥐었다.


"뭐, 이 정도쯤은."


투자해도 괜찮을려나.



그리고 귀능이랑 다나는 뭐.. 일단 처음에는 굉장히 충돌하겠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다나와 달리 귀능이는 자신의 나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아하니까. 일단 성격도 꽤 대비되고.


무뚝뚝하지만 정도를 아는 다나와 가볍고 능글해 보이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귀능이. 그런 귀능이에 다나는 답답해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고, 귀능이는 귀능이대로 꽉 막혔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다나의 삶의 방식을 부러워할것 같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원래 나라로 돌아가겠다는 다나와는 달리, 귀능이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돌아갈 곳을 버렸던 거니까. 아마 삶에 별로 미련은 없지 않을까? 그리고 다나는 그런 귀능이의 모습에 정말 많이 화를 낼 것 같다...


일단 다나에게 헤이즈는 물에 빠져죽어도 돈이 든 주머니만 둥둥 떠오를 것 같은 물귀신, 랩터는 자고 있을 땐 몰랐는데 깨어나니 상당히 당차고 씩씩한 멋진 여자, 그리고 귀능이는 굉장히 태연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깨어진 것처럼 불완전한 느낌이 드는 존재.

그런 위태로운 느낌 때문에 다나는 제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유독 귀능이한테 신경을 많이 쓰겠지. 그리고 귀능이는 그런 다나의 마음을 애저녁에 눈치채고는 있겠지만 그 느낌이 좋아서 일부러 더 달라붙는거. 그래도 다나는 구박은 해도 쳐내진 않음


원작의 쿠로가네는 무뚝뚝하긴 했어도 의외로 팀원들에게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 다나도 그럴 것 같다... 그리고 파이는 애들한테 신경 많이 써주면서도 유독 자기 자신은 챙기지 않던데 오메나 세상에 귀능이도 진짜 이럴거같앸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몇 번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어쩔 때는 위험에 처한 랩터 감싸고 자기가 대신 상처를 입었는데 그마저도 다나가 구해주지 않으면 즉사킬이었음. 그런데도 헤실거리며 웃고 있는 귀능이 때문에 다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서 귀능이를 한 대 치려고 했지. 그런데...


"미친놈이!!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냐?!"

"하하, 큰일날 뻔했네요."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죽을 생각은 없었어요."

"..."

"정말이에요. 믿어줘요."


녀석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나는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자신을 쳐다보던 귀능이가 자아낸 묘한 표정 때문에. 슬프다고도 할 수 있지만 뭔가 기뻐 보이는, 그래, 마치 자신이 그를 챙겨준 게 견딜 수 없이 기쁘지만 그걸 솔직하게 기뻐할 수가 없다는 듯한 서글픈 미소를 짓는 거야. 아무튼 다나는 그런 귀능이의 무모하고 다 놓아버린 듯하면서도 그 한 순간 보여줬던 미소를 잊지 못하고 계속 신경을 쓰게 되지.


깔짝깔짝 사람 신경쓰이게 하는 놈 <- 다나의 평


귀능이는 아마 거의 처음부터 다나한테 호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원래 자신과는 반대의 것에 끌린다잖아. 원작의 쿠로가네처럼, 다나도 육체는 물론이거니와 마음도 강인한 사람이니까.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겠지.


어쨌든 귀능이는 비록 능글맞게 웃고만 있는 느낌이지만 꽤 강한 마력의 소유자인데 백모래가 보낸 수하한테 역시 한쪽 눈을 빼앗기고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다른 쪽 눈이 쓰면 쓸수록 마력이 늘어나는 쪽이라 더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죽으려고 하지만 다나가 영정에게 계약을 맺어서 다나 피만 먹을 수 있는 흡혈귀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왜, 왜!"

"..."

"왜 날 살렸어요."


갈증에 허덕이면서도 나는 간신히 소리를 내어 당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다. 담담한 붉은빛 눈동자로 그저 나를 가만히 쳐다볼 뿐. 그런 당신을 올려보는 나는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당신을 붙잡고 있어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지만 여차하면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이 몸에 힘이 없었다. 뜨겁다. 괴롭다. 목이 타. 하지만 안 돼. 그것만은 안 돼. 이 몸뚱이가 무엇을 바라는지 이미 알고 있는데,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에 도리질을 쳤다. 그런 자신을 내려보던 당신이 내게 다시 말을 건다.


"왜 가만히 있어."

"네?"

"네가 바라는 건 이거 아닌가?"


당신의 손이 제 셔츠의 옷깃을 살짝 걷어올리자 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늘 빈틈이 없던 당신이 무방비하게 내 앞에서 목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그와 비례해 더욱 불이 붙듯이 타오르는 갈증에 애써 시선을 돌렸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점점 호흡이 가빠지면서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버티는 것도 슬슬 한계여서, 흐릿해져만 가는 의식에 슬슬 당신에게서 떨어져야 할까 싶어 몸을 빼려고 하자 갑자기 당신이 내 팔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말한다.


"물어."

"예?"

"물라고. 못 들었어?"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어째서 당신의 목소리는 이다지도 선명한지. 피부로 닿는 것처럼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일순 내게 혼란을 주었다. 당신의 대답을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 와중에도 당신은 너무나도 태연했다. 이런 비참한 내 모습을, 무덤덤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당신의 시선을 마주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이에요."

"아무 생각 없다. 널 살린 대가를 치르려는 것 뿐이야."


자, 어서.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점점 꿈결처럼 흐릿해져만 갔다.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거세게 당신의 목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고, 당신은 그런 나를 피하지 않았다. 나에게 밀려 넘어지는 와중에도 나를 꽉 끌어안고 있는 당신의 심장소리가 들려온다. 그 무엇보다도, 내 심장 소리보다도 나를 살아있다 깨닫게 해준 것은 바로 당신이었다. 당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그 날, 그렇게.



이 때 귀능이의 태도가 전과는 달리 많이 차가워짐. 왜 자길 살려놓았냐는 원망도 있고, 그렇게까지 당신에게 기생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는 않다는 자존심도 있지. 하지만 그래도 흡혈 충동이 번지면 자신도 모르게 다나한테 달려들어 목을 무는데, 다나는 꽤 아플 텐데도 아무 말 없이 금강불괴를 풀고 목을 물려줌. 피를 어느 정도 마시고 이성이 돌아오면 귀능이는 또 죄책감을 느끼고~


그런데도 다나는 자신의 화풀이를 고스란히 받아줌. 의아해진 귀능이는 그래서 다나에게 물어봄.


"다나 씨."

"왜."

"왜 화를 안 내요?"


큰 맘 먹고 물어본 건데 오히려 다나 씨는 이상하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내가 왜 너한테 화를 내야 하는데?"

"당신한테 화내면서도, 매번 폭주해서 당신 피를 빨려고 하는 존재가 되버렸잖아요, 나."

".."

"기생충처럼요."

"니놈같이 덩치 큰 기생충이 어디 있냐."

"하하, 그런가.."


시무룩해 있는 내 모습이 신경쓰였는지 다나 씨는 다시금 내게 말했다.


"신경쓸 거 없다."

"..."

"막말로, 네 말이 맞잖아. 죽고 싶어하는 너를 살려놓고 그런 존재로 만든 건 나라는 걸 잊었냐?"


손을 뻗어 귀능의 머리를 마구 헤집는 다나였다.


"그러니까 살아라."

"..."

"멋대로 죽으려고 든다면 지옥까지 찾아가서 살고 싶어질 만큼 마구 때려줄테니 말이야."

"푸핫!"


다나의 말이 웃겼는지 귀능은 한참을 큭큭대며 웃었다.


"그거, 보통 반대로 말하는 거 아니예요?"

"불만있냐?"

"예? 아니요, 푸크큽."


다나 옆에서 웃다가도 이내 다시금 표정이 굳어진 귀능이가 고개를 무릎에 묻겠지.


"딱히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알아."

"알면서 대체 왜 살렸어요?

"아는 녀석이 눈앞에서 죽는 건 더 이상 사절이다."

"그럼 다나 씨가 안 보는 데서 죽으면?

"넌 죽지 못해."

"왜요?"

"이미 넌, 살고 싶다 생각해버렸을 테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귀능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다가, 그는 다시금 눈을 깜빡거리며 얼굴을 무릎에 깊숙이 묻었다.


"우와, 큰일났어요."

"뭐가?"

"저, 진짜 살고 싶어질 것 같은데. 괜찮아요?"


조심스레 물어오는 말의 의미를 다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살기 위해서는 그녀의 피가 필요하니까. 우물쭈물하다 귀능은 다시금 말을 던졌다.


"분명 많이 귀찮을 텐데."


그래도 괜찮냐고, 나를 수용해줄 수 있냐는 그의 질문은 상황과 맞물려서일까, 어딘지 사랑고백과 닮아 있었다.


"네가 귀찮은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


심드렁히 대답하는 다나에게 귀능이는 환하게 웃어주었다. 아주 환하게.


-당신을 좋아하게 되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대충 이 정도에서 끊고 저는 자겠습니다... 오랜만에 위키서 파이 부분 찾아봤는데 세레스국 전개는 언제봐도 소오름이군요; 사스가 클램프 ㅇㅁ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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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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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위주 독백입니다.




[듄다나] 끝에 내리는 비


WRITTEN BY. 리네






내 사랑은 그 순간 그렇게 끝나버렸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



그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어째서일까. 창문께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면서도 영 기분이 찝찝한 탓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된 업무 중에서 제 나름대로의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해도 좋을 일인데 왜 이리 기분이 싸한지 모르겠다. 사실 오늘이라고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다. 언제나와 같이 잠에서 깨어나고 씻고 출근하고, 하루종일 잡무를 했다. 농담 아니라 정말 하루종일. 제 직장이라서가 아니라 스푼은 정말이지 발에 치일 정도로 업무가 많았고, 거의 서류작업이나 민원만 도맡아하는 자신과는 달리 밖에서 활동하는 녀석들은 늘 체력이 부족하다며 골골거리기 일쑤였다. 가끔 복도에서 동료 히어로들을 마주칠 때면 그들의 눈 밑 가득한 다크서클에 속으로 몰래 안쓰러워 하기도 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히어로들이 하는 일은 더 이상 단순히 악당을 해치우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좀 더 다양했고 골치가 아팠으며, 참으로 고독했다. 보수가 꽤 높다지만 그걸 떠나서 업무량만 본다면 언제 과로사하거나 다쳐서 퇴사할지 모르는 3D 직업이었다. 매일 피곤한 눈초리로 임무를 나가는 히어로들 중에서도 신입들은 종종 사고를 치기도 했고, 경력이 오래 된 사원들이라도 가끔은 어딘가를 다쳐 올 때가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마다 저는 신입들을 훈육하거나 다친 이들을 치료해주는 것을 거들었다. 종종 자신이 그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것은 제게 주어진 '자신만의 일' 이기도 했다.


쳇바퀴같은 일상. 매우 다이나믹해 보이지만 실상 그 속은 굉장히 뻔하고 단조로웠다. 출근해서 업무를 처리하고 집에 돌아가고, 딱히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직장에 충실하는 나날들. 제 삶이지만 다른 이가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스푼이라는 거대한 조직 내에서도 그저 그런 말단 중 하나, 동창인 다른 친구들이 출세한 것에 비해서는 한없이 초라해보일지 몰랐지만 사실 듄은 자신의 삶 자체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이래저래 변화가 심한 것도 딱히 좋은 일만은 아니잖는가. 고지식하고 하나밖에 모르는 자신에게는 이 정도가 딱 맞았다.


이 나이 먹고서 변하라고 하면 그것도 우습지. 한숨을 내쉬며 듄은 조용히 근처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재떨이에 담뱃재를 탁탁 털었다. 이렇게 말하면 젊은 놈이 애늙은이같은 소리 한다고 투덜거릴 친구 녀석들이 생각나서 절로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물론 그렇게 말하다가도 네가 그러면 나까지 늙은 기분이 든다는 말을 덧붙이겠지. 오래 알고 지내서인지 반응이 절로 상상이 갔다. 십몇 년지기 친구들을 두는 기분이 이런 걸까.


제겐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음에도.


창문 밖으로 탁하게 흐려지는 하늘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비가 오려나.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리며 후우, 머금고 있던 담배 연기를 허공으로 뱉어냈다. 손에 들고 있던 담배 끝에서 흐릿하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제 마음처럼 위태로이 흔들렸다.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 위에 비벼서 껐다. 재떨이에는 이미 수북히 많은 담배꽁초가 쌓여 있었다.


이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해결이 나질 않아.


살짝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제가 쓰는 방은 스푼 정문 바로 위에 있었기에, 여기서 밖을 내다보기만 해도 누가 임무를 나가는지가 훤히 보였다. 물에 잉크를 탄 것처럼 순식간에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하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듄의 시선을 붙든 건, 바로 그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흑단발 머리카락이었다.


다나.


제 친구이자 스푼의 서장님. 동창이던 자신과 달리 엄청나게 출세한 것인데도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여전히 강하고 여전히 바쁜 업무 속에 살고 있다. 원래 서장은 밖으로 나다니기보단 조용히 임무를 내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스푼 사정상 그럴 수는 없기에 녀석은 자주 저렇게 시찰을 나가곤 했다. 난폭한 언동과 무대포적인 행동과는 달리 녀석은 스푼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망이 높은 편이었는데, 지위를 가지고 누군가를 찍어누르는 보통의 관리들과는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것치고는 고등학생 때 스카웃을 하러 온 냅킨 직원에게 난 말단은 싫다며 고위직을 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던 전력이 있기도 했다. 옆에서 보던 제가 그 때 얼마나 놀랐는지 생각해보면 지금도 그저 헛헛 웃고 만다. 유다도 그렇고 저런 녀석들과 같이 지내온 자신이 이제와서 보통 감성을 가진다는 것도 퍽 웃기는 일이었다.


언제 봐도 참 패션센스를 의심케 하는 꽃무늬 셔츠에 정장 차림으로 밖으로 나서는 녀석은 참, 아무리 봐도 여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외모가 수려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제 동생과는 달리 여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기도 했고. 그런데 어째서일까.


나는 어째서.


평소였다면 녀석을 보고서 우울했던 기분이 어느 정도 가셨을 것이다. '평소였다면.' 하지만 옅게나마 떠오르던 미소는 녀석의 옆에 선 누군가를 보자마자 처참히 깨져 버렸다. 헤헤 웃으며 달라붙는 귀능 씨를 귀찮다는 듯이 착 밀어내다가도, 이내 졌다는 듯이 픽 웃으며 제 한쪽 팔을 내어준다. 그 모습에 싸악 식어버리는 기분과는 달리 자꾸만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참으로 어지럽다. 십몇 년을 알고 지냈지만 저런 다나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니, 두 번째인가.


엿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필요한 물품을 사러 잠시 밖으로 나섰을 뿐이다. 스푼은 과중한 업무량 때문에 유독 야근하는 사람이 많았고 저도 보통 그 중 한 명이었다. 일을 하다가 배가 고파져서 간단히 요깃거리나 하자 싶어 편의점을 찾았다. 사실 정문 쪽으로 나서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인적이 드문 후문 쪽으로 발걸음을 나섰다. 물론 자신은 그 행동을 나중에 아주 처절히 후회했다.


그냥 조금 돌아가고 말 걸. 어째서 봐버렸을까.


다나가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말투는 언제나처럼 퍽 퉁명스러웠지만 목소리에는 묘하게 웃음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있는 둘의 모습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제가 아는 다나는 스킨십을 끔찍히도 싫어했다. 사실 다나가 오수 씨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도 그리 불안하지 않았던 건, 그녀의 반응은 마치 TV에 나오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나는 그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그에게 자신의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그럴 낌새도 없었다. 그래서 안심했던 걸까. 벌을 받는 걸까.


좀 더 빨리 내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대가인가.


처참한 기분을 끌어안고 재빨리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어떤 정신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 때 자신이 패닉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들 사이에 흐르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저는 둔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지? 고개를 붕붕 흔들다가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뜨거워졌던 제 머릿속을 싸늘히 가라않혀 준다. 필사적으로 방금 전의 기억을 지워내려고 애썼다.


기억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남자 앞에서 웃고 있는 네 얼굴따위, 보고 싶을 리가 없잖아.


밖으로 나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분위기로 봐서는 시찰이 아니라 일찍 퇴근하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사고가 별로 많이 안 터졌으니 그럴 법도 했다. 자신과 다나만큼이나 둘은 굉장히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이기도 했고, 그만큼이나 그들이 붙어 있는 모습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음에도, 맞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늘 삐걱거리던 우리와는 다르게도.


휙 고개를 돌렸다. 그들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떼어내고서 창문 아래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뭐라도 물고 있어야 진정될 것 같은 심정에 허겁지겁 주머니를 뒤졌지만 나온 거라곤 안이 텅 비어있는 담뱃갑 하나뿐이었다. 아까 피웠던 담배가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냈다. 멍하니 한참을 제 손 안에 들린 담뱃갑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가, 탁자 위 재떨이를 올려보았다. 이미 다 꺼져버렸는지 연기는 더 이상 피어오르지 않았다. 불씨도 없었다. 어두워진 방 안에서, 하염없이 그를 올려다보던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우스웠다.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닌데도 웃음이 삐져나와 견딜 수가 없었다. 제 입술 사이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덧없이 휘감겼다. 방 안을 가득 채우며 끝없이 맴돌던 웃음소리가 이내 천천히 잦아들었다. 웃음이 멈춘 자리를 메꾸는 것은 메마른 슬픔이었다. 괴로움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제 마음 속 깊숙히 간직했었던 연정(戀情)이었다. 이제는 그저 덧없어진. 멍청하고 아둔했던 제 모습에 그저 실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래도 이 마음 한 자락을 조금쯤은 내보여 볼 것을.


고백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가 제게 마음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식으로 고백해서 친구로서의 자리를 잃는 것보다는 이렇게 지켜보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다. 고백이야 언젠가는 하겠지, 언젠가는 탁 털어놓고 말할 날이 오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보니 어느 새 10년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네가 특정한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너는 강하고 당당했고 악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아꼈다. 그런 네가, 누군가 한 사람을 특정하게 아끼게 되다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10년이 넘게 지나면서 사람이 언제나 그 사람 그대로일 리가 없는데.


나는 그대로여도, 너는 변할 수도 있는 거였는데.


이 상황에 와서까지도 마음을 전할 용기는 없었다. 이미 누군가의 사람이 되어버린 너에게 혼란을 던져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네게서 거절의 말을 듣는 것이 두려운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불안하게 들썩이는 이 가슴을 감당하기가 벅찼다. 태연한 척 애써 호흡을 고르고는 있지만 목구멍에서부터 치받아 올라오는 절규를 내리누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 나는 딱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남자다. 그래서 너는 그 아이를 선택한 걸까. 솔직하게 마음을 내보이면서 너를 쫓아가는, 계속 거절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너만을 바라보는 그 아이를.


아, 좀 위험한데. 고개를 들고 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혼자 일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 지금 당장 결제가 급한 서류가 없어야만 할 텐데, 멍해진 머리로 생각하면서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혈향과 함께 입술 끝에 느껴지는 감각이 짜디짰다. 축축히 젖어드는 소매를 애써 무시하면서 그저 조용히 눈물을 쏟았다. 눈물을 흘리고 있자니 정말 모든 게 끝났다는 사실이 절절히 다가왔다.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은 그저 재미없고 따분한 남자가 아니라, 그저 오랜 감정에 실연을 당한 바보같은 남자일 뿐이다. 멋대로 시작한 이 마음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남은 미련조차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 머저리. 가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기를 조금씩 토해내고 오열하면서도, 나는 끝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치우지는 못했다.


여전히 비는 오지 않는다.

내 마음 속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FIN.




===


나르님과 랄라님이 보고 싶으시대서 그냥 제 스타일의 듄다나를 간단히 써 보려고 했...는데 왜 이리 길어졌을까요;ㅅ;?(다들: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듄다나는 듄의 철저한 짝사랑으로 끝날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끝내줬습니다~ㅇㅅㅇ~(듄: 야!!

(※ 저는 듄을 아낍니다 어디가)


아, 맞다. 끝에 내리는 비라는 제목은 보시다시피 밖에는 흐려지기만 했을 뿐 비는 오지 않지만 듄의 마음 속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는 의미예요 ㅇㅇ 사실 듄이 실연했든 말든 세상은 물론 아무도 모를 테니까, 그런 듄의 뼛깊은 외로움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와닿았을지는 모르겠지만 ㄷㄷㄷㄷ


독백이라 뭐 더 설명할 건 없네요 이야 편하다~!!^ㅁ^ 사실 정말 생각흐름대로 휘갈긴거라 별 게 없어서 참 민망하군요 ㄷㄷㄷ 리퀘하신 두 분이 만족하셨으면 그걸로 만족하려구요!>_<(두분: 저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R.E
,

※ 그냥 제가 보고 싶은 장면 끄적거리는 거라 본편에 들어갈진 모릅니다 ㅇㅁㅇ




싱글싱글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귀능의 모습에 다나의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후우, 한숨을 내쉬던 다나가 주먹을 뚜둑 뚜둑 꺾으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여기서 말리면 그거야말로 놈이 뜻하는 대로 굴러갈 뿐이다. 일정 선 이상으로 화를 내면 능력이 사라지는 제 특기를 생각하면 여기서 과하게 흥분해서는 안 되었다. 지금의 행동들에 대해서는 일단 그를 제압한 다음 심문해도 늦지 않을 일이다. 가령 2년 간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살았길래 나이프에 들어갔던 것인지, 갑자기 사라졌던 이유는 뭔지, 아니면 왜 갑자기 스푼에 칼끝을 들이미는지 등등.


그렇게 생각하며 다나는 바닥을 힘차게 딛으며 순식간에 귀능의 앞까지 달려갔다. 깜짝 놀라는 듯한 귀능의 얼굴을 보며 급소에 주먹을 휘두르려는 찰나, 귀능의 입매가 씨익 올라갔다.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붉은빛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을 뿐인데,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귀능이 다나의 주먹을 살짝 옆으로 피하며 움직였다. 반격인가, 싶어 그냥 맞아주면서 한 대 갈길까 싶었지만 갑자기 제 눈앞으로 쑥 들이밀어지는 얼굴에 다나의 표정이 우뚝 굳어버렸다. 동시에 제 입술에 닿은 부드러운 감촉의 정체를 깨닫고나자, 다나의 눈빛에는 경악이 들이찼다.



"$*%@&%@#!!"



다나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휘두른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귀능이 그녀에게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정말 짜증난다는 얼굴로 입매를 북북 문질러 닦는 다나와 달리 귀능은 손가락을 들어, 방금 전 다나의 입술에 닿았던 제 입술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주변에 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기가 저질러 놓고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잠시 멍하던 귀능의 얼굴이 이내 환하게 웃었다.



"우와, 설마 진짜로 성공하다니?"

"…이게 뭐하자는 짓이냐."

"음…. 굳이 따지자면 도둑키스가 아닐까요?"

"야, 이새꺄!!!"



다나 입장에선 지극히 대형사고를 쳐놓고서 헤실헤실 웃고만 있는 귀능의 얼굴에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달려들려고 하는 다나를 오르카가 뒤에서 간신히 붙들었다. 스푼의 다른 멤버들은 모두 벙쪄서는 그들을 쳐다보고만 있었고, 귀능의 옆에 서 있던 메두사는 너만 다나랑 그렇고 그런 짓 하냐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눈치 없는 소리만 계속 해대고 있었다. 갈수록 냉각되는 분위기에 오르카의 등으로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티는 내지 않고 있었지만 오르카는 평소보다 쉽게 제압되는 다나의 모습에 속으로 꽤나 놀랐다. 금강불괴가 약해진 것을 보아하니 정말 진심으로 화가 난 모양이다. 다나가 씹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조용히, 하지만 살기 가득하게.



"야, 이거 놔라. 내가 오늘 저 새끼를 죽여놔야 성이 풀릴 것 같으니까."

"안됩니다, 서장님이 말씀하시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구요."

"쳐웃고 앉아있는 저 새끼 면상을 그냥 가만히 봐주고 있어라, 이거냐?"

"그건 아니지만 우선 진정하시고…."



그렇다고 이걸 놔주면 정말 이 백주대낮에 살인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오르카는 거세게 제 손을 뿌리치려는 다나를 더욱 꽉 붙들었다. 그래도 다시 이성과 함께 금강불괴도 돌아오고 있는지 발버둥치는 서장을 붙잡기가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특기냐고 속으로 혀를 쯧 차면서도 어떻게든 서장을 붙들고 늘어지려는 오르카를 향해 귀능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야, 썩은 생선."

"…뭐냐."

"왜 우리 서장님한테 그렇게 달라붙어 있냐? 짜증나게."



웃던 얼굴을 대번에 싹 갈아치우며, 정말 역겹다는 듯이 오만상을 찌푸리는 귀능의 얼굴을 보자마자 오르카의 미간이 파삭 구겨졌다. 이 새끼가 진짜. 잠시 고민하더니, 오르카는 이내 다나를 잡고 있던 두 손을 탁 하고 놓아버렸다. 저를 세게 붙잡고 있던 힘이 사라지자마자 다나는 앞으로 한 걸음 걸어나오며 주먹을 우둑 우둑 꺾었다. 상황을 모른다면 마치 이 쪽이 악당 같아 보일 법한 싸늘한 미소를 지으면서. 어라? 조금 당황하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미소를 거두지 않고 있는 귀능의 얼굴이 꼴보기 싫었는지, 뒤에서 오르카가 억지로 입매를 위로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서장님, 그래도 죽이지는 마세요."



뒷감당이 귀찮으니까. 쿨하게 말하며 물러나는 오르카에게 다나는 피식 웃어주었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노력해보마. 귀능이 너 이 새끼…!!"

"으악!"



마치 늑대 앞의 어린양이 된 것처럼 부들거리며 신음을 내뱉던 귀능이 잠깐 뭔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싱긋 웃더니 재빨리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귀능의 뒤를 따라가면서 뭔가 재미있어졌다는 듯이 웃고 있는 메두사와는 달리 곧장 무섭게 그들을 쫓아가는 다나의 얼굴이 악에 받쳐 있었다. 오르카는 귀능은 몰라도 같이 있는 메두사의 안위를 내심 걱정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스푼 멤버들은 그저 부디 오늘 시체를 치우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추격전의 시작이었다.





===


하하..


저 개인적으로는 나이프귀능이는 스푼귀능이보다 더 깐죽대면서 뭔가 대범할 것 같습니다 ㅇㅇ 그래서 정말 미친짓처럼 서장님 입술 빼앗고 서장님이 저새끼 죽여버리겠어로 달려드려는 거 귀능이가 붙잡듯 오르카가 붙잡는데 처음에는 말리던 오르카가 귀능이 깐죽거림에 열받아서 저새끼 패버리라고 서장님을 놔주는 걸 보고 싶어서... 누가 그려주시거나 써주시면 참 좋을텐데 인생은 자급자족이네요(떨리는눈


붙잡히면 귀능이는 최소 사망입니다. 명복을 빌어주어요...(귀능:


사실 본편서도 귀능이가 유독 다나를 붙잡고 말리는 장면이 많길래 오르카가 이래도 재밌겠다 싶어 써봤습니다 힛...☆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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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프귀능 스푼오르카


01: http://eclilps.tistory.com/entry/GuiDa03




[귀능다나/오르메두]


Change


<02>





3.


볼펜이 툭,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어이쿠야. 잠시 볼펜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오르카가 한숨을 내쉬며 떨어진 볼펜을 주워들었다. 길게 묶어올린 흑발의 포니테일이 그의 몸짓을 따라 살짝 찰랑거렸다. 검게 물든 눈매가 살며시 찡그려진다 싶었더니, 그는 이내 다시 책상에 앉아 서류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걸까.


자신이 그리 재수가 없는 편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는데, 유독 오늘따라 잡다한 실수를 많이 하고 있었다. 통계 숫자를 잘못 적어서 서류를 몇 번이고 고치는 것은 기본이요, 종이뭉치들을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했으며 전화를 받으면서 넋을 빼놓고 있다가 허둥지둥 답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날씨가 좋아서인가 싶다가도 고작 그런 걸로 한눈을 팔 만큼 오르카는 자신이 무딘 성격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잘한 실수들이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 일이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방금 전 손을 움직이다가 하마터면 커피잔을 깨먹을 뻔 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신이 전체적으로 무척 예민해져 있었다. 사실 이런 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좋은 일이라고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영물인 범고래 혼혈이라 그런지 자신은 유독 이런 쪽에는 감이 날카로웠고, 이렇게 예민해질 때마다 별로 좋은 일이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저의 인생에서는.


뭔가 싫은 예감이 든다.


서장실에는 오르카 한 사람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서장실을 쓰는 사람은 저랑 제 상사인 다나 서장밖에 없거니와 그 서장은 지금 사건 제보를 받아 시찰을 나간 참이었다. 밤을 새서인지 다크서클 가득한 눈으로도 각성제를 한 모금 마시고 밖으로 나서는 서장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자니 아주 잠깐 불안해졌다가도, 오르카는 금세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에게만은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다. 마주치는 상대를 걱정해도 모자랄 판에 이게 무슨 뻘생각인지.


텁텁해진 기분을 환기시킬 겸, 그는 창가로 다가가 서장실에 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휘잉 소리를 내며 불어들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맞고 있자니 확실히 가을이 찾아오긴 찾아온 모양이다. 몇 달간 기승을 부리던 더위는 요 2주 간 무겁게 내려앉는 장맛비에 밀려났는지 이젠 제법 선선했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청명하게 빛나는 푸른 하늘을 보고 있자니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잠시간 창문을 내다보며 숨을 고르던 오르카는 다시 뒤로 돌아서 서류가 있는 책상으로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고 했다.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황급히 창문 쪽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오르카는 그 자리에 쩍 하고 굳어버렸다.



"어머, 오랜만이네."



하얀 셔츠에 검은색 핫팬츠, 굽슬거리는 금발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창가에 걸터앉아, 오르카를 향해 살짝 손을 흔드는 메두사의 얼굴은 정말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길었던 머리를 어깨 위까지 잘랐지만 그 모습마저도 참으로 예뻤다. 최소 오르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보고 돌처럼 굳어버린 오르카의 모습이 퍽 재미있는지 메두사는 입가에 씨익 미소를 머금고서, 훌쩍 서장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앞으로 다가오려는 메두사를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오르카는 몇 걸음 나아가 한 손을 옆으로 뻗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뭐야, 그렇게 경계하는 얼굴로 볼 건 없잖아?"



장난스레 대꾸하는 메두사의 모습에도 오르카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진지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에 메두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발걸음을 멈췄다. 손을 맞잡기에는 너무 멀지만 서로의 얼굴을 보기엔 충분한 거리가 그들 사이에 생겨났다. 마치 마음의 거리처럼.


한 줄기 바람이 그 사이를 쌩하니 불어 지나갔다. 평소와는 달리 조금 쓰게 웃은 메두사가 한 손을 허리에 얹고 당당하게 말했다.



"다나를 보러 왔는데, 안 보이네?"

"서장님은 지금 출타 중이십니다. 아니, 그것보다 이거 무단침입인데요."

"뭐 어때, 다나와 나 사이에?"

"…여전하시군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오르카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살짝 웃으려고 했지만 굳어버린 입매는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메두사는 모르겠지만 사실 오르카는 퍽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쥐고 있는 주먹이 바르르 떨리는 감각이 영 불쾌하면서도 괜히 숨이 막혔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오르카는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진정해라, 진정해. 어차피 다 부질없는 일이야. 여전히 서장님밖에 안중에 없는 이 사람을 어째서 아직도 이렇게나 의식하는 걸까. 그렇게 시간이 지났어도 쿵쾅거리는 심장이 원망스럽다.


어째서.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는데.


목소리가 떨릴까 걱정하며 조심조심 대답하는 오르카의 모습에 메두사는 뭔가를 알아챘다는 듯이 픽 웃으며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어어어- 하면서도 차마 그녀를 막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오르카의 바로 앞까지 걸어온 메두사가 가만히 손을 올렸다. 질끈 눈을 감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오르카는 그저 메두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제압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계속 새기면서. 하얀 손이 긴장한 듯한 오르카의 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많이 컸네."

"…."

"후후, 그런 무서운 얼굴 하지 말지. 그래도 널 키워준 사람한테 말이야."

"저를 키운 건 스푼입니다."

"그럼 정정하지. '스푼에서 맡기 전까지는'"



여유로이 웃고 있으면서도 눈빛은 또 다르다. 그립다는 듯이 멀어지는 시선 끝에는 과연 자신이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견딜 수가 없어진 오르카는 그녀에게서 또 한 걸음 물러났다. 뺨에 닿았던 손끝이 허공을 살며시 그러쥐었다. 그 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오르카를 바라보던 메두사가 난데없이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생각일까. 차마 속을 알 수가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메두사를 이해할 수 없었던 오르카는 다시금 되물었다.



"몇 년간 조용하더니만, 또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겁니까?"

"아아, 너도 알잖아. 우리 보스는 괴짜라는 걸."



사랑을 한답시고 일을 벌리는 대책없는 인간이라구.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 아닌 대답을 던진 메두사였지만, 오르카는 그 의미를 충분히 읽었다. 저건 다시금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요 몇 년간 잠잠하다 싶었는데 다시금 바빠지는가. 절로 무거워지는 가슴께를 꾸욱 누르며 오르카는 제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건 이제 지긋지긋한데.



"또 그런 짓들을 하고 다닐 셈인가요."

"에?"

"누군가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고, 사람을 죽여가면서 말입니다."



질렸다는 듯이 내뱉는 오르카의 말투에 묻어나는 것은 역시나 경멸이었다. 그럼에도 옅게 번진 미련과 함께. 금방 사이에 지쳐버린 듯한 오르카의 표정에 메두사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것처럼 오르카에게 뻗으려던 메두사의 손이 순간 공중에서 우뚝 멈췄다. 그리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머, 유감스럽게도 가봐야 할 시간이네. 다나가 왔으니까."



그 말대로였다. 무척 작았지만, 정확히 뒤쪽에서부터 그들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는 오르카에게도 무척 익숙한 소리였다. 이제야 왔냐고 안심할 틈도 없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메두사의 시선에 오르카는 기분이 미묘해졌다. 뭘 바라는 건가?


…잠깐만.



"당신, 서장님을 보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요?"

"물론 다나는 보고 싶지만~ 혼자서 보러 오기엔 좀 위험하잖아? 내 목숨은 소중하거든."



지금쯤이면 분명 열받아 있을 테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조용히 중얼거리는 메두사의 혼잣말에 오르카의 얼굴에 물음표가 선명히 그려졌다. 저게 무슨 뜻인가. 아니, 그것보다.



"그렇다면 대체 여긴 왜 온 거지…."



분명 다나를 보러 왔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녀가 돌아오자 가려는 메두사의 행동은 아무리 봐도 모순되어 있었다. 애초에 볼 생각이 없었다면서 적진 한 가운데까지 찾아오는 수고를 거칠 만큼 맹한 성격이었다면 제가 이렇게 그녀를 경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쓸데없는 걸 싫어하고 똑부러지고 뭐든 칼같은. 제가 알고 있는 그녀의 성격은 그러했다.


그냥 혼잣말이었다. 대답해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는지 창문께로 발을 올리던 메두사가 휙 그를 돌아보았다. 꿀꺽,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킨 오르카의 모습에 메두사는 뭔가를 생각했는지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걸쳐놓았던 발을 탁 내리고서 성큼성큼 오르카를 향해 걸어갔다. 쿵쾅거리는 다나의 발소리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평소와 같으면서도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조금은 화난 듯. 그렇게.


그런 와중에도 겁날 것 없다는 듯이 오르카의 앞에 선 메두사가 잠깐 고민한다 싶더니, 오르카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기절할만큼 놀랐는지 비명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서 뻣뻣히 굳어버린 오르카의 등을 툭툭 두들기더니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피식 웃으며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메두사의 표정이 정말로 즐거워보였다.



"건강해 보이니 그걸로 됐어-."



이내 뒤돌아서 창문께로 뛰어내려 모습을 감추어버린 메두사를 붙잡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오르카는 멍하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잠깐, 저 말은 그럼 여기에 온 목적이 서장님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소린가? 도대체 왜? 그 의문을 해결할 새도 없이 등 뒤에서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기겁해서 돌아보자 씩씩거리며 문고리를 잡고 있는 다나가 보였다.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너, 뭐하냐?"

"서장님이야말로…."



꽤 늦으셨네요. 오르카의 대답에 다나는 아, 거리면서 머리를 박박 긁었다. 대놓고 짜증난다는 듯한 오오라를 풍기는 다나의 모습에 오르카는 정말 무슨 사고라도 터졌나 불안해졌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그녀의 반응이 너무 조용한 게 사실이었다. 일이 터졌다면 분명 이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텐데. 그러던 중 오르카는 다나의 다른 쪽 손에 힐끔 눈길을 던졌다. 뭔가가 손에 쥐어져 있었는데,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가 없었지만 대충 봐서는 아무래도 핸드폰 같았다.



"서장님, 손에 그거, 핸드폰인가요?"

"아, 이거? 그래."



별 거 아니니까 신경 꺼라.


묻지 말라는 듯한 무심한 눈빛에 오르카는 나머지 말을 조용히 삼켰다. 애초에 자신도 어디 가서 지고 사는 타입은 아니지만 눈앞의 상사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니 굳이 심기를 건드려봤자 좋을 건 없다. 비서직을 맡은 지 어언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오르카는 여전히 제 상사가 조금은 어려웠다. 다혈질이라고는 하지만 딱히 힘을 과시하거나 불합리한 사람은 아닌데도 말이다.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인가. 예전에 함께 지내던 그 남자는 적어도 평소에는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멍청해 보였으니까.


그래서 더 안심할 수 없었긴 했지만.


후우, 한숨을 내쉬던 그녀가 터벅터벅 걸어가 자신이 늘 앉던 의자에 걸터앉았다. 조용히 처리해야 하는 서류를 내미는 오르카에게 다나가 지나가는 투로 툭 질문했다.



"야, 요 근래 이상한 일 같은 건 없었지?"

"예, 예? 아, 아니요. 별로…."



오르카의 이성은 방금 전의 일을 보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오르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입을 다물고 있는 것뿐이었다.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입으로 꺼내면 방금 전의 일이 정말로 현실인 것처럼 다가올 것 같아서였다. 아직은 그냥 꿈처럼 기억해두고 싶었다. 그냥 날씨가 좋았기에, 잠시 졸던 중 꾸었던 찰나의 미련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성은 언제나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무력감을 이런 식으로 통감하고 있었다.


다나는 다나대로 방금 전의 일을 생각하며 심란한 마음을 애써 추스렸다. 꽉 쥐고 있었던 손을 펴보니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이 바스라져버린 핸드폰 파편들이 주먹 사이로 후두둑 떨어졌다. 쯧, 또 새로 사야 하나. 이런 일이 빈번한지라 전화번호부는 미리 백업해뒀지만 분명 제 어머니에게서 잔소리가 날아올 터였다. 물건 아까운 줄 모른다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방금 전에 만났던 녀석이다. 2년 만에 나타나서는 온갖 질문들만 던져놓고 사라진 녀석. 금강불괴인 자신이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갑자기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머리에 괜히 어지러웠다. 날씨는 맑은데, 축축하게 달라붙는 듯한 불길함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


꼭, 무언가가 시작될 것만 같았다. 불길하게도.




4.


경쾌한 발소리가 숲 속을 가로질렀다. 여린 나뭇가지들이 그녀의 발 밑에서 우둑 바스라진다. 뭐가 좋은지 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메두사는 사뿐히 걸어 숲 속에 위치한 어느 저택에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2층 복도를 걸어가자 복도 맨 끝에 작은 문이 하나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붉은색으로 장식된 침대에 누워 있던 백발의 남자가 해맑게 물었다.



"드디어 왔네. 늦었잖아. 혹시 어디 다녀왔어?"

"네, 뭐."



산책 좀. 그렇게 대꾸하며 웃는 메두사의 얼굴이 정말로 즐거워 보였는지라, 백모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안고 있던 고양이를 다시금 쓰다듬었다. 심드렁한 그의 태도에 속으로 안심하면서도 등 뒤로 손을 모으고 꽉 붙잡는 메두사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메두사의 모습에 바로 그녀의 옆에 서 있던 귀능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다 왔길래 저렇게 떨지?


나중에 한 번 추궁해보면 되겠지. 패는 많아서 나쁠 게 없으니까.


메두사가 마지막이었는지 백모래는 고양이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제 주위에 서 있는 이들을 쓱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해맑게 웃었다. 선언하듯이 말하는 백모래의 목소리는 즐거운 울림을 띠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을 죽이다 온 남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 시작해볼까."



내 원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


물론 본편처럼 백모래의 야망은 간단합니다 사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케일이 커질 것 같아 솔직히 연재는 무섭습니다 ㅇㅇ 걍 제가 쓰고 싶을 때 쓰겠죠! 참고로 3편은 언제 나올지 저도 모르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편 흐름대로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당연지사 헤이랩터도 나올 예정입니다. 허허 재미있겠네요 ㅇㅁㅇ!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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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적으로 트라이에 제로투가 안 나올 리가 없어!!!! ㄷㄷㄷㄷ




[산해정우산해]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 中







"야, 정우야. 서정우."



바로 옆에서, 자신을 애처롭게 부르는 목소리에 정우는 살짝 고개를 들어 옆을 올려보았다. 점심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다들 밥을 먹고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책상에 앉아 노트필기를 하던 중이었던 정우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산해의 눈을 마주했다. 근심 가득한 얼굴과 애써 뒷짐을 진 손, 발 한 짝을 바닥에 대고 빙빙 돌리는 걸 보면 무슨 부탁인지는 금방 보인다. 하지만 예의상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야?"

"필기 좀 보여줘-!!"



두 손을 모으고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수그리는 산해에게 정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럴 줄 알았지. 이 녀석이 이런 표정을 할 때는 영락없이 공부와 관련된 일이었다. 정말 다 좋은데 어떻게 해도 녀석은 공부에는 도통 소질이 없었고, 애석하게도 부모님은 장남에게 거는 기대치가 큰 모양인지라 정우는 종종 산해의 공부를 도와주곤 했다. 별로 거리낄 것도 없었다.


그들은 제일 친한 친구니까.



"그래, 알았어. 자."



싱긋 웃으면서 노트를 건네주는 정우의 모습에 산해의 눈가가 해맑게 휘어지더니 그대로 그를 와락 껴안았다. 천사를 봤어도 이 정도로 감격한 얼굴을 하진 않을 것 같다.



"넌 역시 좋은 친구야!"

"네, 네. 자, 어서 베껴. 대체 뭐 하느라 숙제를 안 해온 거야?"

"축구부 연습이 좀 있어서. 집에 오니까 피곤해 죽겠더라구."



싱글싱글 웃으며 곧장 대답하는 산해의 손이 부지런히 하얀 종이 위를 오갔다. 쓰다가 이게 뭐지? 하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모르겠는지 으윽 신음을 흘리다가, 머리를 긁적이거나 펜을 입에 물거나 하기도 한다. 아는 문제가 나왔을 땐 아하, 하는 표정으로 밝게 웃는다. 참 표정 한 번 다양한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며 정우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해도 요즘 산해가 속해 있는 축구부가 다가오는 대회에 대비해 훈련이 더 빡세졌다는 걸 모르지 않아서, 정우는 힘내라는 듯이 산해의 등을 탁탁 두드렸다.



"얼마나 남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줘…!!"



웅얼거리며 절박하게 말하는 산해의 표정이 참 웃기다 싶어서 정우는 풋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문득 창 밖을 내다보았다. 여름이 훌쩍 다가온 탓인지 햇살은 쨍쨍하고, 날도 상당히 후덥지근하다. 유리창 너머로 하얗게 드리우는 햇빛이 책상 위로 번져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서 장마가 와야 그래도 좀 시원해질텐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정우의 손이 책상 밑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심심한 김에 독서라도 할 생각이었던 정우의 계획은 다음 순간 자신의 반으로 찾아온 누군가에 의해 깨졌다.



"정우야, 잠깐만."



뒷문가에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분명 같이 학생회를 하는 임원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여자애가 왜 갑자기 부르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무슨 일인데?"




상냥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웃는 정우의 미소의 여자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 변화를 대번에 눈치챈 정우는 속으로 알게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곤란하다는 생각이 불쑥 드는 게 사실이었다. 다음에 여자애가 무슨 말을 할지 벌써 눈에 보인다.



"잠깐 시간 좀 내줄래?"



결심한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애를 보며 정우는 뭐라 말해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 물론 그건 한 순간일 뿐, 소년은 언제나와 같은 대답을 입에 담았다.



"그래, 가자."



무슨 말을 할지 알아도 무작정 거절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게다가 제 생각과 다를 수도 있으니까. 유감스럽게도 이제껏 자신이 예상하면 그 예상과 거의 100% 일치하는 자신의 감을 생각하면 분명 이번에도 같을 것이라 직감했지만, 그렇다고 들어주지도 않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붙들고 정우는 여자애를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갔다. 어느 새 필기하던 손을 멈추고, 그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산해는 문득 들리는 여자애들의 수다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정우 쟤, 또 고백 받나?"

"보아하니 그런 것 같은데?"



대충 멀리서 봐도 살짝 빨개진 여자애의 얼굴을 보면 그냥 확정이다. 상냥하게 웃고 있는 모습만 보면 잘 모르겠지만, 사실 어느 정도 곤란해하고 있는 정우의 모습을 산해는 대번에 눈치챘다. 그냥 그 자리에서 거절하면 되는데 하여간 요령도 없다. 꼭 직접 얘기를 듣고 거절하는 게 속이 편하다나. 그게 녀석의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가끔은 좀 머리가 아프다. 펜을 잘근잘근 깨물며 산해는 하아 한숨을 쉬며 고개를 책상에 박았다. 수군거림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번 달만 벌써 세 번째 아니야? 저렇게 불려나간 거."

"인기 진짜 많다. 근데 하긴 나도 정우는 꽤 좋은데. 잘생긴데다 상냥하잖아."



그거야 녀석은 정말 대단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산해는 실실 웃었다. 이상하게 불편한 마음을 가슴 한 구석에 내리담고서.


초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다니다가, 같은 중학교에 진학해서야 산해는 정우의 인기가 얼마나 좋은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냥 막연히 천재소년이라 불린 데다가 얼굴도 곱상하니까 인기가 많겠거니 생각했었지만 직접 근처에서 보니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디지몬 카이저였던 무뚝뚝하고 차가운 예전과 다르게 본래의 사근사근하고 다정한 성격으로 돌아온 녀석을 주위에서 그냥 냅둔다는 게 솔직히 더 말이 안 되는 소리겠지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온갖 러브레터에 고백을 받은 데다가 발렌타인 때는 초콜릿도 한가득 받았다. 물론 자신도 받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녀석에게 오는 양은 정말 한 달 내내 먹어야 할 것만치 많았다.


늘 전교권에서 놀 정도의 수재에 무엇보다 녀석은 노력파다. 굉장히 착실한데다 성격도 상냥한지라 2학년 때는 반장으로 임명되기도 했고. 귀가부긴 하지만 운동도 하라면 분명 자신보다 훨씬 잘할 것이다. 어둠의 씨앗 때문에 천재성이 극대화된 거라고 했지만 원래 모습도 상당한 수재다. 말마따라, 형의 그늘이 너무 커서 상대적으로 가려졌었던 것일 뿐이다. 점점 개화하는 꽃처럼 녀석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솔직히 얼굴로만 따지면 학교에서 녀석만큼 미인은 없을 것이다.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서. 선이 부드러운 얼굴이라 인상도 좋고 그 인상만큼이나 착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상하게 이런 녀석에게도 적은 꽤 많다는 거다.



"그래? 난 쟤 그닥 그렇던데."



또 시작이다. 산해의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갈색 웨이브진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기른 소녀가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었다. 예진아. 학기 초반엔 꽤 예쁘고 성격도 괜찮은 애라는 인상이었는데 그 인상마저 흐릿해진 건 얘가 정우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 후였다. 직설적인 성격이기도 하지만 정우의 행동이 그녀의 입장에선 퍽 답답한 모양이었다. 근데 신기한 건 정우도 진아를 엄청나게 불편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얘가 이렇게 거부감 일으키는 사람도 흔하지 않은데. 이유를 물어도 말을 안 해주고 말이다.



"샌님 같아서 별로지 않아? 남자애가 너무 허허실실, 누가 때려도 그냥 맞고 있을 것 같잖아."



산해는 속으로 웃었다. 샌님이라니.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정우 녀석은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훨씬 힘이 센 편이었다. 힘으로만 따지면 제가 더 쎄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근력이나 완력은 절대 제 또래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았다. 근데 누가 때리면 그냥 맞아주고 있을 것 같다는 건 절실히 공감했다. 저 성격에 누굴 때리기나 할지 모르겠다. 리키 녀석처럼 여차할 땐 팍팍 나서면 좋을 텐데.



"에이, 모범생에 공부 잘하고 성격도 좋은 걸. 사귀면 정말 잘해줄 것 같잖아."

"맞아, 맞아!"



맞장구치는 여자애들을 향해 진아가 반박했다.



"저런 타입은 사귀어도 피곤해. 너무 인기가 많으면 여친 입장에선 좀 그렇지 않아?"

"그런가…?"

"게다가 연애할 생각도 없어 보이는 걸 뭐. 맨날 친구하고만 붙어 다니고. 사귀어도 여친보다 친구를 택할 거 같은 남자는 딱 질색이야."



엄밀히 따지면 진아가 하는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성격상 모두에게 잘 해주는 편이긴 했지만 정우는 정말 친한 사람이랑만 어울리는 타입이었고, 여럿이서 어울리거나 놀 때는 잘만 끼어서 참여하긴 했지만 그 외에는 언제나 제 곁에 앉아있곤 했다. 디지몬 세계에서 친해졌던 사람들을 우선시하는 것도 있고. 기본적으로 소심한 편인지라 딱 선을 긋는 건 상대가 싫어서라기보단 그 자신이 낯을 가려서라는 말이 더 맞았다. 사교성은 좋은데 이상한 곳에서 미묘한 녀석.


이성으로는 틀린 말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친보다 친구를 우선시하지는 않을 거라고. 좀 씁쓸하지만. 올라오는 짜증에 산해는 책상을 탁 치고 일어났다. 여자애들이 그를 돌아보더니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산해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직감한 모양이었다. 하긴 대놓고 자기 단짝을 욕하고 있으니.



"얘기하는 건 좋지만 슬슬 그만 좀 하는 게 어때?"

"나는 사실을 말한 거라고."



진아의 예쁜 미간이 살포시 찌푸려졌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박하려던 산해는 다음 순간 치고 들어온 진아의 날카로운 대답에 멈칫했다.



"쟤가 너한테 의존도가 높은 건 사실이잖아?"

"뭐?"

"등교도 하교도 맨날 같이 하고. 맨날 붙어다니는 것도 모자라 너 축구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가고. 무슨 세트처럼 딱 붙어 있는데 솔직히 그럼 아니야? 여친이 있어도 네가 불러내면 곧바로 약속 취소하고 날아올 거 같던데."



하나하나 또박또박 따지는 진아의 표정이 그래 오늘 너 잘 걸렸다 하는 느낌이라 산해는 살짝 난감해졌다. 그리고 죄다 맞는 말 뿐이라 할 말이 없었다. 등하교 같이 하는 건 정우가 이사온 집이 제 집 근처여서 그런 거고, 축구부 끝나고 같이 집에 가는 건 녀석이 심심하대서…. '근데 정말 심심하다면 그냥 집에 가서 공부를 하고도 남을 성격인데 왜 굳이 자신을 기다리는가' 라는 의문은 차마 생각해내지 못하고 산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친구끼리 같이 다니는 건데 뭐 그리 문제인가. 산해는 사실 진아가 어떻게 그 사실들을 다 알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간신히 핑계를 찾아내 대꾸했다.



"야, 사나이들의 우정은 네 생각보다 더 깊고 깊은 거라고."

"니들처럼 유별난 애들은 내 주변에 없거든?"

"근데 그렇다고 해도 그게 너랑 대체 무슨 상관인데?"

"상관이 왜 없어?!"



저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지르는 진아의 목소리에 산해는 순간 귀를 막을 뻔했다가 겨우 참아냈다. 아, 여자애들은 진짜 톤이 높구나. 나리는 안 그러던데. 그렇게 생각하던 중 산해는 방금 전 진아가 내뱉은 말에 주목했다.



"어떻게 상관있는데?"

"그, 그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갑자기 말끝을 흐리더니 살짝 얼굴이 붉어져서 우물거린다. 그러더니 갑자기 홱 고개를 돌려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는 진아를 산해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질문했다.



"야, 쟤 왜 저래?"

"어린애는 몰라도 됩니다."

"야, 근데 그건 진아가 너무 불쌍하지 않냐?"

"하여간 저렇게 티가 나는데 당사자는 눈치를 못 채니…."

"아, 왜! 뭐냐고!!"



쯧쯧거리는 눈빛으로 산해를 바라보던 여학생들은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락바락 소리지르는 산해를 배경으로 깔고서.




*



여자애와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교실로 돌아오던 정우는 이쪽으로 탁탁 달려오는 실루엣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진아였다. 그쪽도 정우를 알아보았는지 진아의 걸음걸이가 복도 중간에서 딱 하고 멈췄다.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에서 애써 미소를 지으려는 정우의 얼굴을, 진아가 불쾌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홱 그를 지나쳤다. 싸해지는 마음을 붙들고 애써 교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여자애들 사이에서 넉살좋게 웃고 있는 산해의 얼굴이 보였다.


욱신, 심장 한 구석이 쓰려왔다.



'-좋아해.'



수줍은 얼굴로 고백하는 여자애에게 제가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은 늘 정해져 있었다.



'미안해요.'



돌려줄 수 있는 답이 이것 하나뿐이어서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여자애는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그래도 괜찮다며 애써 웃어주었고, 또 어떤 아이는 재빨리 저를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아마 대부분 우는 얼굴을 감추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정말로 예리하게 핵심을 찌르는 사람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 있니?'



그렇게 물으면 역시 답은 하나뿐이다.



'아니요.'



새빨간 거짓말.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끼다가도 이젠 익숙해져서인지 어느 정도는 무덤덤해진 게 다행이었다. 거짓말이라는 걸 들켜서도 곤란하니까. 당장 누구냐는 질문이 들어올 테고, 자신은 그 질문에 대답해줄 수 없다.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모든 게 다 순조롭게 풀리기에 세상은 냉혹하다는 걸 잘 알아서. 사랑과 우정 사이의 경계선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요즘 들어 좀 위험하다. 특히 산해의 저런 얼굴을 볼 때면 더더욱.


들키면 안 돼. 특히 산해에게는 절대로.


중학교에 와서 산해가 예상보다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솔직히 놀랐다. 물론 자신과는 달리 사람 수는 적지만, 이성들이 거의 동경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다가오는 저와는 달리 산해의 경우는 진심인 아이들이 많다. 단순히 외양만을 보는 게 아니라, 내면을 보고 좋아해주는 상냥하고 다정한 아이들이 꽤 많았다. 일단 접근하지 못하게 철저히 선을 긋는 자신과는 달리 산해는 친근하게 누구에게나 잘 다가가는 타입이었다. 덜렁대는 게 심하고 가끔 철없어 보이긴 하지만 중요할 땐 진지하고 다정하니까. 아무래도 그런 점에 끌리는 거겠지.


그 사실이 언제나 정우를 괴롭혔다. 자신과는 달리, 언제든 제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에. 추추몬이 떠났을 때도 이런 감정은 아니었다. 추추몬이 죽었을 때는 회한과 죄책감으로 속이 말라 비틀어졌었다면, 산해한테 느끼는 감정은 독점욕 그 자체였다. 이게 얼마나 웃긴 일인지 알면서도 현실이 그랬다.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참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예진아라고 했던가. 그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지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도 그녀가 껄끄러우니까. 산해와 함께 있으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면 거북하고 불편했다. 너를 좋아한다는 오오라를 대놓고 뿌려대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엄습하는 두려움에, 일부러 축구부 연습이 끝날 때까지 산해를 기다렸다 같이 가곤 했다. 아마 그녀도 대충 눈치는 챘을 것이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넘기고는 있겠지만.


이런 자신이 최악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산해야."

"어? 정우 너, 이제 왔어?"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선 정우가 언제나와 같이 부드럽게 웃었다. 즐거운 듯이 웃으며 저를 반겨주는 산해의 얼굴에 정우는 우울해져 있던 제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다. 산해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그게 좋으면서도, 그게 싫었다. 누군가가 점점 너를 알아보는 게 무서워서. 어릴 때는 모르더라도, 크면 커갈수록 점점 네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가겠지.


언제까지 이렇게 네 곁에 있을 수 있을까.



"자, 곧 수업 시작하는데, 필기는?"

"켁. 깜빡했어!! 으악, 잠시만!"



놀라서 허둥지둥 당황하는 산해의 모습이 웃긴 나머지, 정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피식피식 웃다가 짐짓 화난 듯이 표정을 바꾸고 질문했다.



"뭐 하느라 아직까지도 다 못 베꼈어?"

"아, 그게 사정이…."



헤헤 웃으며 변명하는 산해에게 정우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갈굴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냅두고 교과서를 펴는 정우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 있었다.


그래도 아직 이 정도가 좋지 않을까.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이 거리가 아직까지는 제일 편하다. 언제 말하기는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되리라 생각한다. 산해라면 무턱대고 자신에게 뭐라 하지는 않을 테니까. 낙천적으로 생각하며 정우는 다시 필기를 하는 산해의 옆모습을 힐끗 돌아보았다.


우정이 사랑으로 변하기까지, 앞으로 몇 걸음 전.




===


정우>산해

산해는 >정우 긴 한데 무자각이라는 설정이에요!


왜 트라이에 제로투가 없는 걸까요ㅋㅋㅋㅋㅋㅋㅋ전 무인도 좋고 제로투도 좋은데 ㄱ-

나르님한테 쓰겠다고 해서 부랴부랴 썼는데 아 역시 그냥 막 쓰니까 내용이 막 꼬이는 거 같...쿨럭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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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

+ 나이프귀능과 스푼오르카.




[귀능다나/오르메두]


Change


<01>






1.


그의 하루는 굉장히 일찍 시작된다.


새벽 5시. 자명종 소리와 함께 남자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자명종을 끄고 잠이 덜 깬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언제나와 같은 방 안임을 깨닫고 멍하니 앉아 있다. 이제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쁠 것 없는 습관이긴 했지만 일어날 때마다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는 건 이제 그만두고 싶었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미소와는 다른 텁텁한 웃음이 그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졸린 눈을 비비며 세면실로 향했다. 세수를 하다가 문득 거울 안을 들여다보니, 다크서클 가득한 얼굴이 놀란 얼굴로 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입꼬리를 올려 보았다. 거울 속 얼굴도 따라 웃는다. 연습하듯이 몇 번 그렇게 웃다가도 남자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뒤돌아섰다. 수건을 들어 얼굴을 닦으면서 거실로 나와 아침을 차렸다. 간단한 토스트와 우유 한 잔. 시간에 여유가 생긴 지금은 훨씬 더 괜찮은 아침을 차려먹을 수 있었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대충 입에 토스트를 물고 남자는 옷장 쪽으로 다가갔다.


달칵, 소리와 함께 옷장문이 열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수십 벌의 옷들이 드러났다. 거의 대부분이 트레이닝 복이었지만, 남자는 여느 때와 다르게 그 옷들이 아닌 구석에 챙겨놓은 정장 한 벌을 꺼내 입었다. 셔츠를 걸치고 바지에 발을 집어넣는다. 자주 입지는 않는지 제법 서툰 솜씨로 넥타이를 매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꽤나 불편한 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남자의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옷장 문에 달린 전신 거울에 몸을 비춰보았다. 그러더니 빗과 통 하나를 가져와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정말 귀찮아서라도 하지 않는 일들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2.


시내를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굉장히 특이한 복장을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검은 정장에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은 짧은 흑단발의 남자(?)의 전체적인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무척 잘생기긴 했지만 쭉 찢어진 눈매나 붉은 눈동자에서는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차림새나 분위기만 보면 어디 조직에서 한 자리 꿰차먹을 법한 인상이었다.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인상 더러운 이 사람이 경찰과 공공기관을 지원해주는 정의의 히어로 전문 기관 스푼(Spoon)의 서장이라는 것을.


다나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형사고가 났다길래 현장으로 출동했더니 교통사고를 낸 당사자라는 놈은 뻔뻔하게 적반하장으로 나오질 않나, 피해자는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횡설수설하고. 다행히 근처에 목격자가 많아 가해자를 쉽게 체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끌려가는 중에도 그 새끼가 한 치의 반성도 하지 않았다는 거지만.


후우, 한숨을 내쉬던 다나의 얼굴에는 한 순간 살기가 드러났다. 요근래 이상하게 사건사고가 많이 늘어난 느낌이다. 가뜩이나 인력도 없는데 할 일은 태산이고, 서장인 자신까지 발품을 팔아가면서 사건을 조율해도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이번 달은 재난의 달인가. 목 끝까지 차오른 피곤함을 내리누르며, 다나는 이제 돌아가 한숨 자볼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 때, 휴대폰이 울렸다. 수신번호가 뜨지 않았다.



"뭐지?"



의아해하면서도 다나는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히어로라는 직책상 수신번호가 뜨지 않는 전화는 그다지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받지 않으면 미래에 일어날 위험을 방조할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찝찝했다. 천천히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다대며 다나는 대답했다. 그녀는 지금 차도 옆을 지나는 중이었다.



"누구지?"



수화기 반대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장난전화인가 싶어 짜증내며 끊으려던 순간,



[서장님?]



침묵을 뚫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낮은 톤의 미성이었다. 침착했지만, 살짝 들뜬 듯한 목소리를 보면 상대는 아마 웃고 있는 모양이었다. 순간 누군가 했지만, 다나는 금세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깜짝 놀라 잠시 자리에 멈춰선 다나의 표정이 싹 굳어버렸다. 설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귀능이냐?"

[딩동댕~]



정답. 그렇게 말하며 하하 웃는 목소리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다나의 목소리는 이내 험악해졌다. 



"너, 어디 있어."

[궁금해요?]

"그래."

[그냥 앞으로 쭉 걸어와요.]

"무슨 소리지?"

[믿기 싫으면 마시구요?]



이 와중에도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귀능의 태도에 다나는 열불이 터졌다. 갑자기 사라져놓고 뭐가 어쩌고 저째? 마음만 같아서는 더 따지고 싶었지만 녀석은 더 이상 말을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급하게 앞으로 걸어가면서 다나는 이를 부득 갈았다.



"네 녀석, 잡히기만 해…."

[거기까지.]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앞으로 걸어나가던 다나의 어깨를 잡아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순순히 끌려와주면서 다나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새까만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를 감싼 귀능이 웃고 있었다. 사라진 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전혀 변한 게 없다. 정장을 입고 머리를 좀 까기는 했지만, 장난스러운 미소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그대로다. 녀석은 정말,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괘씸하게도.



"오랜만이에요."

"뭐 하자는 짓이냐. 말장난이라면 관둬, 맞고 싶지 않으면."

"하하, 여전하시네요. 근데…."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짓던 귀능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장님, 제가 서장님을 오래 안 봤던 게 맞는 것 같아요."

"왜."

"표정이 더 흉흉해 지셨어요. 진짜 조폭 같…."

"더 말할 거냐?"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을 꽉 쥐어 들어올리자 곧바로 헙 입을 다무는 걸 보니 그나마 눈치는 늘어난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을 붙든 손을 놓지는 않는다. 묘하게 가까운 거리에 다나는 슬쩍 물러나려고 했지만 귀능의 손은 꿈쩍하지 않았다. 사실 뒤로 물러나자면 물러나지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만큼 다나는 적당히 봐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물어볼 게 있었다.



"너, 어디 갔었냐."

"네?"

"대체 어디로 갔다가 이제야 나타났냐고."



몇 년 전, 제 옆에서 홀연히 사라진 녀석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녀석을 정말 몇 달을 미치도록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잠시 눈을 뗀 사이 사라진 거라 다나는 한동안 자신을 크게 자책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릴 적부터 10년을 넘게 같이 지낸 녀석이니까. 하지만 다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가볼 만한 곳도 다 가보고 온갖 전단지를 돌렸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어도 단서 하나 없이 사라졌던 녀석이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그것도 지금 이 시기에.



"음…. 서장님이 들으면 화내실 거 같은데."

"뭔데."



곤란한 듯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귀능을 다나의 붉은 눈동자가 묵묵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역시 변하긴 변했구나. 2년 만이라 그런지 확실히 얼굴은 예전보다 성숙해져 있었지만, 표정은 조금 어두워졌다. 까불거리는 것처럼 굴어도 녀석 특유의 음울함이 예전보다 한층 짙어져 있는 게 보였다. 워낙 까불거리고 어린애같은 말투를 쓰고 있지만 귀능의 원래 성격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건 다나가 가장 잘 알았다. 왠지 모를 착잡함을 느끼면서도 다나는 그저 기다렸다. 대답을 기다리는 다나의 침묵에 귀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요."

"뭐?"

"그 썩은 생선이요. 뻔뻔하게 서장님 비서로 들러붙다니."

"…먼저 나간 건 너 아니었나?"

"뭐."



그건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말하며 귀능은 싱긋 웃었다. 평상시와는 달리 위험스러운 느낌이 드는 미소가 다나의 마음을 싸하게 훑고 지나갔다. 본능적으로 그를 뿌리치고 물러나려고 한 다나의 팔을 귀능의 손이 붙잡았다. 이상하게 꿈쩍하지 않는 팔에 놀라기도 전에 귀능이 다나의 몸을 확 끌어당겼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에서, 귀능이 낮게 웃었다.



"왜 도망가세요?"



저 섭섭하게. 웃고 있는 귀능의 표정에서 다나는 심한 위화감을 느꼈다. 역시 이상하다. 뭔가 변했어. 어디가 변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어디 있는지 궁금하시다고 하셨잖아요."

"…어디냐."



천천히 얼굴을 움직여 다나의 귀에 속삭이는 귀능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정말 다나만 들릴 것처럼 작게 속삭이는 그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나이프."

"…뭐?"



그 순간 본능적으로 멱살을 잡으려고 한 다나의 손을 귀능은 가볍게 피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난 그가 다나를 보며 두 손을 들었다.



"아직은 잡힐 수 없거든요."

"너…."

"일단 선전포고만 하러 온 거니까요."

"선전포고라고?"

"가지고 싶었던 것이 있거든요. 아주 오래 전부터."



그걸 찾으러 돌아왔어요.


이해하지 못할 말들만 수두룩 늘어놓는 귀능을 보며 다나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오랜만에 돌아와 할 말이 고작 그것 뿐이냐? 범죄조직에 들어가 있어서 이제껏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리나 하고 앉아 있는 건가. 남아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알고 있어? 나이프에 들어갔다니, 그런 쓰레기같은 곳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이를 바득 갈면서 버럭 소리치는 다나에게 귀능은 쓸쓸한 듯이 웃어보였다.



"그래도 전 여기 있어야 해요."

"내 손으로 널 체포하길 바라는 거냐?"

"서장님은 생각보다 정에 약한 분이잖아요. 재회하자마자 저를 붙잡으려고 하시진 않으시겠죠."



잡혀 드리지도 않을 테지만. 귀능은 그렇게 말하며 살짝 허리를 숙이고 한 팔을 부드럽게 움직여 인사했다. 마술사가 쇼를 마친 뒤에나 할 법한 동작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뒤돌아서 골목을 빠져나간 귀능의 모습은 금방 인파에 섞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뒷모습을 망연히 쳐다보던 다나의 손이, 이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빠직 부셔트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


쓰다가 체력방전! 아 이제 자야지...


사실 커플링에 오르메두도 있는데 얘네 파트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걍 포기... 하하 별거 없어요 그냥 귀능이랑 마찬가지로 메두사가 열심히 비서로 일하고 있는 오르카 만나러 가는 거였....ㄷㄷㄷ


썰을 들었을 때부터 한 번쯤은 써보고 싶었어요! 문제 있으면 즉시 지우겠습니다 헤헤...ㄷㄷㄷㄷ



Posted by I.R.E
,

BL이에요, 캐붕주의. 이영싫 귀능다나 기반의 귀능유다입니다! ......정말 미안하다 얘들아ㅠㅠㅠ

※ 굉장히 묘사를 잘랐지만 상황 자체가 19금입니다 피하실 분들 제발 피해주세요ㅠㅠ






[귀능유다]

이 밤이 지나가고는







-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헉…."



소리마저 덮어 버릴 듯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막힌 숨이 트이듯 거친 숨소리가 허공 위로 뿌옇게 흩뿌려졌다. 닫혀있는 문, 잠긴 문고리, 도망갈 수도 없을 만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까지. 다시 찾아온 적막 너머로는 신음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왔다. 새까만 어둠에 가려져 있는 얼굴은 필시 일그러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속절없이 흔들리는 몸뚱아리 위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덧씌워졌다. 바로 앞에 누군가 있어도 그 윤곽조차 알아보기 힘들 것만치 어두운 방 안에는 오로지 두 사람만이 존재했다.


입 밖으로 튀어나갈 것 같은 신음을 조용히 삼키면서, 유다는 감았던 눈을 들어 제 위를 바라보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인지 저를 내려다보는 녀석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러 창문도 없는 깜깜한 방을 선택한 보람도 없이, 인간은 적응의 생물인지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눈앞의 사물을 알아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손가락의 감촉이 제 등을 끌어안고 피부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결코 내색하지는 않는 그를 향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목이 잠겨 탁해지긴 했지만 이런 상황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난스럽고 명랑한 음성. 그 목소리조차 유다는 짜증이 났다.



"왜 소리 안 내요?"



너라면 내겠냐, 멍청아.


어이없다는 듯이 노려봐 주었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말도 없는 제가 못마땅한지, 등을 감싼 온기가 사라지더니 손가락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제 어깨 쪽으로 올라오더니 얼굴을 쓰다듬는다. 탁, 소리를 내며 쳐내자 불만스럽다는 듯한 음성이 들려온다.



"만지는 게 싫으시다면 말이라도 좀 해 주시죠?"

"…."

"참내, 제가 나가군처럼 투시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리라도 내 주셔야 알아보죠. 진짜 보이는 게 아무 것도 없단 말이에요. 하필 왜 이런 방에서만 하겠다고 고집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싫으면, 관두던가."

"누가 싫대요? 아, 움직이지 마요! 다시 할 거니까요."



작게 웃음을 터트리던 녀석이 다시 자세를 고쳐잡는 것 같더니, 갑작스레 들어올려진 몸에 깜짝 놀랐다.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감각 때문인지 순간 쓰러질 뻔했지만, 손을 뻗어 녀석을 붙잡았다. 감촉으로 봐서는 목이 아닌가 싶었다.



"야, 이건 좀 힘든데."

"뀨?"

"소름 끼치니까 닥쳐. 다 큰 남정네가 애교 떠는 게 통할 거 같냐? 그런 건 차라리…."



녀석한테나 써먹어 보던가.


성격답지 않게 하고 싶은 말들을 눌러참고만 있자니 공연히 짜증이 났다. 이대로 목을 졸라버릴까. 어차피 내가 죽인 걸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냐? 그렇게 뻘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녀석이 다시 말을 건다. 주제부터가 제 성질을 긁을 만한.



"왜 이런 데서만 하는 걸 고집하는 거예요? 밝지는 않아도, 좀 불빛이 있는 데서 하면 안 돼나요? 여러 모로 불편한데 말이죠."

"…알 거 없어."

"그렇게 제 얼굴이 보기 싫은가요?"

"…그랬음 니 녀석과 이러고 있지도 않겠지."

"그럼…."

"싫다고 했을 텐데."



딱 잘라 대답하자 실망했는지 궁시렁거리던 녀석이었지만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상대한다면 완력으로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까. 다나만큼 능력을 잘 다루지는 못하지만 결정타 정도는 날릴 수 있었다. 저 녀석이 나를 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얼굴이 어둠 속에 가려져 있는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녀석은 내가 자기 얼굴을 보기 싫어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천만에,


나는 네 놈 얼굴이 보기 싫은 게 아니라, 네 녀석이 내 얼굴을 보는 게 맘에 안 들 뿐이야. 



'나를 보면서….'



그 녀석을 떠올리지 말란 말이야.


죽어도 입에 담지 않을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던 차에, 문득 이런 제 자신이 우스워졌다. 언제부터였더라?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이 행위 자체가 괴로워지기 시작한 건. 예전이었다면 서로의 만족을 채우고 나서 무심히도 헤어졌던 관계에, 끝나고 나서도 공허해지는 마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건. 분명 처음엔 이렇지 않았는데. 서로의 실리가 맞아서 시작했던 가벼운 관계였을 뿐이었다. 녀석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저는 마침 실연을 한 상태였다. 서로에게 있어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었을 뿐이다. 리드하기도 귀찮았고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았기에 딱히 상관없다 생각하고 주도권을 넘겼던 거였는데, 어느 샌가 제가 휘둘리고 있었다.


그냥 가볍게 상대하자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린 거지.


좋아하는 여자의 대체품으로 나를 원하는 녀석 따위에게 어느덧 정이라도 붙은 걸까. 몸이 가면 마음도 따라가는 걸까. 인정하기는 싫지만 난 바보가 분명했다. 피식 웃음을 흘려보냈다. 정말 멍청해. 은비단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그새 잊어버렸단 말인가? 오랫동안 같이 지냈기 때문에 더 마음이 가고 정이 갔었다는 걸. 물론 깊이 관여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런 애송이를 이렇게 생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긴 했지만.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녀석의 얼굴이 언뜻 보이는 것만 같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스르륵 눈이 감겼다.


아아-.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이 밤이 지나가고도,

밤은 다시 찾아오겠지.


뿌리치지 못하는 저를 쫓아서.




FIN.




===

쓰고 나니 급속도로 밀려오는 현타... 쓰고 나니까 지워버리고 싶어진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봐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ㅠㅠㅠ


간단히 설명을 덧붙이자면, 글에서도 보셨다시피 귀능이는 다나를 대신할 대체품(...)을 원했고 유다는 실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상호합의적으로 시작한 관계입니다만(애초에 유다 능력이 귀능이를 이겨먹음) 몸이 가니 마음도 가고 있다 뭐... 그런 내용이죠.


손풀이로 가볍게 쓰자고 썼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좀 걸렸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캐릭터를 붕괴시킨 것에는 매우 큰 사죄를ㅠㅠㅠㅠ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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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능다나] 가르침

기타 2015. 3. 24. 20:12

※ 트위터에서 풀었던 킹스맨AU의 일부를 써 보았습니다.

다나는 귀능이의 후견인으로 어릴 때부터 그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돌봐줬습니다. 바이올렛(제비꽃) 씨로 통칭되고 있죠. 

귀능이가 다나를 만나게 되는 씬을 간략하게. 영화 스포가 조금 있습니다.






[귀능다나] 가르침





작고 허름하지만, 깨끗한 바(Bar)에는 주인을 제외하고 단 두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기껏해야 열댓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을 법한 작은 바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제일 처음 손님을 반기는 것은 낡은 나무 냄새들에 섞여 훅 풍겨오는 알코올 향기다.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보이는 온갖 낙서들과 바닥에 난 흠집들, 밟을 때마다 끼익 소리를 내는 나무판자 소리를 듣다 보면 이 술집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이는 것만 같다. 둘러앉을 수 있는 몇 개의 테이블과 같이, 옆으로 앉게 만들어진 칵테일 바가 바로 오른쪽에 떡하니 서 있다. 찬장에 색색깔의 술병들을 그득 담아놓고서 술집의 마스터는 연신 손수건으로 쓰지 않는 유리잔을 닦아내고 있다.


그들은 창가 쪽에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캐주얼한 옷을 몸에 걸친 이제 갓 20세가 되었을 법한 청년이었고, 다른 한 쪽은 양복을 쫙 빼입은 검은 머리칼의 여성이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중성적인 외모와 단정한 자세, 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하나로 묶고 손에 보드카가 담긴 술잔을 들고 있는 여자는 딱 보기에도 이런 낡은 술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다리를 꼬고 넥타이를 풀어헤친 모습은 어찌 보면 난폭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장소보다는 비싼 레스토랑이 더 어울릴 법한 차림새였다. 왜 여자가 양복바지를 입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밝은 햇빛이 창문을 타고 넘어 그들의 얼굴을 선명하게 비췄다.


두 사람 다 꽤나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당신이 정말, 바이올렛 씨라구요?"

"바이올렛은 또 누구냐? 내 이름은 다나. 다나 하트다."

"오 맙소사, 세상에."

"뭘 그렇게 놀라지?"

"아니, 당신이. 어렸을 때부터 절 돌봐주신 바로 그 분이라고요?"

"그래."

"대체 몇 살이에요?! 겉으로 보기엔 저랑 그렇게까지 많이 차이나는 것 같진 않은데!"

"몰라. 계산하기 귀찮으니까 더 묻지 마라."



정말 귀찮다는 얼굴로 다나는 제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눈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다. 제 은사에게서 부탁받은 그의 아들. 그녀는 세간에 정체를 들킬 수 없었기에 그에게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고, 돈은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으나 돌봐주는 손길이 없어서 그런지 아이는 상당히 삐딱하게 자라난 듯 싶었다. 물론 저를 쳐다보는 눈빛은 빠릿하니 꽤 마음에 들긴 했지만.


녀석의 자신의 이름을 귀능이라고 소개했다. 이미 알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나는 제 손에 들고 있던 보드카를 조금 더 들이켰다. 그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구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나도 설마 네 녀석이 그 배지를 경찰서에서 사용할 줄은 몰랐다."

"윽. 어쩔 수 없었다구요! 방법이 없었으니까…."

"친구들을 말하는 거군."

"…."

"네 놈도 도통 신기한 녀석이 아니군. 보통 그런 데까지 가서도 의리를 따지냐? 잘못했다간 네 인생에 빨간 줄이 쫘악 그어지는 상황인데도?"

"제 마음인데요."



약올리는 듯한 말투에도 다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붉은 눈동자가 침착하게 제 앞에 앉아 있는 귀능을 살펴보았다. 소년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얼굴에는 그간의 고생한 흔적들이 두루 엿보였지만 묘하게 귀티가 존재했다. 불만스레 그녀를 쳐다보는 새까만 눈동자에는 총기가 가득했고, 캐주얼한 재킷과 티셔츠, 청바지로 감싸인 몸은 딱 봐도 밸런스가 제대로 잡혀 있었다. 어렸을 때 국가대표로 뽑힐 만큼 운동을 잘했다고 하더니 그 때의 체형이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술을 다시 홀짝 들이키면서 다나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툭 던졌다.



"어렸을 때 성적이 아주 좋았더군. 중학교 때까지 거의 A를 찍었던 걸 보면 말이야."

"…."

"고등학교서도 성적이 그렇게 좋더니만, 난데없이 학교를 중퇴하고 뒷골목 생활을 시작했지."

"뒷조사를 한 건가요?"

"설마. 이 정도를 가지고 뒷조사라고 할 수는 없지."



그를 노려보는 귀능의 눈초리를 쌈박하게 무시하면서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튼 좋아. 너 정도면 괜찮을 것 같군."

"뭐가요?"

"너, 계속 이런 식으로 살 거냐?"

"남이 어떻게 살든 말든…. 이라고는 못 하겠네요. 이제껏 절 후원해주신 분께 그건 예의가 아니니까요."

"무언가 더 보람 있고 멋진 인생을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게 무슨…."



귀능은 몹시 놀랐다. 농담인가 싶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그녀의 눈동자가 무척 진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곧바로 술집으로 쳐들어온 방해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들거리는 여러 명의 남자들. 그들이 누군지 곧바로 알아본 귀능이 제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소곤거렸다.



"가요."

"감히 내 차를 훔쳐 타다니,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냐?"

"니가 보스의 총애를 받고 있다지만 이번에는 보스도 네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거든?"

"넌, 죽었어."

"어이, 너희들."



귀능을 툭툭 치던 남자도 입꼬리를 뒤틀려 웃던 남자도, 주먹에서 엄지손가락만 빼들고 죽었다는 듯이 바닥을 가리키던 남자도 모두 그녀를 돌아보았다. 호리호리한 얼굴에 박력 있는 눈동자가 그들을 쓱 훑어본다.



"난 지금 기분이 매우 좋지 않거든. 좋은 말로 할 때 조용히 꺼…. 나가준다면 정말 고맙겠어."

"다나, 일단 가라니까요."

"이 여잔 또 뭐야? 그새 새로운 물주라도 잡았냐?"

"오올, 능력자로구만~?!"



낄낄거리는 웃음과 무례할 정도로 경박한 언사들. 그런 남자들의 모습에 다나의 미간이 살짝 씰룩거렸다. 휴우, 한숨을 내쉬며 다나는 조금 남은 보드카를 탁자에 내려놓고 제 옆에 있던 우산을 집어들고서 천천히 걸음했다. 남자들은 입에 손을 넣고 휘파람을 불었고, 귀능은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입기는 바라지 않았으니까. 특히 저 사람은 더더군다나.


어릴 때부터 동경해왔던 사람이니까.



"젊은 남자가 필요하면 스미스 가에나 가보라구?"

"으하하하-!!"



다나의 걸음걸이가 그 순간 멈춰섰다. 나가려는 것처럼 문 쪽으로 걸어간다 싶더니, 그녀는 손을 내밀어 가만히 문을 잠그기 시작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유달리 선명하게 들렸다.



"매너가,"



맨 위에 달려 있는 경첩을 왼쪽으로 닫더니, 그 옆의 경첩에 손을 댄다.



"사람을,"



두 번째 찰칵거리는 소리가 시곗바늘이 굴러가는 것마냥 선명하게 찍혔다. 그녀의 손이 출입문 쪽에 있는 마지막 잠금쇠로 향했다.



"만든다."



철컥. 마지막 탈출구가 닫힌 것마냥, 술집의 문은 그렇게 잠겼다. 그녀의 말에 빈정이 상했는지 귀능에게서 돌아서 다나에게로 다가가는 남자들의 모습에 귀능은 절로 나오는 한숨을 막을 길이 없었다. 어쩌자고 저러는 걸까?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나. 라고 생각하며 의자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아니, 놀란 건 그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르쳐주지."



다가오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를 가만히 듣던 중, 다나의 손이 제 우산의 끝을 붙잡고 탁자를 향해 휘둘렀다. 정확히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술잔을 향해서. 우산 손잡이에 정확하게 걸린 술잔은 탁자를 드르륵 긁어내리다 공중으로 날아, 무리의 바로 가운데에 서 있던 남자의 얼굴에 정확히 명중했다. 피를 흘리며 천천히 바닥으로 풀썩 쓰러진 제 보스의 모습에 남자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무서울 정도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솜씨에 여유로운 미소. 공기가 변하며 두려움이 지천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도 모르다니. 머저리들."

"어, 어…!!"

"종일 서 있기만 할 거냐?"



방금 전까지 조곤거리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살벌하게 변했다. 눈빛을 싹 바꾸며 다나는 제 머리를 박박 긁었다. 한쪽 발을 내밀고 우산을 제 어깨에 걸치고서, 발을 건들거리며 악당 같은 미소를 짓던 다나가 킥킥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에 남자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차갑게 일갈했다.



"와라, 애송이들."



*



"고작 이 정도인가."



탁탁 손을 털어내는 다나의 모습을 귀능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우산으로 술잔을 날려 보스급인 남자의 머리통을 명중시킨 것을 시작으로 난투가 벌어졌고, 그녀는 정말이지 기상천외한 솜씨로 남자들을 제압했다. 칼을 휘두르고 온갖 물건들을 휘두르는 남자들을 상대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을 때려눕힌다. 우산 하나를 가지고 사람을 저렇게까지 신명나게 팰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널부러져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귀능을 보며 다나가 씩 웃었다.



"어이, 그 얼빠진 표정은 뭐냐?"

"…당신, 정체가 뭐예요?"

"그게 알고 싶다면 따라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뒤돌아서서 가만히 기다렸다. 귀능이 결심하고 제게로 다가올 때까지. 한참 뒤, 제 쪽으로 발을 내딛는 소리에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위로 올리며 소리없이 웃었다. 물론 그가 그 표정을 봤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제서야 발걸음을 옮기는 다나를 따라가며 귀능은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는데요?"



정말로 궁금하다는 목소리로 제게 묻는 그에게, 다나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니 직장이 될 수도 있는 곳."



아직까지는.




FIN.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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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하님 생일 축전입니다. 예,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이유하님 맞아요(...)

얀데레 설정이 좀 들어가 있습니다. 그 점 주의해주세요! 수위는 없습니다. 그리고 짧아요!

그럼 시작.






[유하강림]

소녀, 그 방, 그리고 반복되는 하루






“강림아, 안녕?”


오늘 기분은 어때? 아, 나는 아주 잘 지냈어. 그냥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언제나처럼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은 후에 또 수업을 들었어. 종례를 마치고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처지상 어쩔 수 없이 학원으로 날아가야 했지만. 왜 우리나라 입시는 이다지도 빡빡할까, 거참 피곤하게.


학원을 마치니까 벌써 새까맣게 물든 밤이야. 가뜩이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왜 이렇게 가로등도 별로 없는지 모르겠어. 좀 무서웠지만 꿋꿋하게 집에 돌아왔어, 나 잘했지? 이제 게임만 좀 하고 자면 완벽한 하루…. 였겠지만 오늘따라 게임에서 트러블이 생겼어. 게임에서 정말 노답인 새끼를 만나서 말이야. 아악!! 생각해보면 이렇게 발암인데 난 왜 이걸 계속 하고 있을까…. 가끔은 정말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니까. 넌 어떻게 생각해?


강림아? 듣고 있어?


긴 흑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해맑게 웃었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서 소녀는 가만히 눈앞의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세를 약간 숙여서일까, 하나로 질끈 동여맨 머리카락이 조금 아래로 흘러내렸다.



“왜 대답을 안하니?”



섭섭하다는 듯이 한쪽 눈가를 찡그린다. 여전히 말이 없는 남자의 모습에도 소녀는 그저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하얀 손을 그에게로 뻗었다. 머리카락을 만지려나 싶었더만, 바로 그 옆을 지나 남자의 입에 물려 있던 손수건을 가만히 매만진다. 한참을 그러더니 손을 거둬들였다. 입에 재갈처럼 손수건을 물고서 의자에 묶인 남자의 눈동자가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았지만, 소녀는 그저 좋다는 듯이 꺄르르 웃었다.



“불편하구나? 미안해. 하지만 풀어주면 소리지를 거잖아.”



그건 싫거든. 딱 잘라 말하는 소녀에 발끈한 걸까, 남자는 읍읍거리며 그녀에게 달려들 듯이 몸을 내밀었지만 그뿐이었다. 계속해서 몸을 비틀어도 얼마나 튼튼하게 묶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의자는 마치 다리가 바닥에 붙박인 것처럼 미동도 없다. 몇 번을 그러다가 결국 체념했는지 남자의 고개가 한 쪽으로 툭 떨어졌다. 그런 남자의 얼굴에 소녀의 입가에는 가만히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내가 싫어?”



이젠 아예 눈을 감고 자신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 남자의 모습에 웃고만 있던 소녀의 인상이 돌변했다. 손이 잽싸게 움직이더니 그의 머리카락을 덥석 움켜쥐고 자신 쪽으로 홱 치켜들었다. 거친 손길에 남자의 입을 막고 있던 검은색 손수건이 풀려버렸다. 수분기 없는 꺼끌한 음성이 그의 입가를 타고 흘러나왔다.



“윽….”

“내가 말했잖아? 나랑 있을 땐,”



나만 보라고.


환하던 웃음이 순식간에 서늘하게 변했다. 그제서야 남자가 천천히 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건 명백한 거절. 그걸 모를 만큼 소녀는 둔하지도 않았고 그런 시선을 용납할 만큼 인내심이 강한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그녀는 좀 이상했다. 말없이 노려보는 시선의 끝이 가시처럼 그녀에게로 와 박혔지만, 소녀는 그저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날 부정하지 말아줘.”



그럼 슬프잖아.


쓸쓸하게 웃는 눈동자, 처연한 말투. 살짝 무릎을 숙여 그의 앞으로 다가선 얼굴이 스러질 것처럼 위태로이 웃는다. 허나 그럼에도 남자의 표정에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아니, 눈매를 씰룩거리는 폼을 보니 그냥 어이가 없는 듯했다. 그는 입을 열어 또박또박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장 이걸 풀던가.”

“아니, 그건 얘기가 다르지.”



금방 특유의 해맑은 미소로 돌아온 소녀가 살짝 제 볼을 부풀렸다. 그러고는 작게 투덜거린다.



“에이, 이런 가녀린 소녀가 이렇게까지 말해주는데 너무한다. 보통은 넘어오는 게 정상 아니야?”

“…건장한 남정네를 전기 스턴건으로 기절시켜서 방에 유폐한 사람 입에서 나올 대사가 아닌데? 가녀린 소녀라며?”

“그거야 난 힘이 없으니까!”

“웃기고 있네. 잔말 말고 적당히 이거 풀어. 나 일하는 데서 짤리면 니가 책임질 거냐?”

“어? 책임지면 돼?! 그럼 그냥 우리 집에 살아! 내가 두 사람 먹여살릴 정도로는 벌어올 테니까!”

“이게 말이라도 못하면….”



한숨을 내쉬며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강림은 계속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주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찌나 꽁꽁 묶어놨는지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밧줄을 푸는 게 불가능했고, 고로 그녀를 설득하지 않으면 자력으로는 여길 빠져나갈 수 없다. 창문도 없는 어두운 방에 갇혀 있어서인지 시간을 알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녀가 들어온 횟수로 따져보면 대략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꽤나 많이 지났으니 슬슬 저를 찾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지만 과연 저를 발견할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소녀는 생각보다 철저했고, 또 끈질겼으니까. 장난으로라도 절대 저를 묶어둔 밧줄을 풀지 않는 것이 그 증거였다. 몸이 이 상태여서야 구조를 요청하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때였다. 갑자기 무언가가 퍼뜩 떠오른 것처럼 소녀의 얼굴에 오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남자의 표정이 싸악 식어갔다. 불길한 마음에 어떻게든 그녀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재빠르게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든 그녀가 다시 그의 입을 틀어막기 시작했다.



“야, 이게 무슨 짓…!! 읍읍!!”

“벌써 자야할 시간인데 너무 끌었다. 강림이도 피곤하지? 어서 자.”

“읍읍!! 으으읍!!”



정말 화가 났는지 이마에 힘줄까지 돋아가며 마구 노려보는 눈길에도, 소녀는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그의 입을 꽁꽁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를 토닥토닥 쓰다듬는다. 마치 애완동물을 다루는 것마냥. 전혀 꿈쩍하지 않는 소녀의 모습에 강림은 또 다시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길, 또 이 패턴이냐.


등을 돌리는 소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휘릭 공중으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뚜벅뚜벅 걸어 방을 나서려는 순간 소녀가 홱 뒤를 돌았다. 순간 움찔하는 남자를 향해 유하는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잘 자, 강림아.”



내일 봐.


삐걱대던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다시 세상은 조용해졌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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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는 <이런 날 부정하지 말아줘> 였습니다!

별 거 없어서 미안... 유하 생일 축전입니당!ㅠㅁㅠ

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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