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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롤 주의. 대략 14000자




아 그런거 떠오른다. 그거 어때요? 마리네뜨나 아드리앙이 평소엔 평범한 학생인데 밤에 잠들면 꿈을 꾸면 갈 수 있는 또다른 세계에서는 레이디버그랑 블랙캣인거.


꿈 속 세계는 사람들의 또 다른 자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세계라, 모습들도 각자 다르고 현실에서의 기억이 없어요. 현실 때를 기억하는 건 아드마리뿐. 아드마리는 여기에 악당이 생겼는데 이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이 세계에 있는 미라큘러스 요정들에 선택되어서 같이 활동하게 되는데 역시 꿈 속에서는 원래 모습으로 있을 수 있지만 변신하게 되면 변신이 풀리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는 시스템.


캣버그의 경우는 블랙캣이 굉장히 괴로울 거 같아요. 꿈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여인을 사랑하다니. 현실의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깨어나면 아무런 접점도 없어서 만나지도 못할 텐데.


아무리 플랙이 이 세계는 단순히 꿈의 세계가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라고 말해줘도 결국 꿈에서 깨어나면 만나지 못하는 건 똑같으니까. 레이디버그는 그거 때문에 더 블랙캣에 선을 긋는 거. 그리고 마리네뜨는 현실에서는 아드리앙을 짝사랑하기도 하니까. 블랙캣에게도 나름의 정은 있지만 깨어나면 어차피 인연 끊어진다 생각하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라.


아, 좀 시리어스하지만 꿈 속 세계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그 존재가 사라지고 잊혀져요.


그래서 언제 다른 악당 손에 누군가 죽었는데 다음날 학교에 등교했는데 잊혀진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는 아드마리가 보고 싶다. 이게 왜 이러냐고 요정들에게 물어보면, 꿈의 세계 사람들은 너희쪽 사람들 마음속의 무의식으로부터 기반하기에 여기서 사라지면 현실에선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너희는 미라큘러스 소유자라 기억하는거지 아니었으면 너희도 잊었을거라 말해서 둘이 충격받았으면. 그래서 더 파트너가 위험해질까 걱정되고 신경쓰는 캣버그! 블캣은 훨씬 더하겠지...


- 네 존재가 잊혀졌다는 현실로부터, 네 정체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는 않아. 절대로.


사실 이 세계에 있는 인물들의 관계도도 현실에 상당수 기반되어 있어서, 꿈 속 세계(사실 다른 세계긴 하지만 지칭 귀찮으니까)서 관련된 인물이면 현실서도 관련되었을 확률 높음. 그 사실로부터 얘도 의외로 나랑 관련되어 있는 사람인지 몰라, 라고 의심하고. 악당들을 처리하면서 이 세계에 이런 일을 벌이는 흑막을 찾아 다니면서도 모든 게 끝나면 다시 여기로 오지 못하니까, 그 전에 정체를 밝힐까 끝까지 숨길까로 갈등이 엄청날듯.


블랙캣은 그냥 꿈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했지만 레벅은 현실의 초라한 자신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함. 여기서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강하고 당당한 히어로지만, 현실은 그냥 평범한 소녀일 뿐이니까. 실망하게 될 블랙캣의 얼굴을 보는 게 두려워서 ㅇㅇ


예전에 읽었던 몽환전설이라는 절판본이 있는데 거기 세계관이 좀 떠오르네요 흠. 거기도 꿈을 꾸면 다른 세계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는데 ㄷㄷ


아무튼 계속. 현실 파트를 잠깐 보면, 애들은 히어로로 활동해야 하니까 당연히 상대적으로 잠이 부족해서 피곤해할듯. 심지어 그쪽 세계에서 악당 나타났다는 텔레파시를 요정한테서 들으면 낮이어도 잠이 들어야 하니까 학교에서도 졸다가 꾸중듣고.


둘이 같이 잠드니까 같이 교무실에 끌려가기도 할 거 같다ㅋㅋㅋㅋ 막 둘 다 평소에 안 그러더니 요즘 들어 왜 이러냐고 하면 아드리앙은 할 수 있는 말이 없으니까 죄송하다고만 할 거 같고 마리네뜨도 마찬가지. 같이 벌서면서 서로 대화도 나눌거같다 ㅇㅇ


마리네뜨는 엄청 두근거리는데, 말을 더듬으면서도 너 평소에 안 그러면서 왜 그랬냐고 물을 거 같고 아드리앙은 머리만 긁적긁적.


그냥 피곤했나봐.

응?

나도 사람이니까. 지칠 때도 있어.


뭐 이런 실없는 대화나 주고받겠지.


그렇게 대화하다보니 마리네뜨는 아드리앙이 자기 생각만큼이나 완벽한 느낌은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친근하게 느끼고, 아드리앙은 아드리앙대로 자기를 위로해주는 마리네뜨의 말에서 굉장한 기시감을 느낄듯. 레벅이 제게 해주는 말들이 섞여 있어서.


얘야 설마 아드리앙이 블랙캣일 리 없다 생각해서 이러는 거겠지만... 아드리앙은 마리네뜨가 설마?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묻지는 못하겠는게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올까봐 무섭기도 하고, 만약 아니라면 상황을 설명할 때 분명 미친놈 취급받을 게 확실하니까.


다시 꿈속 상황으로. 흑막이 보내는 악당들을 처리해가며 점점 흑막에게로 다가가는 캣버그지만 갈등도 점점 심해짐. 악당을 처리하고 나면 이 세계가 더 이상 자신들을 필요치 않을 테니까. 결국 블랙캣은 자기 마음을 고백하기로 결심할 거 같다.


레벅이 질렸다는 듯이 소리질러.


"왜 그렇게 내 정체에 대해 궁금해해?! 그냥, 그냥 이대로이면 안 되는 거야?"

"..그럴 수 없어."

"왜?!

"너를 좋아하니까."

"...뭐?"

"너를 좋아해. 좋아하니까, 불안해. 그래서 자꾸만 묻고 싶어져."


넌 대체 누구야?


레벅 데꿀멍. 대답을 하기에는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음. 이 세계가 카오스가 되가고, 학교에서는 점점 빈 자리가 늘어가지만 아무도 그 상황을 눈치채지 못해.(물론 어른들도 사라짐) 블캣도 그걸 알고 고백한거야.


"대답은 바라지 않아.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

"그래서 더 말하고 싶었어. 만약..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는 애써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널 사랑했다는 건 기억해줘."

그거면 충분하니까.


진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쐐기를 박아놓음. 그리고 그 후로 레벅은 블캣을 더 걱정하게 돼. 얘가 자기 일에 유독 목숨을 거는 건 있었는데, 그 한 마디에 괜히 불길해져서. 그러다가 어느 날은 악당을 좀 일찍 해치웠는데, 돌아가려는 레벅을 블랙캣이 붙잡고 어딘가로 데려가. 숲 속의 꽃밭으로 자길 데려온 블캣에게 여긴 왜 데려온거냐고 물으니 그가 웃으면서 기다려보라고 함. 시간이 지나고 어두워지니 꽃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빛들이 하나둘씩 떠오름. 반딧불이. 여긴 반딧불이의 숲이었던 거야.


예쁘다고 말하면서 넋 놓고 바라보는 레벅에 블캣은 뿌듯함을 느끼면서, 반딧불이들 사이에 있는 레이디버그를 하염없이 바라봄. 사실 아드리앙은 이 세계에 와서도 변신하기 전 모습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녔었거든. 여자보다는 체력이 되니까 피로도 좀 덜했을테고.


여긴 그 와중에 찾은 곳인데 한 번쯤은 레이디버그와 같이 오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타이밍을 못 잡았을 뿐. 예쁜 풍경에 좋아하다가 어쩌다보니 옆을 돌아본 레벅은 블캣의 표정을 보고 놀라.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자신 쪽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표정이 평소의 장난스러운 이미지랑 천지차이라서. 정말 사랑스럽다는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에 괜히 얼굴이 막 더워지는 거야. 쟤가 저런 얼굴로 날 쳐다봤었나? 동시에 진심이라는 걸 아니까 더 착잡해지지. 대답은 정해져 있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아.


그렇게 착잡해하던 중 중간보스와의 전투가 있었고, 둘은 열심히 싸우지만 상대가 너무 강해. 게다가 이 도시엔 거대한 주술진이 쳐져 있어서 변신이 풀려도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장담이 안 됨. 그냥 죽을 수도 있는거야.


그 와중에 악당이 레벅을 노리고, 그걸 본 블랙캣이 목숨을 걸고 악당을 붙잡고 둘이서 주술진을 해지해. 주술진이 해지됨과 동시에 두 사람의 모습도 희미해지기 시작하고(원래 세계로 이동중) 그 대가로 거대한 창을 정통으로 맞고 레벅 앞에서 쓰러지는 블랙캣을 마지막으로 마리네뜨는 꿈에서 깸.


깨어나서도 두쿵거리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아.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고 가시지 않은 충격에 속이 뒤집혀. 겨우겨우 학교를 갔는데 누가 결석했네.


아드리앙 아그레스트.


그 이름에 마리네뜨는 심장이 철렁함. 에이 설마, 싶지. 결석이야 한 번쯤 할 수도 있는 거고, 무엇보다 죽었으면 존재가 잊혀지지 결석 처리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근데 이틀이 지나고 3일이 지나도 학교에 오지 않는 아드리앙에, 기어코 마리네뜨는 그의 집에 병문안을 가. 도련님은 지금 아무도 만날 수 없다고 말하는 나탈리에 어떡하지? 이러다가 결국 니노를 통해 보러가는데 성공해. 니노는 얘가 왜 이러나 싶다가도 걱정된다고 하니까 같이 가주지.


아드리앙은 침대에 누워 있었어. 하얀 얼굴로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지. 그런 아드리앙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 굳어버린 마리네뜨에 니노는 자기도 아드리앙이 걱정스러우면서 잠깐 나탈리한테 뭐 물어봐야 겠다고 잠깐 나가.


마리네뜨는 가만히 아드리앙을 보다가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는데, 이마쪽 머리칼을 넘겨주다가 거기에 나 있는 상처를 보고 놀라. 심지어 생긴지 얼마 안 된건데, 이 상처의 원인을 알고 있었거든. 자신을 구하려다가 악당의 거대한 손톱에 긁혔던 상처. 그리고 피부가 꽤나 차가워. 코끝에 손을 대봤지만 죽지는 않았어. 근데 일어날 기미조차 없어. 꼭... 꼭...


죽어버린 것처럼.


마리네뜨는 떨어지지 않던 입술을 열어 읊조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너였어?"


그가 블랙캣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긴 했어. 아니길 빌면서도 만약 진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각오도 했어. 근데, 막상 보니까 너무 감당하기가 힘든 거야. 그가 정말 블랙캣이라면, 자신의 눈앞에서 창을 맞고 쓰러졌다는 걸 인정해야 하잖아.


마리네뜨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해. 입술을 꾹 다물고 그냥 뚝뚝 눈물만 흘리던 그녀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움직일수가 없어. 그녀는 후회해. 차라리 말해줄걸, 내가 누구였는지.


이런 식으로 네 정체를 알아야 할 바에는.


죽지는 않았으니까 깨어날 방도는 있겠지. 무엇보다 레벅은 그렇게 돌아온 후로 꿈속 세계로 가지 않았거든. 무서워서. 그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지 않아서야. 아드리앙의 집에서 돌아온 뒤 그녀는 티키에게 연락을 넣고 다시 레이디버그가 됨.


그리고 알아보니까 블랙캣은 죽은 게 아니야. 근데 살아있다고 보기도 힘들어. 그가 깨어나지 못한건 그가 가진 미라큘러스를 그 중간보스가 가져갔기 때문이지. 그 증거로 마리네뜨는 보지 못했지만 누워있던 그의 손가락에 있던 반지에는 고양이 무늬가 없었어.


그걸 되찾아야 한다는 걸 짐작하고 레이디버그는 몰래 그 중간보스의 아지트로 숨어들어가. 온갖 방들과 복도를 지나 중간보스의 방으로 접근했는데 다행히도 그는 아직 미라큘러스를 최종 보스에게 넘기지 않았음. 근데 진짜 개고생을 하긴 했지. 찾아왔지만.


(참고로 이 세계에서 입은 상처는 현실에서도 남습니다) 레이디버그는 온갖 고생을 해서 찾아온 미라큘러스를 가지고 잠에서 깨어나. 그리고 이른 아침인데도 아드리앙의 저택으로 달려가지. 근데 이때는 담을 넘어서(...) 몰래 숨어들어가요 ㅇㅇ


어찌어찌 들어가서 가지고 온 반지를 아드리앙의 손가락에 끼워주니까, 기존에 있던 반지는 부서지고 끼워진 반지에서 빛이 나. 잠시 뒤에 사르르 눈이 뜨이고 아드리앙은 자기 눈앞에서 울고있는 마리네뜨를 보고 놀라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음. 눈치챈 거지.


"..너구나."

"...응."


두서없어 보이지만,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서 아드리앙은 살며시 반지를 낀 손으로 마리네뜨의 한 손을 붙잡아. 이번에는 손이 무척 따뜻해서, 마리네뜨는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더 뼈저리게 깨닫고 그래서 더 눈물을 그치지 못하겠지.


아드리앙은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고, 울고 있는 마리네뜨를 살며시 품에 안아줌. 그리고 등을 토닥토닥. 나중에 들어온 나탈리가 이 광경(아드리앙 깨어남+왠 여자애가 있음.)에 깜짝 놀라는데 아드리앙은 쉿, 하면서 손짓으로 내보낼 거 같다 ㅎㅎ


그리고 이 때부터 둘 사이가 정말정말 미묘해지기 시작하는데..


서로 정체를 알았지만 이게 만만한 게 아닌게, 블랙캣으로 고백했지만 아드리앙은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고 마리네뜨는 아드리앙을 좋아하지만 그가 블랙캣이라는 사실을 아직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했을 뿐더러 블랙캣이 고백한건 레이디버그지 마리네뜨가 아니잖아.


그가 몸을 회복하고 다시 파트너로서 같이 활동하지만 두 사람 다 너무 무리해서 달려왔다는 걸 인정하고 서로 돌아가면서 임무를 수행하기로 해. 솔직히 매일같이 잠도 못자고 악당들을 상대하니 컨디션이 그 모양이지. 그리고 학교에서 대화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사정을 모르는 애들은 쟤들 썸타나? 싶겠지(아니 썸은 맞지만). 그러면서도 둘 다 캣버그일 때도 미묘하게 어색한 상황이었을것.


중간보스들을 차근히 처리하며 최종보스인 호크모스의 소재를 파악하고 그가 있는 장소를 찾는 상황에서 하루는 아드마리의 모습으로 둘이 꿈 속에서 만나.(변신후는 눈에 띄니까) 아직 무슨 신호가 없어서 나름 평화로운 상황에서 같이 길을 걸어가며 마리네뜨가 물어.


"있지, 아드리앙."

"응?"

"너는 어쩌다 블랙캣이 된 거야?"

"아아."


그건, 이라고 운을 떼면서 아드리앙은 웃어.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려서."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해. 그리고 되묻지.


"그러는 너는?"

"응?"

"너는 왜 레이디버그가 된 거야?"

"나는 뭐.. 같은 이유려나?"


배시시 웃는 마리네뜨에게 아드리앙은 물어.


"후회하진 않아?"

"..."

"지금 그리 좋은 상황만은 아니잖아."


그렇게 묻는 아드리앙에게 마리네뜨는 고개를 저으며 말해.


"후회야 늘 하지. 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도 엄청 후회했었는걸. 그래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러니까 책임은 져야겠지."


그렇게 말하니까 아드리앙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다가 웃음을 터트려.


"역시 넌 레이디버그구나."


두근.

그 한 마디에 괜히 심장이 뛰는 자신에 당황하던 마리네뜨가 조용히 중얼거려.


"다행이다."

"응?"

"나를 제대로 레이디버그라 생각해주는구나."

"무슨 소리야?"


아드리앙이 되묻자, 마리네뜨가 피식 웃으면서 말해.


"나, 평범하잖아. 뭔가 특출난 것도 아니고, 늘 덜렁대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네가 실망하지 않았을까 해서."

"..설마. 그래서 정체를 말하지 않으려고 한 거야?"


고개를 끄덕거리는 마리네뜨에 아드리앙은 한숨을 쉬어. 그러는 너는?


"내가 블랙캣이라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아?"


막 횡설수설 말하다가 결국 신기하다고 자백하는(?) 마리네뜨에게 아드리앙이 자기 성격에 대해 설명해줘. 자긴 보이는 것만큼 완벽하지도 않고 쪼잔한 면도 있고 화도 잘 나고 질투심도 많다고. 힘들 때도 있고 외롭기도 하고, 누군가를 좋아해서 마음 앓이할 때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자유롭기엔 주위의 기대가 무거워서, 다들 이런 나의 모습을 원하니까 이렇게 살았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함.


"블랙캣은 또 다른 나야. 버림받고 외면받았던 내 안의 자유."


그렇게 말하면서 아드리앙은 말해. 너도 마찬가지지 않냐고.


"레이디버그는 너의 또 다른 면일 뿐이야. 그게 너라는 사실은 변함없지."

"..."

"나는 그런 너를 좋아해."


자연스럽게 다시 고백을 던지는 그의 볼이 좀 붉어졌어. 앞만 보고 있는건 아무래도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겠지. 흠흠 헛기침을 하던 그가 조심스레 말해.


"아, 오해하지마. 부담주려고 한 건 아니야."


내 마음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거니까.


마리네뜨는 그에 울컥해선 가만히 손을 뻗어서 아드리앙의 손을 붙잡아. 놀라서 힐끔 시선을 내리는 아드리앙의 시선 끝에 고개를 푹 숙인채 얼굴이 아주 새빨개진 마리네뜨의 모습이 보여. 마리네뜨가 더듬더듬 말을 꺼내.


"너를 오래 전부터 좋아했었어."

"..."

"사실 지금 좀 혼란스러워."

"...그렇구나."

"그래도 여전히...!! ...네가 좋아. 블랙캣이 너라는 건 좀 혼란스럽지만, 아니 그렇지만,"


그래도 네가 좋은걸.


아드리앙의 큰 손이 마리네뜨의 손을 강하게 붙잡죠. 두 사람은 이 때부터 사귀게 됩니다.


그리고 최종보스를 찾으러 가는데, 최종보스가 되게 악질인게 사람의 마음 속 어둠을 끌어내 정신공격을 가하는 타입이란 말이죠. 레벅도 레벅인데 이 공격이 블캣한테 진짜 치명적이어서 블캣은 세뇌를 벗어나지를 못해. 어릴적부터 사람이랑 어울리는 것도 금지되고 철저히 아버지에 의해 엘리트로 키워진 아드리앙의 내면 어둠이 너무 깊었던 탓. 혼자였던 어린 시절이 그의 정신세계에 계속 루프되고 현실의 블캣은 레벅과 싸움.


블랙캣이 생각보다 정말 세서 레벅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 결국 레이디버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요요를 이용해 블캣 봉을 다 같이 날리고, 고대의 재앙을 시전하려는 블랙캣을 힘껏 껴안아. 그리고 말해.


울지 말라고.


싸우고 있는 블랙캣 눈에서 눈물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감정에 솔직해지는 블캣 상태에서는 세뇌중이라 정신은 없었어도 눈물샘까지 제어할 수는 없었던 거지. 그 말과 자신을 껴안은 온기에 고대의 재앙을 사용하려던 블캣의 손이 딱 멈추고, 정신을 차려. 레이디의 품에서 아침을 맞다니 이거 좋은데~ 라고 농담을 치는 블랙캣을 보고 레벅은 피식 웃더니 역시 고양이는 성가시다니까, 라고 대꾸함.


뭐 대충 그러다가 둘이서 최종보스 무찌르고 나니 이제 진짜 모든 게 끝난거야.


그렇게 있던 두 사람 앞에 반투명한 형상의 티키와 플랙이 각각 나타나. 수고했다고 말하던 요정들이 이렇게 신세를 졌으니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말함. 뭐든 일단 말해보라는 요정들한테 아드마리는 서로를 마주보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빙그레 웃어.


그리고 손을 마주잡고 말하지. 우리가 바라는 소원은 하나뿐이야.


- 모든 것을 제자리로.


지금 꿈 속 세계는 거의 절반이 악당들에 의해 초토화되어 있는 상태였거든. 학교에도 책상이 절반 넘게 비어버렸고. 둘이 바라는 건 시간을 되돌려 사라진 사람들을 되돌려받는 것. 이건 미라큘러스의 비밀을 요정들이 귀뜸해줬을 때부터 둘이서 상의해서 이미 결정했던 일임.


어두운 기운을 펼치던 최종보스를 없앴으니 이 세계는 이제 안전하겠지. 이제 올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조금 후련하기도 해.


아무튼 요정들은 그 소원을 접수하고, 둘은 각자의 요정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지.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언제나와 같은 일상에 사라졌던 친구들도 멀쩡한 세계로. 그 일상이 결코 그냥 찾아온 게 아니라는 걸 두 사람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 열심히 삶을 살아감.

레이디버그와 블랙캣 이야기를 가슴에 묻고서.


- 본편 THE END




* 외전



꿈 속의 세계를 대하는 아드리앙과 마리네뜨의 태도는 많이 달랐을 거 같다. 아무래도 마리네뜨는 특정 상황 아니면 절대 모험을 감수하는 타입이 아닌데 아드리앙은 호기심이 많아서 변신하지 않은 상태로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닐거 같아.


일단 꿈 속의 세계는 나이는 똑같아도 생김새는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건 무의식의 모습이 실제 모습과 괴리가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 다만 아드리앙과 마리네뜨는 미라큘러스의 힘으로 두 개의 세계의 기억이 합쳐졌다는 차이 정도.


일단 이 세계의 둘은 정말 접점이 없음. 일단 배경은 현대의 모습처럼 세련된 도시만이 아닌 자연 친화적인 도시나 장소들이 상당히 많을 거 같다. 그렇지만 둘의 가정환경은 비슷했을 거 같은? 이쪽 세계의 마리네뜨는 평범한 부모 밑에서 잘 자랐고 아드리앙은 이 세계에서도 역시 좀 큰 도시의 유명 정치가 아들이지만 아버지가 바쁘고 엄해서 얼굴을 잘 못보는 건 똑같지. 아무튼 사족은 넘어가고, 아버지가 자주 안 들어오니까 활동이 상대적으로 편한 아드리앙은 플랙이랑 이곳저곳을 같이 돌아다닐듯.


참고로 이 세계와 현실 세계는 낮밤이 뒤바뀌어 있습니다 ㅇㅇ 현실의 낮이 여기의 밤이에요. 실제로 최종결전때 마리네뜨와 아드리앙은 하루를 꼬박 잠들어 있어야 했습니다ㅋㅋㅋㅋ 싸움이 아침해가 떠오르는 어스름한 새벽에나 끝나서.


연갈색의 낡은 망토를 입고 고글을 목에 메고(머리에 두르기엔 모자를 써야함)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아드리앙 보고싶다.. 악당이 나타나면 플랙이 순간이동 시켜주겠죠ㅋㅋㅋ 사막에 서서 모래바람 지나간 뒤에 갠 날씨를 보며 쓰고있던 고글을 벗는거 보고싶네요.


음 사실 위에 풀어둔 설정이 매우 무색하게도(...) 이 세계에 있던 두 사람의 존재 자체는 그들이 미라큘러스에 선택된 순간 지워져..서.... 말이죠ㅠ.ㅠ 활동에 별 문제는 없었을 겁니다. 다만 애들이 잠을 못자다보니 진짜 피곤했을 거예요.


왜 현실의 애들이 선택되었냐면 미라큘러스의 힘 자체가 꿈 속 세계의 존재들이 사용 불가했던 능력이라; 그리고 최종보스도 이쪽 세계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마리네뜨는 너무 피곤해서 빨리 레벅으로 변신해 임무를 처리하는 걸 우선했고 아드리앙은 나름 즐겼습니다:) 일단 굉장히 자유로웠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보기도 하면서 사회화를 많이 거쳐요. 정체를 안 후엔 마리네뜨랑도 같이 다니지만.


썰에 나온 반딧불이 숲도 그때 발견한거. 변신이 풀리면 무조건 현실로 돌아오게 되니까 가급적 본 모습으로 돌아다녔겠죠. 정체를 알고 같이 다니게 된 후로, 악당을 처리하고 돌아가야 하는 시간에 하는 인사는,


"학교에서 보자!"


였습니다 ㅎㅎ



여기서부터 본격적 외전,(본편 중의 이야기)


아 진짜 이쪽세계 알리야랑 니노 만나는 씬 꼭 넣고 싶었는데 빨리 끝내려고 버렸었던8ㅁ8 이쪽 세계 알리야는 숲속 통나무집에서 유유자적 살고 있는 소녀였구요 니노는 떠도는 나그네! 피리를 잘 불고 커다란 멕시코스타일 모자 쓰고 다녀요!


아드마리는 둘을 보고 반가워하지만 당연히 두 사람은 얘들을 몰라보죠. 아드리앙이랑 니노는 역시 현실 실친답게 몇번 말을 주고받더니 금세 죽이 맞아서 막 떠들고 있고, 마리네뜨는 어느샌가 알리야에게 연애상담중(..) 여기서 알리야는 나무꾼 집 딸입니다.


알리야네 통나무집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주고받던 중 알리야가 같이 온 남자 멋있네. 네 남자친구야? 라고 물으면 마리네뜨는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 막 더듬다가 아주 조곤히 ..응. 이라고 하겠죠. 잘못 말하면 사라질 것처럼 조심스럽게.

(이때 이미 사귀는 중)


일단 알리야랑 니노는 안면식 없는 사이였는데, 호크모스를 찾아다니다 어떤 도시에서 둘이 잠시 갈라졌는데 아드리앙이 니노를 발견하고 마리네뜨가 알리야 발견해서 아드리앙이나 마리네뜨 둘 다 놀라가지고 걔들 붙잡고 같이 길을 걷다가 길 한복판에서 마주하면 진짜 재밌을듯ㅋㅋㅋㅋ


아무튼 거기서 서로 막 인사하고 수다 떨다가 쿨한 알리야의 초대로 집에 놀러가고... 저녁까지 있으면서 모닥불 도란도란 피워놓고 니노가 피리 불어줬으면 좋겠다 알리야가 아드리앙 춤 시켜보는데 더럽게 못춰서 다들 웃음 터트리고ㅋㅋㅋ 니노는 자꾸 삑사리나서 눈감고 피리불듯ㅋㅋㅋㅋㅋㅋ


어두운 밤 고요한 숲속에 잔잔한 피리 소리가 들리고, 모닥불 타닥타닥 타는 소리 듣고 있자니 진짜 매우 평화롭겠지. 얘들이 왜 밤까지 있냐면 지금이 방학중이기 때문(..) 안 그러면 활동이 힘드니깐요 ㅇㅇ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나. 지금도 어디서 악당들이 활개치고 있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리네뜨랑 아드리앙은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차마 말로 꺼낼수가 없음. 현실로 돌아오게 될까봐ㅇㅇㅠㅠㅠ


그 순간, 숲에 거대한 굉음이 울려.


무슨 일이지? 하고 놀라는 니노알리와 달리 아드마리는 귀걸이와 반지에서 오는 신호를 보고 감을 잡음. 애들한테 기다리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신한 캣버그는 도시를 향해 날아가고 알리니노도 도시로 가.


그 이유는 지금 도시에서 모든 어른들에게 소집령을 내린 상태라 알리야의 부모님도 도시에 가 있었거든. 그래서 여차저차 광장에 있던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고 있는 악당들과 대치한 캣버그는 치열하게 싸우지만 수적 열세에 인질로 잡힌 사람들 때문에 그냥 피해다니고만 있는데 알리야랑 니노가 머리를 써서 인질들을 해방시켜. 그에 나이스를 외치던 중 악당의 공격에 알리야가 맞아서 벽으로 밀려서 쓰러짐. 알리야 머리에서 피나는 거 보고 빡돈 레벅이 진짜 괴력을 발휘해 최단시간만에 악당을 정리.


그렇지만 싸움이 꽤 거칠었어서, 다 부서진 광장이나 다친 사람들을 본 캣버그는 정신이 확 듬. 빨리 모든 것을 정리하지 않으면 이런 사람들이 더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심지어 악당들은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을 꼬여내기 위해서도 이런 짓을 하는 거니까. 머리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앉아 있는 알리야를 보고 마리네뜨는 차마 시선을 맞추지 못해. 자기가 레벅인거 들키면 안되는데 말이야. 그런 마리네뜨에게 알리야는


"어 왔네. 걱정했어? 난 괜찮아~ 좀 꿰매긴 했는데, 한 2주만 조심하면 된대."


라고 말해주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리네뜨는 괜히 미안해지고. 몇 마디 주고받다가도 마리네뜨가 이제 떠나야 한다고 할 때는 알리야의 입가에 있던 미소도 조금 엷어짐. 알리야가 말해. 아쉽네.


"너랑은 왠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이미 좋은 친구야.


그렇게 말할 수 없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마리네뜨에게 알리야가 말해.


"그래도 나중에 또 여기 올 일 있으면 들러! 그때도 맛있는 빵이랑 우유 준비해두고 기다릴 테니까."

"..응. 그럴게."


그렇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아드리앙은 니노랑 병실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 떠돌이인 니노라면 분명 이것저것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고, 예상대로 그는 호크모스의 소재지에 대한 쓸만한 정보를 몇 가지 알려줘. 그걸 숙지하는 아드리앙에게 니노가 말해.


친구.


"혹시 여행에 흥미 있어?"

"어, 어?"

"그럼, 나중에 나랑 같이 돌아다니지 않을래?"


너랑 얘기하면 꽤 즐겁다구. 싱글 웃으며 자기 어깨를 투닥이는 니노에게 아드리앙은 정중히 거절해.


"미안, 레이디가 있어서."


니노가 호기심어린 눈동자로 물어봄.

"오호? 그럼 역시 그렇고 그런 사이?"

"뭐 그렇긴 한데..."

"뭔가 찾아다니고 있는 모양이네~"

"응?"

"그런 위험장소들에 대해 골라 물어보는 것만 봐도 감이 잡히지. 위험한 일인가?"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웃는 아드리앙을 보고 니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묻지 않겠다고 말함. 친구는 그런 거 따져가며 하는 게 아니니까! 라고 웃어주면서. 고맙다고 하는 아드리앙에게 니노는 그래도 생각은 한 번 해보라고 말해.


이 도시에 자주 들를 테니까, 생각 바뀌면 연락하라고.


차마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수 없었던 아드리앙은 그저 떨떠름히 웃는데 그 순간 마리네뜨가 병실을 나와. 그리고 니노 앞에서 덥석 아드리앙 손을 붙잡고 끌고가기 시작해. 뒤에서 휘파람을 부는 니노를 뒤로 한 채 자기 손을 붙들고 말없이 병실 복도를 걸어가는 마리네뜨가 걱정된 아드리앙이 조심스레 물어. 무슨 일이야? 마리네뜨가 말해. 아드리앙.


"나, 소원이 생겼어."

"소원?"

"모든 것이 다 끝나면..."


그와 동시에 마리네뜨는 홱 돌아서서 아드리앙의 귓가에 몇 마디를 속삭이는데, 그걸 들은 아드리앙의 눈동자가 놀람으로 살짝 커졌다가 이내 씨익 웃어. 블캣처럼. 마리네뜨가 말해.


"어때?"

"좋은 소원이야."

"미안, 내 멋대로.."

"아니."


고개를 젓던 아드리앙이 쥐고 있던 마리네뜨의 손등에 입을 맞추면서 씨익 웃어. 괜찮아.


"내 뜻은 언제나 너와 함께 할 테니까. 마이 레이디."

"아드리앙..."

"그리고 기왕 비는 거, 스케일 큰 게 재미있지."


안 그래? 그렇게 말하는 아드리앙의 눈동자가 정말로 상냥한데 또 개구져서, 마리네뜨는 픽 웃으면서 말해.


"한 가지 틀렸어."

"어?"

"내 마음은 이미 네가 훔쳐갔는데 뭐가 함께 하겠어야? 도둑고양이 씨."


그러면서 마리네뜨는 다른 한 손으로도 아드리앙의 손을 꼭 붙잡고 그래.


"정말 끝내자."


이런 비극 따위는.



- 외전 THE END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 에필로그



일상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일단은 고등학교에 진학합니다. 저 세계에서 보낸 시간이 자그마치 1년이었기 때문이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착실히 사귀고 있지만 아무래도 고등학생이 된 후로 아드리앙은 더 바빠졌고 마리네뜨는 마리네뜨대로 진로를 위해 도약하기 시작해요.


다만 아드리앙은 여전히 인기가 많고 바쁘고 그만큼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마리네뜨는 불안해지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실 그 세계에서의 일은 내 꿈이 아니었을까? 내가 아드리앙이랑 사귀고 있다니, 지금이 꿈인 거 아냐? 하는 의심이 피어오르죠. 레이디버그로 활약했던 시간도 그 때 느꼈던 감정들도 아직 여전히 생생하지만, 그를 믿고 있지만. 이렇게 불안한 이유는 알고 있어요. 그만큼 그를 좋아하니까.


아드리앙은 사실 아드리앙대로 불안한데, 자주 못 만나서 불안한 건 마리네뜨만이 아니란 말씀. 고등학생이 되고 갑자기 밀려드는 일에 짜증도 치밀지만 더 열받는 건 마리네뜨가 고등학교 올라가고 인기가 갑자기 늘었다는 사실.(마리네뜨는 인지 못함)


그래서 뭔가 질투 되게 귀엽게 할 거 같아요. 전화라도 하면 마리네뜨한테,


"너 요즘 누가 접근하고 그런 거 없지?"

"응? 없어. 어, 설마... 질투하는 거야?"

"어. 질투나니까 남자애들이랑 너무 오래 같이 있지 마."


해서 마리네뜨 무지 설렐 거 같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짐짓,


"너야말로, 촬영하러 가면 되게 예쁜 언니 많을 거 아냐. 그, 그러니까.."

"응?"

"바람피우면, 안 돼!!"


하고 창피해져서 확 전화 끊어버리고, 아드리앙은 끊어진 폰을 말없이 보다가 막 함박웃음 짓고ㅋㅋㅋㅋ 그렇게 나름 잘 사귈 거 같아요. 그러면서도 때때로 작년의 일을 떠올리겠지. 어느 날 밤, 마리네뜨는 둥글게 뜬 보름달을 보면서 문득 그 때를 회상해요.


그건 정말 현실이었을까?


직접 겪어보고도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정작 그 시절에 잠이 부족해서 수업시간에 맨날 졸거나, 방학 때 하루종일 자면서 악당들과 격돌했던 감각은 아직도 이리 선명한데. 그럼에도 믿기지 않는 건 너무 꿈 같은 얘기여서.


그 때 여기저기 돌아다녔었는데. 기왕 하는 거 즐길 건 다 즐기자고, 아드리앙이 여기저기 데려가줬었지. 그 세계도 달이 이렇게 밝았었는데. 하면서 그 때는 옆에 아드리앙이 있었지.. 하다가 그 시절의 추억을 잠깐 떠올립니다.


방학이던 시절에는 애들이 좀 깊이 잠들었었거든요. 꼬박 하루를 잔 적도 허다하고, 체력 부족이 될까봐 운동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쪽 세계에 있었습니다. 데이트하기도 이쪽이 더 편하니깐요.


그 때는 진짜 어두운 밤이었는데, 어둠 속에서 별 하나 없이 둥글게 그려진 듯한 보름달이 하늘 위로 둥실 떠올랐었어요. 탁 트인 들판을 걸어가던 중 그 광경을 돌아보고서 문득 발걸음이 멈춘 두 사람은 말없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었어요. 노랗게 밝은 달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마리네뜨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을 살짝 내려다보는 아드리앙과 시선을 마주했어요.


자신을 보며 왜? 라고 물으며 부드럽게 웃는 아드리앙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살짝 역광이 졌는데 그게 너무 신비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리네뜨는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가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더 꽉 쥐었어요. 어딘지 하얗게 빛나는 아드리앙의 미소를 보니 그가 갑자기 사라져버릴 거 같은 묘한 예감이 들어서.


그런 마리네뜨의 모습이 어리광을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웃던 아드리앙은 마리네뜨의 손을 살짝 끌어당겨서 가만히 입술에 입을 맞춰요. 살짝 닿았다가 떨어지는 가벼운 입맞춤이었지만 마리네뜨는 금세 새빨개져서 허둥거리고, 아드리앙은 그걸 보고 소리내어 웃습니다. 하하 웃던 그의 밝은 미소를 보고 마리네뜨도 그냥 픽 웃고 말았었죠.


그 때를 생각하니까 마리네뜨는 저절로 입술에 닿았던 감각이 떠올라서 막 얼굴 다시 빨개지고ㅋㅋㅋㅋ(여긴 현실) 막 얼굴 감싸고 중얼거려요.


"아, 어떡하지?"


지금 아드리앙이 너무 보고 싶다.


생각하니까 진짜 아드리앙이 보고 싶어져서, 막 혼자 안절부절 못하던 마리네뜨는 에잇! 소리와 함께 아드리앙의 핸드폰에 보고 싶어. 라고 적은 카톡을 하나 보내요. 이 정도쯤은 말해도 좋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한참을 더 추억을 떠올리던 마리네뜨는 문득 카톡을 다시 봣는데, 아드리앙이 카톡은 읽었는데 답이 없어요.


아니 왜 카톡은 받았는데 답이 없지? 이상해서 다시 보내봤는데 이번엔 안 읽고 있어요. 그러니까 마리네뜨는 이젠 불길해지는 거. 가뜩이나 요즘 못 만났는데, 설마 내가 너무 어린애처럼 말해서 질렸나? 까지 망상이 아주 최악으로 치닫죠ㅋㅋㅋㅋ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던 찰나에 마리네뜨는 윙 울리는 전화기 발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죠. 깜짝 놀라서 후다닥 받았는데 아드리앙임. 놀라가지고 막 숨이 멎어있는 마리네뜨와 달리 아드리앙 목소리는 참 밝아요.


아드리앙이 말해요.


-다행이다, 아직 안 자고 있었구나.

-아, 아드리앙?

-마리네뜨. 너 잠깐 나올 수 있어?

-이 시간에?

-아래를 봐.


해서 마리네뜨가 아래를 봤는데 아드리앙이 웃으면서 핸드폰 들고 마리네뜨가 있는 옥상을 올려다보고 있음.


-나도 보고 싶어서, 그만 와버렸어.


수화기 너머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너무 달콤해서, 마리네뜨는 입을 틀어막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요.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커서 난감해하던 찰나, 아드리앙을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외투를 재빨리 걸치고 아래로 내려옴. 부모님한테 들키지 않게 몰래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드리앙은 그런 마리네뜨의 모습을 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마리네뜨를 꽉 끌어안고, 놀라는 마리네뜨에게 속삭이죠.


"아, 역시 좋다."


정말로.


정말로 즐거운 듯한 아드리앙의 목소리에 마리네뜨는 불안감이 눈 녹듯 사그라지는 걸 느끼고, 아드리앙은 잠깐 같이 걷자고 말하면서 둘이서 밤거리를 걸어요. 마리네뜨는 막 두근거리는 거 애써 자제하고 있는데 아드리앙은 잠깐 달을 올려다보더니 웃으면서 말합니다. 저기, 기억나?


"우리 예전에, 비슷한 상황 있었던 거."


라고 하면서 마리네뜨의 손을 잡아요 꺄악! 그리고는 중얼거려요.


"그 때도 이렇게 손을 잡았었는데."


하면서 돌아보는 아드리앙의 표정이 정말 그 때랑 너무 닮아 있어서,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려요.


"...사라지는 줄 알았어."

"응?"

"근데, 현실이구나."


배시시 웃으면서 손을 맞잡는 마리네뜨의 모습이 의아하다가도 아드리앙은 손을 꼭 잡아주고 함께 걸어요. 걸으면서 이것저것 물어봐요.


"요즘 학교 어때?"

"늘 그렇지 뭐."

"이상한 남자들이 꼬이는 거 아니지?"

"아니라니까."

"거짓말. 니노가 며칠 전에 네가 어떤 잘생긴 남자애랑 같이 다니는 걸 봤다고 했는걸?"

"아, 나타니엘? 걔랑은 같은 조라서 과제 때문에 같이 있었어."

"너무 붙어 있지 마."

"나야말로 하고 싶은 소리네요. 아기고양이 씨. 너야말로 인기 많지 않아?"


라고 했다가 마리네뜨는 헙 하고 입을 다물어. 뭔가 말해선 안 될 걸 말한 느낌이야. 아드리앙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가 픽 웃으면서 주머니에 다른 쪽 손을 찔러넣고 걸어. 그러면서 살짝 눈을 깜빡이더니 천천히 읊조림.


"...그립네."

"응?"

"뭔가 그리운 감각이 들어."

"아드리앙..."

"하하, 이상한가? 우리 그 때 진짜 고생했었잖아. 막 죽을 위기도 넘기고."


이제와서 그 세계가 조금은 그립다니.


웃으면서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는 아드리앙에게 마리네뜨는 조심스럽게 말해. 사실 나도.


"오늘 떠오르더라. 그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이."

"그래?"

"응. 블랙캣과 레이디버그에 대해서도."

"아아."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아드리앙의 눈빛은 무언가를 떠올리듯 아득히 멀어지고, 마리네뜨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걸어. 한참을 걷다가 아드리앙이 툭 말을 던져.


만약 그 세계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서로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까?


마리네뜨는 뭐라고 말하지 못하는데, 아드리앙은 고개를 가로젓다가 자문자답해.


"아니, 그래도 분명 나중에는 알게 되었을 거야. 조금 더 일찍 알게 된 것 뿐이지."

"..."

"하지만 그래서 감사해. 너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날 수 있었어서."


아드리앙의 마디진 손가락이 마리네뜨의 손을 빠져나갈 수 없게 하겠다는 듯이 단단히 옭아매지. 예전에 잡았을 때보다 조금 더 갑갑하다는 생각을 하던 마리네뜨는, 그게 아니라 아드리앙의 손이 큰 거라는 걸 깨달아. 힐끔 올려다보니 그 전보다 눈높이도 높고. 전보다 자란 거지. 고등학생이고 성장할 시기라지만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에 마리네뜨는 괜히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리고 자신은 얼마나 자랐나 싶은데,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지. 아드리앙이 이상하다는 듯이 돌아보자 그에게 말해.


"너 많이 자랐다."

"응?"

"키라던가, 말하는 거라던가. 음. 좀 변했어."

"그런가?"

"응. 왠지 섭섭한걸~?"

"..."

"날 두고, 너 혼자 멀리 가버리는 것 같아서."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는 아드리앙에게 마리네뜨가 재빨리 덧붙여.


"그래도, 너무 빨리 가지만 않으면 괜찮아."

"..."

"열심히 뒤쫓아 갈 테니까. 네 옆에서 걸어갈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할 거야."


라고 말하며 살며시 웃는 마리네뜨의 모습을 한참 쳐다보는 아드리앙이 손을 뻗어 마리네뜨를 와락 껴안아. 그리고는 한숨쉬면서 막 퉁명스럽게 중얼거려.


"아, 너 반칙이야."

"뭐, 뭐가?"

"방금 전에 니 표정. 진짜 두근거렸다구."


미치겠다니까? 라고 정말 솔직하게 말하는 아드리앙에 마리네뜨가 막 어버버거리고 있는데 아드리앙이 막 더 힘줘서 껴안음. 놔주기 싫다는 것처럼 껴안고서 아드리앙이 뭔가 어리광섞인 말투로 대답해.


"아아, 진짜 어쩌지. 정말 혼자 내버려두기 불안하다구 진짜."


다른 남자가 눈독들이면 어떡해. 추욱 머리를 마리네뜨 어깨 위로 묻는 아드리앙의 행동에 가만히 있던 마리네뜨가 살짝 손을 내밀어 아드리앙을 마주 껴안아. 이제 키 차이가 제법 더 나서 막 고개를 숙인 아드리앙의 무게감이 기분 좋아서 마리네뜨가 조용히 대답해. 그런 일 없어.


"다른 남자가 눈독들여봤자, 내 눈엔 너밖에 안 보이는 걸."


막 그러면서 사실 자기가 더 불안하다고, 너 이번에 새로 나온 잡지 봤는데 너무 상대역이랑 붙어있는 거 아니냐고 막 궁시렁거리는 마리네뜨의 목소리에 아드리앙이 고개를 들고 마리네뜨를 마주봄. 장난스러운 미소를 걸고. 깜짝 놀라는 마리네뜨한테 말해.


괜찮아.


"제 눈에도 그대밖에 안 보여서 말이에요. 마이 레이디."


라고 말하는 아드리앙의 얼굴 위로 누군가가 겹쳐져. 블랙캣. 정말 멍하게 그를 쳐다보는 마리네뜨에게 아, 이 모습으로 하니까 아무래도 좀 어색한가? 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리는 아드리앙의 팔을 마리네뜨의 두 손이 와락 붙잡음.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 아드리앙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 마리네뜨의 머리를 쓰다듬어줘. 말했잖아.


"블랙캣은 또 다른 나라니까. 사라진 게 아니야."

"응."

"물론 너도."


내 하나뿐인 마이 레이디.


그 사실만은 영원할 거야. 라고 말하며 아드리앙은 그 말과 함께 다른 한 팔로 마리네뜨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만히 입을 맞춰. 그 시절의 달밤처럼.


깊게 파고들던 입맞춤이 끝나고 나서 아드리앙은 다시금 손을 내밀어.


"가실까요. 마이 레이디."


저와 함께. 웃고 있는 아드리앙이 말하는 게, 단순히 지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자신과 함께 해달라는 이야기(즉 프로포즈 비슷한)인 걸 알아서 마리네뜨는 가만히 그 손을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그러잡아.


그리고 둘은 같이 길을 걸어감.

달빛이 비추는 그 길을 따라서, 계속 앞으로.



- Epilogue THE END






정말 제가 풀었던 썰 중에 최고 길었네요... 전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ㅇㅁㅇ; 아무튼 재밌게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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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

※ 레이디버그 자캐 관련! 렐님 니아사랑 백님 쌍둥이를 빌려왔습니다~>_< 이런걸 뭐라고 하더라.. 관록?









한 청년이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아니, 소년이라고 해야 하려나. 얼굴은 분명 청년에 속하는데 묘하게 소년의 분위기를 가진 남자였다. 옅은 분홍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은 마치 봄에 찬란히 피어나는 벚꽃을 연상시켰고, 가끔씩 깜빡이는 라임빛 눈동자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반짝거렸다.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는데, 머리에 둘러쓴 후드 사이로 베이비블루색 모자의 챙이 설핏 드러났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책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는 그의 표정이 꽤 진지하다.



"인사해."



제게 던져진 한 마디에 니아사는 들고 있던 책으로부터 시선을 떼어냈다. 살며시 고개를 들고 앞을 쳐다보자, 무심한 표정의 여자아이가 그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에 살짝 닿을락말락한 흑단발에 까만 눈을 가진 여자애는 그가 오늘 만나기로 한 상대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눈처럼 새하얀 백발을 가진 두 명의 남녀가 그녀의 양 옆에 붙어 그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둘 다 상당한 곱슬머리였는데 머리가 짧은 소년과 달리 소녀는 허리까지 오는 장발이었다. 나이는 이제 막 고등학생쯤 되었을까, 딱 보기에도 굉장히 닮은 걸 보니 아마 쌍둥이인 게 분명했다. 남녀 쌍둥이치곤 얼굴이 엄청나게 닮은 게 신기하긴 했지만, 일단 두 사람 다 굉장한 미인이었다. 지금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걸 보면 분명 잘 웃는 성격인 것이 분명했다. 같이 다니면 시선 좀 모으겠군.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둘 다 키가 꽤 컸다. 리우보다도 커 보이는 게, 아마 자신하고 살짝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런 말도 없이 눈빛으로 해명을 요구하는 니아사에게 흑발의 소녀, 리우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얘들이 따라오겠다고 해서. 뭐, 별 상관없지?"



끄덕끄덕.


니아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시선이 리우의 뒤에 딱 붙어 있는 쌍둥이에게로 향했다. 예전에 잠깐 이야기를 들어본 것도 같은데. 친한 소꿉친구 두 명이 있다고 했었는데 그게 바로 얘들인가?



"이쪽은 니아사라고 해. 이래뵈도 우리보다 두 살 많아."



동갑이었어?!


깜짝 놀라서는 눈만 깜빡거리는 니아사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리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지만 얘들은 언제 봐도 고등학생 같지 않다니까. 지금은 자신보다 키가 컸지만 속은 여전하니.


절대 내가 늙어보이는 게 아니라.



"안녕하세요! 유키라고 해요. 얘는 유시고, 제 여동생!"

"꺄아, 반가워요!"



밝게 웃는 미소가 참으로 천진했다. 입을 열자마자 꺄르르 웃어대는 두 사람을 보며 니아사는 입가에 부드럽게 미소를 띄웠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처음으로 할 말을 곰곰히 궁리했다. 아, 어쩌지? 뭐라고 대답하지? 설마 이 타이밍에서 친구를 소개받을 줄은. 절대 소개 안 해줄 거 같았는데. 근데 리우 얘 친구가 있긴 있었구나. 다행이야. 아 근데 얘네 진짜 예쁘게 생겼다. 머리카락이 저런 색깔도 있구나. 되게 복슬복슬해 보여. 정말….



"만져보고 싶다."

"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쌍둥이의 모습에 니아사는 제가 순간 무슨 말을 뱉었나 생각했다. 눈만 꿈뻑거리며 황급히 다음 말을 준비하는 니아사를 보며 리우가 대신 답변했다. 하여간 그럼 그렇지.



"아, 머리 만져보고 싶대."

"우와, 신기해 리우! 어떻게 알아들은 거야?"

"눈치껏. 쟤가 워낙 말주변이 없는 애니까 뭐 이상한 말 해도 그러려니 받아들여."



이상한 말이라니. 내가 뭐 그렇게 이상한 말을 했다고. 불만스레 쳐다보던 니아사의 머릿속에서 또 수많은 생각이 요동쳤다. 말을 하자마자 쪼르르 달려와서 자신을 이리저리 관찰하는 쌍둥이의 모습은 꽤 요란했지만 그만큼 귀여웠다. 사랑스럽다는 말은 이 두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얘들은 왜 여기에 있지?



"왜…."

"얘들이 따라왔냐고? 내가 니 얘기를 했더니 만나보고 싶다고 하면서 따라왔어."



진짜 도사가 아닐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의도를 귀신같이 맞추는 리우에 니아사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오래 같이 지낸 친구들도 가끔씩 다시 말해달라고 할 때가 잦은데, 얘는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정말 저번에 말했던 대로 내 머릿속에 도청기라도 장치한 거 아냐? 아, 그럼 이어폰 오래 끼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냐? 하지만 음악 듣는 거 좋은데….



"…이어폰은 안 돼."

"? 무슨 소리야. 너 또 쓸데없는 생각하지?"

"리우! 그건 너무 말이 심하잖아. 아무리 네가 눈치가 빠르고 틀린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다지만 그렇게 확인사살하는 거 아니야!"

"유키. 왠지 그게 더 욕하는 거 같은데?"

"어라?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키를 보며 유시는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참 웃음도 많다. 저런 모습조차 참 귀엽다 느껴지는 걸 보니 역시 세상은 얼굴빨이라던 친구 말이 틀린 게 없구만. 저도 모르게 납득하고 있는 걸 보면. 



"아, 죄송해요. 놀라셨죠?"

"어? 아니, 뭐. 괜찮아요."



제대로 대답하는 자신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리우에 니아사의 한쪽 눈썹이 찡그려졌다. 아니, 왜. 내가 제대로 대답할 수도 있지! 단답을 많이 하는 편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제대로 대답쯤은….


아, 얘 앞에서는 없었던가…? 아, 헷갈려.



"저흰 사실 리우한테 드디어 남자친구가 생긴 줄 알고 궁금해서,"

"아닙니다."

"아니야."



서로 동시에 대답하면서, 니아사와 리우는 서로를 다시금 쳐다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망설임없이 말하는 두 사람에 질문을 던진 당사자인 유시는 눈매를 싱긋 접어 웃었다.



"그럼 다행이구요."



뭐가 다행이라는 걸까. 마주 웃으면서도 괜히 뻘쭘해진 니아사의 눈길이 그녀의 새하얀 머리카락에 닿았다. 소녀의 뒤에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껴안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정말로 사이가 좋아 보였다. 리우랑 동갑이라면 둘 다 올해 18살이려나? 저 나이까지 저렇게 사이 좋은 남매가 있긴 드문데. 아, 그나저나 머리카락. 탈색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머리색이 저렇게 새하얗지? 게다가 머릿결도 좋아 보여. 타고난 건가?


니아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유시의 긴 머리카락 한 자락을 살며시 쥐어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예쁘네요."



그 말에 유시는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그녀를 껴안고 있던 유키나 옆에 있던 리우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유시를 재빨리 뒤로 끌어당기며 역시 저 형도 늑대였냐며 중얼거리는 유키에, 니아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리우는 이거 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성격상 수작부리는 게 아니라 그냥 생각없이 한 짓이겠지만 아무리 봐도 오해할 대목 아닌가. 그러나 유시는 아무렇지 않게 빙긋 웃었다.



"헤헤, 칭찬 고마워요!! 친절하시네요!"



머리카락 말하는 거죠? 방긋 웃으며 대답하는 유시에 니아사는 절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호의로 받아들여줘서 다행이다.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는 니아사와 달리 리우는 한숨을 쉬더니 쌍둥이를 잡아끌고 말했다.



"자, 이거 마셔."

"와! 딸기우유다~!"



리우가 들고 온 가방에서 음료수를 꺼내주자, 쌍둥이는 이내 활짝 웃는 얼굴로 방방 뛰며 기쁨을 표현했다. 좋아하는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리우는 벤치에 털썩 앉아 니아사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뭐 좋아할 지 몰라서 적당히 사왔어. 덤덤히 말하며 제 몫의 음료수를 들이키는 리우를 가만히 쳐다보던 니아사도 뚜껑을 타고 음료수를 마셨다. 차가운 감각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간다.


시원하다.



"저기서 놀고 있을래? 니아사랑 얘기 좀 하게."

"우우, 치사해! 리우 혼자만 말하기야? 우리도 이것저것 물어볼래~!!"

"…얘가 뭐라는지 다 알아들을 수 있어?"

"헤헤, 노는 거 좋아!"



부정하지 못하고 유키는 금방 미련을 버린 채 등을 돌렸다. 이미 분수대 쪽으로 가고 있는 유시를 따라가는 유키에게, 리우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걱정을 던졌다.



"니들, 너무 멀리 가지는 마."

"알았어! 리우는 그 형이랑 이야기 잘 나누고 있어! 너무 가까이 가진 말고!"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려는 듯하면서도, 곧 자신을 부르는 누이의 목소리에 유키는 금방 표정을 풀고 유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웃고 있는 니아사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리우가 지나가는 듯 가볍게 물었다.



"그래, 만나본 소감은?"

"…귀여워."

"그래. 멍멍이같지."



키우고 싶어지는 게 말이야. 대놓고 소꿉친구들을 동물에 비유하며 리우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목소리는 상당히 서늘했다.



"하지만 진짜 멍멍이로 취급하면 죽는다."



진지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에는 농담기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아서, 니아사는 순간 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심연과도 같은 깊고 검은 눈동자는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아서, 저런 눈빛을 하고 있는 리우를 볼 때면 조금은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지곤 했다.


반면 리우는 투명할 정도로 밝은 니아사의 연두빛 눈동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깨끗해 보이는 눈동자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생각을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별 생각 안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리우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피곤해?"

"…아니."

"뭐, 그렇다면 됐고. 좀 정신없긴 하지?"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니아사의 모습에 리우는 '네 이런 면은 마음에 들어.' 라고 말하며 작게 웃었다. 리우는 평소에 잘 웃지 않는 편이지만, 그 대신 가끔씩 보여주는 미소는 꽤 무방비하다. 매사에 덤덤하던 얼굴이 살짝 부드럽게 풀어지는 순간은 꽤나 어려 보여서, 그래도 그녀가 아직은 10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러기도 잠시, 책을 읽기 시작하자 리우의 표정은 다시금 담담해졌다. 그에 질세라 니아사도 읽던 책의 페이지를 마저 폈다. 편안한 침묵 가운데, 리우가 툭 말을 던졌다.



"야,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유시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지?"

"그냥, 귀여워."

"하여간 그놈의 화법은. 뭐, 사실 내가 뭐라고 할 사안은 아니지만, 저 녀석들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예나 지금이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말이야. 그 중에는 날파리들도 꽤 있었어서. 니가 날파리라는 건 아니지만."

"…안 해."



그런 생각같은 거 하지 않는다. 방금 전은 정말 머리카락이 신기했을 뿐으로, 그 이상의 감정은 전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리우를 적으로 돌린다니 상상만으로도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좋은 녀석인 건 알지만 적으로 돌리기는 정말 싫다. 무감정해 보이지만 은근 섬세하고 단호한데다, 말도 잘하고 무엇보다 제가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눈치가 빨랐다. 혹시 제 비밀을 눈치채기라도 하는 날엔….



"…끝장이야."

"뭐가?"



이런, 본심이 불쑥 튀어나온 모양이다. 더 말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니아사는 침묵을 지켰다. 리우도 굳이 쓸데없이 호기심을 불태우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다시금 책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사르륵 책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히 독서하는 두 사람을 유키와 유시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볼까? 말까? 서로 속닥거리며 대화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이내 얼굴에 웃음꽃을 가득 피웠다.



"리우랑 잘 맞나봐."

"그러게. 우리랑 있을 때랑은 느낌이 달라."

"친구겠지?"

"친구라잖아."

"그럼 됐고."



사르르 풀어지는 유키의 얼굴에 유시는 말했다.



"저 사람 맘에 들지?"

"응응, 맘에 들어! 웃는 얼굴도 멋지고."

"맞아맞아. 좀 엉뚱한 면은 있어보이지만."

"유시, 반한 건 아니지?"



그럼 안 되는데. 걱정스레 묻는 유키에게 유시는 꺄르르 웃으며 말했다.



"내 이상형은 리우보다 멋진 남자라니까?"

"뭐야, 평생 결혼 안 하게?"

"너 너무 단호한 거 아냐?"

"그치마안, 너무 허들이 높잖아."

"그렇긴 하지."



순순히 인정하는 유시나 물어본 유키나, 리우가 보았다면 둘 다 똑같다고 고개를 가로저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이제 얘기 다 하지 않았을까? 그렇겠지? 좋아. 그럼 이제 가보자! 다 마시고 난 우유각을 쓰레기통에 버린 쌍둥이가 벤치에 앉아 있는 니아사와 리우에게로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고 했다.



"으아악!"



비명소리가 들리고 네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재빨리 그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오는 쌍둥이를 쳐다보는 리우와 달리, 니아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비명의 근원지를 찾았다. 쾅, 소리와 함께 공원 반대편에서 굉음과 함께 커다란 지진이 일었다. 악당인가? 니아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점차 엷어졌다.


빨리 변신해야 하는데 어쩌지? 다른 동료들이 이미 도착했을까. 아니아니, 악당 정화도 정화지만 일단 얘들을 피신시키는 게 우선 아닐까? 세 사람을 흘낏 살펴보았다.



"뭐야, 이거 설마…, 악당? 진짜?"

"뭐라고?! 어, 그럼그럼, 히어로 분들도 나타나시겠지?"

"…오랜만이네."



꽤 위험한 상황임에도 세 사람은 전혀 무서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들뜬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쌍둥이의 눈빛이 매우 반짝거리는 것에 니아사는 심하게 불길함이 들었다. 잠깐만! 그렇게 소리치던 유시가 후다닥 커다란 가방을 뒤져 꺼내든 것은 놀랍게도 펜과, 싸인 용지였다! 방금 전까지 꽤나 침착하던 소녀의 얼굴이 기대로 방방거렸다. 유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시에게 물었다.



"진짜 싸인받으려고?"

"당연하지! 말린다 해도 갈 거야. 누구도 내 덕질을 막을 순 없어! 젠장, 지금 브로마이드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설마 오늘 악당이 나타날 줄은."

"좋아, 그럼 나도 같이 갈래! 너 혼자 보낼 생각은 없어."

"그래. 너랑 같이 가면 든든하지!"

"야, 니들 뭐해."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쌍둥이가 고개를 돌려 리우를 쳐다보았다. 그렇지, 잘한다 리우! 속으로 조용히 리우를 응원하는 니아사였다. 어차피 이 모습으로는 말을 잘 못하니까, 기왕이면 리우가 설득해 주는 게 좋았다. 괜히 의심받고 싶지도 않고. 리우가 말했다.



"너희는 도망을 쳐야지. 악당이 얼마나 위험한데 덕질이나 하고 앉아 있겠다는 거야?!"

"에이, 리우.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네 손에 있는 그거나 놓고 말하시지."



유키의 손가락이 리우가 들고 있는 물건을 가리켰다. 손? 의아해진 니아사의 눈동자가 리우의 손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딱 봐도 꽤 비싸보이는 카메라 하나가 들려 있었다. 무심하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그려졌다.



"니들이랑은 다르지. 나는 특종을 잡아야 하거든."



어이, 잠깐만.


결국 셋 다 대피할 생각은 없다는 거잖아! 니아사는 저절로 아파오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특이할 줄은 알았지만 다들 장난 아니군. 본인도 그만큼이나 특이하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는 니아사였다. 어쨌든 다른 동료들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는 히어로로서 악당을 제압해야 했다. 꺅꺅 떠들고 있는 쌍둥이들을 뒤로 한 채, 살금살금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니아사의 발걸음을 리우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어, 니아사."



어디 가? 그렇게 묻는 리우에게 니아사는 머릿속에 범람하던 수많은 생각을 떨쳐내고 딱 한 마디를 던졌다.



"…전화."

"…그래? 알았어."



더 이상 묻지 않고 니아사를 보내주는 리우의 눈초리가 아주 살짝 가늘어졌지만, 이미 등을 돌린 그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뭔가 생각하는 듯한 리우의 앞으로 쌍둥이가 다가와 기웃거렸다. 리우, 무슨 생각해? 빨리 안 갈거야? 그렇게 물어오는 쌍둥이들에 리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들을 쳐다보며 한 마디를 던졌다.



"야, 근데 니들 정말 안 돌아갈 거야?"

"리우도 가는데 우리도 가야지! 어차피 유시는 곧 죽어도 갈 생각인 거 같고."

"…그래, 대신. 다치면 안 되니까 내 뒤에 숨어 있어."

"에에~~?!"

"다 끝나면 히어로들한테 싸인받아도 되냐고 물어봐줄 테니까."

"우와, 리우 최고!"



역시 리우밖에 없다니까. 행복하게 웃던 유시가 리우의 팔에 팔짱을 끼고, 한 발짝 뒤에 선 유키의 손가락이 리우의 옷자락을 살짝 붙잡고 머쓱하니 웃었다. 그런 그들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리우의 손이 들고 있던 카메라를 꼭 쥐었다.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보니 어차피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이고, 뭐 내가 잘 지켜주면 되는 거겠지. 피식 웃던 리우가 그들을 데리고 지진의 진원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마음에, 작은 의문 한 자락을 새긴 채로.







===


백님의 쌍둥이는 유키와 유시 남매. 18살이고 둘 다 천연이에요. 그리고 히어로를 좋아하지! 유시는 진짜 광팬인 모양이더군요..


렐님 니아사는 정말 특이한 캐릭터라 제가 제대로 소화했는지 모르겠어요(땀땀 20살이고 히어로입니다. 넷 중 유일한 히어로! 나머지 셋은 일반인이거든요.


그리고 제 리우는.. 그냥 무심한데 은근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캐릭터. 그러나 쓸데없는 말은 안 합니다.


여기서 니아사랑 리우는 독서 친구예요!


이런 걸 관록이라 하던가 아무튼 열심히 적었습니다 헤헤... 자캐놀이 재밌네요 어렵지만ㅠㅁ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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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퍄프님 죄송해요ㅜㅁ ㅠ 조각글입니다. 주제는 야경이었습니다!





[캣버그] 시선의 끝에




악당을 정화했다.



"임무 완수!"



그 말과 함께 주먹이 맞닿았다, 떨어졌다. 싱글 웃으며 시선을 돌리는 레이디버그와 달리 블랙캣은 가만히 제 손등을 쳐다보다가 쓰게 웃었다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온기에 아쉬움이 드는 건 늘 같았다. 언제쯤이면 익숙해질까.


밤에 임무를 마치는 건 오랜만이다. 하늘을 올려보자 새까만 밤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하얀 점이 간간히 몇 개 보이는 밤하늘은 아주 까맣다기보단 짙은 남색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말 별이라곤 하나도 없구나. 주변은 이렇게 화려한데.


가만히 하늘을 훑어내리던 블랙캣은 뭔가 생각났는지 씨익 웃다가, 곧장 떠나려는 레이디버그의 팔을 붙들고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어, 야?! 자연스럽게 제 허리를 껴안는 블랙캣에 당황했는지 뭐라 외치는 레이디버그를 무시한 채 그는 봉을 꺼내 바닥에 꽂고 그녀와 같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단단히 붙잡은 탓에 굳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레이디버그는 새초롬히 그를 노려보았다.



"뭐하는 짓이야? 지금 변신 다 끝나간다고."

"미안, 미안. 그래도, 저걸 봐."



씨익 웃으며 그녀를 제 무릎 위에 앉힌 블랙캣이 가만히 눈짓했다. 화를 내려다가 저도 모르게 블랙캣의 시선을 따라간 레이디버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작은 노란 불빛들로 알알이 덮힌 파리의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별의 바다. 별이 담긴 바다가 꼭 이런 모습일까. 먹으로 칠한 듯한 검은 배경 위에, 크고 작은 노란 별들이 가득 박힌 밤하늘처럼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도시는 그들이 매일을 살고 있는 곳임에도 마치 처음 보는 것마냥 생소했. 이렇게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도.


저 멀리 반짝, 아래서부터 점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에펠탑의 모습이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살짝 놀란 듯한 레이디버그의 얼굴에 블랙캣은 괜히 뿌듯해져 자랑스레 말했다.



"우리가 늘 구하고 있는 도시잖아. 언제봐도 아름답지 않아?"



악당이 그렇게 노릴 만 하다니까. 어깨를 으쓱거리며 레이디버그의 옆모습을 쳐다보던 블랙캣은 저도 모르게 말을 멈췄다. 피식 웃으며 파리의 야경을 내려다보는 레이디버그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 부드러웠던 것 때문인지도. 홀린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블랙캣의 시선을 느끼지도 못하는지, 돌아보지 않는 그녀의 옆얼굴이 새삼 무척 여려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자신에 블랙캣은 무척 놀랐다. 늘 지켜주고 싶다고는 생각했었지만.


레이디버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게. 새삼스럽네."



너의 그런 모습이 더 새삼스럽다고, 농담으로라도 말할 수 없었던 건 굳이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꾹 입을 다물고 레이디버그를 쳐다보는 블랙캣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야경은 물론 아름다웠지만 지금 자신의 시선을 빼앗는 건 제 곁에 있는 그녀뿐이었다. 야경은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이런 레이디버그의 얼굴을 볼 일은 흔치 않으니까.


띠띠-.


뭔가 울리는 소리에 그들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레이디버그의 귀걸이에서 점이 하나 사라졌다. 이제 남은 점은 두 개인가. 곤란한 듯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는 레이디버그를 보며 블랙캣은 장난스레 웃었다.



"변신시간 아직 좀 더 남지 않았어? 1분 전에 떠나도 충분하잖아."



조금만 더 같이 있자.


그 말을 입 안으로 꿀꺽 삼키며 블랙캣은 그저 씨익 미소지었다. 낭만적인 시를 읊는 건 거리낌이 없으면서, 이 별 것 아닌 한 마디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오늘은 꽤 기분이 좋은지 레이디버그는 더 이상 대꾸않고 경치를 바라보았다. 너무 무방비라 차라리 약속을 어기고 계속 붙잡고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하리라는 건 본인이 더 잘 알았기에 블랙캣은 깨끗이 포기했다. 그녀도 그걸 아니까 이렇게 태연한 거겠지.


하지만, 가끔, 돌아봐주지 않는 시선에 답답해진다. 이 정도는 익숙하다고, 기다리겠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씩 보여주는 이런 표정을 볼 때마다 자꾸 안달이 난다. 만인에게 사랑받는 너를 탐내는 게 과연 나 혼자뿐일까. 너는 대체 누구일까. 진짜 모습의 너에게 이미 연인이 있으면 어쩌지? 네게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순간순간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겁이 난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우리는 대체 어떤 사이일까. 만날 때마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호흡을 맞추는지는 알아가면서, 진짜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나는 아직 네 이름조차 모르걸. 너도 그렇겠지만.

그래도-.


새삼 답답해지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블랙캣은 그녀를 붙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무릎 위로 얹혀진 그녀의 존재가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제 마음의 무게처럼.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아.'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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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 아니에요.

※ 전력 60분. 주제는 [동화]





[캣마리] 미녀와 야수





“안녕, 공주님.”



씨익 웃으며 제 앞에 나타난 검은 고양이에 마리네뜨의 미간이 살짝, 아주 살짝 찌푸려졌다. 또 나타났다. 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 상냥하게 제 손에 입맞추는 그를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던 그녀는 블랙캣의 시선에 재빨리 다시 표정을 바꿨다.



“아, 하하하. 또…, 오셨네요?”

“공주님이 날 보고 싶어하는 거 같아서 말이지~?”



그런 적 없거든.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마리네뜨는 그저 하하 웃으며 두 팔을 등 뒤로 감췄다. 오늘은 무슨 일이시냐고 묻기도 전에 블랙캣이 말했다.



“그냥~, 보고 싶어서?”



언제나와 똑같은 대답. 이젠 일상이 되어버려서 그렇게 놀랍지도 않지만, 그 진의를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마리네뜨는 속으로 몰래 한숨지었다. 대체 얘는 무슨 생각인 걸까. 변하지 않는 일상처럼 실랑이하는 그들의 모습도 여전했다.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블랙캣의 눈빛은 꽤 진지했지만, 역시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마리네뜨의 모습처럼.



“저기요.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응?”

“블랙캣은, 레이디버그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물론 좋아하지.”

“그럼 저한테 그런 멘트 막 쓰는 건 실례라고 생각 안해요?”

“어라? 무슨 소리야. 난 보고 싶다고 했지, 좋아한다고는 안 했는데~?”



짓궂게 묻는 블랙캣의 목소리에 마리네뜨의 얼굴이 창피함으로 살짝 붉어졌다. 그럼 그렇지. 괜히 반응해줬다 싶어 후회가 살짝 밀려왔지만 마리네뜨는 아직 꿋꿋했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마리네뜨는 살짝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럼 대체 왜 찾아오는 거예요?”

“말했잖아. 보고 싶어서라니까.”

“보통 보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외간 여자를 찾아오는 남자는 드물거든요.”

“의외네. 날 남자로 취급해주고는 있었구나.”



그럼 남자지 여자냐. 어이가 없어진 마리네뜨의 눈초리가 가늘게 좁혀지려는 순간, 블랙캣이 다시금 손을 내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손을 빼려 들지는 않았지만, 불편해 보이는 마리네뜨의 모습에 블랙캣은 조심스레 잡은 마리네뜨의 손 위에 뭔가를 쥐어주었다.



“이거 받아.”

“에?”

“그럼 나는 할 일이 많아서 말이지. 이만!”



그 말과 함께 바람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블랙캣의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던 마리네뜨는 제 손에 쥐어진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자주빛의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상자였다. 뚜껑을 열자, 영롱한 푸른빛이 도는 심플하니 예쁜 귀걸이가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리네뜨의 품 안에서 티키가 튀어나와 말했다.



“우와, 아주 예쁜 귀걸이네!”

“그, 그러게.”

“마리네뜨 너 주려고 가져온 거 같은데, 엄청 고민했을 거 같은 느낌이야.”



그 말대로였다. 예쁜 무늬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동그란 귀걸이는 마리네뜨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고, 마리네뜨도 그 사실은 잘 알았다. 무엇보다 값이 꽤 나가 보였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받으라고 줬을리는 없다. 하지만 이걸 받아도 괜찮은 걸까. 쓰지도 못할 텐데. 마리네뜨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살짝 제 귀에 걸린 미라클스톤을 쓰다듬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그 진심을 가벼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대답해줄 수 없었다.





* * *



“어떻게 생각할까, 그거.”



변신이 풀리는 감각에 블랙캣은 절로 눈을 감았다. 몸 전체에서 거둬지는 마법의 기운과 함께 장난스러운 히어로는 사라지고, 차분하고 부드러운 얼굴의 금발 소년의 모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소년에게 플랙은 낄낄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지, 그것보다 치즈는 어디 있어?”



기대만발한 얼굴로 공중을 휙휙 돌며 치즈를 찾는 플랙의 모습에 그럼 그렇지,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아드리앙은 보관해두었던 치즈가 담긴 통을 꺼내 뚜껑을 열어주었다. 고약한 냄새에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익숙해지니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행복한 얼굴로 치즈를 입에 우겨넣던 플랙이 뭔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왜 하필 귀걸이야? 그 여잔 쓰지도 않을 거라는 거 알잖아?”

“쓰지 않아도 상관없어. 가지고만 있어 준다면.”



레이디버그인 그녀가 다른 귀걸이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선물하고 싶었다. 사용하지 않아줘도 상관없다. 그냥 소중히 간직해만 준다면, 그걸 보고 자신을 떠올려 준다면 그걸로도 만족할 수 있다. 슬쩍 웃는 아드리앙의 속내를 짐작했는지 플랙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일편단심 납셨네. 그래서, 언제까지 숨길 거야? 네가 블랙캣이라는 걸.”

“글쎄. 언제까지일까.”



아드리앙의 표정이 쓰게 일그러졌다. 그녀가 알아차릴 때까지 스스로 정체를 밝히지 말자고는 결심했었지만, 역시 이건 이것대로 힘들다. 마음에 둔 여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좋아할 남자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녀가 좋아하는 아드리앙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어서.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이 떠오른다. 동화책에 나오는 야수는 미녀의 진실된 사랑이 있어야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솔직히 지금 자신과 그녀의 처지가 딱 그 꼴이었다. 외면에 집착하는 그녀와 진짜 자신을 봐주기를 바라는 자신은 묘하게 엇갈린다. 가까이 있지만 닿을 수 없는 평행선 위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만 바라보는 그녀는 결코 뒤를 돌아봐주지 않는다. 돌아봐줄 때까지 기다리자고 생각했었지만 역시, 조금은 힘들다.


아드리앙이 작게 중얼거렸다.



“동화라면 분명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동화가 아니니까.



“딱 한 마디면 되는데. 그럼 마법이 풀리고, 진짜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설 수 있는데 말이야.”



마법을 푸는 한 마디는 무척 간단했다. 하지만 그건 그 자신도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짐승의 모습을 뒤집어쓴 남자는 공주님의 한 마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가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는 왕자님이라는 사실은 모르지. 몰라야 했다. 사실 그런 왕자의 모습같은 건 다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진짜 자신을 찾아내주길 바라게 된다.


닭살 돋는다는 표정으로 몸을 비비꼬던 플랙이 다른 치즈조각을 집어들며 말했다.



“쓸데없이 오글거리는 건 여전하네~.”

“시끄러.”



그가 투덜거렸다.





* * *




“블랙캣!!”

“어서…, 도망쳐!”



보이지 않는 실로 꽁꽁 묶인 블랙캣이 맘대로 움직이려는 몸을 애써 멈추고 그녀를 향해 소리질렀다. 이번 악당은 인형을 좋아하던 소녀답게 주변의 사물을 조종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시내 한 복판에 나타나서 인형놀이를 한답시고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묶어 조종하던 악당은, 골목으로 도망쳐 변신하려던 마리네뜨를 발견하고 히죽 웃었다. 같이 있었던 블랙캣이 그녀를 감싸고 대신 맞아주지 않았더라면 분명 저기 사람들처럼 의지도 없는 인형이 되어 싸우고 있었으리라.


괴로워보이는 블랙캣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자아를 빼앗기는지 흐려지는 눈동자를 애써 부여잡고, 골목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블랙캣이 피식 웃었다.


역시, 하지 않았구나. 


어차피 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음에도 왜 굳이 그걸 선물했을까. 심지어 처음에 자신이 반했던 사람은 레이디버그로 변신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마음이란 참으로 가증스러운 존재다.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아니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녀가 레이디버그던 뭐던 이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그리고 그녀도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라고 있다니 말이다.


그 귀걸이는 제 마음이었다. 레이디버그가 아닌 너라도 상관없다는, 제 나름대로의 고백이었다. 그녀가 알아챌 날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설마 죽진 않겠지. 꽤나 태평하게 생각하면서 블랙캣은 끝내 닥쳐오는 수마를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의식을 잃기 전 그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직…,”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는데.







“…좀 떠….”



멀리 메아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서리가 하얗게 끼어버린 창문처럼,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인지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어? 눈을 뜨라고!!”



조금씩 정신이 들고 있었지만 욱신거리는 몸과 피곤한 정신에 그는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에 꽤나 기분이 좋아졌다. 신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없었지만. 악당에게 기를 다 빨린 느낌이다. 



“왜 눈을 뜨지 않는 거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울음기가 배어들고 있었다. 그에 아니라고, 깨어났다고 답해주고 싶었지만 정말 기운이 없었다.



“제발, 일어나란 말이야!!”



깜짝이야.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걸까.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건 그녀도 잘 알지 않는가. 대체 정신을 잃었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가 저리 불안해하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더 잘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제 얼굴 위로 닿는 따뜻한 감촉에 생각이 멎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려, 제 눈앞에 있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미 변신이 풀린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리, 네뜨….”

“블랙캣! 괘, 괜찮아? 괜찮은 거야?”



왜 저 모습인 걸까. 변신이 풀린 것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아니면 자신이 레이디버그인 걸 설마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마리네뜨의 모습으로는 존대를 하면서, 굳이 지금 반말을 쓰는 것이 참 헷갈린다. 그래도 눈치채지 못한 척 해줘야 하는 걸까. 그 와중에도 실없는 생각이 드는 자신이 참 웃겼다. 이런 생각할 기운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죽을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그럭저럭….”



괜찮아.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몸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고통에 조용히 신음했다. 어지간히도 거칠게 다뤘나 보네. 애써 평소처럼 웃으며 말하려고 했지만 얼굴 표정을 바꿀 힘도 없었다. 그냥, 지쳤다. 손가락에 애써 힘을 주어 들어올렸다. 눈물이 가득한 마리네뜨의 눈가에 가만히 손가락을 댔다.



“왜, 울고 있냐.”



웃는 게 훨씬 예쁜데.



“이 와중에 농담이 나와요?”



아, 다시 존대다. 개인적으로는 반말이 친근해서 더 좋은데, 그렇게 선을 긋고 거리를 두려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하하, 사실인걸.”

“정말, 괜찮은 거죠?”

“그런 걸로 죽는다면 이미 예전에 죽었겠지.”



농담을 던지는 자신의 모습에 마리네뜨는 눈물이 맺힌 눈동자로 살짝 웃었다. 그 모습이 진짜 안도한 것처럼 보여서 심장 한 켠이 욱신거렸다. 한숨을 내쉬며 인정했다. 아, 역시 좋다.


네가 너무 좋아.



“…너는 언제쯤 눈치채줄까.”

“네?”

“아니, 아니야.”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어서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마법이 풀리면 그제서야 나는 나로서 너를 마주할 수 있다.


사랑해.


그 한 마디 주문이면 모든 나쁜 마법은 풀린다. 저주가 풀리는 날, 나는 너를 마주 끌어안고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겠지. 분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어서. 하지만, 아직은 조금 뒤의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도.


그 날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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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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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김님 그림 참고.

※ 13화 이후의 이야기 상상.





[아드버그] 운수 좋은 날





무슨 정신으로 공연을 봤는지 모르겠다.


나탈리에게 인사를 한 뒤, 아드리앙은 터덜터덜 걸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앞에서 멈추더니, 침대 스프링이 풀썩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아드리앙의 몸이 그 위로 쓰러졌다.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눈만 깜빡거리는 아드리앙의 가슴 쪽에서 끄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꾸물꾸물 무언가가 기어나왔다.



“날 찌부러뜨릴 셈이었어?”



투덜거리는 플랙의 목소리에도 아드리앙은 말이 없었다.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엎어져 있는 아드리앙의 속내를 짐작했는지 플랙은 쯧쯧 혀를 찼다.



“또 그 여자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네?”



하여간 이해할 수 없다니까. 그런 여자보단 치즈가 훨씬 좋은데. 옆에서 킬킬거리며 떠드는 플랙의 목소리가 거슬리는지 아드리앙은 살며시 제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한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말했다.



“시끄러, 플랙. 책상 위에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치즈 있으니까 그거나 먹고 있으라구.”

“오옷, 치즈~!!”



아드리앙이 말한 장소로 재빠르게 날아든 플랙이 상자를 열고 치즈 한 조각을 꺼냈다.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우물우물 치즈를 꿀꺽하는 플랙과 함께 다시금 방 안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무언가 고민하는지, 다시금 눈가를 찡그리던 아드리앙이 이내 몸을 돌려 천장을 보고 누웠다. 하아, 긴 한숨소리가 그의 입가를 타고 흘러나왔다. 어느새 치즈 한 통을 다 비우고, 그 모습을 한심스럽게 쳐다보던 플랙이 한 마디 했다.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오늘따라 유독 들떴잖아? 너. 변신 안하고 그 여자를 봤기 때문인가~?”



아드리앙은 아무 말도 없었다. 눈을 감고 작게 한숨쉬는 모습에서 정답을 읽었는지 플랙은 낄낄 웃으며 그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휘잉 공중을 한 바퀴 돌더니, 아드리앙의 머리 위로 날아온 플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여간 신기하다니까. 블랙캣일 때 그렇게 자주 만나면서, 그 모습일 때 만났다고 새삼 그렇게 충격받을 거 뭐 있어?”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란 말이지.”



블랙캣의 모습으로 그녀를 마주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곁에 있으면 심장이 떨렸고 눈짓 하나, 미소 한 자락에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태연하게 굴 수 있었다. 아드리앙의 모습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더….


괜히 달아오르는 얼굴을 두 손을 들어 가렸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플랙의 비웃는 표정이 눈에 선히 그려지는 듯하다. 차가 멈추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그녀의 옆얼굴을 본 순간 모든 생각이 멎었다. 가녀려 보이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강인한 소녀,


나의 영웅.


백지장이 된 머리로 그저 멍하니 그녀를 내다보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꽤나 위급한 상황이었음에도 그 때는 그저 계속 그녀를 바라보고 싶었다. 시간이 느릿하게 굴러갔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는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심장소리는 흐르는 물처럼 평안했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지 못해서. 그녀와 서로 눈을 마주하는 순간 깨달았다.


세상에 운명이라는 게 정말 있다면, 운명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역시, 운명이라니까.”

“또 그 운명 타령이야?”

“다시 한 번 만나고 깨달았어. 역시 난….”



벌떡 자리에 일어나 앉는 아드리앙을 보며 플랙이 넌지시 제안했다.



“그렇게 좋으면, 변신하지 않고 다가가도 좋지 않아?”

“…아냐. 그건 아닌 거 같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악당과 싸울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굳이 다가가는 민폐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혼자 싸우는 걸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 아니, 아니다. 이건 모두 변명일 뿐이야. 그냥, 두려웠다. 블랙캣으로서도 거절당하는데, 굳이 원래 모습으로까지 제게 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사살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상냥했지만 그만큼 선이 확고했다. 블랙캣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 성격이 확연히 드러났다. 파트너로서 소중히 여겨준다는 것은 알지만 그 이상의 마음은 절대로 주지 않는다. 기대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퍽 잔인하다 싶다가도 희망고문이 아닌 것이 어딘가 싶기도 하지만,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포기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라.



“흐음, 모르지. 또 그 모습이면 꽤나 좋아할지도?”

“확실하지 않은 일에 굳이 모험하고 싶지 않아.”



한숨을 쉬며 두 팔을 옆으로 쫙 펼쳤다. 눈을 뜨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다시 새록새록 잔상처럼 떠오른다. 어쩌면 플랙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지금 괜한 걱정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었다.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그게 두렵다. 그저 블랙캣이라는 존재가 아닌, 진짜 ‘나’의 모습을 거절당하는 것이. 무엇보다 블랙캣은 또 하나의 나 자신이었다. ‘아드리앙’으로서는 절대 보이지 못할 내 내면의 또 다른 모습. 블랙캣은 자유롭다.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장난스럽고, 매사에 솔직해질 수 있다.


현실에 꽁꽁 묶여 있는 나와는 다르게도.


낭만적인 시를 써서 사랑을 고백하고자 해도, 결국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건 어차피 전하지 못할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멋진 미사여구를 떠올려도 그녀 앞에선 제대로 생각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사실 블랙캣의 모습으로도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마음이 심란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원래 모습으로는 어떻겠는가.


블랙캣으로서만 그녀를 만나는 건 다름 아니다. 블랙캣의 모습을 하고서야, 나는 솔직하게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습다. 가면을 쓰고 있을 때만이, 그 어느 때보다 진실될 수 있다는 이런 모순이.


모르겠다. 아파지는 머리에 그는 조용히 생각을 거두었다. 그냥, 지금이 좋았다. 누구보다 가까이 그녀 옆에 있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블랙캣일 때가 좋았다. 언젠가는 그녀 앞에서 정체를 밝혀야만 한다는 걸 알지만, 아직은 묻어두고 싶었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좋은걸.”



그저 눈을 마주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질 만큼.





* * *



이제 여름이 지나간 탓인지,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주홍빛으로 물든 구름들을 주변에 두고, 새빨갛게 물든 태양이 잠을 자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곧 어두워지려나.


아드리앙의 초록빛 눈동자에 져가는 노을이 가득 담겼다. 그는 지금 스케줄을 마치고, 자신을 데리러 올 차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촬영 장소는 공원이었다. 낮과 밤의 경계에 서 있는 공원 안에는 이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마저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나뒹구는 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 공원의 분위기가 퍽 으스스했다.


왜 아직도 안 오나.


괜히 초조해지는 마음에 아드리앙은 가만히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다고, 불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방에 앉아서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을 플랙 녀석을 깨우기는 퍽 자존심이 상했다. 뻘쭘히 서 있다가 시간을 확인하게 위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시간이 꽤 늦어졌다는 것을 안 아드리앙의 눈썹이 살짝 까딱거렸다. 아무래도 전화를 해야….


응?


스치듯 지나가는 붉은빛을 잡아챈 녹빛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레이디버그?”



그저 한 순간의 중얼거림일 뿐이었다. 너무 소리가 컸던 걸까. 갑자기 고개를 돌려 자신 쪽을 쳐다보는 레이디버그의 얼굴에 아드리앙은 그만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자꾸만 손끝에서 미끄러지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아드리앙은 하염없이 그녀를 두 눈에 담았다. 살짝 깜빡이면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눈동자로.


레이디버그도 말이 없었다. 엊그제 마주했을 때처럼, 놀랐는지 깜빡거리는 푸른빛 눈동자가 망연히 그를 쳐다보았다.


느릿하게 감아지는 테이프처럼 시간은 빠른 듯이 천천히 흘러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침묵 끝에 먼저 말을 건 것은 그녀 쪽이었다. 당황한 건 그쪽도 마찬가진지, 꽤나 당황한 목소리였다.



“어, 아. 그러니까. 아…, 드리앙인가?”

“…날 알아?”

“어? 아! 포스터, 붙은 거 봤거든! 그래서.”



웃으며 대꾸하는 그녀의 모습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그 때는 잔잔했던 심장이 요란하게 제 의사를 주장한다. 마치 나에게, 그녀가 어떤 의미인지를 각인시켜 주겠다는 것처럼.


이름을 기억해줬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결국 이 모습의 나는 그 정도의 존재인가 싶어 괜히 씁쓸해졌다. 평소랑 달리 말을 더듬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싶기도 했지만, 이런 모습도 귀엽다는 생각이 드니 아무래도 중증인 듯 싶다.


말을 걸어볼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히어로 일…, 하러 가는 거야?”

“어? 으음, 아니. 막 끝났어. 이제 돌아가는 참이야.”

“그렇구나….”



내가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말하고 있으면서도 온통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수습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니까, 히어로 일을 끝냈다는 거지? 알았으면 나도 도우러 갔을 텐데. 혼자 처리하게 하면 안 되는데. 아,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말하자고 마음먹은 순간 꼬여버린 생각에 골머리를 앓았다. 자연스럽다는 게 뭐지? 나는 평소에 애들한테 어떤 식으로 말을 걸었더라?



“아, 그러니까. 그쪽은 여기서 뭐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찰나, 그녀가 하하 웃으며 말을 걸었다. 배려해주는 것 같아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긴 얼마나 바보같아 보일까. 모처럼의 기회를 잡았음에도, 제대로 이야기조차 나누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도 답답했다. 블랙캣으로서 매번 만나고, 소소한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인데 왜 지금은 그게 안 될까.



“아, 나는…. 차를, 기다리고 있었달까, 하하하.”

“그래? 그 대형 리무진?”

“그걸 어떻게?”

“…아, 하하. 어쩌다 보니.”



뭔가 얼버무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착각인가? 착각이겠지. 그녀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학교에도 자주 나타났었으니 제가 하교하는 모습을 봤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 하나에 설레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아드리앙은 슬쩍 웃었다.



“지금쯤이면 와야 하는데, 아직 안 오네.”

“…같이 기다려줄까?”

“어?”

“어 아니. 왜, 시민을 지키는 게 히어로의 일이잖아? 이미 상황을 알았는데, 여기 너 혼자 두고 가기도 좀 그렇고…. 부, 부담스럽다면 그냥 갈게.”

“…고마워. 하지만 집에 가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응?”

“위험하잖아.”



띠띠 울리기 시작하는 귀걸이를 손으로 가리키자, 그제서야 레이디버그는 깜짝 놀라며 허둥지둥 눈을 깜빡거렸다. 그럼에도 힐끗 제 쪽을 바라보는 게 걱정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붙잡고 싶어지는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그녀가 자신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길 원하지 않았다. 본래의 그녀에게도 자신의 삶이 있을 것인데.


…사실은 그냥 곁에 있어달라고 하고 싶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다. 블랙캣이었다면 분명 조금만 더 같이 있어달라고 떼를 썼을 텐데. 하긴, 그 모습이었다면 그녀는 제게 같이 기다려주겠단 소리조차 하지 않았겠지.



“그럼, 미안한데 이만 가볼게!”

“잠깐만!!”



뒤돌아서려는 그녀를 급하게 불렀다. 뭐냐는 듯이 뒤돌아보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노을빛을 받아 옅게 부서졌다.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기, 난….”



너를 좋아해.


그 말 한 마디가 설마 그렇게 힘들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순식간에 딱딱해진 혓바닥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깊숙이 묻어두었던 제 마음은 결코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말하고 싶은데, 정말로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가 없었다.


대답을 듣기가 무서워서.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다. 당장 얼마 전에도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가 자신의 모습을 한 악당이 되어 나타난 적도 있었고. 그 때도 그녀는 그의 마음을 감사히 여겼지만, 그저 그 뿐이었다. 그녀가 그를 거절한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그게 자신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자신이 지금 고백하면 어떨까. 몇 번 마주치지도 않고, 대화도 해보지 않은 상대에게서 받는 고백이라니. 과연 진심이라고 받아들여줄까? 그냥 동경이라고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드리앙은 살며시 고개를 내저으며 힘없이 웃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싫어. 그러니까, 말할 수 없어.



“…그냥, 고맙다고. 늘 우리를 지켜줘서 고마워. 레이디버그.”

“어, 응.”

“그런 네가…, 좋아.”



이 정도는 괜찮을까. 친구에게 말하듯,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애썼다. 말하고 보니 대담한 짓을 했나 싶어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래도 어딘지 후련했다. 날이 지고 있어 다행이다. 노을빛에 제 얼굴을 가려주겠지. 시선을 떼는 것이 아까워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그저 그녀를 바라보았다. 쿵쿵 울리는 심장소리가 온 몸으로 메아리친다. 그와는 별개로 쓰려오는 가슴에 세게 움켜쥔 손 안의 핸드폰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긴장으로 손이 덜덜 떨렸다. 숨죽여 대답을 기다렸다.



“어?! 어. 그, 그렇지!”



화들짝 놀라는 레이디버그의 모습이 왠지 낯설다. 블랙캣일 때 봤던 그녀는 언제나 여유롭고 당당했는데. 어째서일까. 작은 의문이 싹틀 찰나에, 레이디버그는 자신을 보고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미소에 심장이 철렁했다.



“난 진짜 가볼게!”



안녕.


그 말과 함께, 레이디버그는 바람처럼 그의 앞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계속 지켜보다가 소년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하, 하하하. 조금씩 소리내어 웃다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하늘로 향한 채 마음껏 웃던 소년의 웃음소리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러다가 하-. 긴 한숨을 뱉어내던 소년의 얼굴이 푹 숙여진 고개와 같이 감춰졌다. 새빨개진 귓불이 그의 상태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떠나간 상대를 그리며, 소년은 살며시 입을 열어-,



“사랑해.”



-닿지 못한 한 마디를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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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마리] 사랑의 정의





사랑이라.


솔직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가끔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있었다. 책에서는 사랑이란 달콤하고 로맨틱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보며 심장이 뛰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곁에서 서로 마음을 나누고 싶어지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너를 보면 가슴이 뛰었다. 무언가 간질간질 심장을 긁어내리는 것 같았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고, 손을 잡거나 그저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해진다. 책에서 말했던 그대로의 감정에 나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랑은 생각만큼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을 하고부터, 나는 세간에서 말하는 짝사랑이 얼마나 괴로운지를 몸소 체험해야만 했다. 상대가 내게 아무런 감정이 없을 때 사랑은 가끔씩 칼날이 되어 나를 찔러왔다. 나를 쳐다보는 무던한 시선 하나에 아플 정도로 뛰어대는 심장이 고통을 호소했다. 나를 거절하는 행동에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도 상처받고, 가끔은 손을 내밀기를 주저하기도 했다. 사랑의 반대가 무관심이라는 속설을 그 순간 느꼈다.


내 마음은 너의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온통 휘둘리고 오락가락한다. 종잡을 수가 없는 너라는 파도에 계속 휩쓸린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 결코 싫지는 않았다. 가끔씩 아프기는 했어도, 너와 함께 있을 때가 너무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리 심장이 뛰는데.



“사랑해.”



그래서, 너한테서 그 말을 듣는다면 무척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가끔 상상해보기도 했다. 너한테서 듣는 사랑고백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처음에는 분명 꿈이라 생각하겠지. 그러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를거야. 바보같이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나한테 그 말을 해준 당신을 꼭 끌어안고 사랑의 말을 속삭이겠지.


몇 번을 망설이다가 간신히 입에 담은 너의 그 한 마디에 숨이 멎었다. 벅차오르던 가슴은 이내 휙 고개를 돌리는 네 모습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분명 기쁜데, 기쁘지 않아. 저 한 마디가 너무 좋아서 꿈만 같은데,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만 같은 네 모습에 마음이 아파.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였던가? 사랑이 이렇게 아픈 거였던가.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아프고, 이렇게 눈이 따가워지는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그저 가볍게 지나가는 장난이었을 뿐이다. 사랑한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도와줄 수도 있다는 언제나와 같은 가벼운 장난. 당연히 돌아올 거라 생각했던 핀잔이 없어 의아해하던 찰나, 네게서 돌아온 그 말에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반짝 떠올랐던 기쁨을 차가운 분노가 덮어버리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나에게는 그리도 어렵고, 한 번 말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진정되지 않는 그 말이 네게는 그렇게 가벼웠구나.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그저 그런 한 마디일 뿐이었구나.


사랑해라는 말은 역시나 달콤했다. 지독히도 달콤해서 입 안이 쓰렸다. 어째서일까. 분명 너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마음은 왜 이렇게 점점 비참해지는 걸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잠깐만!!”



그 말을 남기고, 곧장 돌아서서 앞으로 걸어가려는 너를 다급히 불렀다. 너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 멈췄다. 그 돌아선 뒷모습이 마치 너와 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아 심장이 저릿했다. 너는 언제나 그랬지. 아드리앙일 때는 한없이 부드럽고 상냥하면서, 블랙캣인 나를 볼 때는 그저 차가워. 내가 아무리 쫓아가도 결코 돌아봐주지 않아. 싫어하는 건 아니면서도 그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아. 제발 나를 돌아봐달라고 목이 찢어져라 소리지르고 또 소리질러도, 네가 보는 건 내가 아니야. 진짜 내가 아니다.


닿지 않는 허상을 바라보는 너는, 결코 진실된 나를 돌아봐주지 않아.



“다시, 한 번만….”



늘 고민했어. 어떻게 표현해야 나의 이 마음을 좀 더 잘 전할 수 있을지. 늘 곁에 있어도, 네 앞에서 애써 강하게 행동해도, 좋아한다고 말하고 손을 붙잡아도 너에게 나는 언제나 파트너일 뿐이야. 조금 방법을 바꿔볼까 싶어 낭만적인 시를 써보기도 했지만 결국 전하지 못했다. 그 어느 것 하나,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네가 아직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를 돌아봐줄 날이 오리라고 믿고 있었다. 나를 피해다니는 너를 쫓아다니며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또 추스렸다. 괜찮으리라 믿었다.


이 마음이 네게 닿을 것이라 믿었다.

어리석게도.


말을 하는 것이 이렇게 무거웠던가. 이렇게 힘들었던가. 떨려오는 목소리에 잠시 말을 멈추고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네가 뒤돌아보고 있어 다행이다. 정면으로 마주하면 이 정도로 뻔뻔해지지도 못할 테니까.



“다시…, 한 번만 더, 사랑한다고 거짓말 해줘.”



제발.


맥없이 중얼거리듯 애원하는 목소리, 총기를 잃은 초록빛 눈동자는 몹시 지쳐 보였다. 흠칫, 몸을 떨면서도 그를 돌아보지 않고 침묵하는 마리네뜨의 주먹쥔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지는 절절한 애원에, 단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겠다는 무언의 타협에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블랙캣은 쓰게 웃었다.


이것조차 안 되는 건가.


기대하고 기대하고 또 기대하고, 그럼에도 그 끝은 언제나 좌절이었다. 돌아봐주지 않는 너에게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물이 없어 시들어가는 꽃처럼, 보답을 받지 못하는 사랑은 점점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도 너는 언제나 매정하게 내게서 등을 돌릴 뿐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상상하는 것조차 그만두었다. 결국 진짜 나로서는 네게 닿을 수 없다는 절망만을 느끼게 될 뿐이어서.


그럼에도, 네게서 듣는 그 말은 너무도 달콤했다. 마치 마약처럼. 중독되고 난 뒤에 따라오는 건 고통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달콤함 뒤에 남는 건 쓰라림 뿐일지라도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었다. 거짓말이라도 좋아. 나를 동정하는 거짓말이라도, 그 말 하나가 내게 스며들어 결국 나를 망칠 거라는 걸 알아도,


뿌리칠 수 없어.


너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었다.



“너한테는 그게 거짓말로 들렸어?”



한참이 지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보는 얼굴을 보자마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꽤 태연한 목소리와 달리 슬프게 일그러진 푸른빛 눈동자는 울고 있었다. 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잠시 멍해졌다.



“…뭐?”



멍청하게 되묻는 나를 보고서 너는 그저 입술을 깨물며 눈물만을 쏟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묘하게 선명한 시선이 날카롭게 나를 훑었다. 원망하는 듯한 눈동자에 어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나를 제지하는 네 목소리의 끝이 살짝 갈라졌다.



“다가오지 마!!”



단호한 거절에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그런 내 모습에 너는 잠시 당황한 듯하다가도, 괴롭게 일그러지는 표정을 주체하지는 못했다. 다시금 말을 꺼내는 네 목소리에는 이번엔 확실히 울음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네가 싫어.”



정말 싫어.


그 말만을 남기고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가는 네 발자취 위에 울음소리가 조금씩 담겨간다. 쫓아가지 못하고 나는 그저 멍하니 네 뒤에 남아 있었다. 너는 뭐가 그리 서러워서 울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뺨에 닿는 촉촉한 무언가에 살짝 손을 들어 눈가를 만져보았다. 투명한 무언가가 손가락 끝에 가득 묻어났다. 하, 탄식을 내뱉었다. 사랑이 대체 뭐라고, 이리도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걸까.


쫓아가도 되는 걸까.

쫓아가서 손을 뻗으면, 너는 이번에야말로 나를 돌아봐줄까. 방금처럼.


무겁다고 생각한 발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샌가 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는 너에게 의미가 있는 존재인 걸까. 다시금 뛰기 시작하는 이 심장소리는 그저 반사적인 육체의 움직임일 뿐일까, 아니면 너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니, 도망가지 말아줘. 나를 마주봐줘.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의 이런 한 마디에 다시금 흔들리는 나는 역시 바보인걸까. 멀리 가지 못한 너의 어깨를 붙잡자,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뒤돌아보는 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마저도 너무 예뻐서 심장은 진정할 줄 모른다.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식으로 도망가지 말라구.”



거짓말이 아니라면,

이번에는 다시 한 번 제대로 말해줘.


나를 사랑한다고.






===


연성키워드: 한 번만 더 사랑한다고 거짓말 해줘.

시뛰님이 뽑으신 연성키워드에 착안해서 써봤어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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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마리/캣버그] 이름




"그, 그건 뭐야?"


마리네뜨는 심히 당황하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마리네뜨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알리야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쭉 펴고 말했다.


"헤헹, 예쁘지?"


붉은 바탕에 검은 점들이 드문드문 그려진 후드티는 외관상으로 보기엔 상당히 예뻤으나, 당사자 입장에선 심히 당황스러운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레이디버그 테마의 후드티를 입고서 싱긋 미소짓는 알리야에게 마리네뜨는 진지하게 물었다.


"할로윈이야?"
"그건 이미 지났잖아."
"그럼 그건 뭔데!!"
"이거 팬들끼리 맞춰 입은 거야. 트위터에 공동구매하는 글이 올라왔더라고. 냅다 샀지!"
"어휴, 너도 참..."


대단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마리네뜨는 퍽 떨떠름해 보였다. 그런 친구의 표정에도 알리야는 그저 즐거운지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바퀴를 돌았다.


"근데 이거 디자인 꽤 괜찮지 않아? 밖에서 입고 다녀도 별 문제 없을걸?"
"모양에서부터 레이디버그 테마라는 게 눈에 확 들어온다, 야."
"그럼 뭐 어때. 질문 들어오면 저는 레이디버그의 팬입니다~ 라고 말해주면 되지?"


알리야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괜히 뻘쭘해진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알리야가 창피한 건 아니었지만 자기를 테마로 한 옷을 룰루랄라 입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 건 솔직히 좀 민망했다. 그렇다고 사실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리네뜨?"
"어, 어?! 왜!!"
"뭘 그리 깜짝 놀라. 시간은?"
"시간? 아...!!"


시계를 보니 벌써 나가봐야 할 시간이다. 깜짝 놀란 마리네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겨들었다.


"미안, 알리야. 이만 가볼게!"


약속에 늦었어. 허둥지둥 나가는 마리네뜨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알리야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요즘들어 마리네뜨는 바쁘다. 예전만큼 자주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건 조금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자기 방 책상 의자에 앉아, 한 팔을 의자에 괴고 턱을 기댄 알리야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한창 좋~을 때다."




***


"아하하하하!"
"지금 웃음이 나와?"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하 웃어대는 아드리앙에게 마리네뜨가 핀잔을 주었지만, 그는 좀처럼 웃음을 그칠 기색이 없었다. 정말 웃긴 모양인지 기분 좋은 웃음소리로 웃어대는 아드리앙의 모습은 여전히 멋지긴 했지만, 지금은 그 모습마저 괜히 얄미울 정도다. 마리네뜨가 손을 막 내저으며 열변을 토했다.


"아무리 우리가 영웅이니 뭐니 그런 소리를 듣는다지만, 설마 저런 거까지 만들 정도라니..."


민망해서 나다닐수가 없다며 이마를 짚고 고민하는 마리네뜨를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보던 아드리앙이 살짝 웃으며 정정했다.


"아, 아니. 내가 웃은 건 그거 때문이 아니라."
"응?"
"나도 샀거든."
"뭣?!"


기겁해서 냅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리네뜨의 모습에 카페 여기저기서 눈총이 쏟아졌다. 뻘쭘하게 웃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마리네뜨가 즉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몰랐어? 알리야가 레이디블로그에서 홍보하던데. 재빨리 구입했지. 블랙캣 버전도 있던데? 네 몫까지 사뒀어."
"아드리앙 너까지..."
"뭐 어때. 어차피 그거 하나 입는다고 우릴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그냥 팬이구나 하고 말겠지."
"어..."
"그리고 뭔가 커플느낌나서 좋지 않아?"


난 좋은데. 장난스레 미소짓는 얼굴이 마치 변신했을 때와 좀 닮아 있었다. 화악 달아오르는 얼굴을 푹 숙이며 우물우물 말을 꺼내는 마리네뜨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아, 아드리앙 네가 좋다면, 나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말한 마리네뜨는 그 말을 뱉은지 1분도 안 되어 자신이 했던 말을 도로 주워담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야만 했다. 처음 사귀게 되었을 때 이후로 가장 환하게 웃으면서 옆에 있던 봉투를 내미는 아드리앙의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거 입고 나가자!"


이런.



***


화창한 시내를 활보하는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검은 후드티를 입은 금발의 남자와 빨간 후드티를 입은 여자. 손을 잡고 있는 걸 보니 딱 봐도 커플이 분명했다. 꽤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에게 지나가던 이들이 가끔씩 시선을 던졌다.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자와 달리 여자 쪽은 조금 주눅이 들어 있었다. 힐끔거리는 시선이 신경쓰였던 탓이리라. 역시 이상한가 싶어 제가 입은 옷을 살짝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드리앙이 설핏 미소지으며 칭찬을 건넸다.


"잘 어울려."
"그, 그런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꼬옥 맞잡힌 손의 감촉에 마리네뜨의 얼굴은 점점 불타고 있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애정표현이 좋긴 좋았지만 여러 모로 심장에는 좋지 않은 것 같다. 자신에게 보폭을 맞춰 천천히 걷는 그의 배려가 낯간지럽다. 사귀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쉽사리 이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는 걸 보면 나도 꽤나 중증인가.


"오랜만에 같이 거리에 나오니까 기분 좋다."
"어, 어! 마, 맞아. 기분 좋다~."


불쑥 말을 건네는 아드리앙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한 뒤 마리네뜨는 다시 걱정에 빠져들었다. 이크, 또 말을 더듬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레이디버그일 때는 좀 낫지만 마리네뜨일 때는 그를 대하는 게 아직도 서투르다. 정말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마리네뜨?"
"응?"
"뭐 먹을래? 크레이프."
"어, 난 딸기로..."
"알았어."


크레이프를 사러 간 아드리앙을 뒤로 한 채 벤치에 앉아 있던 마리네뜨의 주변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풍선을 든 작은 아이. 신기하다는 듯이 멀뚱멀뚱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뻘쭘해질 찰나, 소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와, 레이디버그다!"


제 옷을 손가락질하며 해맑게 웃는 아이의 대답에 잠깐 멍해져 있던 마리네뜨는 픽 웃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 앞에 다가간 마리네뜨가 무릎을 접고 앉아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숙녀님. 여긴 어쩐 일이야?"
"엄마랑 놀러왔어! 언니 레이디버그의 친구야? 옷이 닮았어!"
"음, 맞아. 언니는 레이디버그의 친구야. 레이디버그 좋아하니?"
"응, 멋지잖아!"


헤실헤실 웃는 소녀의 모습에 마리네뜨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소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


"그래, 언니가 꼭 그 얘기 레이디버그한테 전해줄게. 귀여운 팬이 하나 있다고 말이야."


이제 돌아가야지?

꺄르륵 웃으며 좋아하는 소녀를 애써 달래서 보낸 뒤에야 아드리앙은 돌아왔다. 손에 들고 있던 크레페를 마리네뜨에게 넘겨주는 아드리앙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자, 여기."
"고마워."
"잘 대답해주던데? 민망하다고 할 땐 언제고."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는 게 히어로잖아. ...아니, 그것보다. 보고 있었어?"
"응."


대답과 함께 아드리앙은 제 몫의 크레페를 한 입 베어물었다. 천천히 크레페를 먹고 있는 아드리앙의 모습에 마리네뜨는 속으로 감탄했다. 어떻게 먹는 모습까지 저렇게 우아하지.


"좋네, 이런 거."
"응?"
"네가 레이디버그가 아니고, 내가 블랙캣이 아니어도 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거 말이야."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고 말하며 그는 웃었다. 살랑 부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더니 사뿐히 주변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그 이름은 우리 인연의 시작이기도 하니까."


없는 것도 서운해.

쏴아아 부는 바람이 측면에서부터 그들이 앉은 벤치를 훑어내렸다. 그녀를 돌아보는 아드리앙의 입꼬리가 살짝, 아주 살짝 올라가 있었다. 부드러운 초록빛 시선에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서,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바람이 훅 거세게 불었다.


"꺄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악당인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각각 풀숲에 숨어들었다.


"변신! 레이디버그, 예!"


붉은 빛과 함께 레이디버그의 모습으로 변신한 그녀의 앞에, 역시 변신한 블랙캣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트를 방해받은 것이 불만인지 질렸다는 듯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다가도, 웃음기를 아예 거두지 않은 걸 보면 아주 기분이 나쁜 건 아닌 거 같다. 그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결국 이쪽인가봐."
"그러게."
"갈까요, My lady."


블랙캣이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한쪽 손을 내밀었다. 제 앞으로 내밀어진 손을 말없이 바라보던 레이디버그는 그 손을 살짝 붙잡았다 놓아주었다. 악당이 있음직한 곳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날듯이 그 쪽을 향해 달려갔다.

히어로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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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마리 정략결혼 썰의 일부





[아드마리] 재회





대리석 위를 누비는 옅은 발자국 소리.


예식장 안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살짝 웅성거렸다. 겉은 웅장하지만, 속은 눈부실 정도로 하얗게 리모델링된 예식장은 무척이나 컸다. 수백 명을 너끈히 수용할 수 있을 것만치 크고,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았지만 세련됐다. 결혼이라는 예식을 치르기에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장소가 있을까.


의외로 규모에 비해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옹기종기 모여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선 하나같이 품위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 사이를 조심스레 누비는 아드리앙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은 못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짝 초조해 보이는 것이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하객들은 이제 막 결혼식을 앞둔 신랑인지라 긴장한 것이 분명하다고 웃어넘겼다.


검은 정장을 입고 앞머리를 뒤로 넘긴 청년의 얼굴은 아직 젊었다. 앳된 모습이 많이 쳐줘봐야 20대 중반일 것 같았지만, 손님들을 맞이하는 자세에서는 어엿한 어른의 모습을 비춘다. 사람들이 좀 물러가고 나서야, 아드리앙은 답답한지 제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살짝 풀렀다. 앞머리를 손으로 넘기려다 그만두었다. 이 머리 세팅한다고 몇 시간을 들였는데.


이 많은 인파 사이에서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하하, 재밌네.”



툭 내뱉어진 말투는 답지 않게 신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드리앙은 이 결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심지어는 신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랑 결혼하라고 이 모든 공작들을 다 해놓고 사라진 아버지에 그는 이제 존경심이 들 지경이었다. 심지어 하객들은 다들 내로라 하는 파리의 저명인사들. 여기서 결혼을 파토내겠다고 했다간 분명 수많은 소문이 돌겠지. 도망치지도 못하게 온 몸을 칭칭 감은 상황들에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런 걸 서프라이즈라고 준비했다면 아버지는 자신의 미적 감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거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던 아드리앙은 사람들이 다가오자 곧바로 표정을 웃는 낯으로 바꿨다. 아무리 짜증이 난다지만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에게 대놓고 싫은 표정을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다.


명색이 자신의 결혼식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결혼은 원래 사랑하는 사람과 축복 속에서 치루는 것이 아니었던가? 적어도 이런 식으로 급하게, 상대 얼굴도 모르고서 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배우지는 않았다. 이건 그냥 쇼였다. 눈을 가린 광대 하나가 무대 위에 올라와 춤추는 것 뿐이다. 손을 붙잡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다시 연락을 해봐도 아버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플랙한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 사람 많은 곳에서 나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끙, 소리와 함께 해결책을 강구하던 중, 아드리앙은 퍼뜩 떠올린 사실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여기 오게 된 게 나 혼자만은 아니었지.


신부가 있었어.


아버지가 고른 사람이니까, 아버지랑 연락할 다른 수단을 알지도 모른다. 물론 쉽게 알려주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른 수가 없었다. 일이 커지길 원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이런 식으로 결혼을 해야 할 바에는 정말 소문이 도는 한이 있어도 파토를 낼 생각이었다. 사랑없는 결혼 생활 따위는 질색이었고, 무엇보다 그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직 고백도 못했는데.


모델 출신다운 긴 다리가 성큼성큼 신부 대기실 쪽으로 향했다. 군데군데 보이는 표지판 덕분에 쉽게 대기실을 찾았다. 순결한 신부를 상징하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하얗게 물들어, 테두리에는 아름다운 문양들이 그려져 있는 문은 무척 아름다웠다. 다만 보통이라면 열려 있어야 할 대기실의 문은 소통을 단절하는 양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에는 남자 두 명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아드리앙을 알아본 그들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에 아드리앙은 신부도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들은 아마 경호보다는 신부가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는 거겠지. 그들을 물러가게 한 뒤 아드리앙은 짧게 심호흡을 했다. 흘끗 고개를 들어 웅장할 정도로 커다란 문을 올려다보다, 천천히 문고리에 손을 댔다. 뻘하게 결혼 전에 신랑이 신부를 보는 건 재수가 없다는 속설이 떠올랐지만, 어차피 진짜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뭐 어떠랴.


딸깍-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에 괜히 긴장이 되는 건 어째서였을까. 경건할 정도의 순백색으로 물든 문의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봐서는 안 될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킥 웃음을 터트렸다. 하기사, 원래라면 이 문을 열게 될 일 같은 것도 없었을 테지.


자신이 신부를 맞이하는 건 식장에서였을 테니까.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살짝 열렸다. 천천히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던 아드리앙의 몸이 우뚝 굳었다. 문에서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커다란 의자에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앉아 있었다. 살짝 푸른빛이 도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하나로 틀어올린 여인의 얼굴은 화장했는지 무척 하얬고, 영롱한 푸른빛의 눈동자는 입고 있는 드레스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눈을 내리깔고 무언가를 쳐다보는 얼굴이 무척 청초해 보인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여인은 고개를 들어 문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시선이 마주하자, 푸른 눈동자가 동그랗게 열렸다.


아드리앙은 이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무척이나.



“아, 아드리앙?!”



마리네뜨 뒤팽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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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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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마리] In Rainy Day






청명한 하늘 위로 무언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까만 먹구름이 조금씩 살금살금 걸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곧 우르르 빗방울이 쏟아졌다. 화창한 날씨를 즐기러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갑작스런 봉변에 급히 주변으로 흩어져갔다. 곧장 거리를 내달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버스 정류장이나 근처에 있는 건물 안으로 피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이내 굵어져 매섭게 지면을 때리기 시작했다.



“으앗!!”



짧은 비명과 함께 마리네뜨는 급히 근처에 있는 건물 안으로 피신했다. 문이고 창문이고 없이 뻥 뚫린 우중충한 회색빛의 건물 안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지만, 꽤나 으스스한 장소였다. 재빨리 피신한 덕분에 비를 별로 맞지는 않았지만 상의 쪽은 꽤 많이 젖었다. 머리에 가득 묻은 물방울들을 손으로 탁탁 털어내며 그녀는 비가 내리는 바깥을 짜증스레 내다보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쨍쨍했는데.



“오늘은 재수가 없나, 진짜….”



조금도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던 마리네뜨가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진짜. 아침부터 준비물을 잊어먹고 나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수업 시간에는 멍해있다 선생님께 걸리고,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실수들만 아주 골라서 하는 걸 보니 오늘은 날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재수가 없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 이젠 바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망했다.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지?



“으, 춥다….”



마리네뜨는 작게 떨며 두 팔로 몸을 감쌌다. 아직 여름이라지만 가을의 문턱에 다다른지라, 비와 함께 상대적으로 확 낮아진 기온은 젖은 옷을 입고 버티기엔 많이 서늘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배경삼아 주변을 돌아보니 여긴 아무래도 사용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된 건물인 모양이었다. 퀘퀘한 냄새가 코끝에 확 풍겼고, 어두컴컴한 내부는 어딘지 모르게 음침해 보인다. 굳이 안쪽으로 더 들어갈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었던 마리네뜨는 그저 비가 튀지 않게 몇 걸음 안으로 물러서는 것을 택했다.


아, 티키가 있었지.


옆구리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고 티키를 꺼내주려던 순간이었다.


처벅처벅, 무언가 달려오는 듯한 소리에 마리네뜨는 황급히 가방문을 닫고 숨을 죽였다. 잠시 뒤, 거센 빗줄기를 헤치고 발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릿한 시야를 뚫고 제 옆으로 뛰어온 누군가를 알아본 마리네뜨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부드러운 금발과 연한 초록빛 눈동자. 마리네뜨의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점점 커져가는 소리가 그녀의 몸을 뚫고 소년에게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


상당히 뛰어왔는지 딱 보기에도 소년의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물에 푹 절은 옷들이 바닥을 향해 축축 쳐졌다. 감싸안고 있던 가방을 이상할 정도로 조심스레 내려놓고,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로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물기를 짜내던 소년이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머리카락에 맺혀 있던 물기가 고갯짓에 따라 허공으로 흩날렸다.



“아우, 이건 대체 무슨 날벼락이야? 오늘 비 안 온다고 했었는데.”



작게 투덜거리는 혼잣말이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잠깐의 침묵. 자고 있나? 혼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가 확 고개를 들었다. 정면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마리네뜨?”

“아, 아, 안녕?!”



겨우 더듬거리며 한 마디 했을 뿐인데도 그녀의 속은 타들어갔다. 아드리앙이 제 앞에 있다니! 그러다가 순간, 젖어서 축 늘어지는 옷이나 머리를 퍼뜩 떠올리고서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머리를 정돈했다. 물에 흠뻑 젖은 건 자신보다 그가 더했지만 그런 건 그녀에겐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에 젖은 모습조차 멋지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콩깍지도 이 정도면 중증이다.


한편 아드리앙은 정말로 놀랐는지 뭔가를 감추려는 듯 두 손을 뒤로 가져다댔다. 허둥지둥 가방을 뒤로 감추며 뭔가 눈치를 보는 듯이 그녀를 흘끔거린다. 마리네뜨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대놓고 안심한 표정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너도 여기서 비 피하고 있었던 거야?”

“으, 응!”

“우산이 없는 건 피차 마찬가지인가….”

“나야말로 놀랐어. 너 리무진 타고 다니지 않아?”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마리네뜨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애썼다. 다행히도 그녀에게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건 아닌지 아드리앙은 곤란하다는 듯이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오늘은 날씨가 좋길래 오랜만에 걸어가고 싶어서, 그냥 오지 말라고 부탁드렸지.”



설마 비가 올 줄은.


쓰게 웃으며 그는 들고 있던 셔츠를 두 손으로 들고 툭툭 털었다. 꽤 야무지게 탁탁 폈지만 다 구겨진 셔츠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아드리앙, 그리고 그걸 멍한 얼굴로 지켜보는 마리네뜨. 기묘한 정적이 두 사람 가운데 내려앉았다.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싸하게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침묵에 섞여들어간다.


아드리앙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천천히 살펴보는 기회는 정말 흔하지 않았다. 일단 그는 자신과 거의 접점이 없었고, 어쩌다 기회가 생기더라도 제가 바보짓을 해서 분위기를 망치곤 했다. 쭉 뻗은 콧날이나 상냥한 눈동자, 부드러운 입매. 저 작은 얼굴에 어떻게 저 많은 게 다 들어가지? 물에 젖어서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힌다.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이젠 아플 지경이다.


잠깐, 그럼 여기에 아드리앙이랑 나랑 단 둘뿐이야?


퍼뜩 정신이 들자 상황이 명확하게 다가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여기는 아무도 없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비의 장벽 속에 단 둘이 갇혀 있는 상황. 두근두근, 뛰는 심장소리와 함께 얼굴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앞머리를 살짝 들어올리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는 아드리앙의 모습에 현기증이 날 것 같아 마리네뜨는 눈을 꽉 감았다.


아, 아직 나는 마음의 준비가…!!



“마리네뜨?”



헉. 가까이서 들리는 목소리에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살며시 눈을 뜨자, 몇 걸음 앞까지 성큼 다가온 아드리앙이 이상하다는 듯이 마리네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들고 있던 셔츠는 가방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고, 물에 젖어 착 달라붙은 티셔츠가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드리앙의 몸 쪽으로 자꾸 향하려는 시선을 애써 얼굴 쪽으로 돌렸다.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그 표정에 괜히 민망해진 마리네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그녀는 황급히 대답했다.



“어, 어?!”

“무슨 생각해?”

“무슨 생각하긴! 당연히 니 생가….”

“뭐라고?”

“으, 응?! 내, 내가 뭐랬더라? 아, 그니까 비, 비는 언제 그칠까 하고!”



두 손을 빠르게 내저으며 허둥지둥 말하다가, 퍼뜩 놀란 눈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 눈치를 보는 마리네뜨를 얼떨떨한 얼굴로 쳐다보던 아드리앙의 입가에서 풋,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하하하하…!”



뭐가 그리 웃긴지 아드리앙은 크게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청량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공간을 뒤덮고,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소리에 어우러졌다.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목소리가 마리네뜨의 가슴 한 구석에 스며들었다. 평소처럼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는 미소가 아니었다. 아이처럼 장난스럽게 거리낌없이 웃는 얼굴에는 평소의 어른스러움은 찾아볼 수가 없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정말로 기분 좋아 보였으니까.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마리네뜨가 저도 모르게 툭 한 마디를 내뱉었다.



“…멋지다.”

“어?”

“어?! 아니아니, 너 그렇게 웃는 거 처음…, 봐서?”



그, 그래서 좋다구.


더듬거리면서도 확실히 할 말을 마친 후에, 차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숙이고서 마리네뜨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나는 왜 이런 말밖에 못해서! 그래도 아드리앙한테 제대로 말했잖아?! 아니, 그래도…. 여러 가지로 표정이 변하는 마리네뜨를 가만히 지켜보던 아드리앙이 다시금 낮게 웃었다.



“너, 재밌네.”

“응?”

“칭찬이야. 아, 불쾌하게 들린 건…, 아니지?”

“아니아니아니 전혀!! 고, 고마워.”



여느 때와 달리, 꽤나 편안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마리네뜨의 미소에 아드리앙의 얼굴에서 웃음이 점차 엷어졌다. 시선이 닿자마자 화들짝 놀라 휙 고개를 숙여버린 마리네뜨를 가만히 쳐다보던 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작게 두 걸음 정도. 정말 그녀의 바로 앞에 서서야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제 왼뺨에 닿는 부드럽지만 차가운 무언가에 마리네뜨는 깜짝 놀랐다. 커다란 손이 마리네뜨의 볼을 감싸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생각보다 손이 차갑다는 생각은 자신을 똑바로 마주한 아드리앙의 시선에 눈 녹듯 씻겨 사라졌다.


빗소리가 귓가에서 점점 멀어졌다. 시선은 온통 아드리앙을 향해 있었지만, 긴장으로 굳어버린 입매가 바르르 떨렸다. 조심스레 제 뺨을 쓰다듬는 손길이 왠지 간지럽다. 진지한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드리앙에게 이게 무슨 장난이냐고 웃어넘길 여유같은 건 전혀 없었다. 이 버릇 때문에 몇 번이고 좋은 기회를 날려먹었지만 영 고쳐질 기미가 없다.


입을 열면 또 분위기를 깨리라는 것을 짐작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어떤 때보다도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애써 시선을 마주하고는 있지만 그가 한 마디라도 말을 꺼내면 당장에라도 말해버릴 것만 같다.


좋아해, 라고.


꿀꺽,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유달리 생생하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는 초록빛 눈동자가 이채로운 빛을 띠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은 마리네뜨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며, 무언가 망설이던 아드리앙이 손을 내려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던 순간이었다.


밝은 햇살 한 줄기가 그의 손끝에 닿아, 부서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바깥을 내다보자, 어느덧 물러간 비구름 너머로 청명하게 갠 푸른 하늘이 언뜻 보였다. 구름들 사이로 새어나오는 하얀 햇빛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던 아드리앙의 시선이 다시금 마리네뜨를 향했다. 눈을 감고서 딱 굳어있는 그녀의 이마를 조심스레 짚어주자, 마리네뜨는 그제서야 눈을 떴다. 아드리앙이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안색이 안 좋아 보여.”

“그, 그랬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이유가 그거였나.


그럼 그렇지, 하면서도 묘한 실망감이 마리네뜨의 마음 한 구석을 치고 올라왔다. 곧바로 고개를 흔들어 쫓아냈지만.



“이제 슬슬 날이 개는 거 같아. 소나기였던 모양이네.”

“그, 그러게. 소나기, 하하….”



다행이라고 싱긋 웃는 아드리앙과 달리 마리네뜨는 괜히 아쉬워졌다. 처음에는 짜증나고 열받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조금만 더 내려주지 싶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은 간사하구나.


왠지 시무룩해진 마리네뜨의 표정에 아드리앙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지?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급히 그는 가방에 들어 있던 폰을 꺼내들었다. 버튼을 몇 번 눌러 시간을 확인한 그가 낭패라는 듯이 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급히 가방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드리앙이 마리네뜨를 향해 밝게 웃어주었다.



“그럼, 나 갈게!”

“어?”

“조심해서 돌아가! 내일 학교에서 보자!”



검지손가락을 들어 총알을 쏘듯 흔들며 윙크하는 모습이 참으로 상큼했다. 그에 홀린 듯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마리네뜨를 뒤로 한 채 그는 햇살 아래로 성큼 발걸음을 내딛었다. 평소라면 분명 이런 으슥한 곳에서 집에 돌아가는 건 위험하다고 데려다주려 했을 테지만, 그러기엔 그는 지금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뛰어가다시피 그 자리를 벗어난 아드리앙은 말없이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이 그의 동요를 절실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방금 전에 그건 뭐였지?


눈을 감고 있는 마리네뜨를 보던 순간, 묘한 충동이 일었다. 뭔가 손을 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분에 별 생각없이 행동으로 옮기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이거 좀 위험했던 거 아닌가? 제가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보니 새삼 마리네뜨가 제 뺨을 올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근데 당시에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거리낌이 없었다.


정말 감정대로 행동한지라 왜 그랬는지도, 뭘 하려고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비가 그치지 않았다면 그 다음에는 무슨 짓을 하려고 했을까. 끙, 소리와 함께 고민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기분에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떨림이 멎질 않는다.


괜히 오해하면 어쩌지. 아니, 하지만 엄연히 따지면 오해가 아니라….


어렴풋이 짐작가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 그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어서 집에나 돌아가자. 고개를 붕붕 흔들며 아드리앙은 다시금 앞으로 걸어나갔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애써 달래가면서.






한편,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뺨을 한 손으로 감싸고 있는 마리네뜨의 가방 안에서 붉은 생명체가 튀어나왔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마리네뜨에게 티키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마리네뜨…?!”

“티키. 어어떡하지…? 아드리앙이, 아드리앙이! 내 뺨을 만졌다구!”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지 비명을 지르듯 대답하는 마리네뜨의 표정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정말 좋아서 팔짝팔짝 뛰어대는 제 파트너를 향해 티키가 떨떠름히 물어보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수를 안 하려구?”

“당연하지! …근데 그러면 더러워 보이려나? 그러다가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아, 하지만 진짜 씻고 싶지 않은데 며칠 정도는 안 될까?! 아아아, 어떡해!”



난리부르스를 추던 마리네뜨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사라진 아드리앙의 뒷모습을 그리며 마리네뜨는 다리를 굽히고 주저앉았다. 두 손으로 불타오르는 뺨을 감싼 마리네뜨가 작게 한숨을 쉬며, 너무나 행복하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너무 좋아.”



날은 말끔하게 개여 있었다. 그녀의 기분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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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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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썰 링크: https://twitter.com/Rine_NL/status/664844330897575936




님들 근데 생각해보니 캣마리여도 마리네뜨는 캣버그일때랑 반응 개똑같지 않을까요 헐 썰이 떠올랐는데 난 지금 과제해야돼!!!ㅠㅠㅠ


블캣이 마리네뜨 지키러 왔는데 마리네뜨 태도가 너무 자기를 경계하지 않으니까 장난삼아 마리네뜨 침대에 눕히고 덮치는 자세 취하는데 마리네뜨가 눈 가늘게 뜨고 블랙캣 얼굴 옆으로 턱 밀어내면서 빨리 일어나서 가자고 말했음 좋겠다 블캣은 데자뷰가 떠오를듯


이게 생각했던 상황이, 나타니엘 때처럼 레벅이 부탁해서 마리네뜨를 지키러 찾아왔던 건데 마리네뜨가 처음에 블캣이 방에 들어온 거 보고 캐당황해서 너 일단 나가라고 하고 내보냄. 물론 이건 블캣을 경계해서가 <<절대>> 아니라 방에 붙은 아드리앙의 포스터와 컴퓨터 화면을 끄기 위해서였음ㅋㅋㅋㅋㅋ 그리고 방에 들여보내주는데 얘는 여자애 방에 들어와 있으니까 매우 신기한데 마리네뜨는 너무 경계를 안해서 왠지 심술이 솟아.(이게 방에서 대기타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막 툴툴거리다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마리네뜨를 침대에 넘어뜨리고 덮치는 자세 취하는데 마리네뜨는 블캣은 그다지 의식하지 않으니까 손으로 턱 얼굴 밀어내고 농담으로 받아들이는데 이게 1화 상황이랑 너무 똑같은거야ㅋㅋㅋㅋㅋㅋ


거기서 아무리 눈새인 블캣이라도 뭔가를 느꼈겠지.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후로 마리네뜨 졸졸 쫓아다니면 재밌겠다. 마리네뜨는 굉장히 곤란해하지만 받아주는데 한번은 학교에서 변신해서 찾아오는데 마리네뜨가 처음으로 빨리 돌아가라고 화냄.


근데 이게 아드리앙 눈에 띌까봐서면 정말 웃길듯 야 본인이얔ㅋㅋㅋ 아무튼 블캣은 이 일이 굉장히 서운해서 시무룩한데 동시에 아드리앙도 시무룩하니까 마리네뜨는 걱정돼 아 얘 왜 이러지? 이러고. 그러다가 뒤돌아본 아드리앙이랑 눈이 마주치고 마는데, 마리네뜨는 놀라서 어버버거리지만 아드리앙은 괜히 얘를 멀뚱히 쳐다봐. 얘 나 싫어하나? 같은 관찰의 눈빛이었는데 마리네뜨는 어쩔줄 모를듯 얘가 왜 자꾸 날 쳐다보지? 으아아 으아아아 이러는데 아드리앙이 저기, 하고 운을 떼고는


"너 왜..."


까지 말하다가 관둘 거 같다 답답한데 얘 앞에서 그걸 물었다간 자기가 블캣인 거 다 티나잖앜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마리네뜨는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있는데 하필 이때 또 빌런이 나타남 ㅇㅇ 그리고 마리네뜨는 놀라서 밖으로 나가는데 아드리앙이 그 뒤를 따라감. 뭔가 미안하지만 일단 확인해보자고 생각하고 따라가는데 마리네뜨가 변신하는 거 보고 쩌억 굳어버릴 거 같다. 보고도 안 믿겨서 막 볼 꼬집어보고 그러는 아드리앙한테 뭔 놈의 꿈타령이냐고 플랙이 낄낄거릴듯.


아무튼 블캣으로 변신해서 레벅이랑 같이 빌런을 처리하는데 블캣이 다 처리하고도 레벅 얼굴 빤히 쳐다봐서 레벅이 "뭘 그리 빤히 쳐다봐?" 이럴듯. 근데 이 상황이 뭔가 익숙하다는 생각은 해도 방금 전 아드리앙과 블캣을 동일시하진 못하겠지(아오 눈새)


한편 블캣은 갑자기 자기 우상의 정체를 알게되서 혼란스러워. 막 집가서 아드리앙의 모습으로 침대에 풀썩 쓰러지면서 고민하는데 플랙이 아니 운명의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됐으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데 아드리앙은 왠지 날 싫어하는 거 아닐까 고민할 거 같앸ㅋㅋㅋㅋㅋㅋ 왜냐면 아드리앙일 때 자기가 쳐다보면 화들짝 놀라고 블캣일 때도 크게 화냈잖아. 왠지 원래 모습으로 접근하기는 좀 그래서 좀 더 자유로운 블캣 모습으로 다시 마리네뜨 찾아가서 사과함. 미안하다고. 근데 마리네뜨는 자기도 좀 충동적이었다 생각하고 머리 쥐뜯고 있었기에(...) 역시 자기도 심했다고 말하고, 블랙캣은 이참에 물어볼 게 있다고 하면서 너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직구 날렸으면 좋겠다^▽^ 어차피 얘는 자기가 정체 들킨것도 모르니까뭐 ㅇㅇ


마리네뜨는 당연히 있지! 하고 팔짱끼고 고개 돌릴듯ㅋㅋㅋ 블캣은 거기에 또 화들짝 놀라. 있어? 있어? 누군데? 하고 막 물어보는데 마리네뜨가 너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고 멋진 사람이야! 라고 당당하게 말해주겠지 사실 그 본인인데2222


블캣은 꽤 상심할 거 같다. 레벅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이러면서 그래서 누군지는 알아내자고 생각하고 그 후로 마리네뜨를 유심히 살펴볼 거 같음 아드리앙일때도! 근데 마리네뜨는 갑자기 얘가 나를 자주 쳐다보는 거 같아 당황스럽고 알리야는 너한테 관심있다고 막 부추김. 그, 그럴까? 하면서 막 망상에 폭주하는 마리네뜨를 보며 티키든 알리야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는데 그래도 마리네뜨는 여전히 아드리앙 앞에서는 말을 더듬고 수줍어해서 아드리앙은 아니 블캣인 나를 앞에 둘 때는 레이디버그랑 비슷한 느낌인데 왜 현실의 자기 앞에서는 저러는지 답답해함.


그러다가 니노한테 은근슬쩍 어떤 사람이 나를 이러이러하게 대하는데 왜일까? 물어보는데 니노가 그거 여자냐고 물어보고 그렇다고 말하니까 널 좋아해서 그런 거겠지~ 라고 말해줌. 아드리앙은 당연히 안 믿는다(..) 그럴 리가 없잖아. 하고 웃으면서 넘기는데도 니노가 너는 너를 너무 몰라서 탈이라고 고개 절레절레 저음. 그리고 아드리앙은 설마? 진짜? 이러면서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마리네뜨를 관찰하게 됨. 그러다가..


알리야랑 마리네뜨가 막 뭐 편지 쓴다고 방방거리는 걸 우연히 엿들은거야. 그거 듣고 심장이 철렁하지. 헉, 설마 좋아하는 사람한테 쓰는 건가? 하고 막 전전긍긍해하면서도 그 자리를 못 떠나는데 알리야 입에서 자기 이름이 나와 아니 왜?


게다가 마리네뜨가 방방 뛰는 게 더 놀라워. 막막 이번에는 꼭 제대로 고백할 거라고 얼굴 붉히면서 밝게 웃는데 저런 얼굴은 또 처음 보거든. 그래서 순간 막 가슴이 뛰고. 얘가 레벅이냐 마리네뜨냐에 대한 경계가 아직 있었는데도 ㅇㅇ


근데 이게 자기한테 보내는 거라면 마리네뜨가 좋아하는 상대가 자기라는 거잖아? 그리고 애들이 자기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자리 빠져나와서 집으로 갔는데 집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생각나는 건 마리네뜨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어. 동시에 블캣일 때 자기를 그렇게 내치던 게 떠올라서 마음이 아파. 그니까, 아드리앙일 때의 자기는 좋아하는데 블캣일 때의 자기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잖아. 이제 아드리앙은 고민을 하다가, 당분간 레벅한테 정체를 밝혀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아.


그리고 이제 블캣으로 다시 찾아가기 시작함. 어짜피 얘가 좋아하는 건 나라는 걸 알았는데 아드리앙으로서는 초조할 일이 아니지. 근데 얘가 아드리앙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일단 탐색전을 하자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마리네뜨는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는데 막 블캣이 부추기니까 웃으면서 이것저것 말해주는데 얘가 말하는 아드리앙의 모습이 너무 완벽해서 블캣은 순간 위화감이 드는거야ㅋㅋㅋㅋ 어느 정도는 맞는데 대충 마리네뜨가 자기한테 환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고민해. 결국 자기가 블랙캣인 걸 밝히면 마리네뜨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하게 되고, 아드리앙은 당분간 정체를 밝히지 않기로 결심함. 그래서 편한 블캣으로 마음 놓고 대쉬하기로 마음먹지! 마구 들이댈 거 같다 레벅일 때도 마리네뜨일 때도 ㅇㅇ


막 신경써주고 마리네뜨한테 자주 놀러오고, 자기가 찾아왔을 때 막 빌런이 나타나면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고 도망가줄듯ㅋㅋㅋㅋㅋㅋㅋ얘가 레벅인 건 알지만 좋아하는 여자를 위험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리고 레벅은 당황함. 이러면 변신을 못하잖아!


막 안전한 곳에 내려다주고 난 가서 시간이나 끌어야겠다~ 하면서 레벅한테 은근히 자기 정체를 암시하지만 역시 눈치채지 못하고(...) 마리네뜨는 변신해서 블캣이랑 빌런을 퇴치하지. 그리고 헤어지려는데 블캣이 레벅의 팔을 잡아.


"너, 만약에.."


까지 말하고 아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하고 끝. 평소보다 소심한 블랙캣의 모습에 레벅은 의아해하고, 요즘들어 왜 그러냐고 말하면서 막 블랙캣 코를 손가락으로 눌러주면서 웃어줄 거 같애 아씨 설레잖아ㅠㅠㅠ 그리고 블캣이 용기를 내서,


내가 싫어?"


하고 묻는데 레벅이 대답함.


"무슨 소리야, 싫어하진 않지."

"그럼 좋아해?"


라고 묻는데 그 좋아해가 단순한 동료의 의미가 아닌 걸 레벅은 잘 알지.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레벅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블랙캣은 언제나처럼 손등키스를 하고 말을 얼버무려. 근데 이런 레벅 모습에 진짜 포기 못하겠다는 생각만 솟는거얔ㅋㅋㅋㅋ 하지만 절대 아드리앙으로서 사랑받고 싶진 않았지. 그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니니까. 그래서 결국 블랙캣으로 마리네뜨, 즉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노력하는데 마리네뜨가 정말 철벽ㅋㅌㅋㅋㅋㅋ 안 넘어와 와 얘가 진짜 레이디버그구나를 뼈저리게 느낄 정도로ㅋㅋㅋㅋ


근데 어느 날 알아낸 게 얘가 아드리앙으로서의 면을 보여주면 좀 약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거야. 특히 진지해질 때. 게다가 레벅보다는 마리네뜨가 더 반응이 보여서(...) 마리네뜨한테 막 잘해줘 꽃도 주고 뭐도 주고 어쨌든 낭만적인 상황 다 해주는데 마리네뜨는 왠지 싫지는 않고. 그런 자신에 당황함. 그러다가 블랙캣이 어느 날 마리네뜨한테 찾아왔는데 얘가 길가에서 뭐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자기가 새로 찍은 향수 포스터야;; 정말 넋을 놓고 그걸 보고 있는 그 표정을 언제 봤는지 알았어. 아, 그 편지를 쓰겠다고 꺅꺅대던 그때. 근데 분명 자신을 좋아하는 건데도 블캣은 왠지 모를 패배감이 드는거야 그래서 마리네뜨한테 다가가서 팔을 어깨 위로 딱 올리고 안녕? 하는데 마리네뜨가 화들짝 놀라. 귀를 감싸고 막 말을 더듬고(사실 목소리가 아드리앙인 줄 알고 더 놀랐던거 아니 본인 맞지만) 있는 마리네뜨를 보며 블캣은 뭔가 눈치챘는지 씨익 웃으면서 마리네뜨한테 천천히 다가가. 왠지 달라진 블랙캣의 미소에 마리네뜨는 괜히 불안해져서 막 뒷걸음치는데 마침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어느 새 골목까지 몰려서 벽에 등이 닿고 블랙캣이 마리네뜨 머리 위 벽에 팔을 올리고 쓰윽 내려다봄. 마리네뜨는 왜, 왜? 하고 묻는데, 블랙캣이 손을 내밀어서 아주 살짝 마리네뜨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말해.


"나는 말이야."


하고 말하는 블랙캣의 미소가 아주 나른해서 괜히 긴장이 되는데, 블랙캣이 마리네뜨의 귓가에 다가가서 속삭여.


'역시 어렵네.'

"뭐?"

'적당히 좀 그만두지 않을래? 아무리 나라도 화가 날 거 같다고.'


라고 하면서 분한 표정으로 마리네뜨를 쳐다보면 좋겠다. 그리고는 막 턱을 잡아 들어올리는데 아무리 봐도 키스할 느낌인거야. 근데 레이디버그일 때처럼 막 거절을 못하겠어. 왜지? 침대 때는 잘 넘겼는데.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밀쳐내려고 했는데 블랙캣 표정에 왠지 몸이 안 움직여서 그냥 눈을 질끈 감고 마는데 이마에 뭔가 따뜻한 게 느껴져. 쪽, 소리와 함께 이마에 키스를 한 후, 어버버하는 마리네뜨를 보며 블랙캣이 속삭임.


"무슨 상상했어?"


정말 짓궃게 웃으면서 속삭이는데 순간 마리네뜨 얼굴에서 열이 확 오름. 미쳤어 미쳤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마리네뜨는 패닉이 오고. 막 창피해서 어쩔 줄 모르는 마리네뜨를 보면서 블캣이 가만히 한숨쉬면서 언제나처럼 잘난 척 말해.


"나는 말이야. 물론 매우매우 완벽하지만..."

"하?"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하지는 않단 말이지."


뭔 되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는 블캣을 보며 마리네뜨는 고개를 갸우뚱거려. 사실 이게 아드리앙으로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하고.


씨익 웃던 블랙캣이, 말해.


"니가 모르는 나의 다른 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야."

"저기, 그게 뭔 소리...?"

"뭐, 오늘은 여기까지."


맞춰볼래?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두 팔을 머리에 얹은 블랙캣이 휙 돌아서. 그리고 말해.


"따라와. 집까지 바래다줄게. 이 이상은 손대지 않을 거야."


아직은. 그 말을 몰래 속으로 덧붙이고 앞장서는 블랙캣의 뒤를 조심조심 따라가는 마리네뜨는 아직도 괜히 심장이 쿵쿵거림. 방금 전에 본 블랙캣의 표정이 어느 누구를 매우 닮아 있었거든.


근데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넘기는데 심장이 진정되지 않아서 막 진정하라고 속으로 비명지르던 마리네뜨는 윽, 소리와 함께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림.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이젠 얘를 보면서도 아드리앙을 떠올리다니.


근데 그 후부터 마리네뜨가 블캣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지. 블랙캣은 그 후로도 계속 찾아오고 받아주는 건 똑같은데 뭔가 이상해. 자꾸 심장이 간질거리는 게 커져가서 죽을 맛이야. 아드리앙을 볼 때처럼 격한 감정은 아니지만 블랙캣을 보면서도 뭔가 마음이 자라는 거야. 왠지 시선이 가고, 점점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어져서 고개를 돌릴 때가 늘고. 그런데 블랙캣은 정말로 그 후로는 얘한테 손 하나 까딱하지도 않고, 그거에 마리네뜨는 괜히 기분이 묘해지는 거야. 사람을 그렇게 뒤숭숭하게 흔들어놓고 본인은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게 열받음. 그래서 진짜 이 얘기 꺼낼까 말까 되게 고민하는데 사랑 앞에선 소심해지는 마리네뜨는 차마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그 와중에 빌런 정화를 나가게 됨.


정화를 끝내고 돌아서는 블랙캣한테 레벅이 무심코 말을 건다. 야, 너!! 돌아보는 블랙캣 얼굴에는 물음표. 왜?

근데 불러놓고도 본인이 뭔 말을 하고 싶은지 생각이 안나서 머릿속이 멍해졌어. 너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묻고는 싶은데 정체를 까발릴수는 없고ㅋㅋㅋ(이게 예전에 아드리앙이 마리네뜨한테 정말 똑같은 행동을 했었음) 그러다가 레벅이,


"너, 너 요즘은 꽤 즐거워 보인다?"


하고 말을 거는데 블랙캣은 천연덕스럽게,


"응 매우 즐거워."


하면서 막 웃으니까 레벅이 뭐가 그렇게 즐거운데? 라고 물음. 그래서 블랙캣은 그제서야 레벅이 뭘 말하고 싶은지 조금 눈치채고 웃음. 그냥, 레이디를 보고 있으니 즐거워서? 라고 말하면서 레벅 손등을 잡고 키스해. 근데 언제나처럼 피하지 않고 레벅이 인상 찌푸리면서,


"너 이런 행동 참 자주 한다?"

"무슨 행동?"

"그...!!! 아, 아니야. 됐어. 내가 미쳤지."


그 말만 하고 휙 돌아서는 레벅을 블캣이 붙잡고 진짜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무슨 행동을 말하는 건데. 말해."


진짜 궁금한지 박력이 넘치는 표정이 예전에 자길 벽에 몰아넣었던 때랑 너무 똑같아서 레벅은 당황하긴 하지만, 마리네뜨 때보다는 침착하니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너, 마리네뜨랑 자주 붙어다니는 거 같던데."

"뭐야, 질투해요, 레이디?"

"아니거든!!"


빽 소리를 지르면서 표정 다 구기며 자기한테 얼굴 들이미는 레벅을 보고 블캣은 놀란 표정으로 두 손을 듬. 아니면 말고. 막 얼떨떨하게 중얼거리는 블랙캣에게서 휙 등돌리고 천천히 걸어가던 레벅이 이내 빨리 뛰어감 쪽팔려섴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때 자기가 얘한테 어느 정도 마음이 생겼다는 걸 자각한 마리네뜨는 밤에 이불을 차면서 엄청난 세기의 고민을 하게 되지.


내가? 블랙캣을? 대체 어떤 면이 좋다고!!! 진정해, 마리네뜨. 너한텐 완벽한 아드리앙이 있잖아!! 바람은 안 된다고!

...뭐 사귀지도 않지만.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침대에 푹 엎어져서 고민하는 마리네뜨한테 티키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생각하라는 충고를 해줘. 마리네뜨는 그럴까? 하고 말하면서 잠에 빠져듬. 그리고 다음부터 블랙캣을 매우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하고 블캣은 굉장히 당황함; 게다가 눈초리가 꽤 매섭거든.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하는데 마리네뜨는 마리네뜨대로 너무 패닉인거야. 어떻게든 얘 단점을 찾아보려고 애쓰는데(ㅋㅋㅋ) 보면 볼수록 그래 이래이래서 괜찮았지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미치겠어.


어느 날은 블랙캣이 마리네뜨한테 너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으면서 사온 음료수를 건네줘. 아, 아니아니아니. 하면서 음료수를 받아들고 쪽 마시던 마리네뜨는 자기가 너무 자연스럽게 얘랑 놀고 있는데 이게 데이트같다고 이제서야 자각하고 얼굴 빨개짐. 미쳤다고 중얼거리며 슬쩍 눈짓으로 블랙캣을 보다가 블랙캣이랑 눈이 마주쳐. 왜 그러고 있냐고 하니까 블랙캣이 웃으면서 말해.


"널 보고 있었어."


정말 아무 사심없이 툭 내던진 말이라는 거 아는데 마리네뜨는 굉장한 패닉이 옴. 막 놀라서 음료수 떨어뜨려서 발치에 튀어버림. 깜짝 놀라서 멍해있는 마리네뜨랑 달리 블랙캣은 너 괜찮냐고 이리저리 살펴주는데 그 와중에도 손은 안 대는 거야. 그게 느껴지니까 순간 짜증이 난 마리네뜨는 블캣 손을 덥석 잡음.


"왜 아무 짓도 안 해?"


"뭐?"

"헉..."


순간 말해놓고 마리네뜨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정신이 드니까 내가 뭔 소리를 한거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얼굴이 아주 불타요 ㅇㅇ 이제 이쯤 되면 눈새 블캣이라도 눈치를 안 챌 수가 없는게(...)


블랙캣이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마리네뜨 팔 딱 붙잡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물어봐.


"무슨 짓을 해 줬으면 좋겠어?"


이게 진짜 정말 돌직구라 마리네뜨는 진짜 인생 최고로 패닉이 옴. 레벅이었으면 몰라도 지금은 마리네뜨라 감정 통제가 안 되는거야. 어버버거리는 마리네뜨한테 블랙캣은 뭔가를 직감하고 속삭여.


"눈 감아."


자기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는 마리네뜨의 얼굴을 살며시 살펴보던 블랙캣은 살며시 다가가서 키스함. 살짝 닿는 정도였지만. 여전히 얼굴이 빨개진 걸 수습하지 못하는 마리네뜨한테 벌떡 일어선 블랙캣이 손을 내밀어. 에스코트하듯이.


순순히 그 손을 잡는 마리네뜨한테 블랙캣이 물어봐. 티는 안 내지만 조금은 긴장해서.


"나를 좋아하게 됐어?"


마리네뜨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티키가 예전에 해준 말을 떠올리고, 목소리가 자꾸 떨리는 걸 가다듬고 말해.


"...너는 날 좋아해?"


겁이 많아서는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하는 마리네뜨를 보며 블랙캣은 피식 웃어. 저기, 내가 아무리 자유로운 고양이라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랑 키스하는 취미는 없어."


그거면 되잖아?

라고 말하듯이 손가락을 깍지끼고 꼭 잡는 블랙캣의 얼굴에 결국 마리네뜨는 순순히 인정해.


"미안해, 사실은 조금 혼란스러워.."

"..."

"나,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그래.."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블랙캣한테 마리네뜨가 말해.


"분명히, 분명히 그랬거든? 그런데 널 보면 자꾸 혼란이 와.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나 그렇게 가벼운 여자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대체 왜..."


왜 너한테 흔들리는 거지?


창피해.


혼란스럽다는 듯이 막 우물쭈물하다가 푹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잇지 못하는 마리네뜨를 보면서 블랙캣은 이제 정말 정체를 밝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물론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 속이고 싶지 않아서.


"저기, 기억해?"

"응..?"

"내가 완벽하지 않다고 했던 말."

"아, 그거? 그게 왜..."

"네가 그랬잖아. 나는 완벽하다고. 정말 나 같은 사람이 현실에 있는게 신기하다고. 뭐든 잘하고 상냥하고 잘생겼고, 누구든 나를 좋아하는게 당연하다고."

"야, 그건 니가 아니라 아드리.. 뭐?"


순간 그 말뜻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마리네뜨는 저도 모르게 말을 멈춰. 블랙캣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쓰게 웃으면서 잡고 있던 마리네뜨의 손가락에 입을 맞춤.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레이디."


그리고 그 순간 변신을 풀어버림. 촤르륵 소리와 함께 블랙캣이 아니라 아드리앙이 자기 앞에 서 있는 아드리앙을 보면서 마리네뜨는 넋이 나가. 이게 뭐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거지? 예상은 했지만 더 충격을 받은 듯한 마리네뜨의 표정에 아드리앙은 정말 쓰게 웃으면서 말해.


"네가 말하는 것처럼 완벽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마리네뜨는 정신을 차리고 아드리앙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는데 얘가 안 놔줘ㅋㅋㅋㅋㅋㅋ 자기 놀린 거냐고 화를 내는 마리네뜨한테 아드리앙은,


"사람 하나 놀리자고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여 찾아올 리가 없잖아!"


라고 말하면서 진짜 화난 얼굴하는데 마리네뜨는 순간 쫄음.. 왜냐면 얘는 어쨌든 아드리앙 얼굴에 매우 약하니까(...) 블캣을 좋아한다고는 인정하고 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니가 정말... 블랙캣?"

"그래."

"어, 어. 그러니까..."

"솔직히 처음부터 그냥 털어놓고 싶었어. 네가 이런 반응을 보일까봐 말할 수 없었을 뿐이야."

"이런 반응?"

"나를 끔찍해하는 네 표정."

"내가 왜 너를 끔찍해한다는 거야?!"

"네가 말하는 것만큼 내가 완벽한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네게 탄로나면, 정이 떨어진다고 할까봐."

"..."

"그래서 기다렸어. 진짜 나를 봐주기를 바라면서."

"너, 설마..."


아드리앙이 고개를 끄덕거림.


"알고 있어. 네가 레이디버그라는 거."


그 순간 마리네뜨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싸해짐. 하지만 아드리앙은 꿋꿋이 말을 건네.


"근데 그런 건 이제 상관없어."

"..."

"나는 내가 아닌 블랙캣 앞에서 당당하고 자신 있는, 지금의 네가 좋아."

"..."

"...물론 넌 내 앞에선 절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부드럽게 말하는 아드리앙의 얼굴에 고뇌가 가득해. 그래서 마리네뜨도 이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슬슬 자각해. 그리고 그제서야, 자기가 아드리앙한테서 되게 열렬한 고백을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진짜 속으로 이게 꿈은 아니지?? 하고 막 멍하고 근데 기쁘기도 기쁘고 하지만 역시 둘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막 입다물고 있는데 아드리앙이 다른 손 뻗어서 마리네뜨 어깨 붙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김. 그리고 싱긋 웃으면서,


"내가 싫으면 지금 거절해."


하고 말하는데 이게 아드리앙 평소 버전이 아니라 겁나 블캣같아. 근데 저 얼굴로 이 대사치니까 파괴력이 너무 개쎈거; 블캣 때도 못 밀어냈는데 아드리앙 보니까 진짜 미치겠는 거야.


그래서 결국 아드리앙 질문에 아니요아니 그럴리가. 하고 대답하고 그거 듣고 아드리앙 얼굴이 진짜 확 밝아져서는 씨익 웃어. 그리고는 마리네뜨 허리 껴안고 다시 한 번 키스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조금 진하게.


키스 끝나고 망 멍해 있는 마리네뜨의 콧등에 살짝 키스하고 떨어지면서 아드리앙이 말해. 말투는 부드러운데 허리 안고 있는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만. 놓아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


마리네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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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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